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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산 [集賢山],晉州에서 제일 높은산 집현산에서 진주를 포옹하다

바다늑대FORCE 2014. 2. 6. 12:26

 

 

집현산 [集賢山],州에서 제일 높은산

                       집현산에서 진주를 포옹하다

 

 

▲집현산 [集賢山]

   높이: 572.2m
   위치 : 경남 진주시 집현면

▲산행일시 :2014년2월5일 수요일 대채로맑음

▲산행코스

     응석사주차장→부봉→무너미재→집현산 정상→무너미재→부봉→장군봉→ 까치봉

            → 장군봉 →월명암→응석사

    약11.6km [3시간 20분소요 사진찍어가며 쉬엄쉬엄]

 

▲특징볼거리

집현산은 진주지역 산악인들이 한나절 산행지로 자주 즐겨 찾는 산이다.

역사적으로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의 아픔을 많이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집현산 자락 청고개의 임진왜란 상황을 보면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길에 이곳에 이르렀다.

장사진을 이룬 군사가 이동하다보니 뜻밖에 청현, 오동, 정태, 단성 일대에 왜적이 쫙 깔려서

 마을마다 분탕질을 하는데 불을 질러서 연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에 김준민 장군이 앞장서 죽림 밖으로 뛰어나가 아래위로 적을 휩쓸었다.

또한 군관 윤경남 등이 장수가 적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외치면서 뛰어드니

 500여군사가 일시에 함성을 지르고 내달아 돌진하였다.

적이 허물어져 죽림 속을 빠져 달아나다가 강을 건너서 대항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 군사와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을 벌이니 화살이 비오듯 나르고 포성이 진동하였다.

때마침 승군 의병장 신열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합세하자 군세가 떨치고 사기가 충천하였다.

 맹렬히 공격하자 적이 퇴각하여 청고개를 넘어서 달아나고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어서 김준민장군은 단성 쪽으로 행하여 거기서 분탕질하는 적을 쫓고 창고에서

불타고 있는 곡식을 구하였는데 600여 석이었다. 적지골이란 이름에서도 그때가 연상되는 바 있다.

지금은 이 광활한 골안에 경상남도 첨단양돈연구소가 83ha 넓이의 면적에 개설되어

 이 지역 양축농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청현마을에는 청곡서원이 있어 일신당 이천경을 향례하고 있고

유형문화재 제 240호 『일신당문집』 및 필첩책판이 보존되어 있다. 근년에 자포정사를 지어서 자포 이영을 채례한다.

 마을 위쪽의 고목 아래에 석단이 있고, 청고개에는 누석단이 있어서 고풍을 지닌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산행길잡이

3번 국도를 이용 신안면소재지에서 20번도로의 하정리를 지나 문대삼거리에서

생비량면 쪽 도산교에서 500m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시매마을이 등산로 초입이다.

마을 뒷길을 이용 적당한 숲길을 3.5km를 가면 정상이고 정상에서 직진하여 1.5km를 가면

 안부가 나오는데 바른길은 행정구역이 진주로서 1km를 가면 진주집현산 정상이 나온다.

다시 500m를 가면 동봉이 나오고 계속가면 도리의 정주동으로 하산하며

도리를 내려서는 갈림길의 우측길은 천은암과 고치재 가는 길이다.

안부에서 왼쪽길을 이용하면 현동을 거쳐 시매마을로 되돌아 올 수 있고 안부에서

우측 길은 솔기의 성유사를 경유하여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나 신안면 청현리로 하산하는 길인데

 차편을 고려하여 하산하여야 한다.

거리와 산행시간은 시매마을-정상-안부-현동-시매마을은 10km로서 5시간이소요되고

안부에서 동봉을 거쳐 도리의 정주동은 5.5km이며 3시간이 소요된다.

 

▲ 등산지도

 

↗응석사 주차장 출발점

설명절 내내 따스한 봄같더이만

오늘은 유난히도 춥다

오늘은 진주에서 제일 높은산 집현산을 운동삼아 산행하기로 했다.

집현산은 진주시내에서 가장 높지만 월아산의 명성에 가려서인지 

등산객이 적어서 호젓한 산행을 할 수있다.

 

↗ 응석사 뒷길 등산로

  2001조림지 편백나무1.0 ha

  느티나무1.0 ha 되어있다

 

↗맥문동 [Liriope platyphyllla, 麥門冬]

굵은 땅속줄기에서 곧추 서는 잎들이 나온다. 잎은 길이 30~50㎝, 너비 0.8~1.2㎝이며 잎끝은 밑으로 숙이고 있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푸른색을 그대로 지니기도 한다.

꽃은 연한 보라색이며 5~6월에 잎 사이에서 길게 만들어진 꽃자루 위에 무리지어 핀다.

꽃은 6장의 꽃덮이조각으로 되어 있으며, 수술은 6개이다. 열매는 푸른색이 도는 흑색으로 익는다.

그늘에서 무리지어 자라기 때문에 뜰의 가장자리에 심고 있으며, 가물어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딘다.

때때로 땅속줄기가 흰색 덩어리로 되기도 하는데, 봄·가을에 캐서 껍질을 벗긴 다음

 햇볕에 말린 것을 맥문동이라고 하여 한방에서 강장·진해·거담제·강심제로 쓰고 있다.

개맥문동(L. spicata)은 맥문동과 비슷하나 잎맥의 수가 7~11개로 11~15개의 맥이 있는 맥문동과 구별된다.

개맥문동의 뿌리도 맥문동의 뿌리처럼 쓰고 있다.

 

↗포플러 [poplar]나

교목은 대부분 북부 온대지방이 원산지이고 펄프의 재료가 되며 아름다운 외양을 지니고 있어 가치 있게 여겨진다.

잎은 넓은 타원형 또는 심장형으로 어긋나며, 늘어지는 미상(尾狀)꽃차례가 달린다.

부드러운 털이 달린 씨와 수지(樹脂)가 있어 끈적끈적한 눈[芽]을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산 포플러 중 은백양(P. alba)과 흑양(P. nigra) 2종이 잘 알려져 있는데 모두 북아메리카에서 귀화식물로 자라고 있다. 은백양은 잎과 어린가지에 흰색의 털이 덮여 있어 'silver poplar'라고도 하고

 갈라진 잎이 단풍나무 잎처럼 생겨 'maple leaf poplar'라고도 하는데, 키가 30m에 달하며 옆으로 퍼져 자란다.

 

↗ 산행한지 얼마나 되었지...??!

 몸에 땀이 삐질~~

 방한복 앞 자크를 열고서 올라본다

 산행자의  산악회 깃표와 진주소방서 산불조심 깃표도 보인다

↗솔나무숲 오솔길을 걸어며..............!!

소나무 [Pinus densiflora]

겉씨식물들로 이루어진 소나무과(―科 Pinaceae)에 속하는 상록교목

키는 30m 정도 자란다. 수피(樹皮)는 적갈색 또는 흑갈색이나 밑으로 갈수록 검어지며,

겨울눈[冬芽]은 적갈색이다.

 잎은 길이가 8~14㎝, 너비가 1~1.5㎜로 2장씩 잎집[葉鞘]에 모여 달리며

꽃은 5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따로따로 피는데, 가지 끝에 2~3개의 자주색 암꽃이 달리며

 그 아래에 많은 수꽃이 달린다. 구과(毬果)는 다음해 9월에 길이 4~6㎝로 완전히 익고 씨에는 날개가 있다.

소나무는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고 다양한 품종이 발견되는데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소나무의 다른 이름으로는 육송(陸松)·적송(赤松)·여송(女松)·솔나무·소오리나무·솔·암솔 등이 있다.

적송은 소나무와 비슷하나 겨울눈이 회백색인 곰솔에 비해 수피의 색이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육송은 내륙지방에서 흔히 자라기 때문에, 여송은 잎이 다른 종류들에 비해 연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한편, 잘 알려진 품종에는 나무줄기가 곧추 자라는 금강소나무(p. d. for. erecta),

가지가 밑으로 처지는 처진소나무(p. d. for. pendula),

줄기 밑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p. d. for. multicaulis) 등이 있다.

 

 

 ↗소나무 재선충 방재한 곳

  소나무가 많은곳은 재선충 피해가 심각한가보다

 

소나무재선충(소나무材線蟲)

소나무재선충(소나무材線蟲)은소나무,잣나무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이다.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며

 솔수염하늘소를 통해 나무에 옮는다.

일본, 타이완, 대한민국에서 출현했으며, 소나무에 치명적인 심각한 해충이다.

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매년 피해면적이 증가하여 2007년 2월 현재 9개 시·도 55개 시·군·구까지 확산하였다

- 피해면적 : (’00) 1,2006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베고,

 방제와 비닐덮기를 해서 재선충의 확산을 막고 있다.

 

↗진주최고봉 집현산 장승들

 

 ↗집현산 정상(부봉)

 바로 아래에 있는 정자

2013년6월28일 집현면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집현산 정상에 쉼터를 새로 설치한 기념으로 정비에

힘쓴 마을이장들과 정상 표지석을 기증한 안영탁 체육회장을 포함한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4일 등산객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냈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시민들이 집현산 정상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없어

시에 건의 사업비 3000만원을 확보 조성한 쉼터는 의령 자굴산을 포함해

 인근의 모든 산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수 년 전 비바람으로 인해 파손되었던 장승을 '진주의 최고봉 집현산 572m'라는 글귀를 새긴 새로운

장승으로 대체해 집현산을 찾는 등산객을 정겹게 맞이할 수 있도록 했다.

↗집현산 정상

집현산 (높이 : 572.2m)
진주시 관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572m 이며, 시민들의 등산로로 애용되는 곳이다.

도보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옛 고려시대의 한 선비가 본 면을 지나다가 산세가 험하고 웅장한 산세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요상한 산세를 본 일이 일찍이 없으며 용이 승천한 것이 틀림이 없다고

 혼잣말로 지껄이며 지나가는데 마침 이곳은 가뭄과 수해 등으로 백성들은 찌들어 죽을 지경에 놓여 있던 차에

어린 꼬마가 선비가 지껄이는 말을 엿 듣고는 선비를 붙잡고 이 지역의 우환이 왜 이런지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했으나 뿌리치며 이 지역의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지금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가뭄과 수해 등으로 농사는 안 되고 주민들은 병들어 그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계속적인 재난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차에 선비가 지나가던 시절의 어린 꼬마가 청년이 되어,

그 선비가 말한 것을 회상하면서 손뼉을 치고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읽으면서 바쁜 걸음으로 집현산으로 입산하였다.

청년은 집현산 구석구석을 헤매다가 큰 바위 옆에서 그 때 그 선비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며 선비에게 본 면의 우환을 풀어주도록 울면서 호소하였다.
한동안을 계속 빌고 나니 밤이 되어 선비와 함께 바위 옆에서 잠자리도 같이 하게 되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애걸하니 마침 선비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인즉 내가 바로 승천한 용인데 한가지의 미비한 점이 있어 이승으로 하강하여 도를 닦고 있다고 말하자

 청년은 계속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선비는 승천 시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 지역의 주민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승천하는 용을 보라고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이승에서 고생을 하고 주민들은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우측 산봉우리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고서는 굉장한 번개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청년은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주민들을 모아 놓고 집현산 우측 꼭대기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매일 등산하여 천지 신에게 빌었다. 하루하루의 세월이 흘려 100일 이란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청년도 지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은 그 청년의 애절한 심정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뜻에서

계속 집현산에서 빌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나기가 대지를 적시자마자

병들은 농작물은 일시에 소생하고 병들은 주민은 회생하여 평온한 온기를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으며,

지금도 마을 주민의 우환이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집현산 정상 소나무 밑에서 비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바로본 집현면

 ↗ 집현산 정상에서 바라본 황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집현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지리산 의령자굴산 황매산 지수 방어산까지 다보인다

전망이 좋아 일출전망도 유명하다

 

 ↗장군봉(동봉)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서....!

↗집현산 정상 아래 위치한 헬기장

 

↗남덕유산에서 진양호에 이르는 진양기맥을 답사하신 산님들의 흔적들

 

↗ 집현산 장군봉

  무속인들의 기도흔적이 많이 보인다

 

 ↗ 장군봉에서 까치봉 가는길

   낙옆이 발목까지 수북쌓이고

낙옆밟는 소리가 정겹다.........!

↗집현산 까치봉

 

↗월명암 안내표지판

 까치봉에서 다시 회향하여  장군봉에서 월명암으로 향해 걷다보니

 임도가 나오는데 좌측방향으로 걸어야 월명암이 나온다

 

↑월명암

집현산 동봉 산허리 7-8부 즘에 위치하여 있는 월명암 법당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晉州 月明庵 木造阿彌陀如來坐像)안치되어 있다.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12년에 수화승 현진(玄眞)이 학문(學文), 명은(明隱), 의능(義能), 태훈(太訓)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불상이다.

복장발원문을 살펴보면,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제작 시기와 날짜 그리고

불상 제작에 관련된 스님들의 중요 소임 등 시주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동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련대 관음보살좌상에서 공덕주로 나오는 벽암각성이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복장시주자로 나타나서 불상제작에 벽암각성이 깊이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발원문은 불상에 다시 납입된 상태이다.

아미타불좌상의 전체적으로 동시 조성된 상련대 관세음보살좌상보다

 넓은 어깨와 당당한 신체 비례를 보이고, 전반적으로 인자한 모습이다.

월명암 아미타불좌상은 현전하는 현진작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얼굴의 형태는 동시 조성된 상련대 관세음보살좌상보다는 2년 후에 제작된 천은사 관음, 대세지보살좌상과 더욱 유사하다.

이후에 제작되는 1626년작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과

 법주사 소조삼신불좌상은 얼굴이 크고 신체가 당당해지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월명암 아미타불좌상은 현진작 불상의 양식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아울러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 월명암에서 임도를 따라가다보면

   응석사 방향 등산표지목이 나오는데

  그쪽으로 하산해야 응석사 주차장으로 나온다

↗ 응석사

   들머리와 날머리 지점인 응석사

 

 

☞ 응석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554년(진흥왕 15)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고려 말에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 등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1736년(영조 12)과 1899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현산 [集賢山],州에서 제일 높은산

                       집현산에서 진주를 포옹하다

 

※인용글 : 한국의산하 산행자료 인터넷사전 및 진주시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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