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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백마산(山淸 白馬山),전쟁(戰爭)의 역사가 있는 백마산 산길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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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백마산(山淸 白馬山),전쟁(戰爭)의 역사가 있는 백마산 산길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18. 6. 10. 20:44


산청 백마산(山淸 白馬山)

전쟁(戰爭)의 역사가 있는 백마산 산길을 걷다..!


▲산청 백마산[山淸 白馬山] 

    높이 : 286m

    위치 경남 산청군 신안면 산안리와 중촌리에 있는

▲산행일  : 2018년06월10 일요일  날씨: 약간비 및 흐림

▲나의산행코스 : 

  신안 백마사-→망춘대→망루터→백마산 정상(원점회귀)

약2km 40분 소요


▲산행지개요:

백마산(白馬山)은 높이 보다는 인근지역의 유적지 답사와 함께 하는 실버 산행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여름철에는 강과 산을 두루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백마산 일대의 경치는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적벽 아래 강변 숲 속에는 신안루를 비롯하여 경연

담분, 유취, 매연, 우화 등 여섯 누각이 있었다고 전한다.

멀리 서울에서 도보로 8백 8십리를 내려온 길손이 이곳을 차마 그저 지날 수가 없어서

수려한 풍광에 젖어 가무와 풍악속에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고 한다.

백마산은 삼면이 절벽으로 둘레가 2,795척이고 동남쪽은 100여 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정상은 평탄한데 여기에는 못과 창고터가 남아있다.

또한 암반에는 깊이 15cm가량의 군용으로 쓰인 구멍 100여개가 남아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 성은 자주 이용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들은 더 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 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으로 변하였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백마산 아래 야산 일대에는 선사시대의 유적 고분군이 있으며

강을 사이로 하여 강루마을 위쪽에는 선사유적이 산재하여 역사자료로 보전하고 있다.

산성마을에는 추강 이창이 강학하던 유연재가 있어 채례를 하고 있으며

조금 거리를 두고 안곡영당에는 농서군 이장경, 문열공 이조년

경은 이포, 모은 이인립, 경무공 이제를 배향하였다.



▲산청 백마산 등산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진주ic→→→통영대전고속도로 진주jc→→→서진주TG

 →→→산청군 신안면 원지→→→원지삼거리(단성교앞)→→→ 백마사앞 주차장

33km 승용차 27분 소요





→→→→→2018년 6월10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나서는길에 여우비가 내리는 오후

비가 왔다가 해빛이 나왔다가 또 비가 오고 흐리고 변득스러운 날

경남지역 근교산을 찾아 산청으로 길을 나서본다.


↗백마사 표지석

백마사 표지석이 있는곳에 들머리와 주차장이 있다

보통 산행자들은 적벽산 초입으로 해서 백마산은 중간 그리고

월명산 날머리로 하고 산행을 기본으로 하지만

나는 하나 하나 정상을 밟아 보기로 하였다.

들머리코스는

보통 백마산 등산로는 3번 국도상의 신안면 하정리에 있는 모리마을의

백마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중촌리 산성마을 코스 등이 있는데 어느 코스나 편안하고 짧기 때문에

인근지역 등산객의 건강과 여가선용에 쉽사리 이용할 수 있으며

성철스님생가와 문익점선생 유적답사을 겸한 실버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백마산은

임진왜란 그리고 정유재란.25전쟁등 전쟁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곳이기도 하다.


↗백마산 등산안내도 와 담비보호 안내문

 등산 안내도는 시간의 흔적으로 색도 바래버렸고

보통 적벽산과  연계등산 안내도이다

백마산에는 담비가 살고있는지 담비를 보호하자는 안내문도 있다

담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국가적색목록 취약(VU) 종이며

유연하고 날씬한 몸체, 짧은 다리, 둥근 귀, 털이 많은 꼬리, 그리고 비싸게 거래되는

부드럽고 두꺼운 모피를 지닌 동물로 종에 따라 크기나 빛깔에 차이가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지역, 유럽에서 말레이시아 지역에 이르는 구대륙에 서식한다.

대개 혼자 지내며, 나무에 쉽게 기어오르고 동물, 과일, 썩은 고기 등을 먹는다.

담비속의 잘 알려진 종들로는 아메리카산달, 소나무산달, 흰가슴산달, 대륙담비 등이 있다.

담비라는 이름은 'Martes melampus'라는 학명의 1종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 백마사 입구 와 산행들머리

백마사 주차장에서 백마사까지는 50m남짓 되며

백마사는 대웅전 약사전 산신전으로 가람이 배치 되어 있다.

작은 암자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사찰이며

단청이 아주 깨끗하게 잘 되어 있다.


↗ 백마사 경내 전경

 정면이 대웅전이며 우측이 약사전이다

약사전[藥師殿]은

보통 동향(東向)으로 되어 있다. 당우 내에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협시(脇侍:좌우에서 보좌함)로 봉안한다.

약사여래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하는데, 동방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거주하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화를 소멸시키며 원만행(圓滿行)을 닦게끔 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킨다는

십이대원(十二大願)을 내어 그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으며, 중생의 한량없는 고통을 없애 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외우고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약사신앙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강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대 우리나라의 뺄 수 없는 중요한 신앙형태가 되어

대부분의 사찰에 약사전이 건립되었다.


↗백마사 대웅전[白馬寺 大雄殿]

大雄殿은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격을 높인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 좌우에 협시보살을 봉안한다.

삼신불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삼신불은 대개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약사여래,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웅전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노자나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한다.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며, 내부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만든다.

불단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며, 천장에는 보상화무늬와

연꽃무늬 등을 조각하여 천우보화의 의미를 상징한다. 많은 탱화들을 봉안하는데

석가모니불의 후불탱화로는 주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삼신불의 경우에는 삼여래 탱화를 봉안한다.


↗ 백마산으로 가는 산행로

백마사 우측으로 산행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아마도 백마사 사찰에서 관리를 하는듯 하다

우천시 백마사로 우수가 들어오지 않도록 되어 있고

둑방길처럼 되어 있다.


↗ 초입(初入)등산로

백마사에서 시작하는 초입부분은 급경사가 심하다

그래서 인지 백마사 우측 등산로를 둑방처럼 조성한 이유인듯 하다

식생은 주로 솔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작은높이의 산이지만 처음부터 숨고르기를 잘해야 할듯하다

급경사지구간이 거의 정상부가지 이어진다.


↗ 산행로 옆 조릿대(산죽)

산죽·갓대·산대·신우대라고도 한다.

대의 일종으로 무리 지어 자라는데 대나무 중에서 가장 작은 종류이다.

줄기는 지름 3~6mm이고 곧게 서는데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며 질이 단단하고 마디가 불거지지 않는다.

마디 사이는 거슬러 난 털과 흰 가루로 덮이지만

4년째에 잎집 모양의 잎이 벗겨지면서 없어진다.

꽃턱잎은 2~3년간 줄기를 싸고 있으며 털과 더불어 끝에 댓잎피침형의 잎 조각이 있다.

유사종인 얼룩조릿대는 일본산이며 조릿대와 비슷하지만

겨울 동안 잎 가장자리에 흰 무늬가 생겼다가 마른다.

조릿대는 일생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꽃이 피어 열매를 맺고 나면 조릿대 군락 모두가 말라 죽고 이듬해 다시 씨앗이 떨어져 싹이 나온다.

죽세공용·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대나무 종류 가운데 약성이 제일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열매·죽순·어린잎을 식용한다.

열매로는 떡을 만들거나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다.

조릿대 잎은 방부 효과가 있어 떡을 조릿대 잎으로 싸 두면 며칠 지나도 상하지 않으며

팥을 삶을 때 조릿대 잎을 넣으면 빨리 익을 뿐 아니라 잘 상하지 않게 된다.

줄기로는 낚싯대·바구니·소가구 등을 만든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 숨고르기

급경사지를 오를땐 비가오다 그치다 해볕이 내리다가 그야말로 여우비

다행이 날씨가 계속 흐려서 산행하기엔 적당 하였다

가끔 모기가 달려들곤 하지만......!

백마산은 작은산이지만

지난날의 숟한 전쟁의 역사 애환이 있는곳이다

백마산은 산 자체가 자연 산성이며

삼면이 절벽으로 둘레가2,759척이고 동남족은 100여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망춘대 30m

산에 오르는길 처음 만나는 안내 표지목이다

망춘대 방향30m 라고 적혀 있다.

보통 전망대 좌선대라고 하지만 백마산은 산성이므로 아마도

적군의 동향을 파악하는 망춘대라고 명명 하였으리라 생각한다.


↗ 망춘대에서 바라본 경호강

여기서 바라보면 외적들의 동향을 한눈에 잘 보여지는곳이다

탁 트인 경호강의 조망은 덥고 습도 높은 지금 시원하게만들어 준다.

경호강 유역은 북쪽에 소백산맥과 지리산이 있어

여름에 남서쪽에서 오는 저기압이 이 산맥에 부딪혀 지형성강우(地形性降雨)가 많은 편이다.

이 지역에는 산청읍과 생초면과 같은 남강 상류 지역의 분지가 발달해 있는데

이들 분지 주변에는 일찍부터 하성 충적지가 발달하여

도시가 성장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 단성면의 조망

망춘대에서 바라본 단성면 그리고 단성교 저멀리 성철스님 생가와 연결되는

묵곡다리도 보이며 단성다리옆 신안 원지의 대동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마산 망춘대의 바로 앞은 단성면 강루마을이며

여기서 보면 경호강 상류와 하류 멀리까지 조망할수 있다

군사 요충지로서 적군들의 동향을 한눈에 감시할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이다.

그리고 북한의 침략으로 6.25 전쟁 발발시 산청을 지켜낸 경찰 감삼수 경위

표지석도 경호강 둑방 위에 건립되어 있다.


↗ 망춘대에서

망춘대에서 서면 이렇듯 전쟁에 대한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곳이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 정상인근 능선

정상이 가까워 지니 평탄한 능선길이 나온다

능선길을 걸을때 깜짝 놀란것은 다름아닌 담비의 출현이다

담비가 많이 서식하기에 보존지역이라고 안내가 있었나 보다

담비를 아마도 어릴적에 보고 처음본것인데

카메라에 담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횡하니 갈길 가버렸다.


↗붉은 사슴뿔 버섯(독버섯)

등산로 근처  붉은 사슴뿔 독버섯이 많이 있었다

얼핏보면 영지버섯 어릴적과 유사하여 중독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독버섯이다.

보통 여름이나 가을에 활엽수 또는 침엽수 그루터기에서 자라는데

딱딱한 적색 사슴뿔 모양이다

산행자들의 독버섯 중독사고에 유의 해야 할것 같다.


암반의 구멍(군영지)

백마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부에 가까워 질수록 암반에 구멍을 많이 볼수 있다

백마산엔 이런 구멍들이 대략 100여개 존재한다

백마산성의 군영에 사용한 지주 구멍으로 사용된것으로 사료된다고 하며

깊이는 대략15cm이며 폭은 20cm정도이다.


↗ 나리꽃(참나리 야생화)

자연성곽 암반틈새에 피어있는 나리꽃이다

나리·알나리·호랑나리·권단·야백합·견내리화·대각나리라고도 한다.

수많은 나리 종류 중에서 꽃이 크고 아름다워 '진짜 나리'라는 뜻으로 참나리라 부른다.

그러나 꽃이 아름다운 반면에 향기가 없다.

또한 붉은 꽃잎이 뒤로 말려 있어 권단(卷丹)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비늘줄기는 지름 5~8cm로 둥글며 밑에서 뿌리가 나온다.

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는데 흑자색의 반점이 빽빽이 나 있으며

가지를 치지 않고 어릴 때는 거미줄 같은 흰 털로 덮인다.

참나리와 비슷하게 생긴 중나리는 살눈이 달리지 않고 잎과 꽃이 참나리보다 작다.

말나리 종류는 잎이 둥글게 돌려나므로 구별하기 쉽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살눈은 약으로 쓰지 못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비늘줄기(알뿌리)에는 포도당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단맛이 나는데 구황 식물로도 유용하다.

비늘줄기는 굽거나 쪄서 먹고 날로 먹어도 된다. 또한 꿀에 재서 먹어도 좋다.

비늘줄기는 백합이라 하며 약재로 사용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푹 고아서 죽처럼 먹는다. 술을 담가서도 쓴다.


↗ 백마산 정상부근 평탄지 지대(군영지)

정상부에는 여기가 지난날의 산성(山城)임을 알려주는

각종 구조물의 주추돌들이 산재해 있으며 구조물을 세웠던 암반구멍이들

제일 많이 산재해 있는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 백마산성 구조물 구멍

이에 그들은 더 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 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으로 변하였다.


↗ 군영지에서 휴식

군영지에서 내려다 보면 경호강 조망이 일품이다

백마산 아래 야산 일대에는 선사시대의 유적 고분군이 있으며

강을 사이로 하여 강루마을 위쪽에는 선사유적이 산재하여 역사자료로 보전하고 있다.

산성마을에는 추강 이창이 강학하던 유연재가 있어 채례를 하고 있으며

조금 거리를 두고 안곡영당에는 농서군 이장경,  문열공 이조년,  경은 이포

모은 이인립,  경무공 이제를 배향하였다.


↗평탄지 아래는 직벽

백마산성은 자연산성이라 한다

이렇게 백마산은 삼면이 절벽으로 둘레가 2,795척이고 동남쪽은 100여 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백마산은

경호강의 물살에 옆구리를 맞은 산이며 그리하여 깍아지는 절벽을 만들었다

백마산은 말의 형태로 꼬리부분이 백마사쪽의 들머리이며

정상부는 말 잔등처럼 평평하다.


↗ 정상으로 가는길

군영지에서 정상으로  가는길도 평탄하다

백마산 정상부분이 다 평탄 하다고 보면 되고

백마산 정상부의 솔나무는 대부분 큼직하다

쪽쭉 뻗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솔나무는 선조들의 기개와 같다.


↗창의병 군영 유적

최초 의병장이였던 곽재우 장군도 산청 백마산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렸다는

사료에도 있으며 곽재우 장군은

남명조식의 문하에서 공부 했다고 전한다.



↗ 산행로 옆 더득(奴蔘노삼)

산행로 옆에 더덕도 있다.

사삼(沙蔘)·백삼이라고도 하며 뿌리는 도라지처럼 굵으며 독특한 냄새가 난다.

덩굴은 대개 털이 없고 줄기와 뿌리를 자르면 하얀 유즙이 나온다.

유사종으로 꽃부리 안쪽에 자줏빛이 도는 갈색의 반점이 없는 것을 푸른더덕이라 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생약의 사삼은 뿌리를 말린 것이다.

어린잎은 나물이나 쌈으로 먹고 뿌리는 날것으로 먹거나 구워 먹거나 장아찌를 만든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산제 또는 환제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 백마산 야생화 큰까치수염

키는 1m까지 자라는데, 줄기의 아래쪽은 약간 붉은빛을 띤다.

어긋나는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짧은 잎자루가 있다.

흰색의 꽃은 6~8월경 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피는데 꽃차례 끝이 아래로 조금 숙여져 핀다.

꽃잎과 꽃받침잎은 모두 5장이며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봄에 어린순을 캐서 삶아 나물로 먹는다.

중국에서는 식물 전체를 캐서 진주채라고 하여 이뇨제나 월경불순의 치료제로 쓴다.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줄기는 길게 뻗는다.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50-100cm이고, 밑동은 붉은 보라색을 띤다.

줄기 전체에 털이 거의 없으나 윗부분과 꽃차례에는 털이 조금 난다.

잎은 어긋나며 잎몸은 긴 타원형 또는 긴 타원상 피침형으로 길이 6-13cm, 폭 2-5cm이다.

잎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잎 앞면은 녹색으로 짧은 털이 있는 경우도 있고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털이 없다. 잎자루는 길이 6-10mm이다.

꽃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총상꽃차례에 위를 향해 다닥다닥 달리며

흰색이고 지름 8-12mm다. 꽃자루는 길이 6-10mm로 잔털이 있고 밑부분에 선형의 포잎이 1장 있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수술은 5개다. 열매는 둥근 삭과다.


↗ 백마산 정상부

들머리에서 정상부 까지는  1km 남짓하다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산행하기에 아라맞은 코스이기도하다

백마산에 얽인 이야기들은 모두가 전쟁사이다

삼국시대 부터 신라와 백제 사이에 전쟁시 마다

백마산에서 공방전이 있었던 곳이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왜군들이 그해 10월5일

영남지방의 요지인 진주성(晉州城)을 포위할때

곽재우장군이 백마산성을 거점으로하여 14일간 격전끝에 물리친곳이기도 하다.


↗백마산[白馬山] 정상석

백마산 정상석은 진주시 상봉산악회에서

1986년 3월9일 세운것으,로 되어 있다.

백마산산행은

주로 적벽산 백마산 월명산 묶어서 산행하는데

예로부터 서부 경남과 지리산권의 교통요지로 통하는

산청군 신안면 원지리 단성교 앞 삼거리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성교 앞 이정표→전망대→적벽정→체육공원→적벽산 정상

→3번국도 변→산성교 사거리→백마사→망춘대→산성 내 연못→백마산 정상→전망대

→질매재 안부 사거리→잇딴 전망대→월명산→상사바위→남평 문씨 묘→안부 갈림길

→월명사→하촌마을 순. 산행 총거리는 8㎞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 정도면 여유 있게 마무리할 수 있다.


↗면민 안녕 기원 제단

백마산 정상에는 면민안녕기원 제단도 있다

정상 군영지터였던 곳에서 조망을 보면

신안면 소재지인 원지리 시가지와 단성교, 단성면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단성교 아래로 흐르는 경호강과 양천의 합수 지점도 보인다.

신안과 단성 일대 주민들은 경호강 줄기 중 적벽산과 백마산을 끼고 도는 부분을

따로 떼 어 '적벽강'이라 부른다.

충남 금산 주민들이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서 수통리로 흐르는 금강 일부 구간을 '적벽강'이라 부르고

일대 절벽을 적벽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백마산(白馬山)286m

백마산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가 진주를 넘어 북진하는 왜군을 맞아 한 달 이상을 버티면서 물리친 유적지다.

당시 왜군은 깎아지른 절벽을 갖춘 천혜의 요새인 산성을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자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옥새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성 위에 있던 곽재우 장군이 부하들에게 왜군이 볼 수 있도록 말을 세운 다음

쌀을 말 등에 붓도록 지시했다. 강 건너에서 이 광경을 본 왜군들은 물로 말을 목욕시키는 것으로 착각해

물이 많은 것으로 오인, 성 함락을 포기하고 물러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온다.

그 이후 원래 이름이던 동산성이 백마산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마산(白馬山)286m

백마산은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여름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합천 초계의 권율 도원수 진영에 머무르다

원균의 패전 소식을 듣고 울돌목으로 가던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지세를 살폈는데

천혜의 난공불락 요새인 점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길을 나섰다는 이야기가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1597년 7월 19일의 일이다.
일단 오르막을 올라서고 나면 길은 편평한 산책로와 같다. 산성 내의 연못도 보인다.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연못이라고 한다.

망루터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0분이면 족하다. 백마산 정상석 옆에 면민안녕기원제단이 있다.

서서히 가팔라지는 내리막을 타고 8분쯤 가면 작은 바위 전망대다.

맞은편 월명산과 그 뒤로 둔철산 자락이 조망된다.


산청지역의 백마산(山淸 白馬山)은

전쟁(戰爭)의 역사가 유독 많이있는 백마산 산길을 걸어면서

지금의 정세를 생각해면서 또 하나의 경남지역 정상석을 찍었다.



산청 백마산(山淸 白馬山)

전쟁(戰爭)의 역사가 있는 백마산 산길을 걷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산청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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