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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성전암.연두색 봄빛 가득한 오봉산 성전암을 걷다 본문
진주 성전암[聖殿庵]
연두색 봄빛 가득한 오봉산 성전암을 걷다
♣성전암[聖殿庵]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802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
오봉산(五峰山 : 524.7m) 7부 능선에 위치
☎ 055-754-7056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진주ic)→남해고속도로(진성ic)→무촌교차로→
→이반성교차로 →평촌역 → 오봉산 성전암
29km.....45분소요
♣ 사찰기행일 : 2016.04.23(토)
♣ 성전암 개요:
성전암은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년) 풍수지리학 개산조이신 도선국사께서 백두산의 정기는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뻗은 수맥이 한수이북에는 삼각산에 머물고, 한수이남에는 여항산에 맺혔다 하고
성인이 계시는 대찰이라 성전암으로 이름하여 창건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조 인조임금이 본 암자에서 100일 기도를 성취함으로서 조선조 16대 왕으로 등극하였고
임금이 계셨다 하여 아랫마을을 지금까지 장안리라고 부르고 있으며
인조각은 대왕의 영역으로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영남지방의 기도처로 명성이 나 있다.
성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조선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등극하였으며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仁祖閣)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나한을 모시는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 보유문화재(保有文化財)
․ 성전암목조여래좌상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0호(2000.1.25 지정)
♣ 성전암 안내도
→→→→→사찰기행시작
봄이 전하는 향기따라 이반성 성전암 으로 향해본다..!
↘주차장 옆에있는 계곡 폭포이다
전날밤 비가와서 그런지 제법 물소리가 크다
↗가파른 진입로
연두색 잎새 시원한 봄향기 가득한 길을 걸어면서.....마음을 씻어 본다
↗진입로에서 바라본 성전암
성전암은
성전암은 1100년전 통일신라 49대 헌강왕5년에 풍수지리학의 개산조인 도선국사가 백두산의 정기는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뻗은 거맥이 한강 이북에는 삼각산에 머물고
한강 이남에는 여항산에 맺혔다고 하고 성인이 계시는 대찰이라 '성전암'으로 이름하여 창건하였다.
↗성전암 무량수전으로 가는길
입구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가 성전암 을 지키고 있는듯 하다..!
↗ 성전암 무량수전
2010년 5월 화재로
대웅전,삼성각,나한전,종무소 4개동이 전소했고, 종각이 반소되었다
방화범은 기독교인 30대 김모씨의 행각으로 방화현장에서 검거되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내부
↗무량수전 내 목조아미타여래(경남유형문화제 제350호)
무량수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는 2010년에 성전암 대웅전에 화재당시
전각이 전소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밖으로 모실 수 있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님의 뒷 배경 사진이 2010년 화재전의 성전암 사진이다
↗지장보살상
↗ 성전암 무량수전 뒷편 여항산 줄기 오봉산 절벽
초등학교 어린시절 외가에 오면 성전암을 군북 사촌쪽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절벽 끝에서 외사촌이랑 누가 간이(勇氣용기)큰지 절벽 끝에 걸터 앉아 소리를 질러된 기억이 난다.....!
↗요사채
↗성전암 종무소
2010년 대웅전과 함께 불에 타서 다시 복원한 종무소 건물
↗인조대왕각 및 산신각
인조대왕 위패와 산신 탱화가 있으며
성전암은 조선 제16대 왕 인조(仁祖 : 1623∼1649)와 인연이 깊은 도량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 능양군(綾陽君) 시절에 외갓집 인근의 오봉산 성전암에 머물며 100일 기도를 올렸다.
야인(野人)으로 전국을 떠돌던 능양군이 석 달 열흘간 국난 타개를 위해
이 성전암에서 정성을 다한 결과 임금이 되었다. 이 절은 인조를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이런 까닭으로 인조를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다.
조선 시대에는 반란으로 쫓겨난 왕은 노산군(단종), 연산군, 광해군 3명이다.
그중에서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반정(反正)'의 명분으로 왕이 바뀐 것은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다.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중종에 반해 인조는 왕이 되고자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사람이다.
그는 광해군에게 원한이 많았다.
인조는 선조의 14명 아들 중 다섯째인 정원군의 큰아들로 임금이 되기 전에는 능양군으로 불렸다.
능양군의 친동생인 능창군은 서인 일부가 왕으로 추대하려다 발각된 사건으로
강화도 교동(喬桐)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후 스스로 목매 죽었다.
17살의 아들인 능창군이 죽자 아버지인 정원군은 화병으로 40세에 숨졌다.
능양군은 이를 갈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5년 뒤 드디어 반정에 성공,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이었다.
↗인조각에서 바라본 진주 이반성 풍경
미세먼지로 인해 뿌연하늘....!
↗응진전
전각에는 현판이 없지만 응진전 인것 같다
↗암벽에 있는 나한전
16나한......내가 18살때 왔을땐 분명히 없었는데......
↗16나한 앞 돌담에 있는 부처손과 바위채송화
↘나한 앞에서 바라본 성전암 도량
↗종각
진주 성전암에는 누구든지 3번 씩 종을 울릴 수 있는 ‘소원의 종’
성전암은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802번지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0호로 지정된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을 모시고 있는 성전암(聖殿庵)이 위치한 곳이다.
오봉산(五峰山 : 524.7m) 7부 능선인 350m 높이에 자리한 성전암은
암벽 사이를 삭평한 조그만 터에 높이를 달리하여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아기자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차량으로 성전암 마당까지 올라 갈 수 있으나 이반성면 장안로65번길 195에 위치한
孝子密陽朴公之碑(효자밀양박공지비)와 비각이 있는 오봉산 입구까지는 순조로운 길이지만
성전암으로 오르는 막바지 산길은 가파른 곡예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아찔한 길이다.
성전암은 6·25사변 때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는 비운을 맞았으나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이 폭격 속에서도 홀로 남아 불사(佛舍)가 건설되었고
2010년 개신교의 신도가 방화를 하여 당시 대웅전과 전각이 불탔으나
또 다시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은 화마에서 빠져나와 주지 성공을 비롯한
성전암 신도들이 낙담하지 않고 새로 불사를 완성하였다.
이전에는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란 현판을 사용했지만
이번에 불사를 완성한 전각의 이름은 아미타여래를 모신 법당이라는 뜻에서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무량수전의 기둥은 12그루의 국내산 느티나무를 나무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다듬어 세워 건물에 자연미를 더했다고 한다.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晉州聖殿庵木造如來坐像)은 배 안의
복장유물(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중기의 불상 목조로
제작된 높이 60㎝, 폭 43㎝의 작은 여래좌상이다.
머리 부분은 상투 모양의 육계와 중앙계주의 표현이 있으며
작은 입을 꼭 다문 모습으로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불의 9가지 수인 중 하품하생인을 짓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래좌상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출처 : 디지털진주문화대전]
진주 성전암[聖殿庵]
연두색 봄빛 가득한 오봉산 성전암을 걷다
※인용글 : 인터넷자료, 인터넷사전 및 진주시홈페이지 관광정보 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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