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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居昌) 수승대(搜勝臺)와 요수정(樂水亭) 이야기에 빠지다 본문
거창(居昌) 수승대(搜勝臺)와 요수정(樂水亭) 이야기에 빠지다
2013년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8월 막바지 뜨거운 햇살 내리는 날에
카메라를 메고서 길을 나섰다
2013년8월22일 목요일
거창 수승대로 향했다......!
↘ 거창 수승대 약도
♣거창(居昌) 수승대(搜勝臺)
*위치 :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 (7,396㎡(지정구역)
*찾아 오는길
자가용 이용시
- 88고속도로 상.하행선
거창IC ⇒ 거창시내 ⇒ 진주.함양방면 3번국도직진 ⇒ 마리면삼거리 우측방향 ⇒ 위천 . 북상면방면 ⇒ 위천수승대 (16km/20분정도 소요) - 대진고속도로 상.하행선
함양읍. 지곡 IC ⇒ 거창방면 직진 ⇒ 함양.안의면 ⇒ 거창.마리면방면 37번국도 ⇒ 마리면삼거리 좌측방향
⇒ 위천.북상면방면 ⇒ 위천수승대 (약40km/40분정도 소요)
♣ 소개
이곳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든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거창 수승대 주차장에서 관수루로 가는길
여름보다 가을이라면
단풍이 더 아름다울수 있겠다
수승대에는 막바지 여름을 즐기는 피서객이 많았다...!
↗ 수승대 현수교
현수교 아래에서 여름을 즐기러 온 어린이를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 관수루로 가는길엔
이렇게 선인들의 詩가 군데 군데 있다
↘요수신선생장수지지
이 말은 요수 신권선생이 초야에 묻혀 수양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 수령이 400년 된 은행나무가
관수루 옆에서 오랜 세월 희노애락을 지켜본듯 하다....!
↗관수루(觀水樓)
구연서원 남쪽으로는 문루(門樓)인 관수루(觀水樓)가 있는데
이문루는 영조(1740)때 세워진 것으로, 당시의 안의 현감 조영우(趙榮祐)가 명명하여 기문(記文)하고
부사 김인순이 건 누액(樓額)이 있다.
관수(觀水)란 <맹자>의 관수유술(觀水有術) 에 나오는 말' 즉,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군자의 학문적 자세도 이와같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 관수루 내부에 걸려있는 편액
↗구연서원(龜淵書院)
구연서원은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세 분의 행의와 학덕을 경모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사림들이 세운 서원으로 1540년 신권이 구연재를 완성하였으나 1694년 구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철(1868년)되었으나,
강당과 문루인 관수루는 그대로 지속되어지고 있다.
관수루는 서원의 문루로 1740년 창건되었다.
자연암반을 활용하고 틀어진 재목을 하부기둥으로 사용하는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형태 또한 대단히 아름답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암반 사이에 조성된 기단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 바깥쪽의 네 모퉁이에는 적절하게 높이를 조절한 활주를 세웠다.
누하부 정면에 출입을 위한 문을 달았으며, 나머지 공간은 모두 개방하였다.
상층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주변으로 계자난간을 둘렀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 위에 포대공을 올려 종보를 받고 다시 종보 위에서 상부에 소로를 끼운
사다리꼴의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좌우측면에는 충량으로 가구를 구성하였는데 끝단을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기둥머리는 초익공 형식을 하고 있으며, 창방과 처마도리 장혀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며 처마앙곡과 기와의 와곡을 크게 하였다.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는 자연과의 조화라는 한국건축의 가장 큰 특징을 잘 보여주며,
누정건축의 모범이라 할 만큼 입면에 비례가 뛰어나 학술적 가치가 높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연혁
1694년(숙종 20)에 지방 유림이 신권(愼權)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신권이 제자를 가르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에 서원을 창건하여 성팽년(成彭年)과 같이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808년 신수이(愼守彛)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다가 1990년 3월에 복설하였으며.
이곳에는 신권의 사적비와 신권을 위한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성팽년의 석곡성선생유적비(石谷成先生遺蹟碑)
신수이의 황고신선생유적비(黃皐申先生遺蹟碑), 열녀, 효자 정려각 등이 많고, 관수루가 서원의 문루로 서있다.
♣배향인물
1)주벽-신권(愼權, 1501~1573)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호는 요수(樂水)이며 안음출신이다. 임득번(林得蕃)의 사위로 임훈(林薰)과 더불어 학문을 쌓았다.
선생은 천성이 효성스럽고 덕이 많았다. 또 학문에 뜻이 깊어 널리 성현을 찾아 배웠다.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중앙의 회시(會試)에는 뜻을 이루지 못해 관직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평생에 소학(小學)을 중요시하여
그 문도를 가르침에 반드시 소학으로 우선하였다. 후진들에게는 퇴계와 일두선생을 종사(宗師)로 삼으라고 가르쳤다.
공이 야담(夜潭)에 갈 때 천석(泉石)의 절승이 있어 그 귀에 집을 짓고 요수(樂水)라고 편액을 하고
때때로 처형제인 임훈과 이정(李楨)이 모여 여러 날을 강의하며 토론하고 혹은 시를 짓고 소요하다가
세상을 마치니 학자들이 일컫기를 요수선생이라고 하였다 한다.
2)성팽년(成彭年, 1540~159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옹(頤翁), 호는 석곡(石谷). 안음(安陰) 출신. 아버지는 교위(校尉) 한량(漢良)이다
. 임훈(林薰)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있었다.
그러던 중 1569년(선조 2) 아버지가 죽자 학업을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이 고령·거창·현풍 등 경상도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정유명(鄭惟明) 등과 함께 안음에서 기병유사(起兵有司)로 창의문(倡義文)을 발통하는 등 김면의 참모가 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의약(醫藥)·복서(卜筮)·산경(山經)·지지(地誌) 등 유학 이외의 분야도 두루 섭렵하였다.
지평에 추증되고, 안의(安義)의 구연사(龜淵祠)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석곡집≫이 있다.
3)신수이(愼守彛, 1688~1768)
자는 군서(君叙)이며 호는 황고(黃皐)이다. 도백(道伯)이 선생의 학문이 독실하고 효행이 극진함을 수차 조정에 보고하여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셋째 아들 인명(認明)이 한림원의 시종관이 된 은전으로 통정대부의
품계에 오르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경기도 용인의 한천(寒泉)으로 도암 이재를 찾아 뵙고 몇 달 동안 같이 지내고 제자가 되었다.
건물은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 사당, 전사청,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관수루와 강당,
그리고 사당인 구연사를 직렬배치하여 담장을 둘렀다.
뜰에는 구연서원 사적비가 있고 요수 신권을 기려서 세운 ‘산고수장비’, 그리고 '석곡선생유적비' ‘황고신선생사적비’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면에 퇴칸을 둔 전·후퇴집이다.
실의 배열은 가운데 꾸민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칸에 정면 1칸의 방을 들인 평면형식이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 구연서원내 있는 비석들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고 새겨놓은 우뚝 솟은 커다란 비석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의 공적비인데
요수선생의 학문과 덕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영원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듯 하다.
가운데는 석곡 성팽년(石谷 成彭年), 오른쪽은 황고 신수이(黃皐 愼守彛)선생의 공적비이다.
이 세분의 학자들은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제자를 양성했는데
그 문하에서 두 정승과 일곱 명의 판서가 나왔다.
위의 비석도 그 문하생들이 스승을 존경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구연서원 뒤에는 구연사(龜淵祠)가 위치하고 있는데 요수신권 (樂水 愼權),
석곡 성팽년(成彭年), 황고 신수이(黃皐 愼守彛) 세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구연서원 옆에 있는 고목 그리고 열녀 효자비
↗거북바위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바위가 계곡 중간에 떠있는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소나무들이 바위 곳곳에 자라고 있어
마치 평지같은 인상을 준다.
바위둘레는 이황이 수승대라 이름지을 것을 권한 4율시를 비롯, 옛풍류가들의 시들로 가득차있다.
5언 율시 퇴계 이황의 한시.
搜勝名新換 수승으로 이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
遠林花欲動 멀리 숲 속 꽃들은 피어나려 하고
陰壑雪猶埋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寓搜尋眼 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懷 속으로 상상만 늘어나누나
他年一樽酒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雲崖 커다란 붓으로 구름(단애) 벼랑에 쓰리라.
↗요수정(樂水亭)
댓바위 앞의 휘몰아 도는 물굽이를 굽어보고 서있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요수정(樂水亭)이라 한다.
이곳은 요수 신권(愼權)이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서 댓바위와 그 앞으로 흐르는 물
그리고 정자 뒷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조화되어 이곳의 경관을 절경으로 만들고 있다.
↑편액해설:
근차
일구원학동
천석최청가
화정진여세
태심자욕매
마사인기감
음롱부서회
요벽공문조
초연좌단애
을유국월기망
파산후학
윤상진고
*한글풀이:
삼사 차운하여
한구역 원학동에
물과 돌이 가장 맑고 아름다워
꽃은 먼지를 씻은듯 깨끗하고
이끼는 글자를 묻을듯이 깊다
만지면서 느낌을 일으키고
읊으면서 다시 회포를 펼치는데
공중의 바위벽엔 시문으로 둘렀고
초연히 깍아지른 벼랑에 앉아있다.
을유년9월16일 파산 후학 윤상진 지음
↗↘거북바위와 요수정을 뒤로하고
시원하게 돌다리를 건너 송림으로 향해본다
↗송림
↘주차장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
↗주차장 화단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나라꽃 무궁화
거창(居昌) 수승대(搜勝臺)와 요수정(樂水亭) 이야기에 빠져보며
여름 막바지 무더위를 이겨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조들의 풍류는 요즘 세대보다 더 멋지게
보낸것으로 생각 되었다..................!
搜勝臺(수승대)
搜勝名新換(수승명신환)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봉춘경익가)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
遠林花欲動(원림화욕동) 멀리 숲 속 꽃들은 피어나려 하고
陰壑雪猶埋(음학설유매)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寓搜尋眼(미우수심안) 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懷(유증상상회) 속으로 상상만 늘어 가누나
他年一樽酒(타년일준주)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雲崖(거필사운애) 커다란 붓으로 구름(단애) 벼랑에 쓰리라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 석천공(득번)의 아들. 호는 自怡堂. 6賢
解愁送意以示諸君(해수송의이시제군)
花滿江皐酒滿樽(화만강고주만준) 꽃은 강 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동이에 가득한데
遊人連袂?紛紛(유인연몌만분분) 상춘객은 소매를 이어 분분히 오도다.
春將暮處君將去(춘장모처군장거) 봄이 저물어 가는 곳에 그대도 가려하니
不獨愁春愁送君(불독수춘수송군) 봄보다 그대 보냄을 더 근심하노라.
석곡 성팽년(石谷 成彭年, 1540-1594). 원학동.
搜勝臺(수승대)
華仗春俱至(화장춘구지) 봄이 오면 꽃이 일시에 피어나니
龍門節正佳(용문절정가) 용문의 봄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溪肥磯半沒(계비기반몰) 시냇물 부러 바위가 반쯤 잠기고
山黑雨全埋(산흑우전매) 산은 컴컴하게 먹구름이 덮고 있네.
石帶詩仙字(석대시선자) 바위엔 시와 신선 이름 빼곡이 새겨 있고
盃寬野客懷(배관야객회) 술잔은 나그네의 소회를 넉넉하게 하네.
莫愁雲日暝(막수운일명) 구름이 날마다 덮이는 것 걱정하지 말게
餘照在層崖(여조재층애) 남은 햇빛이 층층의 벼랑에 비추고 있으니
거창(居昌) 수승대(搜勝臺)와 요수정(樂水亭) 이야기에 빠지다
2013.08.22[바다늑대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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