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베오울프
- ㅅ어
- 몸은 액션?
- 2007)
- (2007)예고편
- 보내세요
- 행운을드립니다
- dd
- BEOWULF
- 풍요로운추석명절
- 초미니 비키니 눈길
- 두바이왕자
- 얼짱보디빌더 박수희
- 戒 Lust
- ㅕㄴ으로
- 20일만에결혼
- 제니퍼 애니스톤
- 계 色
- The Simpsons Movie
- 첫눈에반한
- 호텔여직원과
- 색
- UCC
- Caution
- 베스트 20
- 얼굴은순정
- 미소
- 사한
- 무드연주곡
- Today
- Total
바다늑대 FORCE
고성 학동마을,학(鶴)이 알을 품은 학동마을 옛담장길을 걸어보다 본문
고성 학동마을,
학(鶴)이 알을 품은 학동마을 옛담장길을 걸어보다...!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 (하일면)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진주ic)→남해고속도로 사천ic-→하이면방향 국도(쌍족암방향)
-→삼상로에서 삼천포항방면 좌회전 -→학동마을
32km (약 40분 소요)
♣ 대한민국 구석구석 기행일 : 2016.04.16일(토)
♣ 학동마을 개요:
고성의 학동마을은 서기 1670년경 전주최씨 선조의 꿈 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현재 마을 뒤에는 수태산 줄기가,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상당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문화재자료 제208호 '육영재', '최씨고가' 등 일부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어 전통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층으로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황토빛 돌담길을 따라 걷노라면 아련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학이 알을 품은 마을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안렴사공파 집성촌이다.
조선 중기 1670년경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던 의민공 최균(崔均)의
고손자 최형태(亨泰)가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며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확신하고
입촌하여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되었다.
지금은 전주 최씨 집성촌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 되었고 10여개의 성씨가 어울려 살고 있다.
한때 150여 가구가 살만큼 번창했으나 주민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50여 가구에 100여명이 산다.
바다로부터 약간 물러나 앉은 이 마을 뒤로는
수태산, 앞에는 좌이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휘감아 흐르는 지세로 보아
전통적인 배산임수형 입지로 명당이요,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 수 있다..
* 담장 - 토담길이 약 2,300m의 돌담(납작돌), 토석담
* 쌓기형식 - 점판암 계통의 돌과 황토로 바른층 쌓기
* 마을형성 - 17세기 후반 형성, 현 50세대 (108명) 거주
* 문화재 - 고성 학림 최영덕씨 고가 (문화재자료 178호) 등 2건
♣학동마을 안내도
→→→→→대한민국 구석구석 기행시작
경남 산청 남사마을과 비슷한 경남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길을 찾아 보았다
↗안내 표지판 건너편에
마을 방문객 주차장이 있다....주차를 하고 마을까지 걸어 가야 한다
↗ 밀밭
마을 입구에 있는 밀밭
오랫만에 보는 밀밭이다....
초록물결이 쳐다만 보아도 마음이 치유가 된다...........!
↗학동마을은 경남 고성의 학동마을은 전주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이며
토담길이는 약2300m정도라고 한다.
학동마을의 돌담길은
수태산에서 채취한 2~3㎝ 두께의 납작돌과 황토로 쌓아
다른 마을의 담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토석담은 0.4~1m 높이까지 큰 납작돌을 쌓고,
그 위에 작은 납작돌과 진흙을 쌓아 올린 뒤 맨 위에 큰 판석을 올려 만들었다.
고성이 공룡으로 유명하고 그 당시의 지층으로 만들어진 납작돌을 이용한 것 같다
↗토담에 핀 민들레꽃
↗학동마을 골목길 풍경
이 마을은 서기 1670년경 전주최씨 선조의 꿈 속에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이곳에 들어와 살며
동네이름을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이다.
현재 마을 뒤에는 수태산 줄기가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
집 마당 벤치에 앉아 쉬어 가라 하시면서
커피와 키위를 내어 주셨다.
7년동안 키위 농사를 하시는 최씨 집성촌의 한사람이며
친절히 마을 유래를 들려 주셨다...!
↗봄내음 가득..개울물 졸졸
↗최영덕씨 고가[古家]
입장료 성인 1,000원..이라고 되어 있어 내자(內子)랑 함께해서 2,000원 무인함에 넣고
방명록에 서명 까지 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사"(梅史)란 편액이 걸린 사랑채가 나온다.
매사는 조선시대 선비인 최태순(1836~1910)의 호로, 관직을 버리고 학문 연구에 여생을 보냈다고 하며
지금의 고택은 현 소유자 최영덕(65세)의 5대 조부인 매사 최태순이 고종 6년(1869년)에 지은 옛집이다.
매산 고택의 사랑채를 지나 뒷편의 안채을 관람한다.
안채,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 대문간채 등 모두 5동의 건물이 구성되어 있다.
♣최영덕씨 고가[古家]
경상남도 고성군에 자리한 학동마을은 흙과 돌을 섞어 만든 오랜 담장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
300년이 훨씬 넘은 고택 등이 어우러진 마을로 전주 최씨(全州崔氏) 가문이 300년간 터를 일구고 살아온 마을이다.
그 안에 경남 문화재 178호로 지정된 고택, 경남고성학림최영덕씨고가가 있다.
국가 등록 문화재 제 258호인 "학동 마을 옛담장"이 소재한 학동 마을은 1670연경 최영덕의 12대 조부가 개동한
전주 최씨 집성촌 마을로, 마을 내에는 국권 침탈 시 순국한 서비 최우순 선생의 “순의비와 서비정(현충시설)”,
지방 문화재로는 “학림리 최씨 종가”, “육영재”(자제 교육 기관)등이 있고,
부자 국회의원-최갑환, 최재구 가옥, 삼현여중고 설립자 최재호 생가, 무학, 대선 소주 전 사주 최재형 가옥,
전 유원 건설 사주 최효석 가옥 등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경남 문화재 178호 최씨 고가”는 7대 조부 성화 최필간공이 1809년(순조9년) 큰댁에서 분가, 신축한 주택으로
대지 1,000평, 건물 5동(안채, 사랑채, 서익랑, 고가옥, 방채, 사랑채, 대문채)과 후원 텃밭과 우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구한말에 재 신축한 서울식 건물로, 이 지방 사도인 통영 통제사의 향소로 사용된 관청 형식 건물로
기둥이 둥글고, 천정도 “소란 반자(격자)”형이 특이하다.
정원에는 선비 나무 라고도 하는 회화 나무, 토종 동백나무 등이 유명하고,
후원 텃밭의 화강암 뚜껑 우물은 한국에서 유일하다
이 가옥은 대문간채와 안채, 누각으로 구성된 마루가 멋스러운 안사랑채, 바깥주인이 거처했던
사랑채, 잡다한 물건을 수납하는 고방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문을 경계로 남녀 공간을 구별해 놓은 전통 사대부 가문의 한옥이다.
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사랑채는 학림헌(鶴林軒)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방 수령인 ‘통영 통제사’의 행정 권한을 위임받아 각 고을 수령을 보좌하는 향소(鄕所) 역할도 이행했던 장소다.
고방채 오른쪽으로 작은 문이 보이는데, 이는 내부 주거지와 텃밭을 구분하는 출입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화재로 지정된 우물이 있다. 화강암 뚜껑이 달린,
기둥과 벽체가 우물 정(井)자 형태를 띠고 있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다.
사랑채에 설치한 누마루는 집 안의 전체적인 경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마당에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와 모과나무, 작은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고성 학림리 최씨 종가(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22호)
학동돌담길53 최원석씨 소유
학동마을의 중앙에 자리한 이 가옥은 임진왜란(1592~1598)때 의병장 최균의 현손 최형태가 처음 지은 집으로
이 고택은 조선말기에서 일제초기의 부농가옥으로 20세기초 고성지방 농촌주택의 주거생활상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중이다.
최원석 어르신께서 최씨종가 에 대해 설명 해주셨고
지금 혼자 살고 계시다고 한다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찍은사진 보내 달라 해서
등기 우편으로 보네드렸다..!
대채로 마을 주민 사람들은
마을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 주시고 부담없이 대해 주셨다.
※우국충절을 기린 서비정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학림천을 건너 마을 맨 끝자락 언덕에 서비정(西扉亭)이 있다.
서비정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을 한탄한 최우순(崔宇淳, 1832~1911)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정자 앞에는 기품 넘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청청하다.
최우순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이 위치한 동쪽이 싫어
사립문을 서쪽으로 돌리고, 호 청사(晴沙)를 서쪽으로 난 사립문이라는 뜻의 서비(西扉)로 바꾸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경술국치를 강행한 일본이 은사금으로 회유하려 하자 거부하며 자결하였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향년 80세였다.
순절 소식에 전국의 유림과 지사들이 그의 우국충절을 기려 서비정을 세우고, 향사를 모셨다.
나라를 아끼는 우국충절도 남달랐던 마을이다. 이곳 역시 같은 형태의 돌담과 석축을 쌓은 축대 위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후손들의 교육기관 육영재
원래는 1723년에 전주최씨 문중에서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마련한 초가집이었으나 1845년 이곳에 현재의 건물을 세웠다.
지금의 학제로 치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다. 4동의 목조와가 건물이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많은 석학과 독립지사를 배출하였고, 경내에는 당시 학동들이 사용하던 고서 300여 권이 소장돼 있다.
서비정 주인공인 최우순의 순의비(殉義碑)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하일국민학교가 불탔을 때 4년 동안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4년 도문화재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육영재와 더불어
야외학습과 서화경연을 하던 천도연(天桃淵)이 저수지 둑 공사로 흔적이 없고,
연못 안 표석만이 대문 앞에 제자리를 잃고 놓여있어 안타깝다.
마을 옆 조금 떨어진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뜸한 탓인 듯, 정오의 해가 하늘높이 걸려 있는 데도 육영재 솟을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문틈으로 안을 살필 수 없어 담 위로라도 엿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노거수들이 성글게 그늘을 만들고 뒷산 고아한 홍송만이
선비의 의리와 절개를 대변하며 병풍처럼 육영재를 둘러 서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도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듯하다.
330년 종사를 받드는 최씨 종가
마을에서 백미는 역시 대대손손 마을을 지키고 있는 후손들의 전통가옥이다.
최씨 종가는 2011년 7월 14일 경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종가에는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토담으로 쌓은 창고가 남아있다.
수많은 제사를 지휘하던 팔순 종부 박종례 할머니가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다 예고 없이 들어서는 객을 거부감 없이 맞는다.
널찍한 마당에 가꾸어 놓은 텃밭에는 마늘이 파릇파릇 싱싱하게 자라며 시골인심을 나타내고
우아한 동백나무가 몇백년의 세월을 품고 대문 옆에 서 있다.
330년 종사를 받드는 종가는 축대위에 높이 앉아 위용을 드러낸다.
납작돌로 축대를 높이 쌓은 후 그 위에 집을 지은 모습이 한결같은 이 마을 특징이다.
안채 축담 위에 신기하게도 같은 돌담으로 나지막하게 에워싼 닭장은 닭을 족제비 등 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돌로 덮어 놓았다.
안채 뒤 장독대는 계단식 돈대로 돌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꽤 널찍한 것을 보니 종가에 쓸 음식은 모두 이곳에서 나왔으리라.
제일 높은 돈대 위에는 뒷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가묘가 조상들의 신성한 위엄을 내뿜는다.
자랑스러운 선조 위세 '당당'
차종가인 참봉댁이라 부르는 최영덕(泳德) 매사고택은 일찍 문화재로 지정되어
비교적 잘 보존된 모습으로 종가와 돌담장 하나로 이웃하고 있다. 전통 목조건물인
사랑채를 포함한 모든 건물이 시원스런 일자형 평면구조다.
선조들의 교지는 경상대학교에 기증하고 모본만 있었는데 자랑스러운 선조의 위세가 당당하다.
사랑채에 멋진 글씨체로 적힌 학림헌(鶴林軒)이라는 편액은 통영 통제사
관할구역인 이곳이 관청과 멀었던 사정에 따라 임시 동헌으로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흙돌담에 내놓은 구멍은 사랑채로 드나드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란다.
대문채에 있는 돌담 구멍은 가난한 자를 위한 음식을 내어주는 데 쓰였다니 사려 깊은 인심을 알 수 있다.
뒤뜰에 있는 정(井)자 모양의 화강암 우물 뚜껑에 난 크고 작은 세 개의 구멍은 '천·지·인'을 뜻하며 당시 석공의 솜씨를 자랑한다.
조선시대 양반가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연리지로 자라난 모과나무,
동백나무가 모두 고목이어서 고택과 함께 기록되지 않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고성 학동마을,
학(鶴)이 알을 품은 학동마을 옛담장길을 걸어보다...!
※인용글 : 인터넷자료, 인터넷사전 및 고성군홈페이지 관광정보 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6.04.19]
스마트폰으로
여기 QR코드 앱으로 찍어주세요....!
'바다늑대 > 山 & 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주 성전암.연두색 봄빛 가득한 오봉산 성전암을 걷다 (1) | 2016.04.25 |
---|---|
고성 계승사 [固城 桂承寺]. 계승사 전설과 백악기 퇴적구조를 보다 (0) | 2016.04.17 |
하동백련리 사기(沙器)마을 봄날에 백련도요지를 걸어보다 (0) | 2016.04.05 |
수우도 은박산 , 남해바다의 작은섬 수우도 풍광에 빠지다 (0) | 2016.03.27 |
보리암[菩提庵 ], 남해보리암에서 바다가 전하는 봄소식을 듣다 (0) | 201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