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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송림공원,솔향기 솔솔 맡으며 섬진강과 하동읍을 안아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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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송림공원,솔향기 솔솔 맡으며 섬진강과 하동읍을 안아보다

바다늑대FORCE 2017. 2. 10. 10:37

 

 

하동 송림[河東松林]공원,

  솔향기 솔솔 맡으며 섬진강과 하동읍을 안아보다...!

♣하동송림공원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섬진강대로2107-3( 광평리 )일원

055-880-2377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진주ic)→남해고속도로 하동,남해IC-→전도-→포구터널-→하동읍방향우회전-→하동읍

- 하동송림공원

   

♣ 사찰기행일 : 2017.02.09(목)

♣ 하동송림 개요: 

하동 송림은 인공림으로 섬진강 변 백사장에 소재한다고 하여

 ‘백사 송림(白沙松林)’ 또는 소나무가 푸르다는 의미의 ‘하동 창송(蒼松)’이라고도 한다.

하동 송림을 ‘창송(蒼松)’이라 부르는 것은 ‘창(蒼)’이 ‘푸르다·우거지다·늙다’ 등 여러 의미로 쓰여,

‘푸른 소나무’라는 의미 외에 ‘노송(老松)’을 뜻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하동 송림은 섬진강 백사장을 끼고 있으며, 면적은 2만 6400㎡에 달하고 길이는 약 2㎞이다.

900여 그루의 노송이 서식하고 있다. 껍질 모양은 마치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을 두른 듯하다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都護府使) 전천상(田天詳)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은 것이 오늘날의 하동 송림이다.

송림 공원 주차장에는 노거수 소나무 밑에 ‘백사청송(白沙靑松)’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거센 모래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과 백성을 위하는 목민관의 정신을 의미한다.

 숲 안의 ‘하상정(河上亭)’이라는 정자는 옛날에 활을 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동 송림은 1983년 8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원래 방풍(防風)·방사림(防沙林)으로 조성되어 지금의 하동고등학교와 하동중학교 및 광평마을 일부까지 소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그 후 섬진강 홍수 예방을 위하여 하동 제방 제2호를 축조하면서

 현재와 같이 제방을 사이로 양분되어 송림 바깥쪽은 학교 또는 배후 주거지가 되었다.

제방을 쌓기 전에는 제방 안쪽에도 1,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현재는 상당수가 고사하여 900그루 정도만 남아 있다.

 이들 소나무마저 방치할 경우 고사될 우려가 있어 보식(補植)을 해 오고 있으며,

나무마다 일련 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다.

또 나무의 보호를 위하여 송림을 반씩 나눠 3년 단위로 번갈아 자연 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7단계의 휴식년제가 2010년 3월 1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시행되고 있다.

하동 송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뒤 문화재의 보존 및 관리와 함께 활용 측면도 보다 강화되었다.

이에 문화재청과 하동군, 하동군내 생태해설사회가 협력하여 문화재 생생사업을 추진하면서

 하동 송림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동군민들에게 하동 송림의 유래, 소나무의 생태,

 하동 송림 내 야생화와 식물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며, 송림내 산책, 짚신 신고 송림내 걷기 및 시낭송대회,

 작은음악회(콘서트) 등 각종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동 송림에는 현재 하동송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976년 12월 7일 건설부고시 194호 도시근린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공원의 송림 면적은 72,205 ㎡, 백사장 면적은 146,521㎡, 주차장 면적은 7,879㎡이다.

옛날에 활을 쏘던 하상정이 있으며, 운동기구, 벤치, 화장실, 급수대, 분수대, 야영장, 주차장, 매점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섬진강 가에는 테니스장, 족구장, 그라운드 골프장, 산책로 등이 조성되었다.

 2009년 6월 공원에 분수대를 준공하고, 2010년 부터 분수대 바닥에 조명 설치를 시작하여 2011년에 완료하였다.

 분수대 뒤에는 물놀이장이 있고, 광장 바닥에는 태양광을 이용해 여름을 대표하는 4개 별자리를 만들었다.

하동송림공원은 여름철 피서객과 지역민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분수대와 물놀이장이 있어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곳이다.

♣ 하동관광지도

 



♣ 하동송림 찾아가는길

 51km (41분소요)

 


 

하트3→→→→→하동기행시작

 하동서 근무한지 벌서 5년째로 접어 들었다

훈련 마치고 야간근무 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하동송림으로 향했다..

 

 

↗  맞이나무

 천연기념물 제455호(2005.2.18)지정

  하동송림 입구에서 송림을 지키며 찾아오는 탐방객들을

맞아 인사를 하듯 살짝 기울어진 겸손한 소나무이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이다....라고

안내표지목 글이다.

 

그리고 조형물의 글에는

하동송림의 유래의 글이 새겨져 있으며

2002년6월18일 건립자 하동군수 정구용

글 석파 진영진 조각 민형기 라고 새겨져 있다.

 

↗하동송림전경

하동 송림(河東 松林)은 경남 하동읍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2005년2월18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숲으로

모두 750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이 등과 같이 갈라져 있어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옷을 연상케 한다.

숲 안에는 활을 쏘는 장소인 하상정(河上亭)이 있어 궁사들의 단련장이 되고 있다.

하동송림은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노송숲으로

넓은 백사장과 맑은 섬진강물이 어우러진 경치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송림내 풍경

섬진강 백사장과 더불어 ‘백사청송(白沙靑松)’으로 널리 알려진 하동송림은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하동도호부사로 부임(1744년 영조 20년)한

이듬해 전천상 부사에 의해 조성됐다.

 

전천상 부사는 당시 하동 부민들의 생업을 위해 풍수해 예방과

권농에 힘쓰는 한편, 섬진강 모래바람에 시달리는 부민들의 고초를 눈여겨보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소나무를 심어 모래바람을 막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구역을 포함해 총 22만 4800㎡ 규모의 송림에는

당시 심겨진 소나무에 뒤에 보식한 소나무를 포함, 총 948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상정(河上亭)

송림 중앙에있는 하상정

활터라고 하는데...지금은 활터로 사용치는 않은것 같고

새로 정비것 같다.

 

 

 

 ↗섬진강과 어울려진 송림숲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때쯤

기차타고 여기 송림공원 소풍때가 송림 처음 탐방이였다

 

솔향기 솔솔 맡으가면서

섬진강을 안아보고 솔숲을 걷는다것 만으로도 모든아픔이 치유되는듯 하다......!

 

↘하동재첩 조형물

 하동 섬진강엔 재첩이 유명하니까 재첩조형물이라 생각한다

처음엔 조개인지.......아뭏튼 벌어진 조개에 앉아보았다

 

 ‘하동재첩(再妾)’ 은

“옛날 섬진강가에 삼시세끼 강조개국이 있어야만

 밥을 먹는 강(姜)씨 성(姓)을 가진 할아버지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3명 이상의 할머니(애인)를 만나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특이 체질을 가졌다.
이 때문에 이웃 할아버지들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 ‘습관이다’, ‘선친을 옥녀봉 아래에 모셔서 그렇다’라는 등

 시샘과 함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바람기도 계절을 탔다.

강조개가 나지 않는 상강(霜降)부터 이른 봄까지는 맥을 못 추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해 여름날 섬진강에 물난리가 나서 강변 사람들이 강조개를 먹지 못하게 되자

할아버지의 바람기도 갑자기 멈춰 버렸다.
평생을 두고 애를 태우던 할머니는 이 모든 비밀이 강조개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시래기국과 된장국만으로 밥상을 차리니 할아버지의 바람기가 잡혔다.
문제는 이런 소문을 들은 동네 남정네들이 너도나도 강조개를 먹기 시작했고

 온 동네가 부부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때부터 강변 사람들은 ‘첩을 여럿 거느리고 하룻밤 사이에 3대를 본다’고 해서

강조개를 ‘재첩(再妾)’이라 불렀다.
섬진강변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첩에 얽힌 사연을 재구성한 창작스토리다.

재첩에 대한 스토리는 그냥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첩에 들어있는 성분과 효능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다.

↗송림공원앞 섬진강 백사장

선진강[蟾津江]은

길이 225㎞, 유역면적 4,896㎢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저수지를 이룬다.

순창군·곡성군·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주요지류로는 추령천·일중천·오수천·심초천·경천·옥과천·요천·수지천·보성강·황전천 등이 있다.
섬진강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모래가람·모래내·다사강·대사강·사천·기문하 등으로도 불렸다.

1965년 12월 한국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이 완공되어 중류·하류의 홍수피해를 방지하게 되었다.
주변에 쌍계사·화엄사·천은사·연곡사 등의 사찰과,

남원 광한루, 하동 악양정, 구례 7의사묘, 고성 풍계서원 등의 유적이 있다.

 

 

↗하동공원 가는 육교

 송림숲 주차장에서 하동읍공원으로 연결하는 육교이다

정망대에서 보면 하동읍과 송림숲 그리고 섬진강을 한눈에 볼수있다.

 

↗원목계단

 송림숲에서 10여분 걸어가면

 전망대와 충혼탑등 그리고 식객 영화촬영지와 섬진강을 한눈에 안아볼수 있다.

 

↗충혼탑

충혼탑(忠魂塔)은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그 얼을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1년 8월 10일 건립하였다.

하동호국충혼탑은 하동공원 기존 현충시설자리에 국비 및 지방비 등 27억2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3년10월 공사를 시작해 7개월만에 완공되었으며

호국충혼탑은2720㎡의 부지에 화강석 재질로 건리비된 15m 의

충혼탑과 231㎡규모의 봉안각 2300㎡ 크기의 광장 진입 산책로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청기동대 전공충혼탑


건립일자는  1961년 8월 30일이며
시설제원은 경역면적 100평, 기단높이 0.8m, 탑높이 3.4m 이다.
건립취지 및 유래는
하동군에서는 향토수호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용사들의 충혼을 추모하기 위해 1961년 8월 이 탑을 건립하였다.

 여기에는 한청기동대 대원 124위의 넋을 봉안하고 있고

 좌측 탑은 한청기동대와 순직경찰관 19위를 기념하는 탑이다.

비문내용은
비바람 진눈깨비 우구 5천년. 해가 뜨고 달도 지매 민족의 영고 성쇠인들

그 어찌 한결같았으리오만 한발의 풍운에다 억눌림의 삼십육여년

자유민주 독립해방은 꿈결에도 갈망하던 우리의 숙원이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지! 국토는 남북으로 삼팔선은 세계의 분수령이 되고 말았다.

아늑하던 내고장에도 총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청암 악양의 격전은 마지막 고비였다.

그러나 여기에 정의의 사도 그 이름 갸륵하다.

한청기동대 그대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앞장서서 정의의 칼을 뽑았다.

죽음을 맹세하고 적진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오늘 여기 그대들의 위훈을 찬양하고

들과 산에 뿌려진 핏줄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의 그 넋을 일깨우려 한다.

 

↗충혼탑에서 바라본 하동읍과 송림숲

 

↗충혼탑에서 바라본 하동읍

우측 하동초등학교운동장

그리고 초록옥상건물인 하동군청 하동군보건소 건물이 보인다.

 

↗하동공원 전망대

하동공원 전망대에서는 섬진강의S라인이 한눈에 볼수 있었다

또한 섬진강뿐만 아니라 하동풍경을 휜히 내려다 볼수 있었고

전망대 안에는 무료로 볼수있는 망원경과

전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SBS월하드라마-식객- 촬영지

하동과 섬진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있는 곳으로

대령숙수(최불암)와 자운선생의 대화속에서

『자네 기억나나? 대숙수님 모시고 여기 왔던거?

그럼 참게 구하러 여기 왔었지

수박향 도는 은어에 장어,

그 때 이 섬진강을 먹거리의 보물창고라 하셨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표지석

 하동공원 한바퀴 돌고서

다시 하동송림숲과 섬진강으로내려왔다.

하동송림공원 주차장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이란 표지석이 있다.

 

 

 

 

 

하동군연혁

삼국시대에 신라의 한다사군(韓多沙郡)이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하동군(河東郡)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1018년(현종 9) 진주(晉州)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조선초에 남해현과 합해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 뒤에 다시 분리하여 하동현이 되었다.

1704년에는 하동도호부로 승격했다. 1730년(영조 6) 읍치를 다시 나동(螺洞)으로

 1745년에 다시 항촌(項村)으로 이전하는 등 여러 번 읍의 중심지를 옮겼다. 하동의 별호는 청하(淸河)이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는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진주의 두입지 7개면을 편입하면서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금양면과 곤양군의 서면을 편입하여 남면으로 개편하였다.

 1916년에 내횡보면이 횡천면으로, 1918년에는 동면이 진교면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가종면과 옥동면을 옥종면으로, 금양면과 남면을 금남면으로 통합했으며

 1939년에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의 여수순천10·19사건,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지리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89년 금남면 갈사출장소가 금성면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신흥출장소가, 1998년에는 위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02년 청암면의 위태리·궁항리·회신리가 옥종면으로 편입되었다.

 

하동 송림[河東松林]공원,

  솔향기 솔솔 맡으며 섬진강과 하동읍을 안아보다...!

※인용글 : 인터넷자료, 인터넷사전 및 하동군홈페이지 관광정보 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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