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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長安寺].원효대사의 화쟁사상 따라 부산 장안사 도량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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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長安寺].원효대사의 화쟁사상 따라 부산 장안사 도량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17. 2. 27. 20:19

 

장안사[長安寺].

원효대사의 화쟁사상 따라 부산 장안사 도량을 걷다....!

♣장안사[長安寺]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로 482[장안리 598]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

051-727-2393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진주ic)→김해jc-→남양산tg-남부지하차도→양산대사거리

- 기장대로명례산단-→장안로 우회전-→장안사

   

♣ 사찰기행일 : 2017.2.26(일) 날씨:맑음

♣ 장안사 개요: 

장안사(長安寺)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시대인 673년(문무왕 13)

원효(元曉)가 척판암(擲板庵)과 함께 창건했다는 『송고승전(宋高僧傳)』의 기록이 전한다.

처음 쌍계사로 불리다가 809년(애장왕 10)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에는 선여사, 취정사, 안적사, 장안사 등을

원효가 창건한 4대 사찰로 기록하고 있다.

원효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즉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가지고

불교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원효는 경주를 벗어나 지방 각지를 유랑하며 직접 백성들을 만나

당시 어렵게만 인식되었던 불교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장안사는 원효의 이러한 실천 행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장안사는 임진왜란 때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31년(인조 8)과 1638년에

의월 대사와 태의 대사가 각각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서 1654년(효종 5) 원정, 학능, 충목이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48년 각현(覺玄)이 큰 규모로 중수하였다.

현재 장안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산신각, 천왕문 겸 종각

그리고 요사 등이 있고, 경내에는 3층 석탑과 5층 석탑이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효종 대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졌다.

포작은 다포계이며, 공포의 각 부분이 매우 건실하면서도 화려하다.

대웅전은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기장군이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조사에서 ‘순치십삼년기종도리묵서명(順治十三年記宗道理墨書銘)’ 등

 중건에 관한 기록들이 발견되어 1650년대 중창되고

주요 구조부가 원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장안사 대웅전은 보물 제1771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안에는 삼존상과 후불탱, 그밖에 연(輦) 2개와

 근래에 조성한 칠성탱·용왕탱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규모로 최근에 지었다.

안에는 금동 와불상(臥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와불 복장(腹藏)에는 2001년 미얀마 마웅매이사(寺)의

승려 우뚜리야 사야도우가 기증한 진신 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천왕문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부도군이 있다.

부도는 모두 5기가 있는데 4기가 몸체에 아무런 명문이 없는

무명(無銘) 부도라 주인공을 알 수 없고, 나머지 1기에는 ‘□암(□庵)’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도비는 2기가 있다. 하나는 승려 ‘□파□연(□坡□淵)’의 것으로

1775년(영조 51)에 세웠다. 다른 하나는 월조(月照)의 것이다.

 

 

♣ 장안사 찾아가는길 

 진주--부산 장안사 138km  2시간 소요

 

하트3→→→→→사찰기행시작

일요일 내자[內子]랑 부산기장에 있는

장안사로 향했다......!

 

↗장안사 표지석

원효성사창건도량이라고 적혀 있다.

진주에서 오전11시에 출발하여 부산 동쪽끝 기장에 있는

장안사 주차장 13시에 도착 하였다

2시간 걸린셈이다....

 

↗공덕비

 장안사 표지석에서 장안사 천왕문쪽 약30m우측에 위치 해 있다

장안사는

불광산(659m) 자락에 있는 고찰로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천왕문[天王門]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寶劒)을 잡았으며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 좌측 다문천왕

    우측 지국천왕

장안사 사천왕은 동판조각 상으로 되어 있어

다른 사찰과는 특이함이 보였다.

 

 

↗ 장안사 도량 전경

  천왕문을 들어서면 장안사 도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방에는 17세기에 지은 대웅전과

좌우로 응진전과 명부전이 자리 하고 있어 안정감을 주는듯 하다...!

 

↗만월당[滿月堂]

장안사 종무소

우측 범종각 아래에 있는 종무소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

 사찰 어디 가던 포대화상이 자리하고 있는듯 하다

 약수터 앞 포대화상

 

夜夜胞佛眠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대웅전[長安寺 大雄殿]

보물 제1771호. 장안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대웅전은 김방한의 ‘장안사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와
근래에 발견된 ‘묵서명’으로 인해 건물의 중건 및

중수연대가 명확히 규명된 부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이다.
대웅전은 평면 규모에 비해 웅장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대웅전 자리의 지대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물이 높고 처마가 깊게 돌출한 팔작지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면은 대웅전에서 흔히 사용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기둥 배열을 갖지만

정면의 기둥 간격이 넓고 특히 정면 어칸의 기둥 간격이 4분합문을 달 정도로 넓기 때문에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부에는 뒤쪽으로 고주 1렬을 세워 후불벽을 만들고

불단을 설치하여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아미타여래불, 왼쪽은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기둥과 평방의 결구 수법은 다포계 건물 중에서 비교적 완결성을 보여준다.

즉 기둥머리 부분에 평방을 끼워 넣어 평방 사이의 이음새를 보이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공포 부재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장식성을 강조하였다.

쇠서는 하단부를 섬세하게 조각하였고 앙서형으로 급하게 추켜올려 강한 상승감을 주고 있다.

특히 귀공포는 전각포로서 주두 위에는 살미쇠서 2개를 놓아 포를 크게 하면서
양단부의 분절을 분명히 하였다.
대웅전의 창호 구성은 중심성을 강조하는 입면 구성의 기법과

소목공예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양협칸의 3분합문은 중앙 창에 교살을 사용하고

양옆은 격자살을 두어 중앙을 강조하였고, 어칸의 4분합문은 양옆에 교살을 사용하고

중앙 두 짝문에는 격자교살을 두어 중심성을 심화시켰다.

격자살 중앙에 교살, 그리고 교살 중앙에 격자교살이라는

단지 두 종류의 창살기법으로 중심성이라는 건축적 어휘를 훌륭하게 표현한 것이다.

각 창호의 상부에는 격자살마다 한 칸 건너 원형 꽃살을 장식한 것도

고급스러운 소목공예라 볼 수 있다.

 

↗대웅전 벽화 심우도[尋牛圖]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畫).

 

↗장안사 3층석탑

 ↘석탑앞 소원성취 촛불하나 밝혀보았다..

 

↗장안사 명부전[長安寺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하였다
명부전은 시왕전(十王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1684년(숙종 10)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시왕을 협시로 한 지장시왕상 13구와 함께

동녀상·귀왕상·판관상·사자상·역사상이 좌우로 각 1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지장 삼존상 뒷면에는 1856년(철종 7)에 제작된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명부전은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은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6호

후불탱화인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는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묵서명에 따르면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던 1600년대 중반에 건립된 후

1744년(영조 20) 대웅전의 서까래를 수리하면서 명부전도 중건하였다.

1800년(정조 24)에 상연(上椽)을 수리하였으며, 그 후에는 수리 공사가 없었다.

명부전은 정면 상인방(上引防)과 문선의 맞춤 방식이 비교적 오래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반연귀 맞춤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1744년의 중건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건축 형식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공포도 비교적 오래전 형식인 출목 없는 삼익공(三翼工)으로 되어 있다.

그 밖의 부재들도 모두 1800년 수리 때 또는 그 이전 1744년 중건 때인 것으로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극락전[極樂殿]

극락전 공사중.........?!

팔작지붕에 앞면 5칸 옆면3칸 콘크리트 구조물

내부엔 금동 와불상[臥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와불 복장[腹藏]에는 2001년 미얀마 마웅매이사[寺]의 우뚜리야 사야도우 스님이

기증한 진신사리 3과 가 봉안 되어 있다고 한다.

 

 

↗장안사 응진전[長安寺應眞殿]
장안사 응진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이후 2010년 10월 현장 조사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 묵서를 통해

1899년(고종 36) 3월 18일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달 19일에 상량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장안사 응진전 건물의 건립 연대는

1899년으로 볼 수 있으며, 현존하는 주요 구조 부재 역시 당시의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내부는 통간(通間)이다.

정면의 처마는 장연 끝에 부연을 시설한 겹처마이고

배면은 부연(附椽)이 없는 간략한 홑처마로 되어 있다.

또한 공포(栱包)는 조선 말기에 성행한 1출목 3익공식(三翼工式)으로

다포계(多包系)를 비롯하여 주심포계(柱心包系), 익공계 등의 건축 수법이 절충되어 있으며

특히 공포는 전반적으로 장식적인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건물의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 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한 장안사 응진전에는

1684년(숙종 10)에 조성된 석조 석가여래 좌상,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등 석조 삼세불 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長安寺應眞殿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과

사자상, 천부상 및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삼세불 좌상의 뒷면에는 1882년(고종 19)에 제작된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長安寺應眞殿釋迦靈山會上圖)」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응진전이 정면 겹처마와 배면 홑처마로 다르게 형성된 것은

건물의 정면성과 의장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면의 겹처마를 통한 정면성의 부각과 함께 화려하게 새긴 연꽃 문양 및

최상단의 용머리 장식, 봉황 장식의 사실적인 조각에는 19세기 말

부산 지역 사찰 부불전(副佛殿)의 건축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외1출목 3익공식의 장식적인 공포 형식 및 내부 수장(修粧)

[벽, 마루, 문 따위의 내부를 꾸미는 일] 등에서도

 익공식 건축의 변천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장안사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전면 1칸 측면 1칸의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산신탱화는 호랑이가 변화한 신선을

그리고 그 앞에 진짜 호랑이를 그렸다.

호랑이는 산의 신령으로 존경 받았고 차츰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되었다.

사찰내 산신각은 불교가 토착신앙을 포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산신각은 대웅전과 같이 높이에 있으며

절터가 좁아서 그런지 대웅전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산신각 좌측에 호랑이 조각상이 있다.

 

↗단풍나무

장안사 도량내 오랜세월을 지키고 있는 단풍나무

높이가 약2.5m정도이며 아마 가을날 오면 곱게 물든 단풍을 볼수 있을듯...!

 

↗장안사 종각

2015년2월13일

장안사(주지 정오스님)는 전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

부산 가야사 주지 정현 스님, 기장 청량사 주지 보혜 스님 등 1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종각 상량식을 봉행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종각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천년고찰의 위상에 어울리자 않는다는 뜻에 따라

새롭게 조성 하였다고 한다.

 

↗장안사 가람 배치도

주차장에 있는 장안사의 가람 배치도 이다

 

▣ 원효대사의 화쟁사상  


 첫째 : 각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一理)을 변별하여 수용한다.

       저마다 일리가 있다.


 둘째 : 모든 쟁론의 원천을 초탈 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지(一心)에 올라야 한다.

       있고 없음, 옳고 그름, 진실 되고 허망 됨, 청정하고 오염됨을 대립적

         관계로 보지 말고 상호 의존적 관계로 포섭한다.


 셋째 ; 언어를 제대로 이해(理解)해야 한다.

       실제적인 언어와 방편적인 언어를 이해하여 걸림 없이 쟁론을 화해,

          소통시킬 수 있는 언어 능력.

 

허공에는 새 발자국이 없고, 물속에 물고기 지나간 자국도 남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지나간 후에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나와 너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안사[長安寺].

원효대사의 화쟁사상따라 부산 장안사 도량을 걷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장안사, 기장군청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전통사찰관광정보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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