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늑대 FORCE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푸르고 빛나는 청화산에서 새(鳥)의 목처럼 생긴 문경 조항산(聞慶 鳥項山)까지 걸어보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푸르고 빛나는 청화산에서 새(鳥)의 목처럼 생긴 문경 조항산(聞慶 鳥項山)까지 걸어보다

바다늑대FORCE 2025. 7. 4. 22:28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푸르고 빛나는 청화산에서 새(鳥)의 목처럼 생긴 문경 조항산(聞慶 鳥項山)까지 걸어보다

 

▲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 

    높이 : 970m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와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에 있는 산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

    높이 : 951m

    위치 :  충청북도 괴산군의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경계에 있는 산

 

▲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나의 산행일 :

     2025년07월04일 금요일 날씨 약간흐림

 

▲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나의  산행코스 :

백두대간 늘재→정국기원단비→헬기장청화산→시루봉삼거리→갓바위재조항산→737봉→고모치→궁기리회관

11.1km 6시간51분(램블러 앱 기준)

 

▲  상주시 청화산(尙州市 靑華山) 개요 :

경상북도 문경시의 농암면 화산리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에 있는 산이며

해발고도 970m로서 '청화' 지명은 택리지(擇里志)에 "청화산은 내외 선유동(仙遊洞)을 뒤에 두고

앞에는 용유동(龍遊洞)을 임하였다. (중략)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리는 것이 없으니 자못 복지이다."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우복동(牛腹洞)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란 호를 갖는

이중환(1690~1752)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령 상주지명총람(尙州市地名覽 2004)에는 이중환이 이 산을 좋아해 여러 해 머물렀고

그 호까지 청화산인으로 지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대야산으로부터 맥을 이어 청화산이 있는데 그 아래에 용유동이 표시되어 있고,

청구도(靑邱圖)에는 청화산 바로 옆에 내선유동(內仙遊洞)이 있다.

 

▲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개요 :

충청북도 괴산군의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해발고도954m이며 백두대간 줄기에 속하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과 남으로 청화산과 이어져 있다.

이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조항산(鳥項山)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대간 늘재 →고모재 산행지도

 

  백두대간 늘재 →고모재 산행지도

나의 램블러(Ramblr) 궤적도(軌跡圖)

 

  백두대간 늘재 →고모재 산행지도

나의 Relive궤적(軌跡圖)

→→→→→→2025년07월04일 금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안전문자가 온열질환 주의 야외활동 자제라는 안전문자가 연어어 날아오는 7월

오늘도 백두대간길을 걷기위해 나혼자 운전해서 늘재로 향해본다

요즘 대부분 산악회에서는 산행보다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계곡으로 야유회겸 계획이라

폭염속 일지라도 장맛비가 오지 않으니 산길 걷기에 좋아 나는 백두대간길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백두대간(白頭大幹)늘재 380m

백두대간(白頭大幹)늘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846위치하며 내가 도착시에 백두대간 표지석 뒷편 블루베리농장에서

수확중 간식을 하고 있어서 끝날때 까지 기다렸다가 백두대간표지석과 사진을 촬영할수 있었고

블루베리 수확중 일회용컵에 맛보라고 주시기도 하였다

백두대간비는 출향인사인 학교법인 금강학원의 김맹석 이사장이 비를 기증 했다고 하며

비(碑)건립 장소가 상주시 화북면 백두대간의 중심 큰 산맥의 지세와 미륵관음의 너그러움 속에 위치하고 있어

상주시와 그리고 화북면의 기상과 함께 지역의 화합과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을 했다고 하며

늘재는 해발고도380m의 고개로 속리산 문장대를 지나 밤티재를 거쳐 이종환이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 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청화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상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늘재 380m

오늘 산행은 늘재에서 청화산 까지만 계획하고  왔지만 막상 백두대간 표지석을 보니 쭉 걷고 싶었다

늘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을 연결하는 32번,49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한강(漢江)과 낙동강(洛東江)의 분수령(分水嶺)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개 가운데 진고개, 진재는 긴 고개라는 뜻이고 늘티,늘재, 늘고개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으로 이 늘재 또한 느르어진 고개를 의미한다

늘재 입구에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라고 시작하는

성황당 유래비가 서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늘재 표지석 뒷면

 

속리산(俗離山)

白頭嫡脉走束陲(백두적맥주동수)

백두산 큰 산맥이 동으로 뻗어와서

兄是金剛弟俗離(영시금강제속리)

금강산 먼저 서고 속리산 뒤에 섰네

彌勒觀音寬世界(미륵관음관세계)

미륵관음 양봉높아 자비 세계 너그럽고

忠淸慶尙壯根基(충청경상장근기)

충청 경상도의 경계한산 장엄하도나

白南 金始鑌(백남 김시빈)

 

白南 金始鑌(백남 김시빈)선생은 조선 후기에, 필선, 장령, 울산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휴백(休伯), 호는 백남(白南). 영천(榮川) 출신이며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金鼎輝)이며, 어머니는 이상언(李尙)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弼善)을 거쳐 1724년(영조 즉위년) 장령(掌令)이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두둔하다

오히려 화근이 되어 명천군수로 좌천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자 채성윤(蔡成胤)의 천거로

영남의 요충을 방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뽑혀 울산부사가 되었다.

그곳에 부임하여 폐습을 과감히 개선하는 등 선정을 베풀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낙동강(洛東江) 한강(漢江)분수령(分水嶺)

강원도는 우리나라의 큰 물줄기인 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는 곳이며

우리나라의 젖줄인 한강은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서해로 들어가고,

태백시 천의봉 너덜샘(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부산시 사하구 낙동강 하굿둑에서 남해로 들어간다.
두 개의 큰 물줄기 외에도 한탄강, 오십천과 남대천 등의 큰 내가 흐르며

설악산과 오대산을 비롯한 큰 산들이 백두대간을 비롯한 여러 산줄기에 자리한다.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에서 말한 것처럼 강원도는 동서로 좁고 백두대간 동쪽으로 지형이 길게 이어지며

양양ㆍ강릉의 남대천과 삼척의 오십천 등이 흐르지만 그 물길이 짧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안쪽에서 발원한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은 1300리쯤의 긴 물길이며

한강은 길이가 514km로 한반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지만,흐르는 물의 양과 유역면적은 압록강에 이어 두 번째다.

517km에 이르는 낙동강은 나라 안에서 세 번째로 긴 강으로, 낙동정맥 동쪽을 제외한 영남 지방 대부분을 지난다.

또한 분수령(分水嶺) 의미를 보면  分나눌(분) 水 물(수) 嶺 고개(령)

분수령(分水嶺)용어를 보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라는 말은 우리 고유의 지리 개념인 산경표의 원리이기도 하다.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은 산을 범하지 않는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물을 넘지 않으며 물을 나눈다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가 된다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늘재 안내표지와 청화산(靑華山)안내표지목

북쪽 대야산에서 남진하여 조항산을 지나온 백두대간이 청화산에 이르면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어

늘재로 떨어진 다음 다시 속리산으로 이어져 나가며 백두대간 마루금상의 위치한 청화산(靑華山 970m)으로

무더위 속에서 산길을 걸어보며 청화산은 경상북도 상주와 문경시, 충청북도의 괴산군과 경계를 이루며

한축을 담당하는 산이기도 하며 속리산 문장대를 이어 늘재와 청화산으로 백두대간길을 이어본다 

백두대간 청화산(白頭大幹 靑華山) 초입구간

더위가 기승(氣勝)을 부려도 산속의 수목이 잘 막아 주기에 땀은 흘려도 더위는 느끼지 않을 만큼 좋다

산이 주는 향기가 그만큼 무더위도 식혀 주기에 오늘도 이렇게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산길이다

청화산 최단코스는 원적사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하는데  청화산 원적사(圓寂寺)는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학이 승천하는 혈이 있다고 전해져서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 수행처로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하며

오랜세월 스님들이 떠나고 쇠락해 가던 사찰을 서암스님이 중창하였다고 하고

서암스님은 속세를 한번 떠나면 속리산(俗離山)이고 한번더 떠나면 청화산(靑華山)이라고 하였다라고 한다

청화산2.2km안내표지목

청화산 남쪽 기슭에는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가 있는데 용유리는 소의 뱃속처럼 안온한곳 즉 우복동(牛腹洞)이라 하는

십승지(十勝地)라 하는데  택리지(擇里志)의 이중환(李重煥)은 30여년 동안 전국을 방랑하며

우리 산천을 담은 청화산인(淸華山人)은 무릇 살 터를 잡는데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은 생리(生利 그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또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

이 네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좋은 땅이 아니라고 하였다

백두대간 청화산(白頭大幹 靑華山) 산길

늘재에서 시작하여 청화산은 조항산거쳐 대야산까지 버리미기재로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한 코스로

늘재에서 버머리기재는 백두대간에서 빼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늘재에서 오르는 청화산 산길은 정상까지 거의 그늘이었고 초입구간에는 오솔길로 산책의 수준인 마실길이지만

금방 암릉길로 바뀌는 된비알이라 제법 가파르게 올라서야 하지만

속리산 조망처가 몇 군데 있어서 오르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이 노고를 보상해준다

靖國祈願壇(정국기원단)

비(碑) 우측에는 白衣民族 民族中興聖地(백의민족 민족중흥) 不失基祖 三巴水(부실기조 삼파수)라고 새겨져 있는데

뜻은  우리민족이 중흥하는 기운을 솟게하는 성서러운 터 이며 민족의 뿌리가 끊기지 않도록 자손만대 영원히

이어져야 한다는 부실기조(不失基祖)의 분수령 아라는 삼파수(三巴水)

속리산(俗離山)의  천왕봉은 삼파수(三派水)라 하며 낙동강(洛東江)한강(漢江)금강(錦江)으로 물갈래를 가르는 봉우리라 한다

비(碑)의 좌측에는  白頭大幹 中元地(백두대간 중원지)라고 새겨져 있는데 뜻은 백두산에서 뻗어나온 백두대간의

중간으로 기운과 경관이 으뜸임을 의미 한다

靖國祈願壇(정국기원단)비석은 많은 수모를 겪은는데 그이유는 靖國(정국)이라는 단어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를 뜻한다고

하여 훼손을 당하기도 했다  정국(靖國)을 사전적 의미로 풀어보면

어지럽던 나라를 평안하게 진정(鎭定)시킴 靖 편안할(정) 편안하다, 고요하다, 다스리다

國 나라(국) 나라, 서울, 나라를 세우다 사전적 풀이이다

정국(靖國)을 일본말로 읽어면 야스쿠니(やすくに)라 하며 신사참배라고 하여 곤욕을 치르고

야스쿠니(やすくに)를 일본 사전적으로 보니 やすくに 安国 안국.평온하게 통치되는 나라.태평한 나라 라고 되어 있었다

일부사람들이 일본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정국신사)글자가 겹치는 것을 오해하여 훼손하는 일이 있는가 보다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맘이서 세우고  또 훼손하는듯 한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안내표지판을 세웠음은 한다

청화산 산길

초입구간에는 오솔길로 산책의 수준인 마실길이였지만 이제는 손발을 다 써야 오를수 있는 산길 연속이었다

늘재 코스 중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고 하는데 작은돌이 미끄럽고 로프도  오래된듯 하지만

4~5m 정도 되는 암벽을 밧줄에 의지에 올라가면 멋진 조망이 기다린다

청화산 물은 남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용추(龍湫)로 흘러드는데 이것이 병천(甁川)이라고 하며

병천 남쪽의 도장산(道藏山)은 속리산에서 한 가닥이 뻗어온 것으로 청화산과 맞닿았으며,

두 산 사이와 용추 이상을 모두 용유동이라 한다.

평지는 모두 반석(盤石)이고 큰 냇물이 서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라고 청화산과 용유리를

택리지에서 소개 하고 있으며 도장산은 얼마전에 산행한 곳이기도 하다

청화산 야생화(자주색 꿩의다리)

산길을 걸을때 암반옆에서 에쁘게 핀 자주색 꿩의 다리를 만났는데 청화산에는 군락지가 많이 보였다

청화산 산행은 늘재에서 들머리로 하여 청화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 반 남짓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니

이 높은 곳까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이 보였고 소나무 아래 앉아 땀을 식히면 파아란 하늘아래

청계산과 형제봉 그 사이 갈령이 보이고 푸른 속리산 산군들이 또렸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산경표 등에는 화산(華山), 택리지에는 청화산(靑華山)으로 불린 이유가

수십리밖 어디를 보아도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는 산군을 볼 수 있음에 만들어진 이름이라 생각해본다.

 

늘재방향의 풍경

경북 상주시 입석리가 골짜기 따라 일열로 농촌마을이 늘어서 있는게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것처럼 보이고

속리산과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첩첩이 산골을 만들어 하늘과 닿아 있는 모습이다

청화산은 전설에 의하면 수립리 밖에서 어디서나 바라보면 산 모양이 맑고 깨끗하며

항상 화려하게 푸르게 빛나고 있어 청화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푸른산을 올라와 보니 온통 푸르고 맑고 깨끗하게 풍경을 만들어 주는듯한 산이다

청화산 야생화(원추리)

여름이 깊었나 보다 이렇게 원추리가 노랗게 얼굴을 내밀며 가는길을 붙잡고 쉬어가라고 하는듯 하고

하늘은 파란하늘에서 약간의 구름이 밀려들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었고 산길은 야생화와 풀내음이 싱그럽기만 하다

청화산을 품고 있는 상주시 화북면은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 깊은 골에서 줄기차게 쏟아내는

명경지수(明鏡止水)가 오송폭포, 장각폭포, 옥량폭포에 와서 오색 구름다리를 수놓아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명소인 화북면은 예로부터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이 순박하여 살기좋기로 이름난 우복동(牛腹洞)이라 불렸고 항일투쟁의 현장이며

또한 호국의 의열들이 몸바쳐 지켜온 충절의 고장이라고 한다

청화산 야생화(큰까치수염)

평생 동안 이 땅에 사람이 살만한 복지(福地)를 찾아다닌 청화산인(靑華山人)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말하기를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고

앞 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 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만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은 없으며

흙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수려하여 살기(殺氣)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수기(秀氣)가

흩어져 드러남을 가리지 않아 자못 복지(福地)라 하겠다”라고 극찬 했고

이곳에 살면 당대의 벼슬이 재상에 이르고 은퇴 후에도 큰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우

복동이 청화산에 흘러오는 계곡, 즉 원적사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청화산 암릉

꼭 지붕 용마루 같이 생긴 바위 암릉이며 삼각형 모습이 신기하며 마치 황소 잔등에 올라선것 같다

그리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군데군데의 전망 좋은 곳에서는 사방으로의 시원한 조망도 즐기며

멀리 보이는 오늘의 두 번째 목표인 조항산과 그 너머 대야산과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산그리메에 감탄하며 산길을 걸어 보며 여기저기에 핀 야생화 그리고 산새소리만 나의 산벗이 되었다.

이렇게 산새가 좋으니 상주시 화북면을 우복동(牛腹洞) 즉 소의 배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안온한 동네’라는 뜻의

조선 중기의 예언서 정감록, 예언가 남사고의 유록,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 등에 언급된 전란과 질병과

기근, 즉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10곳’을 일컫는 십승지지(十勝之地)에 근거한 이상향이라고 하는데

경북 상주시 화북면이 그중 한 곳이며 화북면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 속리산과 동쪽 청화산 및 도장산 사이 계곡 주변으로 가늘고 길게 이어진곳 이기도 하다

청화산 시루봉 조망

우복동(牛腹洞)은 대·중·소 3군데가 있었다고 하는데 가장 작은 우복동은 용유동 계곡이며

여기에는 조선후기 개운조사(開雲祖師.1790~?)가 손가락으로 새겼다고 하는 洞天(동천) 글씨가

초서체로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며  청화산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우복동이 소(小) 우복동이라고 한다.

중간짜리 우복동은 화북면 전체에 해당한다고 하며  견훤산성에 올라가서 바라다 보면 중(中) 우복동을 볼 수 있다.

화북면 전체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서 오지이면서도 안에는 적당한 논밭이 있는 지역이며

가장 큰 대(大) 우복동은 상주시 전체가 하나의 우복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상주시는 가로, 세로가 48~49㎞에 달하는 네모진 들판 도시이며 들판이 넓어서

경상도는 산간지대 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며 먹을 것이 풍족하다 보니

사람들의 기질도 느긋하고 악착같은 구석이 별로 없고 기후적으로도 좋은 점이 있는데

상주의 서북 방향을 천미터급의 속리산이 막아주고 있고 동남쪽은 낙동강이 감아 돈다는 점이며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은 겨울의 살풍(殺風)을 막아주고 태풍 피해를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조항산4.2km안내표지목

청화산 산정에 오르니 조항산4.2km안내표지목이 나왔는데 이왕 달려온거 조항산까지 달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7월은 여름이 익는 계절이지만 백두대간들의 높은산들은 여름이 조금 더디게 올까 싶디만

울창한 수목들은 초록이 짙어 있고 매미소리도 올여름 처음 여기서 들여오고  지난해 떨어진 낙엽속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바쁘게 움직인듯이 꼼물거리며 새들도 더위가 싫은지 여기저기서 노래 하며

청화산 여름 야생화들이 앞다투어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 산꾼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게 만들어 준다

청화산이 있는 상주시는 옛부터 큰 미덕은 포용력이었다고 하는데 상주는 조선시대 야당이었던 남인들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었던 노론의 서원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서 있었고 흥암서원(興巖書院)은 노론인 송준길을 모셔 놓은 서원이며 노론이 영남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의 서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명학파의 제자가 세운 낙암서원(洛巖書院)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한데 남인의 본류를 대표하는 도남서원(道南書院)도 그 터가 훌륭하였다. 맑고 푸른 낙동강이 넘실거리면서 도남서원 앞을 허리띠처럼 돌아서 흘러가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청화산(白頭大幹 靑華山)970m

오늘 이렇게 백두대간길을 걸어서 청산 산정에 발자국을 남겨본다 청화산 정상석은 아담하게 만들어 져 있으며

청화산은 산죽 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멀리서도 푸르고 청(靑) 빛나(華) 보이는 산이라고 하여

청화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나오는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는

이중환의 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택리지에서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경치 좋고 사람 살기 그만인 복지가 있다”라고 묘사한 십승지 가운데 하나인

상주 우복동(牛腹洞)의 유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청화산(白頭大幹 靑華山)970m

청화산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 문경시 농암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 등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있고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한 봉우리인 청화산은 멀리 소백산으로부터

하설산 ,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대야산등의 어깨를 타고 조항산까지 이어져 온 백두대간을

서남쪽 속리산으로 힘차게 밀어 붙어주고 있다.

청화산 정상석.청화산은 옛문헌 일선지에 화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화산(靑華山)은 원래 화할 화(華)가 아닌 불 화(火)를 써서 청화산(靑火山)이라 표기했다고 한다.

산이 푸르고 사철 꽃이 불타듯 만발하여 이러한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름 때문인지

유난히 산불이 자주 발생하여 청화산의 화(火)를 화(華)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청화산 산행 들머리는 의상저수지 부터 시작도 하는데 청화산 주변 산 그림자가 저수지 수면위에

아름답게 펼쳐지므로 산을 오르기전 자연경관에 감탄한다고 한다

조항산 가는 백두대간길

숲이 우거져 있고 백두대간 산꾼들이 많이 다녔기에 산길은 선명하며 조난위험은 없는 산길이다

조항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사이에 솟아 있으며

백두대간 주 능선상의 대야산과 청화산 사이에 위치하고있는 산이다

원래 계획은 늘재에서 청화산 까지인데 달려온김에 조항산 까지 걷기로 하고 일단 걸어본다

숲은 싱그럽게 펼쳐지고 시야는 백두대간 그리고 속리산 풍경과 산아래 펼쳐진 그림을 감상하며

새소리 매미소리 벗삼아 유유자적 한발자국 내 딛어 본다

청화산 시루봉 조망

청화산  시루봉은 해발 876.2m로서 어디에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산이라고 하며

멀리서도 떡시루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처럼 정상부의 바위지대가 금방 눈에 띈다.

정상은 장엄한 암벽으로 되어 있어 조망이 좋고 가슴까지 탁 트이는 전망대로 이 산의 가치를 톡톡이 한 몫 해내고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송이 있는 문경시 농암면 화산1리에 위치한 시루봉은 높이가 876.2m로

여느 높은 산에 비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빼어난 이 산의 절경까지 얕잡아 평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시루봉은 이 산 자체로도 충분히 산행을 즐길 수도 있지만 산행의 효과를 배가 시키기 위해 가까이 있는

주변 명산들과 연계해 산행을 한다면 보다 갚진 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시루봉에서 서쪽 방향으로는 신라의 전통사찰인 원적사와 백두대간의 명산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우복동이 있다는 청화산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있으며,

동편으로는 연엽산과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조항산(鳥項山) 의 조망

암봉이 울퉁불퉁 솟아 있는 조항산이 눈앞이 보이며 한여름속의 원추리가 산언덕 마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항산은 백두대간 주 능선에 위치하며 주변에 속리산국립공원과 선유계곡·쌍계계곡·화양계곡 등이 있고,

의상저수지 부근에서는 야영을 할 수도 있다고 하며 산행을 하려면 용송과 저수지를 통과해 계곡을 따라

왼쪽 임도로 769m봉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된다고 하며 정상에서 남쪽으로는 청화산과 속리산,

북쪽으로는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 너머로 군자산 장성봉과 희양산이 조망 된다고 한다

의상저수지의 조망

백두대간에서 본 의상저수지 의 모습이며 백두대간 청화산 조항산등과 수많은 계곡물들이 모인 저수지라고 하며

신록은 온산을 덮어 산의 키를 키우자 구름이 뭉게뭉게 하늘 높이 피어올라 병풍처럼 산을 둘러치며 암봉에 올라서니

여름의 계곡바람이 불어 젖은 땀을 말려 주는듯 하고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드려 더욱 커진 참나무 잎이

계곡바람에 춤을 추는듯 내맘까지도 시원하게 느껴지며 산속은 무척이나 평화롭고

여름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앞 다투어 예쁘게 자기모습을 자랑하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더운 몸을 식히며 백두대간 늘재에서 버리미기재 구간 중 절경중의 절경이라고 하며

조항산 정상에서 고모치구간은 여느 원시림 못지 않게 식생이 좋다고 하는데

그 길 백두대간길을 걷는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하며 기분좋게 산이주는 기운을 마시며 걷는다 

갓바위재

갓바위재라고 나무에 매달아 놓아 여기가 갓바위재임을 알수가 있었고 늘재에서 버리미기재가 백두대간상 한구간에 속하는데

이렇게 걸을줄 알았다면 조금더 일찍 산행지로 출발할걸 괜히 후회를 남겼다

버리미기재는 풍수지리에서 `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밀치,밀재,밀목치,밀목재,밀항 등과 같은 말이라고 하며

벌어먹이기(버리미기) 힘든 삶을 살았던 아홉번이나 시집을 갔다는 팔자센 과부의 전설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측 문경 완장리 방향은 옷나무골로 해서 용추계곡에서 흘러나온 문경 선유동계곡과 만나

낙동강으로 흐르고 서쪽 문경 완장리 방향은 괴산 외선유동계곡으로 해서 한강으로 흘러가게 된다고 하며

백두대간상에 있는 버리미기재는 문경시 완장리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어 아무런 경계역활을 못한다고 하며

오늘 이렇게 상주에서 문경으로 백두대간길을 걷고 있다

조항산의 야생화(가는장구채)

백두대간은 늘재에서 대야산 까지 이어지는데 대야산은 100대 명산 도전 산악회와 갔던 산이며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속한 대야산은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문경의 산들 중에서도 그 명성이 높은 명산이며

산악회서 대야산 산행이 공지되면 다시한번더 찾아야 겠다 그때에는 백두대간 개념없이 산행했기에 그렇다

대야산 정상의 신선이 놀았을 법한 바위 크기만큼이나 양옆으로 신선이 놀았다는 내.외 선유동계곡을 거느리고 있고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문경의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과 함께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에 올라서 있다.

그렇게 보면 산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大耶는 大爺(큰아버지 야)이므로 큰 아버지뻘의 욕심쟁이 산이다

조항산의 암봉

조항산 가는 백두대간길은 기암절벽과 산아래 풍경이 어우러져 산행이 묘미를 더해주며

북쪽은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 너머로는 군자산 장성봉,희양산이 조망되며 희양산 너머로는

월악산과 주흘산이 겹겹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항산 정상에서 내려 갓바위재로 향하는 암릉구간에 부처님 형상의 큰바위 얼굴이 산아래로

문경시 농암면 동네들를 내려다 보고 있느듯 하며 농암면이 큰길이 사행처럼 지나가는듯 하다

조항산까지 백두개간길이 좋다고 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산길이 아름답다고 하여야 할 것인지 모르겠으나

조항산은 왼쪽으로 방향전환하고 직진은 시루봉과 회란석이며 조항산은 생김새가 날렵하고

높이 솟아 있는 모양이어서 마치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정상부의 튀어나온 암봉을 이곳 주민들은 갓바위봉이라고 부르는데 천지개벽 시

세상에 물에 잠겼을 때 바위 꼭대기가 갓의 상부만큼 물 위로 나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각 지역마다 있는듯 하고 사천시 와룡산 세섬봉도 비슷한 유래이며

경남 진주시의 장대산도 그러한 유래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항산에서 바라본 청화산 시루봉

여기서 바라보니 시루봉은 금방 눈에 잘 띄는게 멀리서도 떡시루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 조망되며

조항산은 알려지지 않은 바위명산이라고 하며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 경계에 있으며

백두대간에 주 능선에 위치하며 조항산은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야 바위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산세가 새의 목처럼 생겼다하여 산 이름이 유래하며 정상부의 툭 튀어나온 암봉을 주민들은 갓바위봉이라고 부르며

괴산 방면과 문경 방면에서 각각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한고 조항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두대간 종주꾼들이라 주능선을 따라 대야산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며

조항산만 산행하는 등산객이 드물다고 하는 산행지 이다

문경 궁기리에 원점회귀 가능한 옛 산길이 있으나 무척 희미하며

그나마 괴산 송면저수지 기점으로 임도를 따라 갓바위재로 올랐다가 정상을 거쳐

원점회귀 산행이 수월하다고 하며 나는 고모치로 하여 궁기리로 하산할것이다.

조항산 산행은 바위를 말을 타듯 등줄기를 올라타기도 하고, 오를 수 없을 만큼 거칠고 거대한 바위를 만나면

우회하기도 하고, 넘을 수 있는 바위를 만나면 호기를 부리며 넘기도 하면서 암릉을 지난다.

암릉 구간에 이어 숲속의 능선을 이동하면서 조망 점을 만나 조항산을 바라보니

바위가 흘러내리고 흩어져 이뤄진 모습을 제대로 감상한다.

조항산 백두대간 표지판

조항산을 품고 있는 농암면(籠岩面)은 백두대간의 동쪽 사면에 있어 높은 산이 많으며

조항산(鳥項山)·청화산(靑華山)·도장산(道藏山) 등이 있는데 오늘 조항산에 오르므로서 3개산을 완등한 셈이 되었고

농암면의 연평균기온 12.4℃이나 해발고도가 높고 내륙에 있어 한서의 차가 심하다고 하며

산지가 넓어서 경지가 협소하고 밭의 비율이 높으며, 주곡작물 외에 잎담배가 주요 특용작물이라고 한다. 

조항산 안내글을 보면 조항산(954m)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의 경게가 되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과 남으로 청화산과 이어져 있는 고모령과 갓바위재 사이에 위치함 암봉이다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항산 동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는 궁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궁기리라는 마을 이름은

견훤이 궁터를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이다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 951m

조항산(鳥項山)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 사이에 있는 높이 951m의 백두대간의 산이며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북으로 대야산(大耶山, 해발 931m),

남으로 청화산(靑華山, 해발 984m)과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에 위치한 암봉이다.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조항산(鳥項山)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하며

구한말지형도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문경시 조항산( 聞慶市 鳥項山) 951m

백두대간상 있는 산에는 정상표지석이 대부분 자그마한 형태의 표지석을 세워 놓았는데 공간이 협소해서

폼잡고 인증사진 촬영하기가 좀 어렵다 이렇게 오늘 청화산이랑 조항산 산정표지석을 두개식이나 인증했지만

하산해서 어떻게 늘재까지 가야할지 조금 고민 아닌 고민이 되었다

또한 조항산 산정에서 바라다보는 대야산과 칠보산의 모습이 일품이며 그 풍경을 보기 위하여 오르는산꾼도 있다고 하며

대야산의 모습을 보면서 조각한 산처럼 보인다고 하기도 하며 그곳은 속리산 국립공원 관할이지만

이곳 조항산과 청화산은 아니라고 한다. 

하산길

하산길에 만난 조항산 야생화 중나리꽃이며 렌즈에 담아 보았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6월 초입에 털중나리가 피면 7월 초입에 중나리가 피고 이어 7월 중순경에 참나리가 피기 시작하며

참나리야 주아 (까만 살눈)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누구나가 쉬이 알 수 있는데반해 털중나리와 중나리를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털중나리 이름 그대로 자세히 들여다 보게되면 솜털이 줄기에 엿보이는 반면 중나리는 깔끔하고 

이 둘의 중나리 그중 털있는 털중나리로 구분되어지며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보다 쉽게 구분이 가는데

잔털인지 솜털인지 눈으로 잘 구분되어지지 않고 헷갈리기 쉽상이다.

이렇게 야생화와 이야기 하며 고모치로 하산하는데 놀란 고라니 한마리가 후다닥 도망간다

좀더 걷고 싶었던 요량이라면 아침일찍 늘재에 왔을건데 청화산만 올라보자 생각해서 왔는데

백두대간을 걷다보니 그냥 욕심이 생겨서 조항산을 둘러 고모치로 하산 하였다

 

산행종료

오늘 백두대간 늘재에서 청화산 그리고 조항산을 그쳐 고모치로 하산하여 궁기리가 산행 종점이며

궁기리 별무리마을은 백두대간을 걷다가 만나는 산촌마을이며 백두대간과 별무리마을이 숲길로 조성되어 있고

백두대간 늘재~청화산~조항산~밀재~용추계곡주차장으로 이어지는 22구간과 인근 거점 마을을 연결하는 숲길이며

장시간 백두대간 마루금을 탐방한 이용객들에게 쉼터 등 편의 제공과 마루금 내에서 발생 될 수 있는 안전사고 등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하며 오늘 이렇게 그 길을 따라 별무리마을로 하산하여

늘재까지 가야 하는데 백두대간 택시를 호출하여 늘재로 향했다 요금은 6만원  오늘 백두대간 늘재에서 시작한

청화산과 조항산 산행은 나홀로 산행한 덕분에 경비가10만원 정도 지출되었지만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푸르고 빛나는 청화산에서 새(鳥)의 목처럼 생긴 문경 조항산(聞慶 鳥項山)까지 걸어본

그기에 큰 의미를 두었고 다음은 신의 터재이다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국지명유래집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0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진혁진의 백두대간과 산행정보

상주시,문경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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