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계 色
- 20일만에결혼
- dd
- 얼짱보디빌더 박수희
- 풍요로운추석명절
- 미소
- BEOWULF
- 무드연주곡
- 몸은 액션?
- 베오울프
- ㅅ어
- 제니퍼 애니스톤
- UCC
- Caution
- (2007)예고편
- 두바이왕자
- 얼굴은순정
- 행운을드립니다
- The Simpsons Movie
- 2007)
- 보내세요
- 호텔여직원과
- 초미니 비키니 눈길
- 베스트 20
- 색
- ㅕㄴ으로
- 사한
- 첫눈에반한
- 戒 Lust
- Today
- Total
바다늑대 FORCE
LG창업주 구인회선생 생가와 GS 허만정 선생 본가터 의 명당을 둘러보다 본문
LG창업주 구인회 선생 생가와
GS 허만정 선생 본가터 의 명당을 둘러보다........!
♣ LG 구인회 선생 생가
GS 허만정 본가
경상남도 지수면 승산리 승산37-6길
고택경상남도 일대에서 돈이 모이는 명당으로는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勝山里 일대가 손꼽힌다.
이곳의 대표적 집안이 GS그룹의 허씨와 LG그룹의 구씨 일가다.
구한말의 만석꾼인 허준과 그 아들 허만정은 독립운동의 자금을 대고
학교를 세웠으며, 좌우익 충돌의 완충 역할을 한 의로운 부자였다.
만석꾼 집으로는 보이지 않는 소박한 이 집이 바로 허씨 집안 융성에 불을 지핀 아궁이 같은 곳이다.
♣ 찾아가는길
진주 고속도로 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군북방향→ 남해고속도로 지수IC→지수면사무소
-→ 승산마을
♣ 기행일 : 2017.6.15(목) 날씨:맑음
♣ LG 구인회 선생 개요:
구인회(具仁會, 1907년8월27일 ~ 1969년12월31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LG그룹의 창업주이다.
1926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귀향해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사업가로서의 첫 출발이다.
구인회의 집안은 본래 양주군, 파주군 등지에서 세거하는 문인 집안이었다
12대조 구사민은 좌찬성 구사맹의 동생이며 9대조 구음도 승정원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8대조 구문유가 고령현감을 지낸 후 7대조 구반부터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진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조부 구연호가 문과 급제 전까지 모두 벼슬에 진출하지 않았다.
구인회의 조부는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따라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강한 유교가풍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히려 강한 유교가풍 덕에 할아버지의 지지를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사업은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해 사돈 관계에 있던
현 GS그룹의 소유집안인 허씨 집안과 동업으로 하였고 여러 사업들을 거치면서
진주에서 사업을 정리하면서 많은 토지를 매수해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3년 만석군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고
매입했던 토지를 매각한 돈으로 부산으로 건너가 1947년 크림 생산도 시작하였고
1953년 성공하여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59년에는 금성사를 창립해 라디오 생산도 시작하였고 이어
전화기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 등을 대한민국 최초로 생산하는데 기여하였고
럭키사도 치약 칫솔 비누 합성세제 등을 연이어 한국 최초로 생산하였다.
한편으로는 부산 국제신보 사장이 되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지냈다.
방송 사업에도 뛰어들어 동양방송의 전신인 RSB 라디오 서울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과 함께
설립하여 사장을 지냈으나 이병철이 전자사업에 뛰어들고
둘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사회 활동에도 주력해 1968년 회갑 기념으로 진주에 연암 도서관을 세웠고
1969년 12월 연암문화재단을 창설하였으나, 문화재단 창설 한 달 만에 뇌종양으로 타계했다
이후 그의 뜻을 받들어 LG그룹에서는 학자 및 학술지원에
기여한 사회저명인사들을 포상, 장려금 등을 지원하였다.
♣연암 구인회 생가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21km 승용차20분
♣ 승산마을 위성사진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태어난 상동마을은 구회장뿐만 아니라 GS그룹으로 분리된 승산허씨 집안의 고가들도
여럿 포함돼 있어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답사지다.
물이 곧 돈인데 이곳은 물이 앞에도 흐르고 뒤에도 흐르고 있어 LG 구인회 회장 생가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명당으로 풍수연구가나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이 동쪽에 있어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고 이런 곳을 명당이라 하는데
이 마을은 앞뒤로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이곳 물자리가 들어오는 곳은 두 줄기인데 나가는 곳은 산이 감싸 보이지 않는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서출동류한 두 줄기의
냇물이 합수하는 곳으로 부귀영화의 길지다.
더욱더 안산은 무곡 금성체로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상에서 용맥이 춤추듯이 흘러나와 생가로 부드럽게 입수되는 형국의 봉황포란형으로
봉황이 양쪽 날개로 알을 품은 형국이며 이 또한 부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상동마을 자체가 엄청난 동네라고 한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9개의 별 즉 구성이 우주만물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제6성인 무곡성이 부를 관장하는데 이 동네의 주산을 비롯하여
좌우 청룡백호 등의 뭇 산이 무곡성의 형태로 무곡성의 성정은 재물이 날로 쌓여
자손들의 영화까지 누릴 인연으로 물이 들어오는 곳이 여러 곳이며 나가는 곳은 한 곳인 게 명당이라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사람이 살만한 곳 네 가지 조건이 제시돼 있는데
첫째가 지리, 둘째가 생리, 셋째가 인심, 넷째가 산수라고 하였다.
그 첫째인 지리는 수구 즉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좁아야 한다고 했다.
즉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적어야 한다는 말로 들어오는 곳은 보이나
나가는 곳은 산이 가려 보이지 않는다.
LG가문의 자녀교육은 ‘가족간의 인화’를 존중하는 유교식 가르침으로 생가에
구 회장의 조부인 만회공을 추모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방산정과
아버지인 춘강 재서공을 추모하기 위한 모춘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구씨 생가에 해당되는 집은 두세 집 정도이고 오른쪽으로
상동 하동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기와집 대부분은 승산 허씨 집안의 고가다.
그만큼 허씨 세력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마을이다.
자손이 많은 구씨 가문이지만 이런 유교적 가르침은
70년 이상 지속됐던 허씨 가문과의 동업관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심각한 불협화음 없이 양 가문은 평탄하게 기업을 이끌었고
LG와 GS간 분리과정에서도 큰 잡음 없이 마무리 됐던 것도
이러한 양가의 ‘인화’를 중요시한 가풍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주변의 말이다.
생가앞을 지나는 도랑 물이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승산마을 풍수에 대한 설명
한국자연풍수지리에 지식이 있는 동료로 부터 승산마을 풍수지리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있다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만석꾼의 손자가 재계 수장이 됐다.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얘기다.
허 회장은 경남 진주 만석꾼으로 일제시대 한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고
진주여고를 설립한 고 효주(曉州) 허만정의 손자다.
고 허만정 씨는 가난한 소작농과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줬지만 공짜로 주지는 않았다.
대신 인근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해 마당에 쌓게 했다.
지금도 허씨의 생가인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가면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돌더미가 남아 있다.
광복 후 허만정 씨는 1947년 LG그룹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 창업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런 인연으로 허만정 씨는 셋째아들인 고 허준구 씨를 LG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에게 제의했다.
이후 허준구 씨는 LG그룹 주요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LG건설 명예회장까지 올라 지금의 GS그룹이 탄생한 기틀을 마련했다.
허만정 씨는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이 삼성상회를 창업할 때 자금을 보탰고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삼성 계열사에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이처럼 허씨 집안은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허창수 회장은 허준구 명예회장이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LG 고문의 장녀 구위숙 씨와 결혼해 낳은 장남이다.
따라서 고 효주 허만정-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은
3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아울러 허만정의 자녀들과 많은 손자들은 대부분 LG그룹에 입사해 지난
반세기가 넘게 LG그룹의 구씨 집안과 함께 지내면서 성장했다.
허창수 회장은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퇴임에 맞춰 구-허씨 양가의 창업 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어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되면서 GS 회장으로 취임했다.
GS그룹의 든든한 후원군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과 사촌형제들이다.
이들은 LG그룹에서 수십 년간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내공을 쌓았으며
현재 GS그룹 주요 경영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고 허만정의 넷째아들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현재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다.
다섯째 아들인 허완구 승산 회장도 측면 지원해주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허용수 GS 전무는 그룹 지주회사의 사업지원팀장으로 기업 인수ㆍ합병(M&A)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고 허만정의 6남은 허승효 알토 회장, 7남은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막내아들은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등이다.
허정구 씨는 1952년 제일제당에 전무로 경영에 참여했다가
1961년에 독립해서 삼양통상을 창업했다. 지금은 고 허정구 씨 첫째아들인
허남각 회장이 삼양통상을 물려받았다. 허정구 씨의 차남인 허동수 씨는
GS칼텍스 회장을 맡아 `지상유전`이라 불리는 고도화 설비를 국내 최고로
확충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다.
또 허정구 씨 셋째아들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며
그의 딸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아들과 결혼했다.
허광수 회장 아들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자녀들이 모두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친동생들도 그룹 핵심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 씨는 GS네오텍 회장을 맡고 있다.
또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허태수 GS샵 사장도
친형인 허창수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다. GS그룹은 2004년 에너지, 유통, 건설 분야를 갖고 LG그룹에서 분가했다.
허씨 집안은 창업 이래 57년간 별다른 잡음 없이 LG그룹 구씨 집안과
성공적으로 동업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큰 박수를 받고 떠나올 수 있었다.
이후 허창수 회장은 삼촌과 사촌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을 계열사로 줄줄이 편입하고
LG에너지, 쌍용 등을 M&A하면서 작년 말 기준으로 7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GS는 출범 당시 18조7000억원(2004년 말 기준)이던 자산 규모도
2009년 43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재계 7위에 해당된다.
↗ 승산마을과 마을앞 개울
여기에서 풍수지리에 의하면
수구 즉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좁아야 한다고 했다.
즉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적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지 승산마을앞 개울은 좁다
↗방어산 능선들이 승산마을로 향하고
물자리가 들어오는 곳은 산이 감싸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풍수에는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고 하는데 이 곳은
서출동류(西出東流) 한 두줄기의 냇물이 합수하는곳 이라고 하며
이곳은 용맥이 춤추듯이 흘러나와 생가로 부더럽게 입수되고
형국론으로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봉황이
양쪽 날개로 알을 품은 형국이며 이 또한 부를 상징하고 있다고한다.
↗LG창업주 구인회선생 생가와
GS 허만정 선생 본가터 앞 승산마을 조경
↗허만정 선생의 본가
1920년에 만석꾼 허만정이 지은 미음 자 형태의 한옥. 본채, 사랑채, 곶간채와 학생들의 공부방인
안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에는 손님을 접대하느라 소다리가 매일 걸려 있을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
부잣집영남의 명당 반촌 班村을 말할 때 네 군데를 꼽는다.
경주의 양동마을에는 우재 愚齋 손중돈 孫仲暾의 후손인
손씨와 회재 晦齋 이언적 李彦迪의 후손인 이씨들이 산다.
안동 하회마을은 하회 류가의 집성촌이다. 안동의 내앞(川前)마을은 의성 김씨들의 터전이다.
봉화의 닭실(酉谷)마을은 충재 沖齋 권벌 權의 후손들이 터 잡고 있다.
이 네 곳이 영남에서 거주할 만한 곳으로 꼽히는 명당이자 양반 동네이다.
그런데 이곳은 모두 경북에 집중되어 있다.
경남은 한 군데도 없다.
영남 우도인 경남에 어찌 명당이 한 군데도 없겠는가? 경남은 남명 南冥 조식 曹植의 수제자인
내암 內庵 정인홍 鄭仁弘이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몰락한 이후 발언권이 사라진 것 같다.
<택리지 擇里志>를 쓴 청화산인 靑華山人 이중환 李重煥만 하더라도 당색이 남인이다.
경북의 퇴계 쪽 학맥은 당색이 같은 남인이므로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꼈겠지만
경남은 정인홍 이후 북인이었으므로 이중환과 당색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이중환도 경남 지역의 동네에 대해서는 다소 거부감 내지는 편견이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경남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소략하지 않았나 싶다.
동네의 전체 지세가 방어산 防禦山에서 내려온 맥이 한 바퀴 돌아서 터를 이루고
그 맥이 다시 출발지인 방어산을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른바 풍수에서 말하는 회룡고조 回龍顧祖형이다.
이렇게 되면 지맥의 기운이 뭉쳐 있다고 본다. 게다가 동네를 둘러싼 주변 산에 살기가 없다.
돌출된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다음에는 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야 한다.
동네 앞에 두 가닥의 냇물이 흐르는 데, 실개천은 동네를 관통하면서 흐르고
큰 개천은 동네를 감아 안으면서 흘러간다.
그런데 이 바깥 개천의 물이 빠져나가는 길목인 수구 水口를 구슬등이 잘 감싸 안고 있다.
풍수에서는 물이 빠져나갈 때 그냥 맥없이 나가버리면 돈도 곧바로 빠져나간다고 본다.
못 빠져나가도록 물을 한 번 막아주는 천연 장치가 필요한데
대개는 이 수구막이 용도로 일부러 나무를 심기도 한다.
승산리는 구슬등이 수구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특히 이채롭다.
구슬등이 손목을 구부린 것처럼 물을 한 번 막아주는 형국이다.
돈을 모아주는 풍수적 장치인 것이다.
구슬등 반대쪽에는 ‘떡바위’라고 부르는 네모진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수구막이 역할을 한다. 동네 바로 앞에는 밥상처럼 생긴 안산 案山이 자리 잡고 있다.
네모진 밥상 모양의 이 안산도 아름답다.
마치 진수성찬을 한가득 차려놓고 동네 사람에게 ‘잘 드십시오!’ 하고 대기하는 모습이다.
이런 점들이 승산리가 부자 터임을 말해주는 요건들이다.
↗허만정 선생 본가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내부 구경은 할수가 없었다.
↗LG창업주 구인회선생 생가
이 동네는 6・25 때에도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지주들이 많은 부자 동네에서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소에 쌓아놓은 적선이 없으면 난리가 터졌을 때 그 피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해방 직후에 당시 친일적 親日的이던 지수 면장을 죽이려고 동네 청년 30명이 죽창을 들고 왔을 때
이를 안 허만정이 그 청년들을 가로막아선 일화도 전해진다.
“면장을 죽이려거든 나 먼저 죽이고 가라”라며 큰 소리로 외쳤는데
분개한 동네 청년들이 항일에 앞장선 어른인 허만정을 모를 리 없었다.
허만정의 기개 덕에 면장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지리산에는 북으로 가지 못한 빨치산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지리산과 가까운 지수면에도 우익 인사들을 처단하기 위해 빨치산 선발대가 내려왔다고 한다.
당시 빨치산 의령대장이 함안 조씨였다고 하는데
이 대장 역시 허만정이 나서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지수면에는 살생이 없었다.
얼마 후, 우익 쪽에서 좌익 인사들을 처단하려고 나섰을 때도 효주 공이 우익을 설득하였다.
효주 공은 출신 성분이 지주 집안인 덕에 우익 인사들도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25가 발발해 전세가 역전되어 빨치산과 인민군이 합세하여
우익 인사들을 처단하려고 했을 때도, 역시 효주 공이 전면에 나서서 살생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LG창업주 구인회선생 생가 내부
담장너머로 촬영해 보았다.
LG가문의 자녀교육을 한마디로 말하면
가족간의 인화[人和]를 존중하는 유교식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구인회 회장 생가에는 이런 유교적 규범을 느낄수 있는곳이
여러곳 남아 있다.
먼저 구인회 회장의 조부인 만회공을 추모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방산정(防山亭)이 있고
또한 아버지인 춘강 재서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모춘당(募春堂)이 그렇다
모춘당에는
형제간 종족간에는 서로 좋아할뿐 따지지 마라
검소함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공경함으로 몸을 닦아라
작은 분을 참지 못하면 마침내 어긋나게 된다
만회공이 내린 가훈이 기둥마다 붙어 있다.
↗ 고저넉한 돌담 풍경
정말 부자는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 태어나는듯 하다
조상들이 전생(前生)에 그 만큼 복(福)을 많이 닦으놓았으니
이렇게 금수저가 탄생 하나보다..........!
되는집안엔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
되는 집에는 소를 낳아도 큰소만 낳는다
되는집은 늘 잘되는가 보다.....!
부자마을을 기행하면서
그 부자의 기운은 하늘의 뜻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LG창업주 구인회 선생 생가와
GS 허만정 선생 본가터 의 명당을 둘러보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진주시 홈페이지 향토문화사전 카페블로그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7.06.18]스마트폰으로
여기 QR코드 앱으로 찍어주세요....!
'바다늑대 > 山 & 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랑산, 백두대간의 동쪽 진양기맥의 산청 바랑산에 오르다 (0) | 2017.06.24 |
---|---|
소룡산[巢龍山].진양기맥 따라 산청 소룡산 능선을 걷다 (0) | 2017.06.24 |
호암생가[湖巖生家],의령 부잣길따라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에서 부자기운 느끼다 (0) | 2017.06.18 |
섬진강[蟾津江],물길따라 하동 섬진강을 꺼꾸로 거슬러 오르면서 강변 풍경에 젖다 (0) | 2017.06.11 |
구산면[龜山面]난포 앞바다 두 바위섬에서 오랫만에 짠물에 빠져보다 (0) | 2017.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