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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兜率庵],고승의 무상무념[無想無念] 발길따라 선운사 도솔암에 가다 본문
도솔암[兜率庵],
고승의 무상무념[
♣선운사 도솔암[兜率庵]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절.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294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진주jc)→호남 고속도로 장성 위에서 장성-고창간 고속도로 진입
→ 서해안 고속도로 선운사 I.C. → 선운사[도솔암]
♣ 사찰기행일 : 2015.05.31(일)
♣ 도솔암 개요: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선운사.도솔사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 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兜率)’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배경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었던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애불좌상이 조성된 이래 이불상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 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에 해인(海印)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였다.
이처럼 각기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와 와서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 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 선운사 도솔암 안내도
→→→→→→사찰기행시작
선사님들이 구름에누워 지혜를 담듯 그렇게 선운사를 둘러보고서 도솔암으로 향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약3km정도이다
↗도솔암 가는길
고승들의 무상무념 발길 따라서 녹음짙은길 걸어본다
↗진흥굴
녹음짙은길 계곡따라 걷다보면 우측에 커다란 동굴이 보여 올라가보니
진흥굴이라고 한다.
진흥굴은 숭불왕으로 유명한 신라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땅인 이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 했으며 왕위를 퇴위한후 선운사를
찾아 그곳에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져오는 암굴이라 하며
암굴속으로 들어가니 시원함이 뼈속까지 느껴지며
누군가 돌탑을 쌓아두고 기도한 흔적이 보인다.....!
↗장사송[長沙松]
진흥굴 바로 앞에는 6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있는데
이 소나무를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이라고 부르고 있다.
높이는 23미터가 된다고 한다
소나무 키가 너무 커서 한참이나 올려봐야 할 정도로 높게 뻗어있다.
이나무의 명칭을 진흥송 또는 장사송이라고 불려지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명칭인
장사현에서 나왔다고 하며 진흥송은 진흥굴 바로 앞에 있어서 붙혀진 명칭이라고한다.
소나무 제선충도 장사송을 피해가진 못한듯 하다
제선충 방재를 위하여 현수막이 걸여있다
솔가지 몇개정도는 아마 제선충 방재를 위해 잘라 내은듯 하다..!
↗도솔암 종무소
햇살가득 품은 도솔암 경내로 들어왔다
↗약수터
대웅전 바로 아래 약수터가 있다
겉다 목마름을 축이고서..........!
↗도솔암 극락보전
주련옆에서 인증사진 한컷
도솔암 주련4점 과 편액은 목우 윤기성 선생의 글씨라 하며 2006년도 작품이라 한다.
↗요사채
편액에는 도솔암이라 적혀 있다
↗수광전[壽光殿]
천장, 지지, 인장의 삼장지장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수광전에 아미타불과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2014년5월 25일 도솔암 수광전에서 선운사 원로 재곤 스님을 증명법사로
재덕스님, 범여 스님, 대우스님, 대원스님, 도완스님, 참당암 선원 대중스님들과 불자 1천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아미타부처님과 후불탱화, 일광보살탱화 점안식을 봉행하였다고 한다.
↗종각
법구사물[法具四物]중 하나인 범종만 있다
아마도 불사중인듯 하다
↗마애불 가는길
↗나한전
조선말기에 세워진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전은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라하며
아라한은 불교이 성자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지칭하며
조선시대에 도솔암 용문굴에 사는 이무기가 자꾸 마을사람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위해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했더니 이무기가 사라졌으며
그후 이무기는 보지 못했다고하는데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장보살상[보물 제280호]
선운사 도솔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96.9㎝이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모두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상체가 늘씬하고 당당하여 고려 후기의 장곡사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나
문수사금동불좌상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길상좌(吉祥坐)를 한 탄력적인 하체나 부드럽고
단아한 어깨선, 상ㆍ하체의 비례 등이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형태를 지니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는데, 이마를 감싼 후 귀 뒤로 넘겨서 어깨까지 천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의 두건을 쓴 지장보살〔被巾地藏〕의 모습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던 도상적 특징으로
현존하는 많은 고려불화에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목구비 등을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표현하였다.
양 귀에는 만개한 화문(花紋)을 띠로 연결하여 귓불에 묶은 이식(耳飾)을 착용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보살상이 원형 고리를 길게 늘어뜨려
매달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특이한 형태라 하겠다.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인(中品印)을 취하고
왼손은 가슴과 배 중간쯤에 들어 법륜(法輪)을 잡고 있는데
이는 육도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서
보주(寶珠)ㆍ석장(錫杖)ㆍ법륜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의 일반적인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을 왼 무릎에 올린 모양으로 발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어깨나 소매ㆍ무릎 등에 몇 가닥의 간단한 주름만을 표현하여
상에 나타난 선묘는 유려하게 휘어지는 맛과 함께 단순ㆍ명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보살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이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 때 무너졌다고 한다.
불상은 낮은 부조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뾰족한 육계가 있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고
목은 표현하지 않아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방형에 가슴이 넓고 평면적이며, 결가부좌한 넓은 하체에 손과 발 역시 체구에 비해 큼직큼직하다.
투박한 두 손은 활짝 편 채 아랫배에 가지런히 붙여져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두꺼운 편은 아니나 옷주름선이 선각으로 형식화되어 있고
평평한 가슴 아래로 선명하고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대좌는 비교적 높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대(上臺)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고
하대(下臺)는 간략한 연꽃무늬의 연화좌로서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고, 가슴에는 사각형으로 큼직하게 복장(腹藏)구멍을 나타내었다.
머리 위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부러진 서까래가 꽂혀 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누각 형태의 목조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도솔암[兜率庵],
고승의 무상무념[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선운사, 전통사찰관광정보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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