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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山).신의터재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상주시 무지개산에 오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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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山).신의터재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상주시 무지개산에 오르다

바다늑대FORCE 2025. 7. 30. 21:03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

신의터재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상주시 무지개산에 오르다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

    높이 : 441m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어산리에 걸쳐 있는 산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나의산행일 :

    20205년07월30일 목요일 날씨 맑음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 나의산행코스 :

    신의터재→화령재11.9km안내표지목 →국가지점번호라바4244.2222표지 →화령재9.7km표지목 무지개산 갈림길

→무지개산(원점회귀)

10.2km  4시간20분소요(램블러Ramblr앱 기준)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개요:

화동면 어산리에 있는 산으로 어산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인 돌적골 북쪽에 위치하며

어산리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구시대이산 (421m)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무지개산이라는 이름은  무지개골에서 유래되었으며 무지개골은 개울을 뜻하는

묻이개골에서 전음화 되었다고 하며 무지개산(441m)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있는 육산이다.

야트막하면서 빼어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지개 만큼이나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그러한 산의 하나다.

밤원고개 북쪽발치는 갈령에서 남하한 상주(尙州)에서 가장 긴 이아천이 살짝 핥다가 함창으로 북진한다

밤원에서 하우산까지의 우산(愚山)칠리강산(七里江山)의 시작인 것이다

무지개산은 아름다운 무지개폭포가 있으며 주변에는

낙화담 철새도래지 판곡저수지(板谷貯水池)등이 있다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산행지도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

나의 램블러(Ramblr) 궤적도(軌跡圖)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

나의 Relive궤적(軌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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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07월30일 목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폭염속에 몇일 혼산도 못했고 산악회도 계곡으로 야유회겸 산행이 많아 합류하지 않았고

백두대간(白頭大幹)걷는게 하나의 산행의 의미와 목표를 정한김에 

오늘 중복(中伏)이지만 더위는 더위로 맞서며 신의터재가 있는 상주로 길을 나서본다

신의터재표지석을 인증하면 백두대간 표지석20번째가 되기에 그러한 이유도 작용했다

무더운날 얼음물2개 포카리스 1명 오이2개 사과1개 사탕2개가 유일한 식량이며

신의터재를 향해 합천대로(川大路)를 달려서 상주(尙州)로 길을 나섰다

신의터재표지석 280m

신의터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의터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먼저 상주시장이 세운

신의터재에서 인증 사진을 남겨본다

신의터재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임란 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군을 도륙하고 임진 四월 二五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는 후부터 신의터재 라 불리었으나 일재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五拾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一九九六년 十二월 상주시장

五拾(오십)

백두대간 신의터재 2010년3월 산림청

상주시 백두대간 주변마을은 화동(化東), 화서(化西),화남(化南), 화북(化北)이라는

지명을 가진 경북 상주시 4개의 면(面)이 있으며 신의터재는 해발 고도 280m의

야트막한 고개로서 상주시 화동면 과 내서면을 연결하고 상주 방면으로 이어진다.

신의터재는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分水嶺)이며 개머리재에서 화령 구간은 개머리재를

시작으로 지기재, 신의터재, 윤지미산,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화령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신의터재 백두대간 안내표지

산림청에서 설치한 신의터재 백두대간 안내표지 안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의터재는 해발고도 280m의 고개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개머리재에서 화령 구간은 개머리재를 시작으로 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화령으로 연결된다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이전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렀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렀으며,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御)으로 부터 승진 또는 복직 등 좋은소식(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단고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은 사연 많은 고개이다

※御(어)임금에게 관계된말의 머리에 붙이어서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는말

義信(의신) 옳의 의 義. 믿을 신

백두대간 신의티 280m 화동산악회

신의티 관련한 지역 경북일보(2016.01.21)신문 자료를 보면

상주시 화동면(면장 장세철)이 백두대간 신의터재 정상을 일컫는 '신의터재'와 '신의티'란 2가지 지명에 대한

혼용 설명문을 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이곳의 지명은 당초 신의현(신의티)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어산재로, 현재는 신의터재와 신의티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이곳 표지석은 1996년 신의터재(상주시장)에서 2009년 신의티(화동면 산악회),

2010년 신의터재(산림청)로 설치돼 있다.
장세철 화동면장은 "지역 주민과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에게 2가지 지명을 사용하게 된 경위를

알리고자 설명문을 세웠다"고 말했다.
한편 상주시와 화동면은 지명이 혼용되고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011년 상주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통해 '신의티'로 결정, 경상북도에 보고했지만

같은해 12월 화동면의 일부 학자들이 '신의터재'가 맞다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반론을 제기해

경상북도 지명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지명 조정이 부결됐다.

신의터재와 무지개산을 품고 있는 화동면(化東面)은 경상북도 상주시 중서부에 있는 면()으로

서남경계에 팔음산(762m)이 솟아 있으며, 대체로 300~5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동북부 산지에서 석천이 발원하여 면 중앙부를 지나 남쪽으로 흐른다고 하며

경지는 이들 소하천 연안을 따라 분포하고 1980년대까지는 광업이 행해졌으나,

폐광 이후 면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특산물로는 포도·오이가 생산된다고 하는데

산행지를 가다보니 대부분 포도밭이 많이 보였다

백두대간종합안내도

신의터재에서 화령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무지개산 들머리에있는 백두대간종합안내도이며

여기서3m정도 포장도로를 올라가면 우측이 넓다란 임도처럼 나오산길이 들머리이다

화동면(化東面)에서 시작하는 산행지이며 화동면은 상주시의 소재지로부터 서쪽으로 약 24㎞ 지점에 있으며
해발762m의 팔음산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면소재지는 백두대간 중심선에서

700여m 떨어진 해발280m의 고냉분지에 위치하고 있다고한다.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신의터 고개에는 백두대간 등산코스의 구간 출발지로

연중 산악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고냉분지의 비옥한 토지에서 영롱한 아침이슬 머금고 자란

각종 농산물은 맛과 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팔음산 포도와 오이는 천혜의 자연조건과 농민들의 노력과 정성이 깃든 명품이라고 한다

화령재 11.9km안내표지목

2023년8월에 화령에서 비조령까지 백두대간길을 걸었고 오늘은 신의터재에서 백두대간길을 걸어본다

백두대간길을 걸을때 인근 마을 유래를 찾아보면

화동면 이소리(以所里)관재마을은 화동중학교의 동쪽으로 있는 마을이며

신라 때 관가가  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기왓장이 나온다고 한다.

현재 화동중학교 운동장 쪽에 감옥이 있었고,

그 감옥을 관장하는 관리들이 거주했으므로 관제라 한다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화령현의 관제부곡(灌濟部曲)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며

관제부곡에는 임(任). 고(高). 전(全)씨 성(姓)이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

백두대간 산길은 얼마나 많은 산행자들이 걸었던지 동네 오솔길처럼 산길이 평탄하고 걷기가 좋은편이다

그런데 더운날씨 탓인지 날파리가 너무 성가시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앵앵거려서 너무 귀잖았고

배낭을 풀어 벌레 퇴치제를 뿌려도 효과는 미미할 정도로 날파리가 너무 많았다

의복밖으로 살갖이 노출되지 않게 하고 눈도 썬그라스로 가렸지만 그 틈사이로 날아들어 오는 날파리도 있었고

내가 땀이 많아서 땀냄세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족족 바로 코앞에 알짱거리며 나를 엄청나게 환대해 주지만 나는 싫다

화령재 안내표지목과 국가지점번호

혼산이라 조금 두려움 마음이 들어 등산스틱을 손오공 여의봉처럼 생긴 스틱으로 교체하여 걸었는데 무겁다

행여 산길에 멧돼지나 들개를 만날까 싶어 미리 마음 든든히 챙겼는데 이것도 짊이 되었다

예전 혼산으로 산길을 걷다가 들개 두마리를 만났는데 나도 놀라고 개도 놀라 도망쳤기에 다행이였지만

그래도 특수부대 출신인데 혼자걷는다고 겁은 할수 있겠지만 나이가 환갑(還甲)이다

평일날 혼자 유유자적 걸을수 있는것은  30년 공직생활 퇴직도 했고 놀다보니 백수(白手)에 적응이 된듯 하다

혼자걷는 산길은 매미소리와 자기구역에 들어왔다고 경고하는 산새소리 그리고 귀잖은 날파리와 친구가 되었다

무지개산 야생화(원추리)

여름날 산을 이쁘게 만드는 야생화는 원추리가 원뜸인듯 싶다 그래서 원추리 군락지를 찾아 산행자도 있을만큼

원추리꽃은 산꾼들에게 여름날 익숙하고 예쁜꽃이 되었고 원추리는 자연이 주는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원추리는 특유의 향 그리고 맛을 가진 나물이기도 하며 꽃과 뿌리까지 건강에 좋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항산화작용 면역력 강화 소화기능개선등 만병통치약인듯 싶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과 국가지점번호

중복더위가 있어도 백두대간길을 걷는길은 숲이 주는 그늘과 향기가 그나마 열기를 식혀주었다

나의 백두대간길은 구간을 걷는때도 있지만 차량회수를 위해 중간지점에서 회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택시비도 만만치 않은데 보통 기본적으로 5만원 이상이라 백수(白手)인 지금은 더 그렇다

일반적인 산악회속 세간에는 대간꾼들에게 "일행이야 어떻게 되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빗대어 산에 미친자들 무슨 의미로 산을 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여태 백두대간꾼들과 백두대간길을 걸은적은 한번도 없고 혼산이 나의 대간길이 되었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

무더운 여름날에만 대간길을 걷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번째는 하루 해가 길어서 더 많이 걸을수 있고

두번째는 숲이 울창해서 숲이주는 그 향기가 좋아 나는 늘 여름날 대간길을 걷는다

간간이 숲속에 생기를 머금고 피어나는 버섯과 신갈나무, 노간주나무, 옻나무, 초피나무 등이 친구이며

무지개산 백두대간길에는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팻말이 보였다

신의터재는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分水嶺)인데   동쪽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서쪽 물은 금강으로 흘러 든다는 의미다

분수령을  사전적 의미를 보면 근원이 같은 물이  줄기로 갈라져 흐르기 시작하는 산마루나 산맥라 되어 있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

신의터재에서 화령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길은 그냥 해발고도300m안팍의 그냥 둘래길 처럼 힘들지 않고 걸을수 있는 산길이며

유년기 시절 마을 뒷산 오솔길 따라 냇가에 물놀이 하러 가던길과 흡사한 산길이었다

비산비야(非山非野)는 산도 평야도 아닌 땅을 말하는데 상주를 지나는 백두대간을 보며 말하는 고사성어의 하나이며

장엄했던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지나면 고도를 낮추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맥을 이어가는데

높은 산도 아니요, 그렇다고 들도 아닌 해발 200~600m 사람이 기대어 살만한 곳이다.

옛 중모현(경북 상주시 모서・모동면)과 화령현(상주시 화동・화서・화남・화북면)의 첫 글자를 따 ‘중화지구’로 부르며

백두대간 전 구간 중 해발이 가장 낮은 곳이어서 아주 옛날부터 동서 교통의 요충지였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과 사초(가는 잎그늘 사초)

가는 잎그늘 사초가 백두대간길을 초록바다를 만들어 주며 유년기시절엔 사초끝을 묶어 놓으면 지나가는사람이 걸여

넘어지도록 하는 그런 개구쟁이 놀이가 생각나게하고 도심에서 이렇게 초목이 우거진 산길을 걷는다는건

발품을 팔아 오기까지는 그 묘한 산이주는 기쁨을 알수는 없다

백두대간은 물길을 나눠 자연스럽게 행정구역과 말투 습관 문화를 가르고 있지만

상주지역 중화지구는 그렇지 않다고 하며 마루금 좌우로 모두 경북 상주 땅이고 경북과 충북 도계를 이루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형제봉에서부터 도계를 벗어나 상주 땅을 가로지르며 중화지구를 거쳐

추풍령 조금 못 미친 국수봉까지 이어지는데 야트막한 마루금에서 벌어진 삼국 쟁패의 산물이랄 수 있다.

험준한 산세는 천혜의 요새가 되지만, 낮은 마루금은 소통의 장이자 박 터지는 전쟁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징버섯

경남 신청지역에서는 극한호우로 인하여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피해를 주고 하였는데 상주지역은 호우피해는 없나보다

신의터재는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낙화담의 안타까운 사연과 맥을 같이 하는데 최초의병장 김준신은 임란 때

최초로 창의의 깃발을 들고 상주 북천전투에서 수많은 왜군을 죽였지만 장군이 순직하자 왜병들이

장군의 고향 판곡리로 쳐들어와 학살을 자행했는데, 부녀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으려 연못에 몸을 던졌고

그 연못이 무지개산에 있는 낙화담이라고 한다.
무지개산 백두대간길은 나지막한 산줄기와 논두렁, 밭두렁, 과수원길, 사연 많은 고갯마루를 지나고

말 그대로 산도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이며 화동면 무지개산 주변 과수원에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가 씨알을 키우며 영글어 가고 있었다.

무지개산 야생화(파랭이꽃)

백두대간길을 나홀로 유유자적 걷다보면 이렇게 파랭이꽃과 이야기도 하고 숲과 담소를 나누며 걸을수 있어 좋으며

가끔가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냅다 도망가는 고라니도  엉덩이도 볼수가 있다

파랭이꽃은 석죽화(石竹花)·대란(大蘭)·산구맥(山瞿麥)이라고도 하며 꽃의 모양이 옛날 민초들이 쓰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문학작품에서도 소시민을 패랭이꽃에 비유한다.

파랭이꽃에 얽인 전설속에는  옛날 힘이 센 장사가 있었는데 그는 인근 마을에 밤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석령(石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화살을 겨누어 그 돌을 향해 힘껏 쏘았는데 너무나 세게 쏘아 화살이 바위에 깊숙이 박혀서 빠지지가 않았다.

그 후, 그 돌에서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고운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바위에서 핀 대나무를 닮은 꽃이라 하여

석죽(石竹)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서민들이 쓰던 패랭이 모자를 닮았다고 하여 패랭이꽃으로 불렀다.

무지개산 갈림길

신의터재4.5km 화령재7.4km 무지개산0.2km라고 안내된 표지이며 무지개산이 백두대간길에서 200m 상부에 위치하고

대부분 정상 산봉우리가 백두대간길을 지나가지만 무지개산만 200m살작 벗어나 있지만 처음 백두대간길을 개척한 사람이

무지개산 오르막길을 힘들어 옆으로 빗겨나간듯한 느낌을 주었다

노란색 원추리 꽃을 보고 지나면 무지개산은 노간주나무 나무도 보이고 유독 노간주군락지가 많은데

옛날 비누가 없던 시절에 그 껍질을 천연 세제로 사용했다고 하며 열매는 약재나 야생동물의 먹잇감이 됐고

뿌리는 토양의 구조를 이롭게 해준다는 친환경 생태 식물이라고 하니 그래서 노간주군락지 보호구역이구나 생각했다

무지개산441m

이렇게 혼자서 백두대간이 있는 무지개산이랑 인증사진하나 남겨보며 동네뒷산과 같은 해발고도 441m이며

처가 보다 많이 낮은 해발고도인데 지리산 근처에 있는 처가집이 해발고도620m이면 179m나 낮은 산이다

무지개산을 품고있는 상주시는 쌀 누에 목화가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 상주이며

고령가야(古寧伽倻)의 고도라고 하며 이곳은 고대국가가 시작된 이래 삼국의 각축장이었다고 한다

산세가 완만하고 너른 벌판을 가진 곡창지대인 데다 백두대간 물줄기가 만들어 낸 사철(沙鐵)까지 풍부해서 이며

고령가야는 가야권 최북단에서 화려한 철기문화를 꽃 피웠지만 신라에 맨 먼저 복속돼 6가야 중

가장 짧은 역사만 남긴 채 사초에서 사라졌다.
신라는 5세기 중반 백두대간 너머 백제를 호시탐탐 노렸는데 백두대간 중에서 고도가 낮은 중화지구를 주목했고

북쪽 보은에는 삼년산성을, 남쪽 상주에는 금돌성을 쌓아 백제 진출의 교두보를 구축했고 마침내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중화지구가 백두대간 서쪽인 충북이 아니라 경북 상주 땅이 된 것은

아마도 신라 백제의 마지막 국경이 그대로 굳어져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지개산441m

화동면(化東面) 어산리(於山里)에 있는 산으로 어산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인 돌적골 북쪽에 위치하며

어산리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구시대이산 (421m)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무지개산이라는 이름은  무지개골에서 유래되었으며 무지개골은 개울을 뜻하는

묻이개골에서 전음화 되었다고 하며 무지개산(441m)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있는 육산이다.

야트막하면서 빼어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지개 만큼이나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그러한 산의 하나다.

하산길

무지개산만 찍고서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 걸어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화령으로 가서 택시타고

신의터재로 갈수도 있지만 혼산의 문제점 비싼 택시비가 이제는 백수가 되니 무서워 졌다

무지개산을 품고 있는 화동면(化東面)지역 역사적 특성을 보면 인심 순후한 충절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께서 직접 만사를 지어 죽은 영혼을 조상하고 충절을 가상한 무절 신유정 선생의 만사를 보관해 둔

평산리이 어만각 있으며  신유정 선생은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형조, 예조, 공조판서를 역임하셨고

태종조에는 여진을 소탕하여 대공을 세웠다고 한다.
판곡1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항전분투하여 큰 공을 세우고

32세의 나이로 순절한 김준신 의사의 충절을 그린 제단비가 있으며

패전한 왜적이 김준신의사의 가족을 살육하기 위하여 마을을 기습함에 왜병에게 살육되느니

스스로 죽는것이 낫다하여 부녀자들이 몸을 던진 못이 낙화담이라 부르고 당시의 의열을 추모하고 있다고 한다.

무지개산 야생화(짚신나물)

하산길에 노랗게 핀 짚신나물 향기를 맡아 보며 더위에 지친 맘과 육체를 충전해 보는 여유를 가졌다

무지개산을 품은 화동면은 백두대간의 남한구간 중심지로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며

중화지구의 중심지로서 산과 물 자연자원이 풍부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해서 많은 산행자들이 찾는가 보다

화동면(化東面)대부분이 산악지대로서 1980년대까지 광산종사자가 많았으나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폐광함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주변을 보면

맛있는 포도 샤인머스캣 포도밭이 많이 보였는데 한박스 구매하려고 했지만 수확철이 아닌가 보다

먼지털기

오늘산행은 백두대간 신의터재에서 화령구간중 무지개산까지 산행을 했는데 도중 엉뚱한 산길로 빠져 30분정도 알바한 탓에

배낭이랑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용케도 신의터재에는 이렇게 먼지털이가 있어 배낭이랑 신발을 털수있게 되었다

신의터재에는 다른곳에서 볼수 없는 음용수 수돗물도 있었는데 덜 녹은 얼음병에 가득채워 시원하게 수분 보충도 덤으로 하고서

잠시 생각해본건데 요즘 사람들은 걷는다는 것을 거의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듯 싶고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여 살아가는듯  자신이 아닌 것에 의존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자동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지 오래고

인터넷이 없으면 소통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명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기에 그 털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유년기 처럼 걷고 또 걸어며 마음의 정화와 힐링이 되는 시간을 자주 만들면 좋겠다

산행종료

백두대간 신의티 화동면 영롱한 아침이슬 머금은 명품포도의 본고장 홍보표지판 아래서 산행을 종료해본다

신의터재에서 화령재까지 가야 하지만 무지개산에서 돌아와야 한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백두대간 신의터재 표지석 하나를 얻었다는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상주시 화동면에 얽힌 그리고 신의터재에 얽인 역사적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생각해 보면 지금 현재의 세상은 예전 삼국시대와 같은꼴이라는 생각도 난다 왜냐면 선거하면 뚜렷이 지역이 동서로 갈라지고북쪽 핵으로 무장한체 다른동네이니 어찌 삼국시대라 하지 않겠는가?

백두대간 상주시 무지개산(白頭大幹 尙州市 무지개산)산행은 신의터재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상주시 무지개산에 올라보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국지명유래집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0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상주시.화동면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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