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늑대 FORCE

백양사[白羊寺].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법화경 속의 아침을 걷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백양사[白羊寺].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법화경 속의 아침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17. 8. 14. 10:40

 

백양사[白羊寺]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에서 법화경[法華經] 속의 아침을 걷다...!

 

백양사[白羊寺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1239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 고불총림

061-392-1143

♣ 백양사 가는길

서울 – 천안 – 논산 – 익산 – 백양사 (2시간 40분 소요)
부산 – 창원 – 진주 – 순천 – 담양 – 백양사 (3시간 소요)
광주 – 담양 – 백양사 (40분)

 

♣ 사찰기행일 : 2017.8.13(일) 날씨:약간흐림

♣ 백양사 개요:

백양사는

1400여 년 전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의 요람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5대 총림 중 한 곳인 백양사는 백두대간이 남으로 치달려와 남원, 순창 일대를 거쳐

장성 지역으로 뻗어 내려온 노령산맥의 백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창건 당시 백암사로 명명됐으며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중창하면서

정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뒤에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선 선조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이어 1917넌 만암 대종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백양사란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백양사를 오늘에 있게 한 분은 만암 종헌 대선사로 스님은 30년 가까이 백양사에 주석하시면서

불사에 전력하는 한편 소실된 강원을 다시 개설하여 600년 강원 전통을 이으며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내신 서옹 큰스님께서는 2003년 열반에 드시기 전 까지

운문암 운문선원에 주석 하시면서 눈 푸른 납자를 제접하며

 심혈을 기우려 후진 양성에 전력을 쏟으셨다.

또한 서옹 큰스님께서 ‘참사람’ 운동을 펼치시어 ‘참사람’ 참선 수련회를 통해서

백양사를 스님만의 참선 수행 도량이 아니라 재가자들의 참선수행 도량으로 문을 개방하셨다.

백양사는 예로부터 훌륭한 선지식인 큰스님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백양사의 총림선원인 운문암은 ‘북 마하연 남 운문‘이란 말이 나타내듯

남한에서 가장 으뜸가는 참선 도량이다.

고려 각진국사를 비롯 조선시대 소요, 태능, 편양, 진묵, 연담 스님등

조선 말기 불교를 이끌어 왔던 백파, 학명 스님 그리고 용성, 인곡, 석전, 만암, 고암스님 등

암울했던 일제시대 우리나라 불교법통을 이어온 고승 대덕스님들이

상주 수행하여온 수행 근본도량으로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는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기도가 영험하여 속발 성취하고

청량한 기운이 샘솟아 정신수양에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전해 온다.

백양사 산내 암자로는 참선수행 도량인 운문암과 물외암, 금강대

청량원,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이 있고 기도 도량으로 영험있는 약사암과 영천굴이

서편에 계곡과 산수가 울창하고 빼어난 청류암과 홍련암이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는 임진란, 정유재란, 갑오농민개혁 때에는

백양사 스님들이 역사와 민중의 고난에 함께해온 전통이 있다.

또한 백양사를 중창하신 만암스님께서 민족교육의 산실인 광성의숙을 설립하였고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을 설립했으며 해방 후에는

광주 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사회교육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연혁-

632년 개창 백제 무왕 33년 여환선사 백암사(白巖寺)라 칭함,
1034년 2창 고려 덕동 3년 중연선사 정토사(淨土寺)라 개칭
1350년 3창 고려 충정왕 2년 각진국사 운문암, 영천암, 청류암 건립
1352년 천진암, 약사암, 물외암 건립
1355년 묘연암, 백련암 건립
1574년 조선 선조 7년 환양선사 白羊寺라 개칭
1786년 환성선사 중창
1864년 4창 조선 고종 원년 도암선사 , 명부전, 진영각
1917년 5창 만암 대종사 현재의 대웅전
1945년 사천왕문 건립(천왕상 개축)
1950년 500나한전, 쌍계루, 암자소실
1980년 운문암, 물외암, 금강암 복원
1985년 쌍계루 복원
1996년 조사전, 묘련암 건립
1997년 종무소, 공양소, 중화당 건립
1998년 강원, 납골당 건립
2001년 일주문 건립
2002년 해운각중수
2002년 참사람 교육관(중화당) 건립

 

♣ 나의 사찰기행 가는길

 진주--→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29번국도 담양정읍

--→반월교차로--→백양사

175km  2t시간20분소요

 

 

 

 

→→→→→사찰기행시작

고불총림 백양사를 아침일찍 길을 나서보았다

행정대학원 산을사랑하는사람들[산사회]회원들은

민박 숙소에서 오전6시 백양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민박숙소에서 약20분정도 걸어서 백양사에 도착하였다. 

 

↗조선팔경국립공원 백암산 백양사

백양사 집입로앞에 표지석이다

가을 단풍 절정기에 오면 백양사는 단풍구경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지만

여름날 아침의 백양사는 말 그대로 절간이다.

 

↗연못

백양사 표지석에서 우측으로 보면

연못이 아침 고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름날 아침 고요함과 짙은녹음속 수목그림이 연못에 투영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들었다.

↗마름:부엽수초

우리 어릴적엔 몰밤이라 하여 마름열매를

삶아 먹은 기억이 있다

마름은

마름과(―科 Trapaceae)에 속하는 1년생초.
마름 /마름(Trapa japonica)
물 위에 떠서 자란다.

뿌리는 물 밑의 진흙 속에 내리며, 물 위까지 뻗어 있는 줄기 끝에 많은 잎들이 빽빽하게 달린다.

물 속에서 나오는 잎은 가는 실처럼 갈라져 얼핏 보면

줄기에서 가는 뿌리들이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 위에 나와 있는 잎은 마름모꼴로 길이보다 너비가 더 길며

잎가장자리에는 큰 톱니들이 고르지 않게 나 있다.

잎자루는 20㎝까지 자라는데 가운데가 부풀어 있어 잎이 물 위에 떠 있게 해준다.

꽃은 흰색이며 7~8월에 물 위에 나와 있는 잎의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핀다.

꽃자루가 처음에는 위로 곧추 서 있으나 열매가 익어가면서

밑으로 숙여져 열매는 물 속에 있게 된다.

꽃잎과 꽃받침잎 및 수술은 각각 4개이나 암술은 1개이다.

열매에는 뼈대처럼 매우 딱딱한 뿔 2개가 양쪽으로 달린다.

마름의 열매를 물에서 나는 밤이라고 하여 '물밤'이라고 부르는데

녹말과 지방이 많이 들어 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물에 심기도 하며

딱딱한 열매는 화석이 되기 쉬워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애기마름(T. incisa)도 흔히 마름과 같이 자라며

잎이 작고 열매에 뿔이 4개 달려 마름과 구분된다.

 

 

↗백양사 가는길

백양사 가는길엔 이렇게 어릴적 동네 탕마당에 그려놓고

동네 아이들이랑 놀이하던 오징어 가생이다.

요즘 아이들은 이 그림의 뜻을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렇게 흙마당에서 친구들이랑 딩굴고 놀고 하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게임방에 혼자 놀이를 즐기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백양사 가는길

녹음이 짙은 아침길은 간간히 들려오는 매미소리와 새소리뿐

단풍 좋은날 이길을 걸어가면 녹음 짙은 수목이

붉게 불타올라 그 아름다움을 뽐낼것이다.

새벽녘에 내린 소나기로 촉촉히 젖은 수목

아침 공기 시원하게 그져 걷는 것만으로도 감사할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

백양사 뿐만 아니라 백암산에도 갈참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백양사 가는길엔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많고

백양사 갈참나무는 수령이 700년 되었다고하며

갈참나무 군락지로서 학술적 보호가치가 많다고 한다.

 

↗쌍계루[雙溪樓]
백암산 학바위와 비자나무 숲을 배경으로 지어진 쌍계루(雙溪樓)는

사찰 누각의 백미(白眉)이라고 할수 있다.

펜화가에게 사찰의 누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을 손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백양사 쌍계루를 꼽을 것이라고 한다.

아침이 아닌  햇살 가득한

가을날 백양사 쌍계루 풍경은 어떤지 상상해 보라

연못에 붉은 단풍과 쌍계루 단청이 한폭의 풍경화가 될것이다.

 

↗쌍계루[雙溪樓]

돌다리에 내려가서 촬영해야 한다

이번엔 쌍계루가 연못에 비쳐진 모습을 담아 보았다.

쌍계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제법 규모가 큰 누각이다.

모양은 여느 누각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러나 앉은 자리가 너무 좋아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선조들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집을 짓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신 좋은 장소에 잘 어우러지는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점이 서구의 건축과 다른 점이라고 건축가들은 말한다.

쌍계루는

고려 우왕 7년인 1381년에는 목은이색이 교루의 이름을 쌍계루라 하고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 를 지었다.

1980년에 쌍계루가 복원이 되었고

그 후 몇차례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쌍계루 연못 돌다리 겸 보

여기서 보면 백암산 학바위와 쌍계루가 아름답게 볼수있는곳이다.

여름 가뭄이 심한 탓인지 녹조가 심하고 연못수량도 적은편이다

가을이 익는날이면

이곳 풍경은 사뭇 다를것이다.

그리고

포은 정몽주가 당시 이곳에 머물면서 청수스님의 권유로 지은시가 있는데

옮겨본다..

지금 시를 써 달라 청하는 백암사 스님을 만나니

붓을 잡고 생각에 잠겨도 능히 읊지 못해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청수스님이 누각을 세우니 이름이 더욱 중후하고

목은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빛나도다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이 맑구나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서 시달렸는데

어느 날 옷을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올라보리.

 

↗감로수

아침 백양사 감로수로 입을 행구고

경건한 마음으로 백양사 사천왕문으로 걸었다.

 

↗사천왕문 우측에 있는 백양사 공덕비

백양사 고불총림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특히 선찰(禪刹)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한다.
지도론 삼(智度論 三)에 의하면 ‘승가(僧伽)는 중(衆, 무리의 뜻)의 뜻이니

많은 비구가 한 곳에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고 한다.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林이라 함과 같으니

승취(僧聚)가 모여 사는 곳이므로 총림이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지금의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5대 총림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47년에 만암 큰스님께서 고불총림을 개창하셨다.

백양사 고불총림은 6.25 전란으로 안타깝게도 소실되어

1980년 이래 복원을 시작하여 1996년엔 서옹큰스님께서

다시 총림으로 공식 승격시켰다.

그리고

공덕비 제일 우측편에 있는 이뭣고 탑이 서있다

이뭣고는 백양사 중창주인 만암 화두로서

오늘날 백양사의 정신이자 선 화두가 되었다.

 

↗백양사 사천왕문[白羊寺四天王門]

백양사 사천왕문 편액은 고불총림 백양사라고 되어 있으며

학정 이돈홍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단청은 아래는 연화머리이고 위는 주화머리초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사천왕문은 일주문(一柱門)과 불이문(不二門)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백양사 사천왕문은 정면 가운데 칸은 사찰의 통문(通門) 역할을 하고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상을 안치하였다.
장대석 기단 위로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2익공(翼工)을 두고 외1출목의 차도 있는, 익공식과 주심포식을

병용한 절충식이라 할 수 있다.

내부의 천장은 가운데 중보 위로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고

전후 면으로는 빗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사용하고 서까래와 부연(副椽)을 설치한 겹처마를 갖고 있으며

측면은 풍판(風板 : 비바람을 막기 위해 널판장처럼 댄 널)을 설치한 맞배지붕이다.
이 사천왕문 건물 역시 한말 대웅전 증축과 함께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전라남도 지방의 사천왕문으로는 구례 화엄사와 장흥 보림사의 사천왕문과 함께

사찰문화재로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광목천왕

광목천왕(廣目天王), 비루팍쉬(산스크리트어: विरूपाक्ष)은 수미산 중턱

서쪽에 살면서 많은 용을 권속으로 서방을 지키는 사천왕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비루파(विरू)는 귀, 여러가지 색이라는 뜻이고

악쉬(पाक्ष)는 눈 또는 뿌리라는 뜻으로 여러가지 색의 눈 또는 뿌리라는 뜻인데

이를 한자로 바꾸어 넓을 광(廣)과 눈 목(目)을 써서 광목천왕으로 부르며

이는 크고 넓은 눈으로 수미산의 서방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도와주는 천왕이라는 뜻이다.

고대 인도에서 시바신의 화신으로 3개의 눈을 가진데서 유래하며

그 권속으로 여러 종류의 용과 부단나 등이 있다. 용은 하늘에서

구름, 비, 천둥을 관장하고, 부단나는 냄새나는 혹은 열병을 앓게하는 귀신으로

아귀를 말하기도 한다. 나가를 부린다고 한다.

 

↗범종루

사천왕문을 지나면 우측건물이 범종루이며

1937년에 건립한 건축물로서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의 2층건물이다

1층에는 범종이 있으며

2층에는 법고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보리수 나무아래 백양[白羊]

지구촌 빈곤아동돕기 캠페인 모금함이 백양이다.

백양사란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백양사 종무소
백양사의 산내암자로는 약사암(藥師庵)과 영천굴(靈泉窟)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淸流庵),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物外庵)

천진암(天眞庵)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운문암(雲門庵) 등 많은 암자들이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이 중 운문암은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 위에 있다.

 

↗우화루[雨花樓]

우화루의 편액은 불하당 십일세 김진민인 이라고 되어 있어있다

불하당 김진민 여사가 쓴 편액임을 알수 있다.

우화루의 주련은

江國春風吹不起  강국춘풍취불기

鷓鴣啼在深花裏  자고제재심화리

弎級浪高魚化龍  삼급랑고어화룡

癡人猶戽夜塘水  치인유호야당수

雨過雲凝曉半開 우과운응효반개

數峰如畫碧崔嵬 수봉여화벽최외

空生不解中坐 공생불해연중좌

惹得天花動地來 야득천화동지래

 강남지방 봄바람은 아직 불지도 않았는데,

 자고새는 꽃 속에서 지저귀는구나.

 삼단의 폭포를 뛰어오른 물고기는 용이 되었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밤새 못의 물을 퍼내고 있네.

 비 개인 구름사이 새벽이 열리니

 산봉우리들은 그림처럼 높푸르네.

 회상에 앉은 수보리는 모르고 있는데,

 하늘에서 꽃비 내려 땅이 진동하네.

 

이 주련글의 출전은 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이다.

벽암록은 1125년에 완성된 선종(禪宗)의 공안집(公案集)으로서,

전등록의 1,700 공안에서 100칙을 골라 설두중현이 송(頌)을 달고, 

원오극근(圜悟克勤)이 각칙(各則)에 수시(垂示),저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이루어졌다.

 

 

↗백양사 대웅전[白羊寺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현 대웅전은 1917년송만암(宋曼菴)이 5창(五創)한 것으로 대형 법당에 속한다.
2단의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 중앙으로 계단을 두었고 원형초석이며 기둥은 민흘림이다.

포작(包作)에서는 창방과 평방을 두고 그 위로 공포를 결구하였는데 외2출목

내3출목으로 첨차살미[檐遮山彌]도 섬약하여 대형규모에 비해 빈약한 경향을 나타낸다.
내부는 우물천장이고 불단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불을 봉안하였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기의 건립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양식에서 후퇴한 면모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백양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한 전각 으로

대웅 이란 말의 뜻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으로

법화경 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 이라 일컫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큰 힘이 있어 마군의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부처님이 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대웅전은 ‘법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을 지닌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손 모양(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 쪽으로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으로 마군을 항복받았던 모습을 나타낸다.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신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왼쪽에 모셔진 분이 문수보살로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상징하는데

여의주나 칼, 청련화(靑蓮花)를 들거나 청사자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부처님을 모시며 부처님의 행원을 상징한다.

흔히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나타낸다.

또, 협시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웅전에 삼세불이나 삼신불을 모시기도 한다.

삼세불은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을 말하며, 과거의 연등불인 제화갈라보살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말한다. 

삼신불은 법신.보신.화신을 말하며, 청정법신 비로자니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을 말한다.

대웅전에 삼신불을 모실 경우 화신인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보신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한다.

이럴 경우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부른다.

청정법신 비로자니불 을 주불로 좌우에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실 경우는 '대적광전'이라고 부른다. 

 

 ↗백양사 대웅전

대웅전에는 많은 탱화가 봉안되는데

대웅전의 탱화는 주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시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를 많이 봉안한다. 

또, 주존불에 삼세불이나 삼신불을 모실 때는 후불탱은 '삼여래탱화'를 모신다.

또, 위태천존을 중심으로 104위의 천신인 신중을 모신

신중단(중단)과 영가를 모신 영단(하단)을 함께 마련한다.

신중단은 신중탱화, 영단은 감로탱화를 모신다.

대웅전 중심에 불상을 안치한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그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 꼭대기에

부처님이 앉아 자비와 지혜의 빛을 발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내부는 다른 건물보다 화려하게 장식한다.

목조 닫집(보개)와 불단은 섬세하여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주불 위에는 화려한 닫집(천개 또는 보개라고도 함.)을 만든다.

닫집은 여러가지 화문(花紋)과 천의를 날리는 비천(飛天), 여의주를 입에 문 용(龍)과 극락조 등으로 장식한다.

천장은 보상화문(寶相華紋)과 연화문(蓮花紋) 등을 조각한다.

이는 불전에 나오는 천우보화(天雨寶花)를 상징한다.

대웅전에는 나무로 중생의 업을 비추어보는 업경대를 만들어 불단 양편에 놓기도 한다.

대웅전은 법화천태종의 금당이었으나 조선후기에는

법화계통의 전통이 남아 있는 사원에서 주불전으로 사용했다.

불국사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쌍계사, 관룡사 대웅전 등 많은 걸작들이 남아 있다.

 

↗극락보전 과 명부전

백양사 극락보전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봉안되어 있으며 
17세기, 높이 205㎝,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로서

낮은 석조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처리한 원기둥을 세워 기본구조를 마련하였다
다포계(多包系) 건물로서 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두르고

그 위에 안팎 출목(出目)이 각각 3출목, 2출목인 공포(栱包)를 짜올렸다.

내부는 천장을 우물천장으로 하였으며, 양쪽 벽에는 벽화를 그렸다.
외부에서 보면 정면은 가운데 칸에 빗살 3분합문을

양옆 칸에 井자살 3분합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架構)를 한 절충식 건물임이 주목된다.

 

 

↗백양사 탑전

팔정도를 나타내는 팔층 선존사리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팔정도란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불교는 대승불교권에 속하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팔정도에 의하여 수행하고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이 팔정도는 팔지성도(八支聖道)라고도 하며

여덟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는 의미이다.
이 도는 팔리어로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되는데

이는 8개의 것이 하나의 성스러운 도의 각 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8개 가운데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7개가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해진다는

상섭(相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는
사성제(四聖諦: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 즉, 苦·集·滅·道) 중 하나인

도제(道諦)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된 것이다.
팔정도는 욕락과 고행 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되어 있다.

이 팔정도는 중정(中正)·중도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정도

성인의 도이므로 성도, 8종으로 나누었으므로 지(支),또는 분(分)이라 한다.

 

↗팔정도 팔층석탑

번뇌를 멸하는 방법을 이야기한 것이니 번뇌를 멸하려면
1. 모든 것을 바로 보고(正見)
2. 바로 생각하고(正思)
3. 바로 말하고(正語)
4. 바로 행동하고(正業)
5. 바르게 직업을 가지고(正命)
6. 바르게 노력하고(正進)
7. 바른 정신으로(正念)
8. 바르게 몸과 마음을 안정하라(正定)란 것이다.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우리나라에 단 4주뿐인 천연기념물 매화나무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그리고 강릉오죽헌의 율곡매 이다.

백양사 고불매는

350년이 넘는동안 매년 3월말 부터 4월 초까지 아름다운 담홍색 꽃과

은은한 향기를 피우고 있는 홍매(紅梅)이며

2007년 10월8일부터 국가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 하고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북쪽 100m정도 떨어진 옛날 백양사 앞뜰에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

그러다가 1863년 절을 옮겨 지을때 홍매와 백매 한그루씩 이곳에 옮겨 심었는데

지금의 백매는 죽고 홍매만 남았다.

1947년 만암대사가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이 나무가

고불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고불매라 부르기 시작했다.

 

 

↗능소화[凌宵花]

고불매 옆 담장에 능소화가 한여름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능소화 꽃말은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명예라고 한다 

궁녀가 임금님을 흠모하며 기다리다

끝내는 죽어 담 아래 묻혔는데

그 자리에서 이 꽃이 피어났다고 하며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오고가는 임금님

얼굴이라도 보려는 슬픈 사연이 있는 능소화 라고 한다...!


↗청운당[靑雲堂]

백양사 청운당 주련

 

敎我如何說 吾心似秋月(교아여하설 오심사추월)

 

碧潭淸歸潔 無物堪比倫(벽담청귀결 무물감비륜)

 

淸光轉更多 狐狸俱屛迹(청광전갱다 호리구병적)

 

獅子奮全毛 斫却月中桂(사자분전모 작각월중계)

 

 

가을달 닮은 내 마음에 무슨 말을 시키려나

 

맑고 맑은 푸른 못엔 견줄 것이 하나 없다

 

푸른 눈빛 더욱 짙어 여우 이리 자취없고

 

금털세운 사자 위엄 계수나무 베어지네

 

↗백양사의 아침

백암산에 구름이 걸려 있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아침 도량을 깨운다...

요즘 사찰에서 템플스테이가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백양사 아침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보니

외국인들도 드러 보였다.

 

 

↗전각

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는 스님들이 사는 곳이다.
승가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한다.

3시가 되면 한 스님이 목탁을 치며 도량을 돕니다(道場釋).

그 목탁소리를 듣고 모든 스님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도량석이 끝나면 아침 종성과 4물(목어, 운판, 법고, 대종)이 울리고

이어서 대웅보전에서 경건하게 새벽예불을 올린다.

선원에서 정진중인 스님들은 도량석이 끝나면 선원 큰방에서

죽비로 예불을 드리고 바로 참선 정진에 들어간다고 한다.

예불이 끝나면 강원 스님들은 큰방에서 간경(看經)을 하며

아침 공양은 6시에 있다고 한다.

스님들은 큰방에 순서대로 빙 둘러앉아 각자 자신의 발우로 공양을 하며
총림(叢林)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파나(貧陀婆那)라 음역하며

단림(檀林)이라고도 번역한다.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하며

특히 선찰(禪刹)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한다.
지도론 삼(智度論 三)에 의하면 '승가(僧伽)는 중(衆, 무리의 뜻)의 뜻이니

많은 비구가 한 곳에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고 한다.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林이라 함과 같으니

승취(僧聚)가 모여 사는 곳이므로 총림이라 한다.'고 하고 있다.

지금의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며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5대 총림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96년 3월 총림으로 공식 승격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백양사[白羊寺]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에서 법화경[法華經] 속의 아침을 걷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백양사, 정읍시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홈페이지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7.08.14]

스마트폰으로

여기 QR코드 앱으로 찍어주세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