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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 [鷰谷寺],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 깨침의 수행속을 걷다 본문
연곡사 [鷰谷寺],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 깨침의 수행속을 걷다
♣ 구례 연곡사[鷰谷寺]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있는 절
☎ 061-782-7412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순천방향)→남해하동ic→전도→하동읍→19번국도(구례방면)→토지면
→내동마을 피아골
♣사찰기행일 : 2014.10.27(월) 날씨-맑음
♣연곡사 [鷰谷寺]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545년(신라 진평왕 6)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뒤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규모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를 비롯하여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제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구례 연곡사 3층석탑(보물 제151호)과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석탑을 해체·수리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 지도
사찰기행시작→→→
↗ 연곡사 앞 주차장 & 사찰 안내판
피아골 대피소까지 단풍산행을 마치고 燕谷寺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 가듯이.....!.
燕谷寺는 깨침의 世界만이 남아 있는 도량이라고 한다.
깨침의 세계만이 연곡사의 수행의 역사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燕谷寺의 깨침의 세계는 석조문화의 진수라고 불리는 부도들이다.
燕谷寺의 부도는 돌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는 깨침의 世界이며, 선지식의 수행의 표상이다.....!
↗ 연곡사[鷰谷寺] 일주문[一柱門]
연곡사에는 가을 국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국화꽃이 연곡사 도량 곳곳에 있어 향긋한 내음이 더 좋다
연곡사 일주문은 정문에 해당한다.
일주문은 사역 가장 정면의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 위에 서 있다.
아직 천왕문이나 금강문, 누문을 갖추지 못한 연곡사의 유일한 문이다.
1995년에 신축되었다고 한다.
연곡사[鷰谷寺]는 신라 진흥왕 4년(543년)에 화엄종의 종사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연곡사를 중창한 소요 태능 역시 연곡사는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시로 읊고 있다.
그러나 543년에 이 지역은 백제 땅에 속하였으므로 이때 창건되었다고 하는 기록은 믿을만한 근거가 없다.
한편 최근에 들어와 연기조사는 8세기에 실존하였던 인물로 밝혀졌다.
연기조사는 당시 화엄종과 연관이 깊은 승려로 인접한 화엄사도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연곡사는 화엄사의 창건과 연관하여 연기조사에 의해 8세기 무렵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鷰谷寺]는 신라 말에 들어와 크게 번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곡사에는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부도와 삼층석탑 및 동부도탑비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도와 현각선사탑비가 남아있다.
모두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뛰어난 석조물들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시기에 연곡사[鷰谷寺]는 상당히
번영하였던 사찰로 추정되며, 선찰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곡사 보제루(普濟樓)
연곡사 보제루는 연곡사 보제루는 최근에 지은 것인지 상태가 아주 깨끗하다
↗ 연곡사 연지
제비가 앉은 자리일까..?
피밭일까..?
연지라고만 되어 있어............!!
↗연곡사 삼층석탑(보물 제 151호)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석탑이다.
연곡사 대적광전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있다.
3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이 올라간 형태이다.
2층과 3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탑신부에도 기둥이 새겨져 있다.
탑의 지붕돌 윗면의 경사와 네 모퉁이의 반전이 조화롭다.
기단이 3층이어서 몸돌(옥신석)과 지붕돌(옥개석)로 이루어진 탑신부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로 인해 탑이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탑의 체감비율이 완만하여 균형감이 있다.
1967년, 탑을 해체 복원할 때에 맨 위층 기단에서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 범종각
↗연곡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연곡사의 중심법당이며 안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셔놓았다.
현재의 건물은 1983년에 지은 것이다.
그 좌우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만약 보관이 없었다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보관을 쓰고 계시니 부처님이 아닌 보살인 것은 분명하다.
좌우의 후불탱화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탱화이다.
대적광전은 평면은 도리통 5간, 양통 3간으로 도리통은 어간을 다른 간에 비해 넓게 설정하였고
협간과 툇간은 동일한 주간으로 설정하였다.
정면에는 어간에 사분합, 협간과 툇간에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양 측면에는 전퇴에만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벽을 쳐서 감실형의 평면을 구성하였다.
↗연곡사 대적광전 주불이신 비로자나불 [毘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지권인이다.
지권인은 중생을 뜻하는 왼손을 부처님을 뜻하는 오른손이 감싸쥐고 있는 형태라야 옳으나,
연곡사의 비로자나불은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쥐고 있는 형태이다.
중생이 부처님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라고 한다...!
※비로자나불 [Vairocana, 毘盧遮那佛]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한역되기도 하는 비로자나불은
그 기원이 고대 이란의 광명신 아후라 마즈다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아수라왕(阿修羅王)에서 그 연원을 추정하기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화엄경〉에서 시방제불(十方諸佛)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법신불(法身佛 : 진리를 신체로 하고 있는 부처)로 등장한다.
밀교에서는 아득한 옛날에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5선정불(五禪定佛)의 중앙에 위치하는 부처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비로자나불만을 따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밀교가 성행한 네팔·티베트·일본 등의 예술에서와 같이
5선정불의 하나로 표현될 때 비로자나불은 항상 본존(本尊)의 위치에 놓이고
나머지 4선정불을 산출해낸 본초불(本初佛 Adi-Buddha) 자체로 묘사되기도 한다.
회화에서 비로자나불은 흰색으로 채색되고
그의 손은 전법륜인(轉法輪印 dharma-chakra-mudra : 설법하는 자세)을 취하고 있다.
그의 배우자는 금강계자재모(金剛界自在母 Vajrad-hātviśvari) 또는 '타라'(Tārā)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출신 가문은 '모하'(Moha)였다고 한다.
용 또는 사자를 타고 다니고 수레바퀴(輪 chakra)를 상징으로 하며
5온(五蘊) 중에서는 색(色 : 물질)을, 소리로는 '아'([a]) 또는 '옴'([om])이라는 음을
우주의 구성요소로서는 공간을, 감각으로는 청각을,
감각기관으로는 귀를 담당하고 있고, 인체에서의 위치는 머리이다.
비로자나불은 동아시아의 유가사(瑜伽師 Yogācāra : 명상 수행자 일반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특히 밀교의 수행자)들이 널리 모신다.
전설에 따르면 비로자나불은 초인적 존재인
금강살타(金剛薩埵 Vajrasattva)에게 요가의 가르침을 전했고,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가 719년 중국에 그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 좌우 협시 문수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은 대적광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의 좌측에 협시하고 있는 보살로 문수보살이시다.
그러나 후불탱화는 노사나불탱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비로자나불의 우보처인 보현보살이다.
다만 후불탱화는 10대 제자를 거느리신 석가모니 후불탱으로 여겨진다.
↗법당 불화는 십우도(十牛圖)
심우/ 견적/ 견우/ 득우/ 목우/ 기우귀가/ 망우재인/ 인우구망/ 반본환원/ 입전수수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로
그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합니다.
심우도(尋牛圖)란 본래 도교에서 나온 팔우도(八牛圖)가 그 시작으로
12세기 무렵 중국의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도교의 소 여덟마리에 두 마리를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완성시켰다.
곽암선사가 보기에 도교의 팔우도는 무(無)에서 끝나므로
진정한 진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 눈에 알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 불교의 진실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소 두 마리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의 팔우도를 무(無)의 결말이라면,
곽암선사의 십우도는 공(空)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음전
↗명부전
↗ 계단길을 10여분 걸어 올라가면
국보인 동부도와 탑비를 만나게 된다
↗연곡사 동승탑비(보물 제 153호)
동승탑비는 고려시대의 비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연곡사 동승탑 앞에 자리하고 있다.
비의 몸돌은 없고 거북모양받침돌과(귀부)와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발을 뻗어 엎드리고 있는 모습이며 거북 머리는 용의 형상이다.
머리는 몸통에 바싹 붙어 있다. 잘려진 것을 후대에 복구한 것이라 한다.
머릿돌에는 용은 없고 구름만 새겨져 있다.
특징적인 것은 거북의 등에 날개를 조각한 것인데, 귀갑문이 아닌 날개를 새겨 넣은 것은 매우 드문 예이다.
비의 몸돌은 임진왜란 때 왜병이 파손하였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연곡사에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승탑이 3개 있는데,
이 비(碑)는 동승탑 앞쪽에 서 있는 비로,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잘려진 것을 복구해 놓아 부자연스럽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다.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작고 아담해진 규모와 통념을 벗어난 조각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비로,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인다.
↗연곡사 동부도(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 53호)
탑이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면, 승탑은 유명했던 스님들의 사리를 두는 곳이다.
승탑의 구성은 석탑과 같아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는다.
이 승탑은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돌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전기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이 승탑 외에도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 등 2기가 더 있다.
동 승탑은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기단(基壇)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두 단인데,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모양을 각각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몰려든다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뉘어 두 겹의 연꽃잎과 기둥모양을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는데,
이 부분에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불교의 낙원에 사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겨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塔身)은 몸돌의 각 면에 테두리를 두르고,
그 속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는데,
그 수법이 그리 훌륭하지는 못하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으며,
기와를 끝맺음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할 정도로 수법이 정교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 아래위로 쌓아 놓았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며,
일제 때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단이 좀 높아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감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연곡사 청허당
↗연곡사 삼성각
↗보제루에서 바라본 일주문과 산방다원(山房茶園)
연곡사 산방다원은 이름 그대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아울러 불교용품도 취급하고 있다.
↗ 연곡사 경내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545년(신라 진평황 6년)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 뒤 중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가 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구례 연곡사 동승탑(국보 제 53호)를 비롯하여
구례 연곡사 북승탑(국보 제 54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 154호),
구례 연곡사 동승탑비(보물 제 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구례 연곡사 3층석탑(보물 제 151호)과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제 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 석탑을 해체 수리 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연곡사 [鷰谷寺],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 깨침의 수행속을 걷다
※인용글 : 한국전통사찰,문화재청홈페이지 및 인터넷전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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