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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산(嚴惠山), 성철(性徹)스님의 생가(生家)가 있는 산청 엄혜산을 산책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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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산(嚴惠山), 성철(性徹)스님의 생가(生家)가 있는 산청 엄혜산을 산책하다

바다늑대FORCE 2018. 5. 21. 20:20



엄혜산(嚴惠山)

 성철(性徹)스님의 생가(生家)가 있는 산청 엄혜산을 산책하다...!


▲산청 엄혜산[嚴蕙山]

    높이 : 226m

    위치 :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단성면 묵곡리에 걸쳐 있는산

▲산행일  : 2018년05월21(월)  날씨: 맑음

▲산행코스 : 

  겁외사 주차장―→―→ 묵곡마을―→―→고속도로 굴다리―→―→테크다리―→―→합천이씨묘―→―→

갈림길―→―→의자(벤치)―→―→원지갈림길―→―→평상―→―→엄혜산 정상 ―→―→도내고개방향―→―→묵곡마을

▲ 엄혜산 개요:

산청의 엄혜산은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와 단성면 묵곡리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서

성철스님의 흔적잇는 두개의 봉우리 검무봉과 엄혜산이다.

주로 부처님오신날 겁외사를 찾아온 신도들이 엄혜산을 많이 오른다고 한다.

엄혜산은 226m의 나즈막한 산이지만 숲이 우거져서 여름철이면 산행하기가 힘들다.


▲ 엄혜산 등산지도



▲ 엄혜산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진주 동부로→→→내동교차로→→→이현교차로(산청방향)

→→→ 외률교차로→→→겁외사 주차장

28km  승용차 30분 소요


→→→2018년5월21일 월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점심식사를 하고 늦어막히 오늘도  길을 나선다.

산청  단성면 묵곡리에 있는 엄혜산이다.


↗산청 묵곡마을 버스 정류장

엄혜산 산행시작은 묵곡마을 성철스님이 태어난 동네부터 시작이다

묵곡마을앞에는 생태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앞은 양천강과 경호강이 합류한 남강으로 흐른다.

사진은 갤럭시노트8 듀얼렌즈 무선셀카봉으로 사용했다.


↗엄혜산 등산로 안내판

마을앞 도로옆에 있는 엄혜산 등산로 안내판은 관리가 되지않아

색도 바랬고 주기둥은 썩어 넘어져서 담벽에 걸쳐져 있었다.

단성면 문화관광과에서 좀 제되로 정비해주길 바랄뿐이다.


↗엄혜산 초입

엄혜산 초입은 마을길 담벽을 쭉 따라가면 된다

여기서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나는 마을주민에게 물어서 산행하였다.

농촌마을은 어디할것없이 너무 조용하며

간간히 개짖는 소리만이 들려올뿐이다.


↗첫번째 엄혜산 안내 표지목

표지목은 농수로에 설치해 놓았으며 아마 이것이 없었다면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몰라 마을주민에게 물어 보았을것이다.

엄혜산은 성철스님 생가에 지은 겁외사를 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많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엄혜산과 이웃하는 검무봉과 잇는 등산로는 겨울철이 아니면 걷기 힘들정도다.

그만큼 수풀이 많이 우거져있는 탓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을 보듬은 엄혜산과

조망이 탁월한 검무봉을 모두 걷는 묘미를 만끽해본다.

등산로는 총 길이 8.4㎞ 정도이다..


↗농수로와 농로옆 들머리

논인지 밭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작물을 재배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이제는 농촌마을에는 젊은사람들이 없기때문에 아기울음소리 듣는다는것은

동화책이나 나올 이야기가 되었고

농촌의 고령화는 심화되어가고 빈 들녁처럼 잡초만 무성할뿐이다.


↗들머리 테크다리

테크다리를 지나면 곧 산길로 이어진다

산행자들이 자주 오르는 탓인지 금새 산행로인것을 알수 있었다.


↗ 산행자 깃표들

 이렇게 나즈막한 산에도 이렇듯 산행자들이 많이 오는가 보다

여기저기 산행자 산악회 깃표가 매달려 있다.

산에가면 이런 깃표가 안내자가 된다


↗ 소나무와 잡목

 5월의 산은 푸르다 소나무숲 사이로 잡목이 우거져 있다

산행자의 흔적에 산행로는 윤이 날 정도로 또렷하다

묵곡마을 사람들이 산책을 오지는 않을테고 연세들이 많은 사람들이라..........!


↗청미래덩굴(망개나무)

망개나무는 경상도 사투리다 표준어로는 청미래덩굴이다

여기저기 청미래 덩굴이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청미래덩굴은 패초, 금강근(金剛根), 마갑(馬甲) 이로고도 한다

잎은 어긋나는데 길이 3~12cm, 나비 2~10cm의 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에 5~7개의 맥이 있고 질이 두꺼우며 윤기가 난다.

잎자루는 길이 7~20mm로 짧다.

잎 밑동에 나는 턱잎은 칼집 모양으로 유착하며 끝이 덩굴손으로 된다.

약초로도 많이 이용되는데

효능은

주로 염증을 다스리며, 부종에 효험이 있다.

관련질병: 건치, 관절염, 관절통, 근골무력증(근골을 못 펼 때), 대하증, 동상, 매독

발 부르튼 데, 백탁, 부종, 비치, 설사, 소변간삽, 소변불금, 소변불리, 소변불통, 수족마목

수종, 아감창, 암(암 예방/항암/악성종양 예방, 뇌암, 대장암, 비암, 식도암, 신장암, 위암

유방암, 자궁암, 전립선암, 직장암, 치암), 야뇨증, 요독증, 위염, 유실, 이뇨

이질, 임파선염, 자궁전굴·후굴, 장염, 전립선비대증, 전립선염, 종독, 종창,

중독(수은중독, 약물중독, 양잿물중독), 청열, 출혈, 충수염, 치은궤양, 치창,

치뉵, 치통, 치풍, 치한, 타박상, 태양증, 통풍, 풍, 피부염, 해열 좋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 자연이 만든 석축

 처음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것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큰돌맹이 작은돌맹이 차곡차곡 쌓은형식이 자연석 웅벽이다

이토록 자연은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석축을 닫고 산봉우리를 향해 걷는다.


↗ 수목이 우거진 숲

 이길을 걸어가면 금방이라도 멧돼지 한마리 뛰어 나올듯한 느낌이다

엄혜산은 성철 스님 태어난 동네이다.

성철스님은

서기 1912년 임자년 4월 10일에 경남 산청군 단성 면 묵곡리의

합천 이씨 가문에서 탄생하였다.

친의 이름은 이상언이고 모친은 진주 강씨였으며 아명은 영주(英柱)라 하였다.

스님의 집안은 대대로 부농이었다.

비록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이후라 시절인연이 암울했다고는 하지만

스님은 어린 시절을 비교적 유족하게 보낼 수 있었으며

장남으로서 부모님은 물론이요 집안의 기대와 귀염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다고 전한다.


↗ 때죽나무

열매의 모양이 마치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떼까중(중대가리)나무라고 부르던 것이라고 하고

나무 껍질이 검은색이여서 '떼가 많은 껍질의 나무' 또는
가을에 수없이 조랑조랑 매달리는 열매가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스님이 떼로 몰려 있는것 같아 떼죽나무, 열매 껍질에 독성이 있어 빻아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여 떼로 죽이는 나무 라는 설로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생물도감에 보면

때죽나무는

열매껍질은 사포닌(saponin)이란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사포닌은 식물에 흔히 들어 있는 성분으로서 피를 맑게 하고

이뇨효과가 인정되는 약용성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고노끼’라는 일본 이름에서 딴 때죽나무의 에고사포닌(egosaponin)은

물고기의 아가미 호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어독(魚毒)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일부 지방에서는 고기잡이에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사포닌이란 말 자체에 비누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설익은 과일껍질을 찧어

비누처럼 빨래를 할 때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씨앗은 기름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쪽동백나무 씨앗과 함께 유지(油脂)식물로 이용되었다.
때죽나무는 키 7~8미터에 아주 굵어야 한 뼘 남짓하다.

자연 상태에서는 수분이 좀 있는 계곡을 따라 잘 자란다.

조금 여유가 있는 공간에 정원수로도 제격이다.

하얀 꽃과 앙증맞은 열매가 무더기로 열리는 나무 자체의 매력을

 뒤늦게 인정받아 정원수로 심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해에 강하고 도심지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도시의 가로수로도 바람직하다.

줄기는 흑갈색으로 어릴 때는 거의 갈라지지 않으나

나이를 먹으면 얕게 세로로 골이 진다.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서 목재로서의 쓰임은 많지 않으나

재질이 고르고 거의 흰색에 가까운 목재 색깔을 가지며 질겨서 휘는 재료로 쓸 수 있다.

소형장난감, 장기알 등 간단한 생활 기구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 엄혜산 숲길

엄혜산은 성철스님과 연관 두는데

성철스님은

스님은 천성이 명민하고 상호가 수특(秀特)하여 더욱 총애를 받으셨다.

3세에 글자를 알고 읽기 시작했고, 5세에는 김시습처럼 글을 짓고

시를 지을 만큼 자질이 뛰어났으며, 이미 열살 무렵에 사서삼경 등 유서를 읽고

모든 경서를 독파하였으니 인근에서는 신동이 났다 하여 소문이 자자하였는가 하면

더 가르칠 선생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청소년기에 이르자 그 명민한 두뇌는 더 이상 낡은 세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당시 물밀 듯이 들어오던 신학문과 철학과 종교 등

여러 학문에 대해 지나치리만 큼 열정을 가지고 독서와 관심을 쏟았으나

그 모두가 참다운 진리의 문에 들어가는 길이 아님을 자각하고

그중 「장자」를 읽고 소요유(逍遙遊)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지나가던 노승으로부터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받아 읽고

제까지 찾아 헤매던 구도의 길이 거기에 있음을 발견하니

홀연히 심안이 밝아짐을 느껴 거듭 읽고 그 깊은 뜻을 밝히게 되었다.

그 한권의 책이 불교의 전적을 대하게 되는계기가 된 것이다 라고 한다.


↗ 신안면 원지 와 엄혜산 삼거리

여기서 죄측으로 가면 신안면 원지마을이 나오며 곧장 우측으로 가면

엄혜산 정상이다

성철스님 이야기를 좀더 하고자 한다

성철스님은

그후 스님은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 구도의 길은 수행정진에 있음을 알고

거사(居士)의 몸으로 양식을 짊어지고 덕산 대원사 탑전에 들어가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하였고,그후 제방선원에서 안거하는 등

그 수도 정진의 구도열이 이미 승려 이상의 진척을 보였다.

이에 주위의 많은 스님들이 출가를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스스로 출가를 결심하고

모든 세속적인 인연을 끊고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출가시(出家詩)를 승문(僧門)에 들었다.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그리고 용맹정진으로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서 하동산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해인사에서 수계득도하였다. 이로부터 10년간 천하제방(諸方)선원에 안거하면서

용맹정진을 단행하였는데, 음식은 언제나 생식(生食)과 현미밥과 담식(淡食)으로 일관하였다 한다.


↗ 엄혜산 정상 0.69km

엄혜산 정상가지는 0.69km이다 평탄한 산행로에 한발치 남았다.

그야말로 산책하기엔 좋은코스이지만

수목이 너무 우거져서 등산로를 벗어나면 위험할것 같다.


↗ 잠시 쉬어가기(벤치)

누군가 수건도 흘려서 누군가가 나무에 걸쳐 놓았다

쉬엄쉬엄 걷다가 성철스님 생가동네 묵곡인 이곳은

여기서 잠시 성철스님의 법문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다

승철스님은

의복은 24세에 만든 누더기를 일 생 깁고 또 기워 입으셨다.

금강산의 마하연선원,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선원, 통도사 백련선원 등

모든 선원에서 안거를 할 때마다 스님의 철저한 정진력에 누구나 감복하였고

그밖에 고성 안정 토굴의 정진이나 파계사 성전암에서의 용맹정진은 승가 내에서 그 본보기가 되었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끊기 위해 토굴 주위에 가시철망을 쳤던 이야기며

신도들이나 친지가수행을 방해할까봐 사람들이 오는 길목 쪽으로 돌을 굴렸다는

극단적인 이야기 등에서 스님 의 수행 정진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부단한 수행중, 29세가 되던 해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정진을 하던 때였다.

스님은 확연하게 일대사(一大事)인연을 了達하시고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셨다.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 오도를 하신 후에도

스님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수행자의 삶 그대로 견지하셨다.

스님의 삶의 태도는 너무나 엄격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나이 일흔이 되실 때까지도 손수 양말을 기워 신었으며

한 겨울이라도 땔감의 양을 결코 지나치게 하는 일은 한번도 없으셨다.

평생을 바루 하나 옷 한벌의 전형적인 수도자의 삶을 보이셨다 한다.


↗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국제신문 근교산취재팀이란 깃이 눈에 들어온다

취재팀들 덕분에 산행정보와 지도가 아마 완성되었으리라 믿어본다

나역시 산행에 앞서 많은 산행 리뷰를 보고 그 산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걸어온길2.45km

표지목이 넘이진것을 아마도 산행자가

소나무에 묶어 놓은듯 하다

가끔은 표지목이 이상무 확인을 위해 문화관광과에서는

신고 창구가 필요할듯 하다.


↗ 엄혜산(嚴惠山) 정상 226m

  엄할엄(嚴) 은혜혜(惠) 뫼산(山)

표지석에는223m이고 책자나 기록에 보면234m라고 되어 있다

표지석과 소개글과 다른게 여기뿐만은 아니다.

엄혜산은 성철스님 덕분에 산행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 엄혜산(嚴惠山) 정상

226m라는 나즈막한산에 정상석이 있다는것이 새롭다

그냥 보통 마을뒷산정도로 여길 엄혜산을 산행자가 찾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불교계 큰별이신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마을이라 그를까..?

한국의산하 경남산이름엔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산행자가 많이 찾는 산이기는 하다...!


↗ 엄혜산(嚴惠山) 정상

정상에서는 수목이 우거져서 주위 남강이나

단성면 들판을 조망할수가 없다

둘러보아도 보이는건 울창한수목 뿐이다.


↗ 엄혜산(嚴惠山) 정상

엄혜산은 진주에서 승용차로 30분이면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묵곡마을에 도착한다

주차는 성철스님생가 겁외사 주변에 주차하던지

아니면 묵곡마을내 주차장이 넓다.

생수한병 가지고 산에 올랐는데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하산하였다.

목이 탈 만큼 산행코스도 아니고 그냥 어슬렁 산책코스다...!


↗ 엄혜산(嚴惠山)조각

누군가가 멋지게 한자로 엄혜산이라고 송판에다 조각했다

아마 매달아 놓은것이 오래되어 떨어져서

어떤 산행자가 측량기준표지판 기둥에다 묶어 놓았다

산에오르면 이렇듯 돌탑을 쌓던지 장승을 조각해 세우던지

정상에 오르면 예술품도 보는듯 하다 ....!


↗ 하산길 농로

농로로 하산하다보면 초입 농로 우측에 있는길과 연결된다

지나가다보니 동네 할머니가 밭에서 작물을 가꾸고 있었다

산행의 친구는 뻐국새 노래와 수목이였다

엄혜산에는 뻐꾹새가 많은가 보다,, 산행할때 내내 뻐꾹 뻐꾹~~!


↗ 묵곡 생태숲

산청 묵곡생태숲은 2011년4월4일 개장했다고하며

142,000㎡에 조성된 산청 묵곡 생태숲은

 바람막이 숲과 지리산 상징숲, 참나무숲, 습지생태원, 초지생태원,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주차장, 비지 터 센터, 산책로 등으로 꾸며져 있다.

 푸른 소나무 한 그루를 가운데 두고 산이 물결치듯 형상화한 광장이 나온다. 중앙광장이라고 한다.

묵곡 생태숲 사업은 남강댐 상류지역의 수자원 보호와 동절기 모래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쾌적한 생활환경 개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난 2006년부터

2010년 말까지 5년간 9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산림청 생태숲 조성사업이 라고한다.


↗성철스님 동상과 겁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집과 불경국역집을 남긴 성철 스님은

승려는 수행만이 중생을 위하는 길이라며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암자에 칩거, 정진수도에만 전념했던 현시대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성철스님의 생가복원 및 불교 성역화 사업으로 생가 안채와 사랑채, 외삼문 등이 세워졌으며

성철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겁외사는 불교성지로서

전국의 불교신자와 관광객들에게 불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장소가 되고 있다.


↗성철스님 동상과 겁외사

법당인 대웅전은 절에 들어서면 좌측에 위치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으며

동양화가 김호석이 그린 성철스님 진영이 함께 모셔져 있다.

대웅전 벽화는 부처님 일대기가 아닌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대웅전 주련(柱聯)은

성철스님의 오도송(悟道頌: 도를 깨친 노래)으로 했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심검당과 정오당 그리고 요사채가 있다.
생가를 복원한 율은고거(栗隱古居)는 대웅전 뒤쪽 혜근문을 지나서 있다.

전통적인 한옥 기와집으로 지어진 생가는 스님의 부친 호를 딴 것이다.

율은고거 왼쪽은 율은재, 오른쪽은 포영당이다.

율은재(栗隱)는 스님의 부친이 거처하던 사랑채의 모습을 간소하게 재현했다.

스님의 부친은

일본의 창씨개명(創氏改名: 일제시대 일본이 식민지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정책)을

거부할만큼 꼿꼿한 성품을 지녔던 분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문하에서 공부한 죽각(竹閣)

이광우(李光右)의 9대손인 부친은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에 널리 통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생가가 있는 묵곡마을 엄혜산과 겁외사를 둘러보고

나즈막한 산이지만 또하나 정상석(頂上石)을 찍었다....!


엄혜산(嚴惠山)

성철(性徹)스님의 생가(生家)가 있는 산청 엄혜산을 산책하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산청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자료등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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