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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암(文殊庵), 다도해를 품은 고성 문수암에서 늦여름 해풍을 맞다 본문
문수암(文殊庵)
다도해를 품은 고성 문수암에서 늦여름 해풍을 맞다
■ 문수암[文殊庵]
경상남도 고성군 무선리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 말사
☎ 055-672-8075
♣ 사찰기행일 : 2017.9.9(토) 날씨:약간흐림
♣ 문수암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706년(성덕왕 5)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무이산은 삼국 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이 남해 보광산(普光山 : 지금의 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무선리의 민가에 묵게 되었다.
꿈속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 하였다.
날이 새자, 걸인을 따라 무이산으로 가서 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남대·북대·동대·서대는 웅장한 바가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中臺)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 때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이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고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었다.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은 의상은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며
이 절에서 수도한 청담(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1973년에 세운 청담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 나의 사찰기행 가는길
진주--→남해고속도로--→사천ic--→배춘삼거리
--→무선3길 우회전--→문수암
32km 40분소요
→→→→→사찰기행시작
야근하고 퇴근후 토요일 오전 낮잠으로 휴식한후
오후 3시경 내자(內子)랑 고성 문수암으로 길을 나섰다...!
고성 문수암은 여러 차례 둘러 보았지만 수험생을 둔 부모로서 문수암을 찾고
또 사찰 포스팅을 위해서...카메라를 잡아본다.
↗문수암 주차장
늦여름의 햇살탓에 나무그늘에 주차하고서 남해바다 다도해와 해풍을 맞으면서
문수암으로 걸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 5년(서기 706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문수암 가는길
문수암 가는길은 제법 가파르다
다도해 풍경은 해무에 흐릿하지만..간간히 불어오는 해풍이
이마에 땀을 씻어 준다.
↗문수암 가는길 작은돌탑
작은돌 하나 하나에 소원을 빌었겠지
나 역시 작은 돌 하나 하나 쌓아 올리면서 소원을 빌어본다.
↗문수암 천불전
문수암 가는길 절벽 아래서 카메라로 천불전을 촬영해 보았다.
문수암은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문수암에 오르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산봉처럼 부침하고 있는 절경을 조망할 수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상사화
문수암 도량 천불전 인근에 상사화가 가득하다
상사화는
아주 옛날 산사 깊은 토굴에서 용맹정진 하던 젊은 스님이 계셨는데
그러던 9월 어느날 소나기가 장대처럼 내리던날
스님은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나무 맡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한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버렸다.
수핼도 멈추고 가슴알히 하던 스님은
석달 열흘만에 상사병으로 피를 토하고 죽고
쓰러진 곳에 붉은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상사화이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날수 없는 숨박꼭질 같은 사랑을 상사화 사랑이라고 전한다..!
↗문수암 감로수
문수암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가파른길 잠시 멈추고서
감로수 한모금에 갈증을 씻고서
계단 하나 하나 밟고서 문수도량 품으로 접어 들었다.
↗문수암 종무소
문수암은 입시를 앞둔 부모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며
문(文글월문)수(秀빼어날수) 이름을 보듯 모든 중생들이 지혜를 얻고자
소원하는곳이다.
문수암은 크지는 않지만 수려한 주위 경관으로
여수의 향일암,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남해해안의 3대 명승지로 꼽힌다.
↗문수암 종무소 현판
문수암 현판앞에서 사진하나 찍어 보는데
무엇이 신기한지 고양이 한마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
↗문수암 법당앞 연등
문수암 법당앞에는 연등이 가득하다
부처님오신날만 연등을 매달아 놓는줄 알았지만
이렇게 늘 연등이 달려 있으니 또한 색다르게 느껴진다......!
↗문수암 편액
문수암 창건설화는
의상조사가 남해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 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 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 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문수암 문수전
문수암의 본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수전앞에서도 다도해 풍광은 아주 아름답다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
관세음 보살상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산스크리터어: मञ्जुश्री Mañjuśrī, 만주슈리)은
훌륭한 복덕(福德)을 가진 ’ 혹은 ‘완전한 지혜를 가진’ 불교보살이다.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서
석가모니불의 지덕과 체덕을 맡아서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난 보살이다.
여러 형태 중 사자, 공작을 타는 것은 그의 지혜가 용맹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는다는 뜻이고, 왼손에 청련화를 쥐고 있는 형상은
일체 여래의 지혜와 무상(無相)의 지덕(智德)을 맡아서 제법에 물들지 아니하여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머리에 상투를 맺고 있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며
다섯 개의 상투는 대일여래의 오지(五智)를 표현한 것이다.
다섯 동자로 문수의 분신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화현 보살, 석가의 교화를 돕고자 일시 보살의 자리를 보인 보처보살로
현학적이고 이지적인 보살이며 보살행을 실천하는 보살이라고도 믿어진다.
↗문수보살이 화현한 바위틈
문수암 법당 뒤는 설화에서 말하는 바위틈새가 있는데
그 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이 바위에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예전부터 이 바위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이 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설화에 의하면
의상대사께서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아 문수단을 조상하였다는 설화이다.
지금도 바위 틈으로 보면 문수보살상이 보인다
↗문수암 문수전
2018학년도 수능백일기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문수, 보현보살님의 신통력으로 나투신 천연적인 상호이므로
일체중생을 애민히 여기시는 문수보살님의 지혜와
보현보살님의 행원이 항상
머무르고 있는 해동 유일의 영험있는 문수, 보현의 기도 도량이며
신라 시대 국선 화랑들이 몸과 마음을 수련 연마한 곳이라는 무이산이다라고 전하며
무이산의 문수암과 보현암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공덕으로
수능생 둔 부모로서 그 동안 닦은 실력 맘껏 발휘하여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 꼭 합격하시길 서원합니다.................!
↗문수전 앞 전망대
여기서 보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도해 풍경
의상대사도 반한 다도해 풍경이다
오늘따라 해무가 심해 그다지 시야가 맑지 않아서 조금 아쉽지만
문수암에서 해풍으로 시원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라...!
↗경남 고성군 무선리 와 망림리 풍경
무선리 저수지도 보이며 늦여름 평온한 농촌 풍경이다.
사천시에서 고성읍에서 가는 국도상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면
KBS 송신용 안테나가 서있는 산봉이 눈에 띈다.
이 산이 마을 사람들은 청량산으로 부르기도 하는 무이산으로 주봉이 국도에 인접해 있다.
언뜻 보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산으로 생각되나
산으로 접근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왼쪽 산너머 바다는 고성과 통영 사이에 갇혀 마치 커다란 호수와도 같다.
한려수도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은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이곳의 명코스이며
바로 앞 자란만에는 사량도가 떠 있는데 점점이 박힌 조그만 섬들 사이로
멀리 욕지도까지 뚜렷하게 눈에 잡힌다.
손쉽게 찾아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산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싫증이 나도록 바다를 바라봐도 좋은 산이 바로 무이산이다.
↗독성각 가는 가파른 돌계단
문수전 좌편으로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가면 독성각이 나온다
기암절벽에 있는 독성각은 주위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작게 조성되어 있는 전각이다.
↗독성각(獨聖閣)
독성(獨聖)을 모신 곳이니, 이는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이를 말한다.
독성을 연각(緣覺)이라고도 한다.
독성은 스승 없이 혼자서 깨친 독각(獨覺)의 성자이다.
즉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이 통례이다.
본래 독성은 부처님의 제자였다.
아라한과를 얻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머물다가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하여 출현한다 하여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고 있다.
흔히 칠성(칠성각)과 산신(산신각)과 이 독각(독성각)을 합쳐서 삼성(三聖)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찰 안에는 삼성각(三聖閣)이란 전각을 지어 모시고 있는 절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새롭게 수용하고 전개시켰다.
따라서 이 독성을 모신 독성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인 독성(獨聖)탱화를 모신다.
사찰에 따라서는 탱화만을 봉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료에 의하면 이 독성각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삼국.고려시대 것으로 남아 있는 전각은 없다.
아마도 조선시대에 널리 보급되어 한 전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조선조가 주요정책으로 내세웠던 숭유억불의 기치 아래에서
불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생겨났을 것이다.
불교도들의 눈에 조선조가 말법시대라고 부정적으로 비칠때
강력한 자각에 의해 말법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싹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산신각이나 칠성각과 더불어 사찰 안에 삼성각이라는 전각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불공 못지않게 독성각을 중심으로 불공이 거행되는 것도
우리나라 서민층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독성탱화는 독성존자를 형상화한 불화이다.
대개 독성각에 단독으로 모셔지거나 삼성각 안에 칠성탱화와 산신탱화와 함께 봉안된다.
독성탱화는 수독성탱(修獨聖幀).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고도 한다.
보통 16나한탱화와 같은 구도법으로 그려진다. 독성탱화는 나무와 산이 무성한 천태산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늙은 비구가 석장(錫杖)을 짚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 탱화의 특징이다.
하지만 때때로 동자가 차를 달이는 모습도 있다.
또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나타나 나반존자와 나란히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청담대종사 사리탑 가는길
오래 전에는 여기에 이렇게 길도 없었다고 하며
고승들이 수도하던 석굴이 있던 바위 지붕위를 개 보수하여
평평하게 만들고 거기에 사리탑을 안치한것같다 한다.
오래 전에는 절벽 옆을 돌아 수도하시던 곳을 구경하는곳도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하여 안타깝다.
↗청담대종사 사리탑비(靑潭大宗師舍利塔碑)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문수암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다.
↗청담대종사 사리탑
청담 대종사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지낸 스님으로서
진주제일보통학교와 진주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02년 10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남규영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였다.
1955년에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1956년에 조계종 종회의장을 거쳤으며
1966년에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다.
1971년 11월 15일,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도선사에서 입적하였다.
광복 이후 왜색불교인 대처승 제도를 청산하기 위한
불교정화운동을 주창하여 그 선봉에 서서 활약하였다.
승단정화를 통한 불교의 정통성 회복과 불교 현대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곧 도제양성·역경·포교 등 3대 사업이었다.
이외에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 운동에 기여하여 군종법사제(軍宗法師制)를 실현하고
『대한불교』오늘의 불교신문 를 창간하였다.
↗청담대종사 사리탑 바닥의 연화문
청담스님은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주역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을 지낸 청담(靑潭) 순호(淳浩·1902∼1971) 대종사의 생애가 평전으로 되살아났다.
'청담순호선사 평전'은 청담 스님의 출생부터
수행 과정, 불교계 정화와 조계종 설립까지 포교와 교육 활동에 헌신한 스님의 삶과 사상을 담고 있다.
특히 청담 스님은 일제강점기 '왜색불교'에 맞서
한국불교의 청정가풍을 복원한 불교 정화운동의 주역이었으며
스님이 주도한 정화운동의 결실로 오늘날 조계종단이 탄생할 수 있었다.
청담순호선사평전 화남출판사. 768쪽.
↗사리탑에서 바라본 천불전
↗문수암 천불전
문수암의 천불전은 좁은 지형에 건축한 전각이라
남쪽은 난간이 둘러 쳐 있으며 내려다 보면 절벽이다.
천불전 동쪽기둥 주련은 아래와 같다.
사대각리여몽중(四大各離如夢中)
사대가 제각각 흩어지는 일은 꿈속의 일 같고(죽음이란 것도 꿈만 같고)
육진심식본래공(六震心識本來空)
육진과 심식은 본래가 공한지라(육진은 우리 몸이 느끼는 6가지 감각,심신은 정신에 의한 작용)
욕식불조회강처(慾識佛祖回光處)
불조께서 빛을 돌이킨 곳 알고자 하는가(회강처는 부처님가 조사들이 깨달은 경지)
일락서산얼출동(日樂西山月出東)
서산에 해 지자 동녁에 달 뜨네
↗천불전 내부
천불전(千佛殿),삼천불전(三千佛殿),만불전(萬佛殿)이라고 하는데
부처님 일천분을 모신 곳이라 하여 천불전이라 한다.
천분이란 이 세상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아니라
계속 출현하시는 부처님이 천 분이란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부처님이 계셨고
또 이후에도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미륵불이 그 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각각 일천 부처님이 계신다 하여 삼천불(三千佛)을 말하기도 하여
삼천불을 모신 곳은 삼천 불전이라 하고
또 요즈음은 일만 부처님을 모시고 만불전이라고도 한다.
↗천불전 천정
문수암 천불전 천정에는 조사들의 탱화가 그려져 있다.
↗천불전에서 바라본 청담대종사 사리탑
천불전의 의미는
나도 열심히수행하면 부처님이 될수있다는 의미가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열심히수행하여 봤자 신에게 구원받는다는
이론밖에 없다는 것이며
우리불교에서는 구원을 받느것이 아니고 내힘을 키워서 어떤상황을 극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종교에 귀의 한다
그리고 우리불교는 전변론을 기반으로 하지않고 연기법을 토대로 종교가 성립 되었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확천금을 생각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묵묵히 세상을 사라가며 결과와 과정을 함께 중요시한다
↗문수암 천불전에서 바라본 보현암 과 다도해
문수암에서 본 보현암의 약사전과 약사 여래불
1983년 청담스님 제자인신
문수암의 전 주지스님이셨던 휴암당 정천 대종사께서
오랫동안의 고생과 각고의 노력으로
본래 절이 있었다는 절터위에 보현사를 세우셨다고 한다.
보현사의 본당은 금동 부처상의 우측 절벽위에 있다.
↗ 하산길 그리고 해우소
해우소[解憂所]의 뜻은
사찰에서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한다
비운다는 뜻으로 모두 비워버리면 뱃속이 상쾌해 지는것처럼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도 있다.
번뇌가 사라지고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우울한 기분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한다......!
문수암(文殊庵)
다도해를 품은 고성 문수암에서 늦여름 해풍을 맞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고성읍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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