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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淸鶴洞) 도인촌(道人村). 세월의 힘을 보다

바다늑대FORCE 2012. 5. 7. 18:50

 

청학동(淸鶴洞) 도인촌(道人村). 세월의 힘을 보다..!

 

♣2012.05.05

  어린이날이라 바람도 쐬울겸 처제애들2명 딸아이를 태우고

산청에서 하동으로 청학동 도인촌으로 길을 떠났다.

 

 

삼신봉터널

산청중산리에서 하동청학동 관광단지와 연결하는 순환도로로 청암면과 시천면을

기존2시간30분에서 20분으로 단축하였다.

1997년 12월에 착공해서

2004년 6월16일 개통하였고  터널길이2km 총연장4.4km이다.

도로폭은 2차선이며 총493억원이 소요 되었다고한다.

터널안은 차도와 인도로 되어있으며 터널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하게 느껴졌다.

 

智異山 淸鶴洞

♧역사

청학동(淸鶴洞) 또는 도인촌(道人村)은

지리산 삼신봉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고유의 초가집과 기와집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었고

미성년자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고 있으며,

성인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옛 전통 그대로 마을 서당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농업 외에 약초, 산나물 채취와 양봉, 가축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청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지원 병사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살게 되고, 계속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살게 되어 100가구 정도가 살았고

일제강점기 때 이본의 감시를 피해 사람들이 청학동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5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광복을 쟁취한 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청학동에 살던 주민들이 이숭만 정부에 의해 퇴거당하였다.

그 후 사람이 다시 들어와 지금은 30가구가 살고 있다.

[위키백과참조]

 

도인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고

문현대문명 세월의힘속에서 마을이 문명화되고 상업화 되어가고

전통적인 모습이 퇴색되어 고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도인촌은 방학 때면 도시 어린이 및 청소년 수련 즉 예절교육 시키는

서당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山高芳水長(산고방수장)

지리산은 높이 솟고 섬진강은 유유하다

白衣大聖地(백의대성지)

백의민족 위대한 성지

靑鶴何處在(청학하처재)

청학은 그 어디 있을까

海洩大江流(해설대강류)

 

 

도인촌 입구에는

바윗돌비문과 솟대가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仙區靈符天下勝地(선구령부천하승지)

화봉 최기영 선생의 글

(화봉 최기영 선생은 청학동서예연구실 운영

전국문화예술대전,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이시며  청학동식당 주인이라고 한다)

 도인촌내 식당들은 거의 민박을 겸하고 있으며

찻집과 기념품점도 있다

 

天藏地秘處(천장지비처)

하늘과 땅마저 아껴 숨겨두었던곳

 

 

 

 

 

靑鶴洞傳統書堂[청학동 전통 서당]

 

천하제일 강윤문[天下弟一 綱倫門]

 

 

 

천제당 내부

천제당(天祭堂)

 

천제당앞 약수터

 

 

 

푸른 새인 청학이 사는 곳이라 하여 청학동(靑鶴洞)이라 불렀습니다.

도인들의 이상향인 청학동 전설은 전국의 이름난 산에 두루 퍼져 있지만 실제로 어디를 말하는 지는 확인된 바 없으며

 일반적으로 지리산 도인촌이라 불리는 학동마을을 세속적 의미의 청학동이라 칭합니다.

지금의 청학동, 즉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학동마을은 지리산 삼신봉의 동남쪽 기슭 해발 800m 고지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진주암 또는 도인촌이라 불리는 이 마을이 청학동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 입지가 전설상의 위치와 비슷하기 때문이며

한국전쟁 이후 소위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正儒道)’ 라는 다소 긴 이름의 신흥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서로를 형제라 칭하며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은 한국 전통의 초가집에서 살며 의생활도 전통적인 하얀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의 남녀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렸으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성인 여자는 쪽진 머리를 하고 생활을 합니다.

아이들을 학교 대신 서당에 보내 한문을 배우게 하고 양식은 거의 자급자족을 하며 약초 판 돈으로 꼭 필요한 생필품만을 하동장에서 사다 쓰곤 합니다.

그러나 막연히 이러한 모습의 청학동을 기대하고 청학동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어쩌면 조그은 실망을 하고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입구까지 난 아스팔트 포장길을 들어서면 이제는 전통의 모습 대신 현대식 주택에 TV는 물론 고급 자가용까지 굴리면서 살아가는

 청학동 사람들의 모습에서 변해버린 청학동의 모습에 조금은 당혹스러워 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산골 오지마을 청학동에 아스팔트 길을 깔고 현대문명의 바람을 불어 넣은 것도 우리요

순수했던 이 사람들에게 문명의 이기를 맛보게 한 것도 우리입니다.

도포만 입고 상투만 둘렀을 뿐 살아가는 모습은 많이 변해버린 청학동이지만

정녕 이곳의 가치는 겉모습이 아닌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찾는 것이 옳은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문명의 흔적이 그들에게 침투해 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들의 정신세계까지 변화시키진 못하지요.

청학동 사람들은 매일 온 가족들이 모여 인류의 평화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굳게 믿고 있는 지리산의 유토피아, 고통없는 이상향의 세계인 청학동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터넷 자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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