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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七佛寺], 동국제일선원 가야불교 발상지 하동 칠불사를 걷다 본문
칠불사[七佛寺],
동국제일선원 가야불교 발상지 하동 칠불사를 걷다
♣ 하동 칠불사[河東 七佛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지리산의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
☎ 055-883-1869
♣ 찾아가는길
남해고속도로(순천방향)→남해하동ic→전도→하동읍→화개(화재장터)
→10리벗꽃길(화개중학교)→쌍계사→범왕방향
♣ 지도
♣ 사찰기행일 : 2014년7월24일 목
사찰기행시작 →→→→→
↗ 지리산 칠불사 일주문
첫번째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는 일주문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문이다. 불교의 경전을 크게 분류하면 경,율,론 삼장이다.
삼장의 내용은 계,정,혜 삼학이고, 삼학의 근본은 일심이다.
이 일심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곳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찰에 들어가는 입구에
일주문을 세워 놓았다. 대체로 일주문에 ‘신령스러운 광명이 어둡지 않아(神光不昧)
만고에 빛나는 법이다(萬古輝猷) 이 문안에 들어와서는(入此門內)
분별지해를 두지마라(莫存知解)’라는 게송을 적은 현판이 걸려있다.
일주문 우측으로 관광버스 승용차를 이용해서 칠불사 앞마당 주차장까지
올라갈수 있고 ,여기서 주차하고 걸어가면 대략10분정도 걸어야 한다.
일주문 건너편에는 초의선사 다신탑비가 있다
↘초의선사 다신탑비[草衣禪師茶神塔碑]
智異山 玉寶臺[지리산 옥보대]아래 七佛禪院은 草衣禪師[초의선사]가 한국의 茶道를 중흥하고자
茶神傳[다신전]을 초록한 곳으로 綠香茶煙[녹향다연] 속에 茶禪一味[다선일미]의
禪風[선풍]이 서려있는 성지이다.
茶聖 초의선사는 서기 1786년 務安에서 출생하였으며, 속성은 張氏[장씨]요 법명은 意恂[의순],
자는 中孚[중부]이며 초의는 法號[법호]이다.
15세에 무안 雲興寺[운흥사]에서 碧峰禪師[벽봉선사]에게 출가득도하여 敎와 禪을 겸수하고 본 칠불사에서
大隱[대은] 錦潭[금담] 兩大律師[양대율사]의 계맥을 계승한 禪·敎·律의 대종사이며,
詩·書·畵에도 능하여 당대의 名儒 茶山 丁若鏞과 秋史 金正喜와도 교유를 가진 碩學이다.
신라 興德王 3년 서기 828년 金大廉이 唐나라에서 茶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화개동에 茶를 심었다.
純祖 28년 서기 1828년에 초의선사가 차의 시배지인 花開洞에 위치한 이 곳
칠불사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여가에 萬寶全書에서 茶神傳을 초록하여 東茶頌의 기초를 定立하였다.
다신전은 採茶造茶로부터 茶衛에 이르기까지
총 22항목으로 茶에 관한 모든 것을 一目瞭然하게 서술한 茶人들의 지침서이다.
선사는 東茶頌에서 빼어난 色香氣味를 지닌 우리나라의 茶를 찬미하고 있다.
지리산 전란에 全燒된 七佛寺를 복원하고 이에 茶를 사랑하는 雲水衲子와 善男善女의 원력으로
초의선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 칠불사에 茶神塔碑를 세워
화개동이 茶道의 성지임을 기리고 나아가 茶禪一如의 풍류가
더욱 진작되어 佛國淨土가 이룩되기를 염원하며 이를 기록하는 바이다
↗ 일주문을 지나 칠불사로 향하는길
한여름 폭염에 번개같이 뿌리고 가는 소나기....잠시 큰나무 아래서 소나기를 피하고서...!
여름엔 녹음이 짙고 가을에 오면 이길이 단풍으로도 아름답다
↗ 칠불사 사적비[七佛寺事蹟碑]
칠불사 사적비는 일주문을 지나 10여분 걷다보면 우측에 있다
사적비문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탄생하였으며
남해바다를 통해 오빠인 장유보옥화상(長遊寶玉和尙)과 함께 가락국에 도착한 인도 황하 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2남 3남은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아 김해 許씨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하여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가다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
이 사실은 한국불교의 남방해로(南方海路) 직전설(直傳說)을 뜻하며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 처음 불교가 들어 왔다는
북방육로(北方陸路)전래설(傳來說)보다 약 3백여 년 앞서는 기록이다.
가락국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공주의 최초 도래지에 왕후사(王后寺)를 세우고
장유화상의 주석지에 장유사(長遊寺)를 세워 가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을 기념하였다.
신라 경덕왕때 옥보고(玉寶高)가 이곳 운상원에 들어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구하여 왕산악 금법을 정리 신곡 30곡을 지어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했다.
신라 효공왕때 김해에서 온 담공선사(曇空禪師)가 벽안당 선실을 亞字형으로 축조하였으니
한번 불을 지피면 100일간 따뜻하였다. 이 아자방(亞字房)은 이중 온돌구조로 되었는데
방안 네 모퉁이의 높은 곳은 좌선처(坐禪處)이며
십자(╂字)형으로 된 낮은 곳은 경행처(景行處)이다.
세계 건축사전에 기록된 아자방은 불가사의한 공법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고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백두태백 길이 뻗어 방장영봉 솟았으니
반야봉 남녘기슬 칠불출현 성지로다.
가락국 김수로왕 일곱아들 출가하여
장유화상 가르침에 일시성불 하였어라.
담공화상 아자방은 동국제일 선원이요
서산, 부휴 양대선사 선풍 진작하였으며
금담 대은 양대 율사 해동계맥 수립했네
근세의 용상대덕 무수히 쏟아지니
이 어찌 천하제일 명승도량 아니런가
동란중 전화속에 일시에 소진되니
무상할손 세상사여 잡초만 무성쿠나
통광선사 여기와서 차마 발길 못 돌리고
천일기도 발원으로 문수보살 가피 입어
옛 성지 복원하니 이 아니 희유한가
시방의 승니도속 모두 발심정진하니
자타일시 성불하여 불국정토 이루리라.
佛紀 2539년 서기 1995년 을해 3월 3일
가야산 해인사 東谷堂 日陀 짓고
淸觀居士 尹孝錫 쓰고
普光居士 金漢烈 새기다
↘ 공사중인 건축물 어떤용도의 건축물인지 모르겠다......공사안내판이 없어서..
↗선다원[禪茶院]
선다원은 조선후기의 대선사(大禪師)이자 한국 다도(茶道)의 중흥조이신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덕(德)을 기리고, 다도와 선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건립하였다.
선다원 내에는 초의선사의 진영을 모셔 놓았다. 영찬은 다음과 같다.
見月悟道 달을 보고 도를 깨달아
理事無碍 이와 사에 걸림이 없네
述頌禪茶 서문사변만어를 저술하고 동다송을 송하여
垂敎萬世 그 가르침 만세에 드리웠네
초의선사의 많은 저서 중에 대표적인 다서(茶書)로서는 『다신전』과
『동다송』이 있고, 선서(禪書)로는 『선문사변만어』를 들 수 있다.
『다신전』(茶神傳)은 1828년 아자방에서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만보전서』
다경채요(茶經採要)에서 초록한 것이고,
『동다송』은 정조대왕의 사위인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 1793-1865)가
진도 부사인 변지화(卞持和)로 하여금 초의선사에게 다도에 관해 물어 오므로 청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백파긍선(白坡亘琁, 1767-1852)의 선론에 대한 반론인 동시에
초의선론의 요지를 담고 있다.
백파의 『선문수경(禪文手鏡)』은 임제3구(臨濟三句)에 각각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을 배대하여 그 우열과 심천(深淺)을 분별하고,
선문의 제종(諸宗)을 판석(判釋)하려는 선론(禪論)을 전개하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 『선문수경』의 오류를 지적하고, 옛 선사들의 말씀을 들어 그 잘못된 곳을 낱낱이 바로 잡았다.
『선문사변만어』의 전반부에서 백파선사의 주 논지인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살활(殺活) 문제와
이선대비(二禪對比), 삼종선(三種禪)과 임제삼구의 대비,
선문오종(禪門五宗)에 대한 조사선과 여래선의 대비와 우월 등을 전제한 후 자신의 선론을 피력하면서
고덕의 제설(諸說)을 인용하여 논증하였으며,
후반부에서는 「이선래의」(二禪來義),「격외의리변」(格外義理辨),
「살활」(殺活), 「진공묘유변」(眞空妙有辨)등 사변(四辨)으로 일목요연하게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다신전』, 『동다송』, 『선문사변만어』는 다인들과 참선을 하는 이들의 필독서이다.
통광스님은 이 세 책을 함께 묶어 『초의다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역주하여 출판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칠불사 전경
소나기가 갑자가 쏱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듯.....햇살이 따갑게 내린다
물먹은 나무잎에서..빗물이 뚝뚝...!!
↗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
앞쪽은 동국제일선원이라고 편액이 걸려있고
입구로 들어서서 대웅전 맞은편 편액에는 보설루(普說樓)라고 되어있다↘
↗보설루(普說樓)
보설루는 많은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하는 누각이다.
이 보설루에서 대중법문을 하고, 여러 불자님들을 위해 경전과 어록을 강설하며,
또한 영가 천도재를 지내는 곳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칠불사 대웅전
대웅전에는 삼계의 도사(導師)이시고 사생의 자부(慈父)이신 석가모니부처님과,
대지혜를 갖추신 문수보살과, 대행을 실천하시는 보현보살과 후불 목탱화와 김수로왕의 칠왕자가
성불한 칠불 목탱화와 신중 목탱화를 조성하여 모셨다.
대웅전 불상은 동국대 교수인 청원스님이 조각했고,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이 썼으며,
글씨의 서각은 정도화(?-2010) 교수가 일도각으로 새겼다.
대웅전 뿐만 아니라 칠불사의 모든 현판과 주련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쓰고,
정도화 교수가 서각했다. 단 일주문 현판 글씨는 제월통광 스님이 쓰고, 서각은 역시 정도화 교수가 했다.
☞ 주련글씨 번역 우측부터
佛불 身신充충滿만於어法법界계
부처님몸법계에충만하사
普보現현一일切체衆중生생前전
모든중생앞에널리나투셨네
隨수緣연赴부感감靡미不부周주
인연따라감응함이두루하시나
而이 恒항處처此차菩보提리座좌
보리좌에항상계시네
↗팔상성도 와 십우도
칠불사 벽화에는 팔상성도와 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부처님의 생애는 8장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8상성도'라한다.
칠불사에는 8상성도를12개의 그림으로 펼쳐 그려져 있다.
⊙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카필라국의 왕비 마야부인은 흰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다
⊙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다
⊙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동서남북 네 성문을 나가 생노병사의 인간고를 깨달으시다
⊙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권위와 부 그리고 모든 세속적 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시다
⊙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고행림에서 6년 동안 극심한 고행을 하시며 수행하시다
⊙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마침내 마라(악마)를 항복 받으시고 깨달음을 성취하시다
⊙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녹야원에서 교진여등 5비구에세 최초로 법을 설하시다.
⊙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침내 대열반에 드시다
↗ 대웅전 잎 나리꽃
↗아자방[亞字房]
아자방(亞字房)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선방이다. 벽안당(碧眼堂)이라고도 한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축조 하였는데, 방안 네 귀퉁이의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이다.
축조 당시에는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 동안 고루 따뜻하였으므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아자방에서 참선공부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늘 앉아만 있고 눕지 않는 것),
일종식(一種食, 하루 巳時에 한 끼만 먹는 것), 묵언(言, 말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규칙을 지키면서 애써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이 아자방에서 무수한 도승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아자방에 문수보살이 화현하여 스님들이 발심정진케 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 전해 오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조선 중엽 어느 해 음력 10월 14일 동안거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어린 사미승이 걸망을 지고 조실스님을 찾아와 아자방에 방부를 들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조실스님이 보아하니 나이가 어려 도저히 아자방에 방부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아자방에서 정진하는 데는 장좌불와, 일종식, 묵언의 세 가지 엄한 규칙이 있는데,
어린 사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실스님은 그 사미승에게 더 커서 오면 방부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미승이 “부처님 말씀에 생사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 클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했다.
조실스님은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방부를 받아 주셨다.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대중들이 한방중이 되어 마구 졸면 그 사미승은 뒤로 벌렁 자빠져 꿍 소리를 내고,
그리고 땅을 치고 울면서 넋두리 하기를 “생사의 괴로움이 아니라면 왜 자고 싶은 잠도 못자고,
먹고 싶은 밥도 제대로 못먹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면 졸던 스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한 철 내내 이렇게 되풀이 하며 해제를 맞이하였다.
해제날 조실스님의 해제 법문이 끝나자 그 사미가 대중 앞에 나와 세 번 절을 하고
“조실스님께서 방부를 들여 주셔서 한 철 공부를 잘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말자 그 사미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대중 스님네들은 그 사미는 문수보살이 화현하여 나타나신줄 알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더욱 발심정진 하였고 한다.
칠불사에는 이 외에도 문수보살의 화현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전하고 있다.
↗ 아자방 굴뚝 아자방 굴뚝엔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 대웅전 뒷편 야생차밭 ↗ 문수전[文殊殿] 지리산은 문수보살 도량이며, 특히 칠불사는 생문수(生文殊) 도량이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나투시어 신통자재한 지혜력으로 중생들의 원하는 바를 다 성취시켜 주신다. 특히 칠불사에 문수보살이 화현하시어 기도를 성취시키고 공부인을 보살펴 견성오도케 하셨다는 말씀들이 많이 전한다. 그러므로 칠불사에서는 매월 음력 4일 문수재일을 기하여 특별히 문수보살께 공양 올리고 법회를 열어 법문을 한다. 또한 칠불사에서는 칠일 문수기도, 백일 문수기도, 천일 문수기도를 한다. ↗ 원음각[圓音閣]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圓音)이라고 한다. 종소리는 부처님의 음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종각을 원음각이라고도 한다. 지옥고를 받는 중생들이 종소리를 들으면 고통을 쉰다고 한다. 그러므로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가 끊어지고, 지옥을 깨뜨리고 삼계에서 벗어난다”는 게송이 있다.
문수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셔놓았다.
↗설선당[說禪堂]
설선당은 강설도 하고 참선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칠불사에서는 설선당에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았으며, 대중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 보살로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서른 두 가지 몸을 나투어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성취시켜 주시고, 모든 고통을 없애주시는 조건없는 큰 사랑을 베푸신다.
↗ 설선당에서 바라본 칠불사 경내
↘요사채
↗ 연못
연못에는 금붕어와 연꽃이 많이 피어있다
↗텃밭
아마도 멧돼지가 내려오는가 보다
전기 울타리가 설치되어있어서........!
◈ 칠불사 개요
칠불사는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며,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이며
동국제일선원이다
또한 해동게맥을 수립한 율(律)도량이고,동다(東茶)를 중흥한 차도량이며
거문고(玄琴)를 전승한 현악도량이기도 하다.
♣ 가야불교의 발상지
칠불사는 1세기경에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김수로(金首露) 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로서,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화생(化生)하였으며, 남해바다를 통해 가락국에 온 인도 황하 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하였다. 그들은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이 칠왕자의 성불로 인하여 칠불사라 하였다.
이 외에 칠불사 경내에 있는 영지(影池)와 칠불사 인근 지역에 남아있는 명칭 등을 통해서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칠불사의 영지는 칠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연못이다.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왕자를 보려 하자 장유화상은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꼭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 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김수로왕 부부는 연못을 만들어 놓고 그 연못을 보니 과연 일곱 왕자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를 보고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또 칠불사 인근 마을의 명칭인 범왕(凡王)마을과 대비마을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범왕리라는 명칭은 김수로왕이 칠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무른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 화개면 정금리의 대비마을(大妃洞)은 허황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머물렀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 문수기도도량
지리산은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다. 지리산이라는 이름도 문수보살의 갖춘 이름인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자와 ‘리(利)’자를 각각 따온 것이다. 지리산은 상봉인 천왕봉과 주봉인 반야봉으로 연결되는데, 반야봉은 곧 문수보살의 대지혜를 상징한다. 이와같이 지리산은 문수도량인데, 특히 칠불사는 생문수(生文殊) 도량으로서, 칠불사에서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문수보살이 근기에 맞추어 화현하여 기도를 성취시켜 주고, 또한 공부인을 보살펴서 견성오도케 하는 영험있는 도량이다.
♣ 동국제일선원
지리산 칠불사는 아자방 선원과 운상선원이 있어 무수한 도승을 배출한 동국제일선원이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당시 담공(曇空)선사가 축조한 선원으로서, 방안 네 귀퉁이에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이다. 담공선사의 축조 당시에는 한번 불을 지피면 100일간 따뜻하였으므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 기록되었으며, 현재는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상선원은 옥보대라고도 하는데, 장유보옥선사의 이름을 따서 옥보대라고 한다는 설과 거문고 전승자인 옥보고의 이름을 따랐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운상선원을 대중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칠불사의 아자방과 운상선원에서 고려시대의 정명선사, 조선시대의 서산대사(1520-1604), 부휴대사(1543-1615), 초의선사(1786-1866), 이외에 백암, 무가, 인허, 월송선사 등 선승들이 주석하며 수선안거했다. 근현대에는 용성선사, 금오선사, 서암선사 등 큰스님들이 수선안거 했다.
칠불사 경내에는 임진란으로 인해 퇴락한 전각을 중수한 부휴 선수 대사의 부도탑비가 있다. 그리고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께서 임진란으로 퇴락한 칠불암을 중수하고 지은 칠불암개와낙성시(七佛庵盖瓦落成詩)가 있다.
칠불사[七佛寺],
동국제일선원 가야불교 발상지 하동 칠불사를 걷다
※인용글 : 칠불사홈페이지 한국전통사찰,웹문서 및 인터넷전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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