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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母岳山],어머니 품같은 김제 모악산에 안겨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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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母岳山],어머니 품같은 김제 모악산에 안겨보다

바다늑대FORCE 2014. 3. 9. 20:05

 

모악산[母岳山],어머니 품같은 김제 모악산에 안겨보다

 

▲산행일시 : 2014년3월8일 토요일 날씨 약간흐림

▲산행장소 : 모악산 [母岳山]

    높이 : 793.5m
    위치 : 전북 완주군 구이면,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특징, 볼거리 :

      전북 김제시와 완주군의 경계를 있는 모악산은
지난 1971년 12월 전라북도 고시 제133호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전주에서 18km, 김제에서 19.5km, 금산사 IC에서 7km 거리다.
모악산은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호남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등 훌륭한 조망을 자랑한다.
또한 모악춘경(母岳春景)이라 해 변산하경(邊山夏景), 내장추경(內藏秋景), 백양설경(白陽雪景) 등과 함께

 호남4경에 들 정도로 아름다운 봄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모악산이 품고 있는 금산사는 국보와 보물 등 각종 문화재 10여 점을 지니고 있어,

 모악산의 역사와 세월의 깊이를 더한다.
신라 말에 견훤이 이 곳을 근거로 후백제를 일으켰으며 조선조 말에

 강증산이 대원사에서 도를 깨우쳐 증산교를 일으켰고 수십종의 신흥종교가 발원된 산이다
이는 모악산 기슭의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 등 80여개에 이르는 과거의 암자가 말해주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각종 문화재를 지니고 있는 모악산-,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이 험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듯 산세가 험하다.
등산로 내내 능선을 타는 일 없이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
특히 구이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험난하기가 이를 데 없어,

산에 왠만큼 단련된 이라 할지라도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호남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조망은 정상까지 오르는 고통을 일소해 준다.
옛부터 엄뫼, 큰뫼로 불려져온 모악산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악산이 삼국유사와 고려사에도 '금산(金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악산으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로 추측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악산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보면, 북쪽으로 멀리 동양최대의 절터를 품에 안은 미륵산이 보이고,

 여산의 서방산이 다가온다.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을 스쳐지나가면 위봉사이고, 마이산, 운장산, 장안산도 지척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수산, 만덕산 너머 덕유산, 지리산이 아스라하다.
나직이 전주의 한복판에 자리한 완산칠봉과 남고산성을 지나면 고덕산과 경각산이고,

호남의 정맥이 지나는 오봉산이 있다.
남으로는 광주의 무등산, 순창의 회문산, 강천산, 서쪽으로는

정읍의 내장산과 입암산을 지나면 방장산, 변산등 온갖 산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변산을 지나 서해바다에 다다른다.
 

 

♣ 출발지도

고고

진주에서 관광버스로 08시50분 출발

전북완주 모악산주차장 11시30분 도착

 

▲ 모악산 등산지도 

 

하트3

 ▲ 산행코스 :

    구이면언기리 모악산관광단지→ 선녀푹포 →대원사→ 우재봉→모악산정상

    →우재봉  → 수왕사  → 대원사  →모악산관광단지주차장

    11시48분 산행시작

    사진찍어가며 풍광을 보면서 쉬엄쉬엄...

    13시 27분 정상 도착

    15시40분 주차장도착 

 

경남진주 남해고속도로 문산휴게소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날씨가 너무화창해서 봄볕에 얼굴이 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약속시간 보다 20분늦께 도착한 행정대학원 원우 산악회 관광버스에 올랐다

행정대학원 산악회회원님들과 반갑게 인사하고서..............

 

↗ 모악산 관광단지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악산 정상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에는 승용차 버스가 빼곡하게 주차 되어있었다

아마 모악산의 이름만큼이라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전북 완주에는 날씨가 흐려있고

11시48분 산행시작 하였다

 

 ↗ 모악산(완주군)

    표지석에서 인증사진 찍고서,,,,,,,,

↘ 등산로 입구 주변에는 이렇게

   산야초랑 먹을꺼리가 많다... 길거리 시장도 볼만하다

  길거리 시장에는 그 동네 모습이 담겨 있기에 늘 유심히 쳐다 본다.

↗ 출발지 등산로는 대체로 잘 정비 되어있다

  주말풍경 답게 산행자들의 옷 색상에서

  봄을 맞는다....!

 

↗ 산행한지 5~6분이 지나면

   전설속의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계곡이 물이말랐네요

  선녀폭포엔 선녀가 물이없어 목욕도 못하겠네....하하하

  그나마 봄소리는 들을수 있다

   이끼 사이로 졸졸흐르는 물을 접사로  찍어 보았다.

 

↗ 어느때인가 우리는 물이였고..................

 ↘ 대원사 입구

 ↘ 목마른 산행자를 위한 작은정성

    계곡틈에다 대나무를 꽂아

    대나무로 통해 청정수가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원사의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근자에 중건한 정측면 3칸의 주심포계 겹처마 필작지붕이다.

 정면은 어칸에 4분합, 협칸에 3칸 민빗창살를 달았으며 덤벙주초에 민흘림기둥이다.

 벽에는 금강역사상과 방위 수호개념의 12지신상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대원사목조삼세불좌상 (大院寺木造三世佛坐像)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  1976. 04. 02. 지정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봉안된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으로 구성돼 있다

↗좌측  명부전(冥府殿)...↑ 뒤편에보이는것이  적묵당(寂默堂)

↑ 마당에있는 5층 석탑 뒤;편에 보이는 것이 범종각(梵鐘閣)

 

↗ 대원사 종무원

모악당(母岳堂)

◈ 모악산 대원사

모악산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7교구 금산사의 말사 이며 670년 창건 하였고 1066년,1374년,1415년에도 중창 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과 6.25 로 인해 소실된것을 1959년 요사를 다시 세우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다.

대원사는 삼국통일 직전인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대원ㆍ일승ㆍ심정 등의 고승이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들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 보덕의 11제자들로서

스승으로부터 열반종의 교리를 익힌 뒤 스승이 있는 고대산, 혹은 고달산에 절을 창건한 것이라 한다.

고대산은 지금의 모악산 줄기인 듯하며, 당시의 절 이름은 대원사(大原寺)였다.

이 같은 내용은 『삼국유사』 권 제3 「보장봉로 보덕이암」조에 기록된 것이다.
고려시대인 1130년(인종 8)에 원명국사 징엄이 중창했는데, 이때를 절의 창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374년(공민왕 23)에 나옹 혜근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1415년(태종 15)에 처음 중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1948년의 대웅전 복원불사 당시에 지붕의 기와 가운데 ‘영락을미년(永樂乙未年)’이라

새겨진 막새기와가 있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 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졌으나

1606년(선조 39)에 진묵 일옥 스님이 다시 중창하였다. 진묵스님은 조선시대 중기의 유명한 고승으로서

대원사는 이때 대규모로 중창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다.
1733년(영조 9) 동명 천조 스님이 중창하였고

1886년(고종 23)에는 건봉사에 머물고 있던 금곡인오 스님과 함수산 스님이 이곳으로와 중창불사를 이루었다.

스님들은 대웅전을 중건하고 명부전을 고쳐짓고 칠성각을 새로 지었으며

산내암자인 내원암에 있던 염불당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시대 말에는 증산교(甑山敎)를 개창한 강일순(姜一淳)이 이곳에 머무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 대원사에서 정상으로 산행길은

다소 경사가 심하다.......여기서 부터는 헉헉 소리와 땀 삐질.....!!!

 

↗ 쉼터

  경사가 심한 길을 걷다보면

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쉼터....여기서 숨고르기 좀 하고서...!

 

↗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커피.. 도토리묵

   높은곳에서도 배고퍼고 목마른 산행자를 위한 먹거리 음식이 성업하고 있다

   아마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가는 산행자가 많을 것이다

  산행중 지나친 음주는 산악안전사고를 부른다..! 

 

↗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정상  송신탑이 보인다......!

 

↗ 모악산 신선대.. 정상 100M전

  구이 저수지가 한눈에........!!!

 

↗ 모악산 정상으로 향하는길

  정상도 개방되어있다

 예전에는 송신탑 시설물 및  군사보안 등 관계 개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 모악산 정상[793.5m]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정상목

 모악산은 동쪽방향(완주 구이면)은 외모악, 서쪽방향(김제 금산사)은 내모악으로 구분하는데
 외모악은 그야 말로 岳자가 들어간 산답게 악소리날 정도로 가파르고, 내모악은 완만한 능선이

 길게 이어져 산행이 힘들지 않아 장시간 걸음하며 사색을 즐기기에 딱 맞는 산이다. 

 옛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 변산하경(邊山夏景)·내장추경(內藏秋景)·백양설경(白陽雪景)을 호남사경이라

 하였는데, 모악춘경은 금산사의 벚꽃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근래에는 모악산에 눈이 많이 내리는 관계로 

 눈꽃터널의 아름다운 雪景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겨울산행지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 하산길

  정상에서 늦은점심을 먹고서..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으니 추워진다..!

 

↗ 수왕사

 하산길에 수왕사에 들렸다

수왕사(水王寺)는 진묵 스님의 수도처였다

 '물왕이절 / 무량이절'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진묵대사

신통력으로 불을 끈 진묵 대사(震默大師) 

진묵대사(1562~1633)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대왕(11년) 때의 고승(高僧)으로 속명은 일옥(一玉)이고 진묵은 법호이다.

그는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화포리는 옛날 불거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불거(佛居)가 불개(火浦)로 변한 것으로 부처님이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이다.  

서산 대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뛰어난 고승이지만 깊은 산중에서 은둔하고 지낸 까닭으로 크게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전설상의 인물처럼 되어버렸다. 서산, 사명 대사가 임진왜란 당시에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하여

 승병을 모집하여 일본을 상대로 크나큰 업적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주로 머문 사찰로는 변산 월명암(月明庵), 전주 원등사(遠燈寺), 대원사(大元寺)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사가 사미(沙彌)시절, 김룡사에서 대중공양에 먹을 상추를 씻는데

김룡사에서 10여리 떨어진 대승사에서 불이나, 스님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는

손에 든 상추를 들고 물을 뿌려 불을 끄고 나니 상추는 먹지 못하게 되어 스님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으나, 며칠 지난 후 대승사스님이 김룡사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대승사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불이 꺼졌는데

 주변에 상추들이 널려 있었다고 전하자 사미의 신통력에 모두들 놀랐다고 하였다.

 (일설에서는 해인사의 팔만 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에서 불이 나는 것을 관하고

상추로 물을 뿌려 해인사 장경각의 화재를 막았다고 전한다.) 

술을 즐겨 마신 진묵대사의 일화로 득남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절을 찾아온 마을사람에게

 진묵대사는 “곡차를 가져다 주면 아들을 낳게 기도를 해 주겠다”고 해서 마을 사람은 곡차를 가져다가

 진묵 대사께 드렸으나, 가져온 술만 마실 뿐 진묵 대사는 한 번도 법당에 들어와 기도염불을 해주지 않았다.

 백일기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마을 사람은 진묵 대사를 찾아가

 “스님께서는 곡차를 가져다주면 아들을 낳기 위한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하고는 매일 곡차만 드시고 기도는 안 해 주시니

너무 하십니다.”라고 말을 하자 진묵대사는  “그래 그러면 내가 나한님에게 득남을 할 수 있게 부탁을 해 보겠습니다.”  

진묵 대사는 그날로 나한전에 들어가 “이 마을에 한 보살이 아들 낳기가 소원인데 한 번만  들어주지.” 하면서

나한의 뺨을 일일이 때렸다. 그날 밤 그 보살의 꿈에 나한들이 나타나서

 “진묵 대사가 우리들의 뺨을 때려서 몹시 아프니 득남의 소원은 들어 줄 테니

 제발 진묵대사에게 다시는 그런 부탁은 하지 말라”라는 부탁을 하고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보살님은 아들을 낳게 되었고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그 절에서 기도를 한 후 신이한 영험을 보았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다음은 진묵대사의 선시(禪詩)이다.

천금지석 산위침(天衾地席 山爲枕)

월촉운병 해작준(月觸雲屛 海作樽)

대취거연 잉기무(大醉居然 仍起舞)

각혐장수 괘곤륜(却嫌長袖 掛崑崙)

하늘은 이불이요 대지는 자리로다

태산을 베개하고 구름을 병풍 삼네

저 달은 촛불이요 바다는 큰 술잔

얼큰히 대취하여 자리 털고 일어나

어깨춤 덩실덩실 치려고 하다말다

행여나 장삼자락 곤륜산에 걸릴레라

 

▲ 모악산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모악(母岳)이라고 했다.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 

1971년 12월 이 산과 주변지역 일대를 포함한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쪽 기슭에 금산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는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노주(露柱 : 보물 제22호)·석련대(石蓮臺 : 보물 제23호)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 보물 제24호)·5층석탑(五層石塔 : 보물 제25호)·석종(石鍾 : 보물 제26호)

·6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대장전(大藏殿 : 보물 제827호)

·석등(石燈 : 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금산사의 출입구이기도 한 홍예석문(虹霓石門)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귀신사(歸信寺)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 : 보물 제826호)·3층석탑(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그밖에 대원사·심원암·수왕사 등도 자리하고 있다. 

봄 벚꽃, 가을 감나무 숲이 운치를 더해주며, 금산사-심원암-산정-수왕사-원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관광객과 등산객이 많이 찾아온다. 일대에서는 10월에 민속축제인 김제 벽골문화제가 열리며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편익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전주와 김제 중심시가지에서 금산사까지 시내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동쪽 산록으로 전주시와 완주군을 연결하는 국도가 나 있다.』♣♣

 

 

모악산[母岳山],어머니 품같은 김제 모악산에 안겨보다 

※인용글 : 한국의산하 산행자료 전통사찰홈페이지등 인터넷사전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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