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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탐방객수가 제일 많은 서울 북한산 백운대(白雲臺)에 오르다 본문
북한산(北漢山)
탐방객수가 제일 많은 서울 북한산 백운대(白雲臺)에 오르다
▲북한산 백운대[北漢山 白雲臺]
높이 : 837m
▲산행일 : 2018년06월02 토요일 날씨: 맑음
▲나의산행코스 :
백운대탐방지원센터(우이동)-→하루재→인수대피소→백운산장-→위문 →백운대
-→위문 -→→용암문-→대동사 →→대서문 →→북한동역사관→→→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진관동)
약10km 4시간 소요
▲산행지개요:
북한산국립공원은 15번째 국립공원으로 1983년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에 서면 맞은편의 깍아 지른 듯 인수봉이 서 있다.
국망봉, 노적봉 등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있음은 물론 도봉, 북악,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모두 눈앞에 들어온다.
시계가 넓은 날에는 서쪽으로 강화도, 영종도 등 서해상의 섬들도 볼 수 있다.
백운봉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주능선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 및 형제봉능선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뻗어 내린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100여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사본이 설치되어 있다.
▲찾아가는길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심야버스 →→→서울강남터미널→→→지하철4호선 수우역1번출구
351km 3시간 50분 동양고속버스
▲북한산 등산지도
→→→→→2018년 6월2일 토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여름의 문턱에서 서울에 있는 산을 찾아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북한산국립공원은 산으로 찾는 탐방객은 부동의 1위이며
방문객수 1,000만 명을 초과 기록했고
이미 1994년엔 단위면적당 방문객 수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으로
세계기네스북협회로부터 인증서를 받은곳 북한산으로 나서본다.
6월2일 01시20분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4시30분에 서울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첫 지하철이 운행까지
간단 아침식사를 식당에서 하였다.
↗ 북한산 백운대탐방지원센터 도선사쪽
심야버스를 4시간 가량 타고 서울에 새벽에 도착해서 또 지하철을 이용 환승하고
또 4명 1인당2000원 택시를 타고
도착한곳이 서울 우이동 백운대 탐방지원센터다.
우이동에서 도선사 입구까지는 1km정도 오르막길이며
걸어가게 되면 25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북한산 탐방하는 탐방객수를 수학적으로 보면
북한산 면적은 76.922㎢. 이를 평坪으로 환산하면 2,329만여 평이며
1,000만 명이 방문했을 때를 가정하면 2평 남짓 면적에 1명의 등산객이 이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접근성 좋고, 인구 밀집도 높고, 산을 좋아하는 현상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으며
북한산이 1,000만 명 넘었을 때 설악산(349만 명)과 지리산(272만 명)이
그 뒤를 잇고 있지만 탐방객 수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 백운대 들머리
들머리에서 인증사진 촬영한 시간이 07시 15분이다
서울에와서 느낀것이 모든사람들이 새벽부터 많이 움직인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사람의 활기가 넘쳐나는곳
다르게 말하면 생존을 위한 시간이 빠르게 시작한다는것이다.
북한산 우이동 들머리는
인수봉이 제일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며 교통도 편리하여
많은 산행자들이 찾는 코스이라고 한다.
↗잘 조성된 등산로
이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하루재라는 고개 안부가 나온다
보통 이길이 백운대까지의 거리는2.2km인데 2시간 남짓 소요된다고 한다.
서울의 익숙하지 않은 공기속에서
서울의 산에서 맡는 공기가 세삼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 일행들의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 하는게
서울사람들이 좀 특이한가 몇번이고 쳐다본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에서 하루재 구간은 약 0.8km, 30분 정도 소요된다.
흙길과 자연 상태의 돌길이 반복되는 난이도 보통의 탐방로 이다.
백운대 코스로 진입하기 전 도선광장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코스로 진입하면 한결 가벼운 탐방이 될 듯하며
탐방로 입구에 위치한 도선사(道詵寺)는 1100여년 전 신라말엽의 도승이었던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석불과 대웅전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주요 행사가 있는 시기에는 등산객과 신도 등 많은 인파가 몰리므로 혼잡에 유의해야 한다.
↗ 첫번째 위치표지목
국립공원관리공단이라 지리산 표지목과 유사했다
북한산은
한반도 서부, 산맥들과 연결되지 않고
서울과 경기도 북부 지역에 솟아있는 높이 837m의 산으로서
1983년 4월 도봉산 일대와 함께 78.5㎢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많은 계곡과 폭포 및 우거진 수림이 뛰어나다고 한다.
↗ 안내표지목 백운대1.4km
북한산은
그 명칭은 서울의 옛 이름 한산(漢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산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 봉우리인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m)를 아울러
삼각산(三角山), 삼봉산(三峰山) 또는 화산(華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했다.
↗ 인수봉[仁壽峰]의 조망
북한산 주봉의 하나로서 암봉[巖峰]이 하늘을 향기 뻗어 있는듯 하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산악인들이
인수봉에 로프를 치고 등반하는것을 볼수 있었는데
오늘은 암벽등반 하는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인수봉[仁壽峰]
詩 인수봉(정호승)
바라보지 않아도 바라보고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고
올라가지 않아도 올라가
만나지 않아도 만나고
내려가지 않아도 내려가고
무너지지 않아도 무너져
슬프지 아니하랴
슬프지 아니하랴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인수봉을 바라본다
↗인수봉 대피소 및 경찰산악구조대
경찰산악구조대 발대배경을 보면
1983년 4월 3일 14:00경 한국 대학 산악연맹 소속 대학생 18명중
사망이 7명 부상 11명(동상환자)이 급변하는 기상으로 눈과 강풍 그리고
혹한이 예고없이 닥칠 수 있는데도 조난당한 학생들은 방수 방한재킷 조차 입지 않은 채
진눈깨비가 뿌리는 800m의 암벽정상을 하이킹하는 기분으로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사망자들은 바위틈에 얼어붙은 자일에 감긴채 암벽에 매달려
탈진과 허기에 지쳐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1983년 5월 19일 등반사고 예방 및 구조를 위해 경찰 산악구조대가 발대 운영되었다.
현재 북한산과 도봉산 두곳에 운용중에 있다.
하루재에서백운대피소 구간은 약 0.6km, 40분 정도 소요되며
돌계단 길과 자연 상태의 바윗길이 반복되며 난이도가 있는 구간에는
와이어로프와 목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탐방로 이다.
바위나 돌이 많은 구간이므로 자칫 발목 부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등산화와 스틱 등 등산장비를 갖추고 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테크계단
길게 직선으로 가파르게 테크계단이 설치 되어있다.
북한산 역사를 보면
서울과 인접한 산들 중 가장 높고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여겨졌다.
고구려의 왕자 온조와 비류가 남으로 내려와 북한산 봉우리에 올라 지세를 살폈다고 전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를 수호하는 천혜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병자호란 이후 다음 세대인 1711년(숙종 37)에는
북한산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고 이를 북한산성이라 불렀다.
북한산성은 북한산 능선 8km를 따라 이어지며 당시 건립된
14개의 성문 중에 대남문·대서문·대성문·보국문·용암문이 보존되어 있다.
↗뒤돌아본 직선테크계단
북한산의 유물유적지를 보면
남서쪽 비봉 기슭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승가사와 조선시대 궁중사찰이며
경치가 뛰어난 화계사를 비롯해 태고사·도선사·원효암 등의 사찰이 있다.
승가사 경내의 북한산 구기리 마애불좌상(보물 제215호)을 비롯하여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동장대지·신라 진흥왕 순수비유지(사적 제228호) 등
많은 유물·유적이 있다. 나도국선나무·미선나무군락 등
희귀식물이 분포하며 오소리·흰족제비·쇠딱다구리 등이 서식한다.
1983년 4월에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 78.5㎢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많은 계곡과 폭포 및 우거진 수림이 뛰어나며
크게 북한산유원지·우이동유원지·송추유원지·도봉산유원지로 구분한다.
↗ 백운산장에 있는 백운의 혼[白雲의 魂]
1950년 6월28일 백운암을 거쳐 후퇴하던 장교1명과
사병1명이 이곳에 살아 남아 사태를 지켜보던중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2명 모두 자결하였다
이에 두 용사의 우국충정을 길이 빛내기 위해 이비를 건립 하였다고 한다
白雲의 魂 追慕碑
“서울들 빼앗기고 무슨 면목이 있으리”
“자유대한이여! 서울시민이여! 용서바라오”
때는 4283년 6월 28일 새벽!
백운의 혼! 그의 분통 어찌 잊으리
일찍이 그는 6.25 붉은 이리떼의 남침을 이곳 백운대에서 앞장서 맞아 싸웠다.
그 기개와 용맹은 그의 책임을 다했으나 끝내 서울의 방어선은 뚫리고 말았다.
그들은 붉은 이리떼에 짓밟히고 있을 서울을 굽어보며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치쏟았다.
오직 한 몸의 영예와 젊음을 저버리고 겨레를 위하여 보람있게 간 대한남아는 여기 백운대의
혼이 되어 기리 우리들을 지켜 주리라.
“길손이여 전해다오
젊은 목숨 자유와 바꾼
두 용사의 넋이 북한 산록
동녘에 고히 잠자노라고”
檀紀 4293年 6月 20日
↗ 백운산장[白雲山葬]
백운산장에 도착에서 서명란이 있길래 산에온 사람 서명인줄 알고 서명을 하고나니
국가귀속 반대라는 서명서 였다.
백운산장이 국가귀속이라는 상황을 맞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에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한 기부채납 약정에 있다.
1992년 백운산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산장을 층축 과정에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20년후 백운산장을 기부채납 한다는 조건으로
건축허가를 내줬고 백운산장은 국가소유의 땅으로서 증개축시 허가를 받아야 했고
1997년 백운산장 증축 완료후 20년 지난
2017년5월2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백운산장을
국가시설로 귀속하겠다며 통보 하였고
백운산장지기 할아버지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약정한 일방적인 계약이였다며
억울하다고 호소하였고 이에 산악인들도 백운산장을 보존하고 문화재지정을 요구한 상태 이다.
↗ 백운산장 내부
백운산장은 우리나라 산장 1호라고 한다
1924년 이해문(1代)이 터를 잡으며 시작한 백운산장은
1933년 이남수(2代)가 건축허가를 받아 석조 산장을 신축하였고
1942년 우물을 팠으며 1960년 서울산악회와 산악인들이 단층 석조건물로 확장 재건축 이후
1992년 지붕이 화재로 불타자
이영구(3代)와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 2층 통나무로 증축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 북한산성 안내판과 백운대 들머리 표지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32년에 축조했다.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뒤 553년 신라가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 고구려군이, 661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군과 함께
포위 공격을 했으나 격퇴당했다.
고려시대 현종이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1711년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석성을 완성시켰다.
현재 삼국시대 토성은 약간 남아 있을 뿐이고, 대부분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이 남아 있다
사적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 백운대0.5km
북한산은
백운봉(백운대 836m), 인수봉(810m), 국망봉(만경대 800m) 세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데서 유래해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1000여년 동안 삼각산이라 불려져 왔다.
1915년 조선 총독부가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됐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한강 이북의 서울지역을 가리키는 행정구역명인 '북한산'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때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 가면서 읊었던
그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공식문서와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 가파른 산행길(깔딱고개)
제법 손을 짚고 올라야 할정도로 암석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행길이다.
북한산은
서울 강북구는 2003년 10월 백운봉 등 3개 봉우리가 있는
지역이 삼각산이란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서울시와 중앙정부에 명칭복원을 건의하고
'삼각산 제이름 찾기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삼각산 제이름 찾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한다.
백운대피소에서백운대 구간은
약 0.5km, 20분 정도 소요된다. 등반 거리가 짧은 편이지만
매우 경사가 급한 구간으로 백운대피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등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운봉암문 상단의 돌계단과 목재 계단을 지나
난이도가 높은 구간에는 와이어로프를 설치하여 오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탐방로가 좁아지고 가파르므로
안전을 위해 집중력과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는 등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족도리봉
등산하면서 바라본 족도리봉의조망
운무속에 있는 산봉우리들이 선조들의 수묵화에 나오는 그림같아 보였다.
그 뒤에는 불암산이라고 한는데
불암산은 오래전 항공구조사 교육받을시 불암산과 수락산에서 훈련 하였다
깔딱고개를 지나면 위문이 나온다
산에 오르다 보면 깔딱고개란 명칭이 곳곳에 있다
산행자 모두가 급경사지를 숨이 찰 정도로 오르니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가 보다.
↗북한산성 위문(衛門)
북한산에는 7,620보에 달하는 열두 문
북한산성 축성 당시에는 열여섯 개였다고 한다
약 12km에 달하는 12문 종주를 8-9시간 걸려 하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그 중 도선사에서 백운대 올라가다 능선에서 만나는 위문(衛門)은
원래 이름이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인데
언제부터인지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위문이라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산성의 번듯하고 큰 문들과는 달리 수레나 몇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일종의 통행문을 암문(暗門)이라 부르는데, 그 중 하나이다.
↗족도리봉 과 서울 우리동 전경
산봉우리는 운무 같고 시내는 미세먼지 같은 느낌이다
북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문종이 밀덕후군주 답게 한양주변의 요충지와 도성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 위치에 산성을 쌓자고 말했지만, 백성만 고생한다는 신료들의 만료로 무산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이덕형을 보내서 북한산을 정찰하게 하는데
이덕형은 산세가 험하고 방어에 좋고, 고려 때 주둔한 흔적이 있으니 우리도 여기에 성을 쌓자고 보고한다.
하지만 이는 전후 재정빈곤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성과 바로 연결되는 배후 산성이 절실함을 느끼고
무려 40여 년간 논의한 끝에 숙종 37년(1711년)에 축성을 끝냈다.
↗ 북한산성 위문을 따라...!
긴 논의과정과는 달리 성벽을 쌓은 데에는 단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성을 쌓은 숙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가 왔다갔다고 하며
사도세자는 여기에 온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사도세자 항목으로. 정조는 왕이 돼서는 융릉 참배 가느라 와보지 않았으며
이후 손자인 효명세자가 중흥사를 왕실 원찰로 삼고 중창하고 후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종 때는 엄귀비가 찾아와 지금의 무량사를 창건하고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엄귀비는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백일기도를 해 영친왕을 얻고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량사에는 엄귀비가 모셨다는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남아있다.
↗ 만경대 조망
건너편에는 만경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망경대는 해발800m에 있으며
북한산 자연환경은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보현봉 및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과
북쪽으로 인수봉·우이암·주봉·자운봉 및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을 축으로 동서로 대별된다.
이러한 산봉이 하나의 거대한 암괴로 된 돔(dome) 형상을 띄는데
일종의 도상구릉(島狀丘陵)이라고 한다. 이는 두꺼운 풍화층이 침식되어 없어지고
그 하부에 있던 절리 간격이 넓은 화강암이 지표 혹은 지표 가까이로 노출되면서
하중제거에 의한 판상절 리가 탁월하게 발달될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북한산의 각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곡으로는 정릉계곡·구천계곡·소귀천계곡·육모정계곡
효자리계곡·삼천사계곡·세검정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평창계곡·산성계곡 등이 있다.
이들 북한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중량천·창룡천·불광천·모래내 등을 이루어 한강으로 유입된다.
↗북한산은
식물상 조사 결과 108과 692종류의 관속식물이 조사되었다.
식생으로 미선나무군락·나도국선나무·백선나무 등 희귀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주요 식물군락은 신갈나무·소나무군락·굴참나무군락·상수리나무군락
아카시아나무군락·소나무군락·당단풍군락 등이다.
주요 동물상은 족제비·고슴도치·철설모 등 13여 종의 포유동물
참새·박새·쇠딱다구리 등 114여 종의 조류, 도룡뇽·맹꽁이
두꺼비 등의 양서류와 함께 1,000여 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 인수봉의 조망
북한산은 서울에 근접해 있으면서 자연 경관이 뛰어나
1983년 4월 경관의 보존과 합리적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봉산(道峯山)일대와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나한봉에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축조된 연장 8㎞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있으며
지금도 14개의 성문 중 대서문(大西門)·대남문(大南門)·대성문(大成門)
보국문(輔國門)·대동문(大東門)·용암문(龍巖門) 등이 남아 있다.
↗ 망경대 바라보면서 휴식
북한산은
북한산은 중생대말에 관입한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된 뒤 절리와 표면의 풍화작용으로
현재와 같이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한 암벽 봉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상장봉(上將峯)
남쪽으로는 석가봉(釋迦峯)·보현봉(普賢峯)·문수봉(文殊峯) 등이 있다.
여기서 다시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나한봉(羅漢峯)·응봉(鷹峯) 등의
줄기가 백운대 서쪽 줄기인 원효봉(元曉峯) 줄기와 만난다.
↗백운대 오르는길의 조망
우리가 일짝 산행을 시작하여 그다지 산행자가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익어면 이길은 산행자들에게 밀서 올라간다고 한다.
북한산은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태조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는 일명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불린다.
비봉은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국보 제3호)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왕순수비를 보존하기 위해 1972년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현재 있는 것은 모조 비석이다.
↘ 망경대 아래 우리 일행들
백운대 중턱에서 망경대쯤에 오르는 일행을 렌즈에 담아 보았다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저절로 감탄사 소리가 나온다.
↗북한산은
북한산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태고사원증국사탑비(太古寺圓證國師塔碑, 보물 제611호)
태고사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동장대지(東將臺址) 등 많은 유물·유적지가 있으며
상운사(祥雲寺)·원효암(元曉庵)·진관사(津寬寺)·승가사(僧伽寺)
회룡사(回龍寺)·광법사(廣法寺)·문수사(文殊寺)·원통사(圓通寺)·화계사(華溪寺)
도선사(道詵寺) 등 30여 개의 사찰이 있다.
중흥사지(重興寺址)는 북한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승군의 총지휘를 맡았던 곳이었으나
갑오경장 이후 승군이 해산되고 고종 말년에 모두 불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는 물론 멀리 황해까지 보인다.
↗북한산에서 바라본 조망
새벽01시의 심야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 보람이 여기에 있다
발아래 펼쳐진 조망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봉우리들........!
산행자가 많은때에는 우측이 등산길이고
하산은 좌측길이다...명산을 찾을때에는 아침일찍 등산하는게 편안하게
풍광도 보면서 여유있게 하는게 좋다.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조망
북한산은 삼각산이라고도 하는데 삼각산의 명칭은 백운대,인수봉,망경대 등의 세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따라서는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를 삼각으로 보기도 한다.
예로부터 백운대는 삼각산의 최고봉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 수려한 풍광으로 인해
산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 백운대 앞 통일서원 비
북한산 백운대(836m) 정상의 표지석 역할을 하는 통일서원비는
1975년 8월 15일 한국산악회에서 제작하여 세웠다.
이은상님이 글을 짓고 김중현님이 비석에 글을 썼다.
통일서원 글 이은상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다.
↗북한산 3.1운동 암각문
북한산 3.1운동 암각문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993년 4월 19일 고양시의 향토유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위치한 암각문+독립운동가 정재용선생이
3.1운동의 선언문 제작과 낭독을 기록한 암각문이다.
↗ 북한산 백운대
높이 836m. 인수봉(仁壽峰, 810.5m)·노적봉(露積峰, 716m) 등과 함께 북한산의 고봉을 이룬다.
이 일대는 추가령지구대의 서남단에 해당되는 곳으로
중생대 쥐라기(Jura紀) 말에 있었던 조산운동 때 열선(裂線)을 따라
화강암이 대상(帶狀)으로 분출한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지역이다.
이 일대의 지형은 화강암의 풍화에 의하여
형성된 화강암돔(granite dome) 지형의 대표적인 것으로, 험한 암벽을 노출하고 있다.
화강암돔에는 인수봉과 같이 암탑상(巖塔狀)의 것도 있고
백운대와 같이 거대한 암반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 북한산 백운대 836m
백운대 정상은 수백 명 가량의 사람이 앉아서 주변의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넓다.
서울 근교에 있어 도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등산을 돕기 위한 철사다리가 놓여 있으며 기암괴석, 맑은 계류, 푸른 수림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운대에서의 조망은 일품이고, 백운사지(白雲寺址)를 비롯, 최근에 신축된 절과 암자가 많다.
산 아래쪽에는 백운수(白雲水, 일명 萬水)라 불리는 약수가 솟는다.
백운대에 오르는 길목은 여럿이 있다.
우이동에서 도선사를 지나는 약 8㎞ 코스와 창의문(彰義門)과
세검정에서 오르는 약 12㎞ 코스, 정릉에서 오르는 약 10㎞ 코스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계곡과 능선을 따라 여러 방면으로 오를 수 있다.
↗ 北漢山 白雲臺 836m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있는 북한산(北漢山)의 최고봉이다.
산 아래쪽에는 백운수(白雲水, 일명 萬水)라 불리는 약수가 솟는다.
백운대에서
태극기와 암석에 새겨놓은 정상석과 이렇게 인증사진 남겨본다
산아래에 펼쳐진 풍광은 표현할 문장이 없을 만큼이나 좋다
심야에 버스를 타고 버스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까지
찾아온 북한산 백운대
발아래 펼쳐진 풍광을 보면서 올라오는 힘든과정을 보상 받은 기분이다.
↗ 백운대에서 바라본 시가지
산아래 펼쳐진 빌딩숲들 도시가 펼쳐져 있으며
보이는조망은 삼송리~일산방향이라고 한다.
북한산은 암산이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속하며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 하신길
북한산 백운대 아래는 고양이들이 산행자가 주는 먹이는 먹고 살고 있다
산행자들이 쉬고 있으면 곁에 다가온다
먹이를 주기에 산행자들을 겁을 내지도 않는다
살도 통통하게 올라 산행자들의 음식으로 살고 있는가 보다.
↗ 인수봉을 배경으로
하늘을 향헤 우뚝 솟은 인수봉을 배경으로 렌즈에 담았다.
인수봉 뒷편으로는 도봉산이 조망되며 노원구와 수락산과 불암산 줄기가 조망되며
우리의 다음산행지가 도봉산이다.
백운대 등반 코스는 돌길이 많고
백운대 하단부터는 급경사가 시작되고, 주말에는 탐방객이 몰리므로
백운대 등정 시간이 많이 지체될 수 있으므로 체력과 일몰시간 등을
고려하여 산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 하고 있다.
↗백운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광
만경댕 뒤의 산성주능선의 풍광이며
현해당의 북한산 이야기에 보면 조선시대 유산객들이 백운대에 오르는 경로는
성 안 중흥사를 출발 하여 노적봉,백운봉 암문,뜁바위를 거쳐
백운대에 오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한다.
물론 용암사를 거치거나 성 밖 우이동에서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백운봉 암문에서 뜀바위를 거쳐 백운대 정상을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기록 하고 있다.
↗ 하산길 구급함(고양소방서)
직업은 속이지 못한다 말이 있듯이 구급함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제작되었고
경남지역 구급함보다 훨씬크다 물론 탐방객이 기네스북에 오를정도로 많으니
구급함이 클수밖에 없겠다
열쇠로 잠궈두고 관리하고 있다.
경남은 상시 개방 되어 있으며 한달 한번꼴 점검을 한다.
↗ 대동사 불이문(大東寺 不二門)
대동사는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주소의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동사에 올라 법당에 참배 하려고 했지만
하산길 시간에 불이문만 구경하고 하산 하였다.
↗대동사 약수터
약수터는 고양시와 대동사에서 먹는물로
공동시설로 관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깨진 바가지 하나 있어 깨진 바가지로 물 한모금 맛을 보았다,
음~글세 물맛이 별로인듯 하다.....!
우리 산행일행들은 약수터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대동사 아래 계곡서 휴식
난 암석에 기대어 휴식을 취할때 함께한 산행자들이 등산화를 벗고 발을 물에 담귔는데
물이 굉장히 차갑다고 하였다.
이렇듯 북한산에서의 정상 풍경과 약수물맛 그리고 계곡 물소리를 느끼면서
하산길을 재촉 하였다..
↗ 새마을교
북한산에 오르는 계곡 교량 이름이 새마을교이다
북한산에 관련된 지명이나 고전적인 이름이였다면 어떠 했을까....나만의 생각이다
하산은 그의11시에 종료 되었는데
하산길에는 등산하는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 시간에 등산을 했다면 아마도 정상석에서 인증사진 찍기도 아마 한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듯........!
↗북한동 역사관앞에서 장군갑옷 체험
북한산에 있는 북한동역관은 과거에 북한산성의 창고인 하창이 있었던 곳이리 하는데
하창이라는 터를 알리는 아내판이 없었다
이리 저리 살피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갑옷 체험 해보라고 권한다
감각대를 내려 놓고 대충입고 찍어 보았다.
북한동역사관은 북한산의 홍보관으로서 북한산성의 전반적인 역사
그리고 북한산에 대한 홍보등 전시해 놓은곳이다.
↗하산완료
하산완료하여 시내버스 타는곳 까지 걸었다
북한산성교차로 까지 가는길 양쪽 옆에는 우리나라에 입점해 있는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였다.
북한산은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 기네스북에 등재될만큼 인기 명산이지만
아마도 이게 남도나 강원도 쪽이라면 또 모를 일이다
서울인구가 많은 이곳에 우뚝 솟아 있기에 많은 산행자들이 찾을을 것이다..
새벽01시에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로 온길
이렇게 정상석을 또 하나 찍고 내려간다....!
북한산(北漢山)
탐방객수가 제일 많은 서울 북한산 백운대(白雲臺)에 오르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국립공원,서울시 고양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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