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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가볍게 산책하듯 고성 남산과 청련암을 둘러보다

바다늑대FORCE 2015. 2. 1. 16:44

 

남산, 가볍게 산책하듯 고성 남산과 청련암을 둘러보다

 

▲고성[固城] 남산[南山](427m)

    위치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산행일  : 2015년2월1일 일요일,  날씨: 맑음

▲나의산행코스 : 

 옥천사 주차장 ~ 청련암 ~ 황새고개 남산 (0.66km, 50분 소요)

 ▲산행지개요:  

옥천사~남산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서 약 500m 들어가면 매표소, 이어 5~6분이면 일주문에 닿고,

숲터널로 6~7분 거리에 이르면 옥천사 경내로 들기 직전 백련암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4~5분 오르면 청련암 입구(←청련암 0.114km, ←남산 0.77km, ←연화산 1.34km 푯말)에 닿는다.

 왼쪽 돌계단으로 약 100m 오르면 청련암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주차장 끝에 5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있고, 석탑 왼쪽에 대나무통을 통해 쏟아지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이 옥천사 옥천샘을 향하고 있어 전설 속의 옥천샘이 암샘이라면, 청련암 샘은 숫샘일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샘 왼쪽 돌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곧 안내판(남산 정상 660m→)이 나선다.

아름드리 밑둥이 잘려나간 고목 아래에 접시형으로 가운데가 오목렌즈처럼 패인 자연석이 있다.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스님들이 돌 위에 오랜 세월 앉았기 때문에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오목하게 닳았다는 것이다.
접시형 자연석을 뒤로하고 오른쪽 숲길로 약 10분 오르면 연화산 북릉 안부(↓청련암 0.28km, 남산 0.37km→ 푯말)에 닿는다.

왼쪽은 선유봉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쪽 북릉으로 10분 오르면 정면으로 연화산 정상이 보이는 남산 정상이다.

 

▲등산지도:

 

 

 

 

 하트3산행시작→→→→→

2015년2월1일 일요일 14시30분 산책삼아서 딸아이랑 산행시작

일요일이라 그런지 들머리 시작점에 연화산 산행자들이 많이 하산을 하고 있었다

 

↗들머리 청련암에서 남산 방향

돌계단 차곡차곡 걷다보면 청련암이 나온다

 

↗청련암 주차장 아래 얼음

계곡물이 내려오다 여기서 꽁꽁 얼어있다

 

 

↗청련암 주차장에 있는 석탑과 샘물

주차장 끝에 5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있고, 석탑 왼쪽에 대나무통을 통해 쏟아지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이 옥천사 옥천샘을 향하고 있어 전설 속의 옥천샘이 암샘이라면, 청련암 샘은 숫샘일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샘 왼쪽 돌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곧 안내판(남산 정상 660m→)이 나선다.

 

딸아이와 나는 시원하게 물 한모금 하고서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고성북평리찰피나무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에 있는 찰피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82호. 찰피나무는 피나무과에 속한 낙엽교목으로 꽃대가 좁고 긴 포엽의 중간에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한그루의 노거목이며 높이 15m, 가슴높이줄기둘레 2.2m,

수관폭은 동서로 14m, 남북으로 18m에 이르며 나무의 나이는 약 25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찰피나무의 잎은 피나무류 중에서 가장 크고 둥굴고 가장자리의 톰니는 예리한 치아상이다.

잎뒤에 흰색의 성상모(星狀毛)가 발생한다. 염주알처럼 생긴 열매가 가을에 익는다.

불교도들은 이나무를 흔히 보리수나무라고 부른다.

 이 나무 앞에는 옛날부터 스님들이 앉아서 참선수도하던 넓적한 돌들이 놓여 있는데

 하도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스님들이 앉았던 자리가 움푹 하여 빗물이 고일 정도이다.

 

지금은 나무 둥지만 남아 있는게 아쉽다

 

↗소나무 숲길

아름들이 소나무가 있고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니

어디서 나무쪼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려왔다...참 오랫만에 듣는 소리 였다..!

 

 

↗황새고개

황새고개에서 인증샷

 

"당신의 할머니도 이 길을 다녔느니라 ·황새고개 960m

 접시형 자연석을 뒤로하고 오른쪽 숲길로 약 10분 오르면 연화산 북릉 안부

(↓청련암 0.28km, 남산 0.37km→ 푯말)에 닿는다.

왼쪽은 선유봉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쪽 북릉으로 10분 오르면 정면으로 연화산 정상이 보이는 남산 정상이다.

↗ 여기서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길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눈이 녹지 않고 있어 등산로가 미끄러워 보행에 조심해야 했다

 

↗남산 정상앞에 있는 안내표지목

청련암 30분정도 걸어서 정상바로앞에 도착....!

 

↗남산 정상 427m

딸아이랑 인증샷하나 날리고서.....

오케이3

 

↗ 돌무더기에 돌하나 올려 놓고

   소원도 하나 빌어보고,,,하산.→→→→→

 

↗하산길 황새고개 벤치에서 조금 휴식....그리고

청련암에 들려 보았다..!

 

청련암

청련암은 옥천사의 첫손가락 꼽을 수 있는 산내암자이다.

창건년대는 1678년(조선, 숙종4년)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

창건주는 묘욱선사(妙旭禪師)라고 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묘욱선사는 1677년 대규모 중창불사를 하여 가람을 새롭게 일신한 대공덕주였는데

이 무렵 청련암도 창건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후 청련암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 중건되었겠지만

1895(고종32)에 化主수룡, 화용스님에 의해 중창된 사실은 기록에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1901년에는 청련암의 아미타여래도가 조성 봉안되었으니, 이 불사는 금남치구(錦南致口)스님이 도감의 소임을 맡고

기운과연(奇雲斗演)스님이 화주가 되어 이루어졌다.

 청련암이 창건된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고승 대덕이 주석하며

법등을 이어 왔는데, 특기할 만한 사실로는 서봉(瑞峯)스님의 방광(放光)과 기운스님·영송(永松)스님의 이적(異蹟) 및

 서응(瑞應)스님의 만일계(萬日契) 결성 등을 들 수 있다.

 현 감원인 승욱(昇旭)스님 소임을 맡으시 이후로 큰 법당의 개수와 천불전

요사채, 산신각 등을 건립하여 가람을 쇄신함과 더불어

1997년 서응스님의 만일계 정신과 동체대비의 근본정신을 살려“정토만일봉사회”를 결성하여 불교사회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청련암 대웅전

 

↗산신각

 

↗닥종이 솥 과 황소바위

옥천사는 정조 말기에 "어람지 진상사찰"로 지정되어

 철종14년(1863) 해제될 때까지 60여 년 동안 닥종이 제조 부역에 시달렸다.

님들은 공양만 먹으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인 후 이를 찧어 계곡물에 일렁거려 종이를 뜨는 노역에 시달렸다.

 노역에 질린 스님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  정조말기에 340명을 헤아리던 스님 숫자가 철종 15년 해제될 때는 10여명이 남았다 한다.

 옥천계곡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품질이 좋은데다 색색으로 물을 들여 진상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옥천사 닥종이를 최고로 쳐주었다.

이 때에 쓰던 유물로서 유일 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지금 청련암에 무쇠솥이 남아 있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이 솥에 넣어 끓이던 유물이다.

 

☞청련암에 들어서면 황소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황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황소바위라 불리운다.

오른 쪽 윗부분을 두드리면 소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

어느 때 통행에 지장이 있다하여 석수를 시켜 목 부분을 잘라내려 하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날 밤 감원 스님의 꿈에 황소가 나타나 슬피 울더라고 한다.

그리하여 바위를 그대로 두게 되었는데 손상된 부분에는 지금도 피가 흐른 흔적이 있다.

 

↗차방

↗종무소

↗낮잠즐기는 사자개

귀신도 쫒는다는 사자개가 한가로이 청련암 도량에서 낮잠을 즐기고 사람이 오던 가던 평화롭게 쉬고있다

♣청련암 고승이야기

[서봉(瑞峯)스님과 혜우(惠雨)스님의 방광이야기]

 고종16년(1879)년의 일이다. 청련암에 서봉(瑞峯)스님이 계셨다.

 서봉스님은 환갑을 지난 나이에 출가하여 참선이나 간경을 하지 못하게 되자 염불을 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조석으로 정화수를 떠놓고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지송하였다.

세월이 흘러 입적이 가까웠을 무렵에는 중풍이 와서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었다.

시봉도 하루 이틀이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게되자 방에서 아무데나 대소변을 누는 형편이 되어 방안에 구린내가 진동했다.

큰절에서 끼니때마다 공양을 지어다 날랐는데 공양을 들고 간 행자들이 냄새 때문에 서로 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싸우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원스님과 부전스님의 꿈에 화관을 쓴 불보살들이 꽃가마를 운반해 와서 서봉스님을 가마에 태워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꼭 같은 꿈을 꾼 두 분 스님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청련암에 울라가 서봉스님의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스님은 앉은 채로 입적하셨고 구린내 나던 방은 이상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그리고 서쪽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비하는 날 밤에는 청련암은 물론 온 산중에 대낮같이 밝은 서기가 뻗쳤다. 절에서는 방광 사실을 몰랐는데

 동네 주민들이 옥천사 근방의 하늘이 대낮같이 밝으므로 필시 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물통 등 소방도구를 챙겨 부리나케 절에 올라왔으나  불은 나지 않았다.

 소란 소리를 듣고 스님들이 나가보았더니 옥천사 부엌이 훤했다.

그리고 어디서 빛이 나는지 알 수 없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로소 옥천사입구 다비장에서 뻗어 오른 방광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사리가 방광을 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절에서 불이 난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이에 감명을 받은 옥천사 스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나왔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옥천사 입구(버스 주차장입구) 바위에 “서봉인오방광탑(瑞鳳印悟放光塔)”이라는 7자의 각자를 새겨 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꼭 같이 방광하신 스님이 한 분 더 계신다. 혜우(惠雨)스님이시다.

혜우스님도 서봉스님과 마찬가지로 늦게 출가하여 청련암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지극 정성으로 구송하더니 입적시에 방광을 하였다.

 서봉스님 방광탑 옆에 “혜우방광탑(惠雨放光塔)”이란 각자가 따로 새겨져 있다.

두 스님의 이야기는 실화로서 일념으로 염불하면 이처럼 사리에서 방광(放光)을 하는 수가 있다.

이 같은 영험은 옥천사 뿐 아니라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대원사 등 여러 사찰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딸아이와 남산과 청련암을 둘러보고  15시 20분에 산책하듯 산행을 마치고

옥천사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남산, 가볍게 산책하듯 고성 남산과 청련암을 둘러보다

 

※인용글 :  청련암 홈페이지 및  한국의산하 산행자료등 인터넷사전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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