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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雙磎寺). 禪과 茶의 기원지 삼신산 쌍계사에 禪정신을 보다 1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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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雙磎寺). 禪과 茶의 기원지 삼신산 쌍계사에 禪정신을 보다 1부

바다늑대FORCE 2013. 4. 5. 15:06

 

쌍계사(雙磎寺). 禪과 茶의 기원지 삼신산 쌍계사에 禪정신을 보다

▶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가지 십리벚꽃길을 걸어서

쌍계사에 도착했다....!

처음 쌍계사를 찾은때는 아마 스무살때쯤인것 같다

동네 친구랑 지리산 쌍계사 코스에서 지리산 중산리로 내려왔을때가

처음인듯 하고

두번째가 참선을 공부하는 스님한분과 동행해서

쌍계사의 뜻을 처음 알았다.

양 쪽으로 계곡이 흘러 쌍계사라고 한단다......!

雙 둘쌍자에 磎 시내계 두개의 시내가 흐른다..........◑

◈ 쌍계사(雙磎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화개면 쌍계사길 59)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로 43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723년(성덕왕 22)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당에서 차(茶) 씨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중창하면서 대가람이 되었다.
886년(정강왕 1) 쌍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巖)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전형적인 산지가람배치로 남북축선상에
금강문·천왕문·팔영루(八泳樓)·대웅전(보물 제500호) 등이 일직선으로 있고,
대웅전의 좌우에 설선당(說禪堂)과 요사가 있다.
이밖에 명부전·나한전·팔상전(八湘殿)·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금강문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
·부도(보물 제380호) 및 여러 점의 탱화(幀畵)가 남아 있다.[브리테니커사전 참조]

↕ 쌍계사로 진입하는 다리 쌍계1교

양측으로 설비한 노점상인

주로 산나물에 약초 엿 그리고 한약제등등....

↗ 쌍계

두개의 바위로 석문이 만들어 져 있고

바위엔 쌍계(雙磎)라고 적혀있다

↗↘ 매표소와 입장권

산행하는 등산객 그리고 사찰을 찾는 관광객

봄나드리 사람이 모습에서 따스한 봄늘 볼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2500원 현금

단체손님도 일체 현금영수한다. 카드결제 불가..! 그르므로 단체여행시 입장료를 현찰로 준비해야

가능하다 ,만약 현찰이 없다면 인근에 자동현금지급기가 없기 때문에 5km아래 화개까지 나가야 한다 참고 하시길..!

↗ 입장료를 지불하고 작은 다리 건너면

첫번째 샘이 나온다.......목 좀 축이고 가세요...!

↘ 포장도로를 약 1km 걷다보면 쌍계사 일주문과 연결

불일폭포로 해서 지리산 산행자도 이길를 지나야 하기에

입장료를 내야한다 문화재관람을 하든 안하든....!

 

↗ 일주문(一株門)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

이 문안에 들어서면 알음아리 두지말라

無解空器大道成滿 (무해공기대도성만 )

알음아리 비운 그릇에 대도가 가득차리라

☞ 편액엔 삼신산 일주문이라 적혀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이 나온다

☞ 일주문은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한다.

문 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불교설화]

↗ 金剛門 (금강문)

品類無邊形色別 (품류무변형색별) 품류가 갓이없고 형색이 다르지만

隨其願力現神通(수기원력현신통) 그 원력을 따라 신통을 나투어서

奉行佛法常爲護(봉행불법상위호) 불법을 봉행하고 늘 보호하며

利益衆生一切同(리익중생일체동) 중생모두 하나같이 이익되게 하도다.

두분의 금강(인왕)역사가 서 있는데 그 기원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인 야차에서 비롯되었으며,

사찰의 첫문이 왜 하필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키는 금강문이 있을까?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부처님을 외호하는 성중들의 맨 앞에 금강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계시는 금당에도 처음으로 금강문을 두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금강(金剛) 이란 말 자체의 의미 때문이다

금강이란 매우 단단하여 부서지지않는 다이야몬드에 비유한 것으로

그 어떤 물건도 깨뜨릴수 있지만 그자체는 깨어지지 않는다 하였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밀적금강역사와 사자를 타고있는 문수동자가 있다.

밀적금강은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일을 낱낱이 다알고 계시는

금강역사로 입을 다물고(훔금강) 두손을 펴서 방어 자세를 하고 있고,

문수동자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사찰에 들어오는 모든 중생들은 불자의 큰 서원 중 두 가지인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말씀을 배워야함이 문수의 지혜와 같고 사자의 용맹스러움과 같아야한다는 것을 일러 주고있다.

↗ 天王門(천왕문)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寶劒)을 잡았으며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梵王帝釋四天王(범왕제석사천왕) 범천왕과 제석천왕 그리고 사천왕이
佛法門中誓願堅(불법문중서원견) 불법을 수호하는 서원이 견고하여

列立招提千萬歲(열립초제천만세) 가람주위 늘어서서 천만년을 수호하니

自然神用護金仙(자연신용호금선)자연스런 신통묘용 부처님을 보호하네.

[신중단 장엄송]

↗ 9층석탑 과 팔영루

천왕문을 통과하여 들어서면 9층석탑과 팔영루가 보인다

☞ 八泳樓(팔영루)는

신라시대인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774∼850)가 창건하였다.

그뒤 조선시대인 1641년(인조 19)에 벽암(碧巖) 각성(覺性)스님, 1978년에 고산스님이 각각 중수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게 맞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이자 범패 명인들의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고 한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 목조와가로서 2층으로 되어 있고 총 건평은 106평이다.

↗범종루

↗ 대웅전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혜소(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산지(山地) 가람의 대표적 일례이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본전이다.

중앙의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昌枋) 밑으로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기둥이 그만큼 높아져서 규모도 큰 편이다.

좌우 끝의 두 문은 주간(柱間)을 좁혀 두 짝으로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평방 위에 배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의 3칸은 2개씩이고, 좌우 끝에는 1개씩이다.

공포의 구성도 내외 모두 삼출목(三出目)으로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내부는 첨차(檐遮)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첨차가 교두식인 것으로 보아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 설선당

조선시대에 이르러 1641년(인조 19)에 벽암선사(碧巖禪師) 각성이 중수하였으며

1801년(순조 1)에 화악선사가 중수하였다. 2002년에는 고산스님이 다시 고쳤다.
설선당은 승려들에게 불교의 경전(經典)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장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 형태로 목조 기와집 1동이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이 쓴 ‘설선당’ 편액이 걸려 있다.

↘ 적묵당

적묵당은 불도를 닦는 스님 중 처음 배우는 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세웠다.

조선 인조 19년(1641)에는 벽암선사가 넓혀 짓고 1978년에는 고산 스님이 고쳐 지었다.
정면 6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현재 쌍계사 강원 스님들의 정진처로 쓰이고 있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1873~1948)이 쓴 ‘적묵당’이 걸려 있다.

↗ 금강계단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사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수계하시고

전수계맥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월 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제5일인 7월 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心直名持戒 心曲名毁犯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 直心勤修行 理利俱圓成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나 또한 서상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지고,

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금강계단조성기문

↗ 마애불

금강계단 좌측 뒤에 있는 마애불이다

↘ 금강계단 우측에 있는것인데

아마도 49제등 ..행사후 태우는곳인듯하며 탐처럼 예술적이다.

↗ 화엄전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좌우협시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입상을,

그 주위에 16나한상과 인왕상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이 가운데 가섭존자상은 고승의 풍모가 느껴지고,아난존자상은 지적이고 준수한 풍모를 잘 표현했다.
1641년(인조 19) 벽암(碧巖)스님이 응진당을 창건하였는데,이것이 나한전의 전신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맞배지붕을 한 익공계 건물이며 지붕 옆면에 풍판(風板)이 있다.

익공의 형태는 출목이 있는 2익공 짜임으로 윗부분에는 연화무늬를 보 머리에 끼워 장식하였고

안에서는 초익공과 2익공을 맞붙여 운공(雲工) 형태로 조각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높이가 낮고 가늘다.

주두(柱頭)는 기둥 윗부분 지름의 1.5배 가량으로 매우 넓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모니불 윗부분 장엄장식은 얇고 긴 띠모양의 판재를 하나 걸치고

휘장모양의 단청으로 생략하였다.

☞☞☞

사진파일 관계로 2부에서 연결하여 소개코져 한다

쌍계사(雙磎寺). 禪과 茶의 기원지 삼신산 쌍계사에 禪정신을 보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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