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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釜山 金井山 姑黨峰), 호국(護國)의 산 금정산 고당봉에 서다 본문
부산 금정산(釜山 金井山 姑黨峰)
호국(護國)의 산 금정산 고당봉에 서다
▲부산 금정산(釜山 金井山)
고당봉(姑黨峰)높이 : 801.5m
위치 : 부산광역시 북구, 금정구 청룡동 양산 동면에 걸쳐 있는산
▲산행일 : 2018년11월18일 일요일 날씨 : 맑음
▲나의산행코스 :
범어사-→ 금강암→북문→금정산등산문화탐방지원센터→→금샘→→금정산 고당봉(원점회귀)
편도 2.8km 왕복 3시간 소요
▲산행지개요:
금정산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주봉(主峰) 인 고당봉은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를 이루는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북으로 장군봉(727m), 남쪽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백양산(642m)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원효봉·의상봉·미륵봉·대륙봉·파류봉·동제봉 등의 준봉이 나타난다.
산세는 그리 크지 않으나 곳곳에 울창한 숲과 골마다 맑은 물이 항상 샘솟고 화강암의 풍화가 격렬하여
기암절벽이 절묘하여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이 되었다.
금정산에 대한 기록으로는 '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 산천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丈) 가량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寸) 가량으로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금어(金魚)가 5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하고
그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라 이름했다' 한다.
금정산은 부산시민들이 주말 및 휴일을 이용해서 즐겨 찾는 산으로 상계봉
백양산으로 이어지며 주변 곳곳에 기암괴석이 있다.주말이면 사람들에 치일 정도로 주능선을 가득 메운다.
금정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많은 불교 역사유적을 간직한 유명 사찰이며 인근에 금강공원과 동래온천이 있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 금정산 등산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진주ic→→→남해고속도로 칠원jc→→→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금정TG
→→→범어사 주차장
111km 승용차 1시간25분 소요.
→→→→→2018년 11월18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일요일 산악회 산우들 100대명산 도전팀과 부산 금정산을 찾았다
금정산 금정샘을 보고 싶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곳 이였다.
↗ 범어사 북문방면 금정산 들머리
북문방향 금정산 들머리는 범어사에서 부터 시작한다
범어사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산행을 준비한다
주차비는 일괄3000원 이다.
금정산 높이는 801.5m이다.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솟은 명산이다. 부산의 진산(鎭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일곱 치쯤 된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이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금정은 금어(金魚)가 사는 바위 우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 범어사 북문방면 들머리
여기서 부터는 범어사 경내가 아닌 범어사 옆으로 계곡따라 등산로가 있다
금정산성 북문까지는1.6km 이라고 되어 있다.
금정산은 낙동강과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가 되는데, 최고봉은 북쪽의 고당봉(801.5m)이다.
북으로는 장군봉·계명봉(602m)이 뻗어 있고, 남으로는 원효봉(687m)·의상봉·파리봉·상계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백양산(白陽山, 642m)에 이어진다.
산정부는 각섬석화강암(角閃石花崗岩)으로 되어있고
남동부는 마산암류(馬山岩類), 북부는 안산암질 암류(安山岩質岩類)로 구성되어 있다.
산정의 능선에는 암반이 노출된 첨봉(尖峰)이 많으며 대체로 동쪽과 남쪽은 급사면
북쪽은 완사면을 이룬다.
↗ 범어사 북문방면 탐방로 초입구간
범어사 북문방면 금정산 탐방로는 초입부터 정상까지는
그의 완사면을 이루고 있어 부산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적당한 코스다
하루에 열두번을 올라도 그다지 힘들지 않은 코스이다
금정산 산정부는 각섬석화강암(角閃石花崗岩)으로 되어있고
남동부는 마산암류(馬山岩類), 북부는 안산암질 암류(安山岩質岩類)로 구성되어 있다.
산정의 능선에는 암반이 노출된 첨봉(尖峰)이 많으며 대체로
동쪽과 남쪽은 급사면, 북쪽은 완사면을 이룬다.
↗ 범어사 북문방면 탐방로
낙엽도 다 떨어진 탐방로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가을 끝자락 초겨울 맛을
느끼게 하고 세삼 세월도 빠르게 느껴진다.
금정산 급사면의 산록에는 주빙하환경(周氷河環境)에서 운반·퇴적된 심층풍화(深層風化)
기원 즉, 핵석(核石) 기원의 화강암 암괴들이 암괴류(岩塊流)를 형성하고 있다.
심층풍화 기원의 암괴류는 보통 3단계를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1단계는 최종빙기(最終氷期) 이전의 온난습윤한 환경에서
화강암 계열의 심층풍화에 기원한 원력(圓礫)과 토르(tor)가 잠재적으로 형성된다.
그다음 2단계에서는 최종빙기 동안의 주빙하환경에서 솔리플럭션(solifluction)과
포행(匍行)에 의한 암설(岩屑)의 이동으로 암괴류가 형성된다.
마지막 3단계는 암괴류를 구성하는 암설 사이의 세립물질(細粒物質)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면서 지형면의 미기복(微起伏)이 형성된다.
↗ 119 조난 위치표지목 북문0.6km
금정산산행은 대체로 3개지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산성고개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그리고 장군봉을 중심으로 한 최북단지역이 그것이다.
남쪽 코스는 금강공원의 망미루나 만덕동에서제2망루-상계봉을 연결하는 산행이나
그 반대로 상계봉-제2망루, 또는 산성고개까지 연결한 산행으로 이루어진다.
산성고개 북쪽의 산행코스는 산성입구기점, 회룡암기점, 구서역기점, 범어사기점
외송기점으로 나눠볼 수 있으며 외송지역을 빼면 어느 곳에서 산행을 하더라도
하산지점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금정산 산행의 장점이다.
1코스는
만덕동:시내버스 33번 종점이 있어서 이 버스를 이용하면 구포쪽인 상계골로 들어가 상계봉을 오를 수 있다.
동래쪽에서 상계봉을 오를려면 74번 버스를 이용하여 구만덕고개앞 육교에서 하차하여
능선으로 올가가거나 만덕고개를 통과해 만덕까지 와서 상계골로 들어가도록 한다.
2코스는
온천장:온천장역-산성마을행 마을버스(203번)을 타면 산성고개나 동문에 쉽게 갈 수 있다.
온천장에서 망미루나 식물원쪽에서 케이블카 아래 능선을 따라
제2망루-남문-상계봉이나 제2망루-산성고개로 가거나 할 수 있다.
3코스는
구서역:전철역 구서역에서 주공아파트쪽으로 올라가면 코스가 있다.
약수터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제3망루가 나온다.
↗ 금정산성(金井山城) 북문
금정산성은 동래산성(東萊山城)이라고도 부른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다시 쌓았다.
성벽은 17㎞ 정도인데,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축조되었으며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수구문, 암문 등이 있다.
산성의 크기나 축성 방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축성과 수축, 개축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은 1667년(현종 8)에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금정산성의 보수를 건의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증보문헌비고』에는 1701년(숙종 27)∼1703년에 쌓았으며
성벽의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으로, 사방에 성문이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1740년(영조 16)에 발간된『동래부지(東萊府誌)』관해 및 성곽조에는
1707년에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너무 넓기에 남북으로 두 구역을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좌기청(座起廳)·내동헌(內東軒) 등의 관아 건물과 장대(將臺), 중군소(中軍所), 교련청(敎鍊廳)
군기고(軍器庫), 화약고(火藥庫), 승장소(僧將所), 산성창(山城倉) 등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1806년(순조 6)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중수하고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문·남문·북문에 문루를 만들고는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당시 성벽의 길이는 32리였으며, 산성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다고 한다.
↗ 금정산성(金井山城) 북문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 북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문으로서
금정산성 북문(金井山城北門)은 금정산성의 북쪽 해발 620m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
범어사(梵魚寺)에서 범어천을 따라 돌계단으로 서쪽으로 2㎞쯤 올라가면 잘록한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북문은 1703년(숙종 29)에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되었다.
1824년(순조 24)에는 금정산성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에는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과 성문만 축조되고 성문에는 문루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정산성 북문이 허물어져 육축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8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이후에도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규모는 육축 부분이 6.64㎡ 정도이고, 문루가 11.4㎡이다.
성문의 형식은 앞면과 뒷면 모두 평거식(平据式)으로 되어 있다.
성문의 폭은 250㎝이고, 측면이 350㎝이다. 문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홑처마 우진각 지붕의 단층 문루로서 양성 바름[지붕마루의 수직면에 회사 반죽 또는 회반죽을 바른 것]으로 되어 있다.
성문 위에 성가퀴[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설치되어 있으나
총안(銃眼)[성가퀴 또는 포사(砲舍) 안에서 적을 내다보고 총을 쏠 수 있게 한 구멍]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현재 금정산성 북문은 완전히 복원되어 소박한 옛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팔송과 범어사 방면에서 금정산성으로 출입하며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으로 가는 성문으로서 가장 투박하고 거칠며 다른 성문보다 작다.
↗ 금정산성(金井山城)
금정산성은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규장각 소장「금정산성진지도(金井山城鎭地圖)」에는
장대가 동서남북 4곳의 대문과 국청사 뒤쪽에 1곳씩 있고, 본성과 중성에 각각 10곳과 2곳 등 총 12곳의 망대(望臺)가 있었으며
그 밖에 수문 3곳, 중성 석문 1곳, 아문(亞門) 1곳 등의 성내 시설물이 자리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숙종 이래로 산성 수축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부설비(金井山城復設碑)가 현재 남아 있다.
성벽의 몸체인 체성벽에서 성벽 위 여장(女墻)의 기초석인 미석(眉石)까지는 높이가 낮은 곳이 표토에서 1.5m이고
높은 곳은 1.8∼2.1m이다. 미석은 두께 10㎝ 내외의 판석을 사용하였는데, 20㎝ 정도 돌출시켜 설치하였다.
여장은 20∼80㎝ 정도 높이로 남아 있으며, 동문터 주변의 복원된 부분은 높이가 90㎝에 이른다.
가장 높게 남아 있는 북쪽벽 일부는 안쪽벽 바닥에서 여장 윗부분까지의 높이가 1.2m여서
조선시대 여느 성곽의 여장 높이와 같다. 다만 바깥벽 미석을 기준으로 하면 높이가 80㎝이며
특히 미륵암 북쪽 암반 주변에는 약 1m 정도의 성벽도 남아 있다.
따라서 여장을 포함한 성벽의 높이는 원래 3m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돈대(墩臺)로 추정되는 제3망루 남쪽과 일부 구간에서만 여장에 총안(銃眼)이 설치되어 있어
여장은 특수한 곳만 설치되었거나 복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04년에 실시된 죽전마을 금성동 일대 시굴조사에서는 높이 30∼80㎝, 너비 70∼80㎝
석축 2∼4단이 잔존하는 동서 5.6m, 남북 2.4m 규모의 석축 담장 유구가 총 8m 가량 확인되었는데
고지도에 있는 금정진의 외곽 담장으로 추정된다.
↗ 금정산 철모르는 진달래
초겨울 날씨에 철모르는 진달래 하나가 피어 있다
산행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철모르는 꽃들이 하나둘씩 있는게 산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금정산 산행은코스는 앞서 서술한 그다음 코스는 아래와 같다.
4코스는
남산역(회룡암코스):의상봉에 가까운 능선에 닿기 위해 남산역을 이용한다.
역에서 나와 외국어대운동장 왼쪽에 시멘트포장길이 나온다.
회룡암, 능선의 순서로 주능선에 오른뒤 의상봉, 원효봉을 지나 북문에서 범어사로 내려가거나
고당봉에 오른뒤 내원암-범어사코스로 내려갈 수 있다.
5코스는
범어사: 남쪽의 온천장과 함께 금정산을 오르는 가장 인기있는 코스의 깃점이다.
범어사 코스는 내원암으로 올라가 고당봉에 이르는 길과 금강암-북문-고당봉길로 나뉜다.
내원암코스는
범어사 동북쪽의 계명봉과의 사이에 형성된 계곡길로 올라가는 코스이다.
장군봉과 고당봉사이의 능선산록을 끼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 길은 1시간 10분정도의 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범어사-금강암-북문 코스는 범어사에서 남쪽으로 난 고당봉-원효봉사이 계곡길(바윗덩이들이 많은 계곡)을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주능선상에 있는 북문에 도착하게 된다.
6코스는
외송:외송은 금정산의 북쪽인 양산시 동면지역으로 바로 경부고속도로 옆에 있는 마을이다.
부산에서 외송으로 오르면 노포동을 지나 고개(지경고개)를 넘어야 한다.
동부시외버스터미널(온천2동)에서 양산행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 외송에서 하차한다.
동면초등학교를 지나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금륜사로 오른다.
(하차이후 금륜사까지 50분정도 걸림) 장군봉에 이르기전 727m봉이 나오고 그전에 바위구간이 조금 있다.
장군봉을 지나면 억새밭이 나온다.
금정산성 종주
산행코스(총 길이 17.337㎞) 제1구간(산성고개-남문-망미봉-파리봉-서문)
산성고개(목장승)→전망대→평평바위→제2망루→남문→망미봉→헬기장→사거리
→상학산 상계봉(640m)→제1망루터(638m)→파리봉(615m)→임도→산성로→서문. [산행시간 4시간30분]
제2구간(서문-고당봉-북문-원효봉-의상봉-동문-산성고개)
서문→부부묘→도원사사거리~중성갈림길→도원사→전망대→부산학생교육원(사시골)→철탑→주능선(496봉)→석문→
제2금샘 사거리→금곡동 갈림길→미륵사 갈림길→미륵사→미륵바위 전망대
→북문 갈림길→고당봉(802m)→고당샘→금샘→금정산장
→북문→원효봉→의상봉→제4망루→무명안부→부채바위→제3망루→나비암→동문→산성고개. [산행시간 6시간]
↗ 금정산 등산문화탐방지원센터
등산문화 탐방지원센터 자리는 1970년 이후 40년간 금정산장이 있던 곳이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부산시연맹이 산장을 운영하면서 금정산을 오가는 등산객들의 사랑방으로 사용됐다.
이후 시설이 낡아 2010년 11월 산장이 완전히 헐리고 이듬해 지금의 등산지원센터가 들어섰다.
등산지원센터는 등산문화 교육과 등산객 편의 제공을 위해 건립됐다.
그러나 센터 1층의 부산산악문화전시관은
모 업체의 등산용품 홍보부스와 각종 등산 장비 전시실로 사용되는 것이 전부다.
이마저도 전시 내용이 수개월째 거의 비슷해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습이다.
↗ 세심정(洗心井)
고당봉으로 가는길에 세심정이 있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마음을 씻는곳이다
물 한모금에 마음을 씻고서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보자
금정산은 호국의 산이다.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호국사찰(범어사)과
국내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은 해발 801.5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과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의 준봉을 일구어 놓고 있다.
산세는 그리 크지 않으나 곳곳에 울창한 숲과 골마다 맑은 물이 항상 샘솟고
화강암의 풍화가 격렬하여 기암절벽이 절묘하여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이 되었다.
북쪽으로 산정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이 있는데
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으며 한국 옛 산성 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금정산 국가지점번호414909894 고당봉0.8km
금정산 정상가지는0.8km거리에 있다
산책삼아 운동삼아 거북이처럼 올라온길 벌서 정상이 코앞이다.
금정산은 높이 801.5m. 부산의 북쪽에 솟은 산이다.
최고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계명봉·상계봉·원효봉·장군봉·파리봉·의상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 금정산 고당샘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남쪽 1백미터 가량 아래편에 돌담을 두른 샘이 있는데 편의상 고당샘이라 부른다.
고당샘은 금정산 정상의 암괴에서 신비롭게도 샘물이 솟아나는 것으로
인근의 미륵사 약수와 함께 명수로 이름나 있다.
음용은 할수없다 왜냐면 음용수로 사용할만 수질검사에서 부적합 판단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바로 고당봉으로 가지않고
금샘부터 탐방하고서 정상 고당봉을 오르기로 했다
↗ 금정산 금샘으로 가는길
고당샘에서 금샘가지 거리는 능선길로 5분정도 걸어가면 된다
금샘 가는길 바위틈에 세워진 나무지랫대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종종 볼수 있는데 무슨뜻 이유인지는 알수는 없지만
하나의 토템신앙이라고 본다.
↗ 금정산 금샘옆 암봉에서 바라본 해운대
금샘인근 암봉에서 바로본 해운대 조망이다
아이파크 건물이 바다와 함께 조망이 되었다
금정산의 동쪽 능선 허리에는 범천(梵天)의 금어(金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와 살았다는
금샘(金井)이 있어서 금정산(金井山)과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고 한다.
금정산은 부산에서 유일한 800m대의 산이다.
↗ 금정산 금샘(金井山 金井)
암봉끝에 정말 샘이 있다 어케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을까 자연의 신비로움을 본다
금정산 금샘[金井]은 금정산(金井山) 고당봉(姑堂峰)[801.5m] 동남쪽 8부 능선에
돌출한 바위 무더기 중 남쪽에 솟아 있으며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괴어 있는 바위 정수리를 말한다.
금정산 금샘은 범어 삼기(梵魚三奇)로 불리는 금정산 비경 가운데 하나로
암상금정(岩上金井)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산천조에
금정산 산마루에 3장(丈)[약 9.09m]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고 둘레가 10여 자(尺)[약 3.03m]이며, 깊이는 7치[약 0.21m]쯤 되는데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황금빛을 띤다 라고 유래를 전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의 기록에 따르면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이 황금색 우물 속에서 놀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금빛 우물이 있는 산, 즉 금정산(金井山)이라 산 이름을 짓고
그로 인하여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천(梵天)의 고기’ 즉 범어사(梵魚寺)라 절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도 같은 기록이 전한다.
↗ 금정산 금샘(金井山 金井)
금정산은 북쪽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동쪽으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쪽으로 동래구, 연제구, 서쪽으로 북구에 접하며 부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북쪽 장군봉에서 고당봉을 거쳐 남쪽의 상계봉으로 이어지는 사이에는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 준봉이 즐비하다.
금정산 금샘이 있는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백두 대간이 동해를 따라 흘러와 세워 놓은 마지막 영봉으로
봉우리에 서면 멀리 광안 대교를 비롯한 바다와 부산 시가지 및 낙동강, 김해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당봉의 동남쪽 8부 능선의 바위 덩어리가 바로 금샘인데
부산 금정산성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 금샘은 2009년 11월 3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향토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9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주변 표지판에 금정산 금샘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또한 영어·일본어·중국어로 금정산 금샘의 주소 및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산2-1번지이다.
↗ 금정산 고당봉으로 가는 테크계단
거북이 걸음으로 금정산 산세를 만끽하면서 올라온길은 그져 산책로처럼 편안했다
금정산에는 약수터가 14군데나 있어
등산객의 목을 축여주고 일부 구민의 식수로 쓰여지고 있으며 2,300여종류의 나무와 날짐승
길짐승을 포함 6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식하는 등
동 식물의 낙원이자 동래온천, 금강공원, 범어사, 국청사, 금정산성과 산성마을 등 명소를 두루 지니고 있다.
↗ 호국의산 금정산 걸어온길 뒤돌아보며
산정에 오르면 늘 이렇게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듯한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봉우리 사이사이 빌딩숲을 이루고 있고 산은 늘 그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 호국의산 금정산 정상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에는 인산인해다
정상석 주변에는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주말의 이름난 산정의 풍경이다.
금정산 이름의 유래는 '동국여지승람', '동래부지' 등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 가량이고 물이 늘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있으므로 금색어가 다섯색깔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금정산이라고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데 이것이 바로 금정산의 유래가 되었다.
고당봉(姑堂峰)은
『동래부지(東來府誌)』[1740]의 지도에는 고당봉을 ‘고암(姑岩)’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고당봉(姑堂峰), 고당봉(姑黨峰), 고당봉(高幢峰), 고담봉(姑潭峰)
고단봉(姑壇峰) 등의 다양한 지명이 혼용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여러 지명 중 정확한 명칭을 찾기 위해 학자와 향토 사학자들로 구성된
‘금정산표석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토론과 검정을 거쳐, 고당봉(姑堂峰)으로 공식 지명을
확정하고 금정구청에서 봉우리에 표석비를 세웠다.
↗ 금정산 고당봉(金井山 姑堂峰)801.5m
고당봉을 한자로 표기하면, 우리나라 산에는 산신이 있고 고려 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여신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할미 고(姑)’에 ‘집 당(堂)’을 쓴 고당봉(姑堂峰)과 금정산 팔경에
‘고당귀운(高幢歸雲)’이 있는 점과 『범어사 창건 사적(梵魚寺創建事蹟)』에
의상(義湘)이 금샘이 있는 곳을 찾아가 7일 7야로 독경을 하여 불법(佛法)의
깃발을 높이 세운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고당봉(高幢峰)의 두 가지가 쓰였는데
이중 고당봉(姑堂峰)이 공식 한자명이 되었다.
고당봉과 금정산 북부 지역 일대의 지질은 불국사 화강암류가 대부분이다.
주로 화강 섬록암, 각섬석 화강암 및 흑운모 화강암으로 구성되며 이 중에서 각섬석 화강암이 가장 넓게 분포한다.
오랜 지질 시대의 삭박 작용을 받아 특히 기계적 풍화 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결과
고당봉 주변에는 불국사 화강암류의 크고 작은 기반암의 나출로 특이한 암괴 지형인
토르(Tor)[지하의 암괴덩어리가 오랜 풍화 작용으로 동글동글한 돌인 핵석을 만들게 되고
이후 오랜 침식으로 주변의 층이 제거되며 핵석이 높게 쌓여 돌탑처럼 드러나게 되는 지형]와
타포니(Tafoni)[암벽에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파여 있는 지형] 같은 미지형들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금정산의 주봉으로 해발 801.5m이다.
고당봉에는 고모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 아래에는 용호암과 용암굴이 있다.
금샘[금정샘 또는 용암샘이라고도 함]은 고당봉 동쪽에 위치한 화강암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대천천은 금정산 고당봉 아래 북문재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 금정산 산신각 고모당 신당(金井山 山神閣 姑母堂 神堂)
금정산 고당봉 아래 고모당 신당이 있다
문밖에서 삼배를 올리고 소원성취 기도를 해본다.
고모당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금정산 고당 할미와 고모제」는 고모당(姑母堂)이라는 당산과 고당 할미가 된 밀양 박씨의 내력에 관한 당산신 전설이다.
고당 할미를 모신 고모당은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고모당의 고모제는 범어사의 모든 스님이 참석하여 1년에 두 번씩 지내는데
음력 1월 15일과 5월 5일에 올린다. 스님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범어사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코스로 고모당까지 걸어오는데
이것은 범어사의 지표를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신에게 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2005년 9월 1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발행한 『그 사연이 숨 쉬는 금정 이야기』의 76~79쪽에
고당 할미와 고모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밝히지 않았다.
고당 할미와 관련된 전설, 고모제를 지내는 절차 등을 두루 언급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은 울산 지방의 왜군과 합류하러 가는 길에 범어사를 불태웠다.
당시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해 있던 밀양 박씨는 절을 재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마을과 절을 오가며 애를 써서 주민들에게 시주 받은 것으로 스님들을 수발하고 절의 재건을 도왔다.
밀양 박씨는 범어사의 살림을 맡은 화주 보살이 되어 절의 부흥을 위해 하루하루 애를 쓰다가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두고는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火葬)을 하여 고당봉 아래에 사당을 짓고 고모제를 지내 주면
자신은 그곳에서 죽어서라도 범어사를 지키는데 힘을 쓰겠다고 했다.
주지 스님은 그녀의 뜻대로 장사를 지냈고, 그 후로 고모당을 지어 일 년에 두 번씩 고모제를 지내 주었다
「금정산 고당 할미와 고모제」의 주요 모티프는 ‘고당 할미의 내력’, ‘고모제의 유래’ 등이다.
고모신은 민간 신앙의 신으로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신앙의 대상이다.
그런데 「금정산 고당 할미와 고모제」 속의 고모신인 고당 할미[밀양 박씨]는
불교를 위해 애쓰다가 생을 마친 보살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 신앙과 불교의 습합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 금정산 산정에서 바라본 낙동강 그리고 김해평야
김해 양산 낙동강이 발아래 풍경화 처럼 펼쳐진다
낙동강(洛東江)은
본류의 길이 525.15㎞.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북한을 포함하면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총유역면적은 2만 3860㎢로 남한면적의 4분의 1, 영남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함백산에서 발원한 본류는 남류하다가 안동 부근에 이르러 반변천(半邊川, 116.1㎞)을 비롯한
여러 지류와 합류, 서쪽으로 흐르다가 함창과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乃城川, 107.1㎞)과
영강(穎江, 69.3㎞)을 합류한 뒤 다시 남류한다.
이 유로(流路)에서 상주와 선산에 이르러 위천(渭川, 117.5㎞)과 감천(甘川, 76.6㎞)을 합하고
다시 대구광역시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118.4㎞)과 합류한다.
경상남도에 접어들면서 황강(黃江, 116.9㎞)과 남강(南江, 193.7㎞)을 합한 뒤 동류하다가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 101.0㎞)을 합친 뒤 남쪽으로 유로를 전환하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 금정산 산정에서 바라본 해운대(海雲臺 )
금정산 산정에서 바라본 해운대도 일품이다.
해운대 이름의 유래를 보면
신라의 유명한 학자이며 문인인 최치원(崔致遠)이 낙향하여 절로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이 곳에 들렀는데
주변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동백섬 동쪽 벼랑의 넓은 바위 위에 ‘해운대(海雲臺)’라고
음각으로 새긴 데에서 현재의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대(臺)는 높고 평평한 지형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해운대 역시 달맞이고개와 그 주변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러나 현재는 해운대가 포함하는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예로부터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와 같으며
그 위에는 온통 동백나무와 두충나무, 그리고 소나무·전나무 등으로 덮여 있어
싱싱하고 푸르기가 사철 한결같다고 기록될 정도로 알려진 명승지로서 대한팔경의 하나이다.
해운대는 태종대·몰운대·신선대·오륜대·의상대·겸효대·강선대와 함께 부산팔경에도 속하며
해운대 자체에도 팔경이 있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다. 현재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온천
고급관광호텔 등의 숙박시설 및 위락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피서지·피한지 중의 하나이다.
↗ 범어사
금정산을 하산해서 범어사를 둘러보고 참배를 하였다
범어사는
부산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 년 고찰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의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금빛을 띤 우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그 물 안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에 산 이름을 '금빛 우물'이라는 뜻의 금정산(金井山)으로 짓고 그곳에 사찰을 세워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 라는 뜻의 범어사(梵魚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몇 차례의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힌다.
절은 백년 노송들에 둘러싸여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오랜 역사와 함께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삼층 석탑, 대웅전, 조계문 등 많은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는 만해 한용운이 범어사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함께 독립 운동을 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쓸 태극기를 범어사 암자에서 만들기도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며 범어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동계(東溪)가 편찬
간행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事蹟)』이 현존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당시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으므로 대왕이 근심하고 있었는데
문득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의상(義湘)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신인은 “태백산 속에서 의상이 3,000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화엄의지법문(華嚴義持法門)을 연설하며
화엄신중(華嚴神衆)들이 항상 그의 옆을 떠나지 않고 수행하고 있다. 또 동국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은 항상 금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 차 마르지 않고, 그 우물에는 범천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金魚)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왕이 의상을 청하여 함께 금정산 아래로 가서 7일 동안 화엄신중을 독송하면 왜병이 자연히 물러갈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로 하였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의상을 예공대사(銳公大師)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적기의 창건연대인 흥덕왕 때는 826년에서 835년까지이므로 이미 702년에 죽은 의상의 창건이라고 한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신라화엄십찰(新羅華嚴十刹)의 하나인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의상이 창건하고 의상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던 범어사는 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서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 되었다.
↗ 범어사 조계문(梵魚寺 曺契門)
범어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조계문이다
조계문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 2월 7일 보물 제146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일렬로 장주형(長柱形) 초석들을 네개 세우고
이 초석 위에 높이가 낮고 굵은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사이를 창방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다시 평방을 놓아 장방형의 틀을 짠 뒤 공포(栱包)를 놓아 다포식 건축을 이루고 있다.
공포는 외3출목(外三出目)으로서 소첨차나 대첨차는 교두형(翹頭形: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이고
살미첨차들은 강직한 앙서[仰舌]로 되어 있다.
출목 사이와 앞뒤 첨차 사이에는 널판을 대어 순각천장(巡閣天障: 출목 첨차 위쪽에서 막아 댄 반자)을 이루며
처마는 부연(浮椽: 처마 끝에 덧 얹어진 짤막한 서까래)이 있는 겹처마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양측 박공면에는 풍판(風板: 비바람을 막기 위해 댄 널)을 달았으며 모든 목조부재들은 단청을 하였다.
산에가는 사찰이 있으며 사찰에 가면 산이 있듯이 늘 산과 사찰기행을 함께하는 셈이다
혼자 왔다면 범어사 경내를 섬세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미루고
부산 금정산(釜山 金井山 姑黨峰), 호국(護國)의 산 금정산 고당봉에 서서
부산해운대 그리고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 부산광역시, 범어사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11.19]
'바다늑대 > 山 & 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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