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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외사(劫外寺), 성철대종사 법문을 보다

바다늑대FORCE 2012. 4. 28. 16:59

 

겁외사(劫外寺), 성철대종사 법문을 보다

 

나는 성철스님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이 있다

나를 만나려거든 삼천배를 하고 오너라

사실 나도 뵙고 싶었는데

삼천배란 큰 숙제때문에 ...............

그 당시 의문이 참 많게 하였다 .

집에서 차량으로 20분정도 가면 묵곡이 나오는데

지금은 삼천배를 하지 않고 성철대종사를 만날수 있다..!

 

◐ 지리산 겁외사(智異山 劫外寺)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210

 

겁외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성철스님 생가터에 세운 사찰이다.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 창건시기 2001년 3월 30일 / 창건자 원택스님
성철(性徹 1912~1993. 11. 4)스님의 생가터에 있는 사찰로, 2001년 3월 30일 창건 회향법회를 열었다.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자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스님이 창건하였으며,

2008년 현재 주지를 맡고 있다. 정기법회는 달마다 음력 3일 오전에 열린다.
겁외사(劫外寺)는

겁(怯)이란 불교에서 기나긴 시간을 말한다

사방40리나 되는 바윗돌을 100년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그 옷자락으로 바위를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 지는것을 일겁(一怯)이라 한다.

겁외란 그 기나긴 시간밖이란 뜻이니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세계을 의미한다.

 시간 밖의 절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로, 그 이름은 성철스님에 의해 지어졌다. 스님은 만년의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주석하였고, 그곳을 겁외사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사명(寺名)을 딴 것이다.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편액이 있다.

  絶學無爲閑道人 / 절학무위한도인
  不除妄想不求眞 / 부제망상불구진
  無明實性卽佛性 / 무명실성즉불성
  幻化空身卽法身 / 환화공신즉법신
  法身覺了無一物 / 법신각요무일물
  本源自性天眞佛 / 본원자성천진불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히지 않으니
 무명의 참(진실) 성품이 곧(바로) 불성이요
 허깨비(변화) 같은 빈 몸이 곧(바로) 법신이로다.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근본)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證道歌本文(증도가본문) 중의 말이다.

 

 

 벽해루(碧海樓)

 뒷면에는 벽해루(碧海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벽해루라는 이름은 스님이 평소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라는 문구로부터 지은 것이라 한다.

 

 

 

겁외사 안내도

 

 

누각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입상을 비롯하여 커다란 염주·목탁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동상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부 불단에 비로자나부처를 모셨으며

한국 수묵화의 대가인 김호석 화백이 배채법으로 그려낸 성철스님의 진영이 걸려 있다.

외벽 벽화에는 스님의 출가·수행·설법·다비식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대웅전 외의 건물로는 종무소·선방·요사 등이 있다.

 겁외사 대웅전(大雄殿)

 

 

 '성철 대종사' 영정

1993년(82세) 11월4일 오전 7시30분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입적하셨다.

11월 10일 애도하는 수십만의조문 인파속에서 영결식및 다비식 봉행

11월12일에 1백여과에 이르는 사리 수습

 

혜근문(惠根門) 그리고  범종 과 목탁조형물

 

포영당(泡影堂) 유물전시관

성철스님께서 40년 가까이 입으셨던 '누더기' 옷

 

삼서근(麻三斤)

산은산 물은물
성철스님의 화두

 

 

율은고거(栗隱古居)

생가를 복원하여 선친의 호를 따라 율은고거

율은재(栗隱齊)

성철스님 동상 뒤편으로 2000년 10월 복원한 스님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된 것이다. 혜근문(惠根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선친의 호를 따서 율은고거(栗隱古居)라고 이름붙인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가사·장삼·고무신·지팡이·친필자료·안경·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백송(白松)

흰소나무.....!

 

 

 

 

 

 

성철 [性徹]

1912. 4. 10 경남 산청~ 1993. 11. 4 경남 합천.

승려.

속명은 이영주(李英柱)이다.

 25세 때인 1936년 3월 해인사에서 승려 하동산(河東山)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하동산은 한국 불교의 계단(戒壇)을 통일시킨 승려로서, 그의 제자들이 소위 범어문중(梵魚門中)을 형성했는데 성철도 여기에 속했다. 1947년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답게 살자"고 청담·자운·월산·혜암·성수·법전 등과 결사(結社)를 하는 등 현대의 선풍(禪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55년 비구(比丘)와 대처(帶妻)의 분규가 일어났을 때 해인사 초대 주지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어 그해 동안거(冬安居)에서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問)을 했으며,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다. 1981년에는 한국 선불교의 주요특징으로 지적되었던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선문정로 禪門正路〉를 펴내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문공부등록종단 대표, 1986년 아시아 종교평화회의 고문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불교의 법맥(法脈)〉(1976)·〈본지풍광 本地風光〉(1982)·〈돈오입도요문강설 頓悟入道要門講說〉(1986) 등이 있다.

[인터넷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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