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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동상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가다

바다늑대FORCE 2013. 6. 1. 20:51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동상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가다..!

 

5월의 마지막주 수요일

수요일이 아니라

비요일이였다.

월요일 부터 수요일 까지 내내 여기 인천에 있는동안 비만 내렸다.

오늘은 그다지 빗줄기가 약해

맥아더 장군 동상 있는곳을 가보기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고고 

▲ 인천 자유공원

  [仁川 自由公園, Incheon Freedom Park (Jayu park)]

위치 : 인천 중구 송학동1가 11번지

 자유공원은 인천항 개항 5년만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알맞다. 정상엔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이 있다.

 1882년 4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조인된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이 되는 1982년에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도 그 옆에 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7주년이 되는 1957년 9월 15일에 완공됐다.

자유공원 안에는 소규모 동물원과 팔각정, 연오정, 의자 등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 함정선수 형태 전망대 와   닻 조형물

↗ 인천자유공원 광장

   맥아더 장군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맥아더장군 동상은

1957년에 인천 상륙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공원 동편에 건립했다.

맥아더장군 동상은 조각가 김경승(金景承, 1915~1992)이 부조를 포함해 1957년 제작하였다.

 

 ♣ 맥아더 장군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군인                                               

(Douglas MacArthur.1880년 1월26일~1964년4월5일)는 미국의 군인으로 군 계급은 미 육군 원수까지 지냈다

 

맥아더는 1950년6월29일 전쟁발발 4일 뒤 미국 정부에, 한강방어선을 시찰하며

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미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미터로, 항에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데다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로

상륙작전의 최악의 지형이라며 완강히 반대하였다.

 해군 일부 인사들이 작전성공률이 5천대 1이라며 격심하게 반대하는 와중에

 맥아더는 이런 난점이 오히려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끝까지 인천상륙을 주장, 결국 8월28일 미합참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어냈다.

9월15일, 작전개시일에 함정 206척, 7만여 명을 동원하여 영종도 근처에 집결, 작전이 시작되었다.

작전의 제 1단계는 월미도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미 제5해병연대의 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하였다.

월미도는 2시간만에 완전히 미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미군은 부상 7명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인민군은 108명이 전사하고 106명이 포로로 잡혔다.

제2단계는 국군 제17연대, 미군 제7사단, 미군 제1해병사단의 주도로 인천반도 공격으로 이어졌다.

인민군 제18사단과 인천의 경비병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미군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 제1연대는 성공적으로 인민군의 주력이 규합할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버리며

인천 장악에 성공하였다.[위키백과]

 

♣ 노무현 정부때  맥아더 장군동상 철거 시위가 잦았다

주로 반미 친북색이 짙은 통일연대,한총련등 대한민국을 적화하려는 김일성 남침을 막아낸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위하여 시위를 자주한걸 알고 있다.

 

내세우는 논리가 대한민국을 분단되게 한 장본인이고

전쟁 기간중의 발생한 일부 국민의 피해를 갖고서 양민을 학살한 원흉이라는 것과

민족 자주 통일을 막았다, 그리고 냉전 유물이다 라는 것라는데...................!

 

동상을 향해 나는 잠시 고개숙여

감사의 마음으로 참배했다..!

 

↗↘ 장미꽃 화원

 아마도 조금만 있으면 장미꽃이 광장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것 같다... 

 

↗ 연오정(然吾亭)

연오정은 독립운동가 조훈(1886~1938)의 후손인 조길(한의사)씨가

그의 부친의 뜻에 따라 1960년 8월 22일 건립된 육각정자이다.

현판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선생의 글씨이다. 

 ↗등대모양의 식수터

 ↗ 석정루(石汀樓)

석정루는 1960년대 해운업으로 벌어들인 부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로

석정 이후선이란 독지가가 1966년 6월 23일 완공된 이층 정자로

이후선씨의 호를 따서 석정루라 하였다 하며

현판은 서예가 동정 박세림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 석정루에 있는 낙서들

   요즘 중고등 학생들 낙서인듯 하다

조금 시민의식을 생각 해봐야 할때.............!!!

헉4

 

 

↗ 시원하게 여름을 재촉하는 비 맞으며

인천 자유공원 한바퀴 돌고서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 인천 차이나 타운

   Incheon China town

 

♣ 인천 차이나타운 역사

붉은 색 간판과 홍등이 내걸리고, 음식점이나 진열된 상품들도 거의가 중국 일색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단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이것들의 과거를 뒤집어 보면 누구보다도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면서 이곳에서

화교 사회의 명맥을 이어 오신 분들이 바로 그 지역에 사는 화교들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과는 근본적으로 형성 구조가 다르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최초 노동자부터 근대 중국의 불안한 정국을 피해

이주한 중산층까지 포함하여 중국인 거리가 형성된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근대화 과정에서

가까운 거리의 이점을 살려 주로 상업을 위해 이곳에 안주를 한분들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인천 화교는 약 130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온 40여명의 군역상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로 푸젠성, 저장성 등 남방인들로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조선 상인들과의 무역도 하였다.

그 후 1884년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되면서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의 5천평 토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지고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이곳에 세워졌다.

 중국의 조계지가 생긴 후 중국의 건축 방식을 본뜬 건물이 많이 세워졌기에 이곳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차이나타운"의 최초 형태이다.

그리고 이후 원세개가 조선 통상 사무를 맡아 1887년에는 부산, 1889년에는 원산에 조계지역에 대한 담판을

 성공시켜 중국 조계지역은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인천에 조계 지역이 설립되면서 화교의 수는 급증하여

1883년 48명이던 화교가 1년 후에는 5배에 가까운 235명으로 늘어났고 1890년에는 화교가 약 1천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증가하면서 당시의 청나라 관청(청국 영사관)이 이곳에 설립되고

 이를 청관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인들은 이곳을 중국을 비하하는 명칭인 지나정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화교의 대부분은 인천을 상업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식료 잡화를 팔고 다시 조선의 사금 등을 중국에 보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의 전반적인 상권을 장악하였다.

특히 인천 조계지 내의 화상들은 한국 전역에 퍼져 있는 화상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사업은 날로 흥성하게 되었다.

또한1898년 의화단 (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 일대 중국인들이 피난차 가까운 한국으로 대거 건너오기 시작하였는데,

 이들도 주로 인천을 자신들의 집결지로 삼았기 때문에 인천은 부지불식간에 화교들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서울과 함께 화교들의 양대 세력권이 되었다.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1884년 35척의 청조 선박이 인천과 마포항을 왕래하였으며 1만 3천톤의 화물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차이나타운홈페이지참조]

↗↘선린문

경사가 급한 오름길로 4층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오르며 계단 양옆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중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 계단을 오르면 양쪽 면에 자금성내의 태화전과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중간의자부분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옛날 진나라 병사가 양쪽에서 호위하는 용상에 앉은 모습이 나온다.2층에 오르면 갑골문자와 고대 둔황 유적의 그림이 있다.

모두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이곳에는 화표도 세워져 있는데, 역시 중국인들의 상징물이다.
3층의 벽면에는 분장한 경극배우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어린아이와 고기그림으로 중국인의 문화, 전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선린문이라고 쓰인 파란색 패루는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자는 뜻으로 옛날 이곳의 지명이기도 하다.
패루로 오르기 전 오른쪽에는 인천교회가 있는데 인천에서 중국어로 예배를 보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1917년에 설립된 중화기독교 터로 한국에 세웠어도 중국 본토의 선교를 목적으로 한 교두보 역할을 하였기에 선교사들이 매우 오고 싶어 하는 교회의 하나였다고 한다. 

↗↘스카이힐

차이나타운 3패루(선린문)을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성된 계단으로 양 옆에 자금성, 만리장성, 갑골문자, 경극, 우슈, 팬더 등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멀리 인청항의 전경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한중국백화점

 진주, 치파오, 도자기, 공예품, 중국 술과 신발주 품목이다

 ↘내부 상품들

 

 

↗ 삼국지벽화거리

청일 조계지 계단을 올라가서 밑으로 난 길 양쪽의 벽면에는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타일로 제작하여 장식한 벽화가 나온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림으로써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총 80여컷의 장면이 있는데

 차이나타운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안 :인천 중구 북성동3가 10-13번지

부채, 중국삼베가방, 장난감, 요지, 옥 벽걸이와 소 병풍

자사 주전자와 향로, 도자기 꽃화병 전문으로 판매하는데

여기서 녹차찻잔하고 향을 구매 했다.

↘ 매장에 있는 상품들

   사장님이랑 사진을 같이 찍자고 제의 했는데 거절 하셨다...!

 

 ↗ 차이나타운 짜장면 조형물

     짜장면 조형물 앞에서 젓가락 잡고 찰칵..!!!

요리개인적으로 짜장면보다 짬뽕을 좋아함......                                

↗ 중국식 점포 건축물

중국인들이 1925년에 건립해 사용한 주상복합건축물로 현재 화교인이 중국요릿집, 상가, 주거로 사용하고 있다.

연와조의 2층 벽돌조 건축물로 각각의 공간이 연속되어 있고

주국 특유의 원색을 사용해 화려한 색채를 강조했으며 박공형 지붕, 목조 청풍차양, 개발형 발코니가 특징이다.

 

↘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짜장면으로 저녁을 먹기로 하고 ..... 향만성 식당으로 갔다

 

 ↗식당내부

손님은 나혼자 뿐 가족단위 운영하고 있었다 

 ↘ 백년짜장면 가격8000원

♣ 화교란[華僑] 

 중국인들이 외국에 이주한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른다.

그러나 정식으로 「華僑」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약 100여년 이전인 청나라 말기부터이다.

 1898년 중국인들은 일본 요코하마에 학교를 세워 정식으로 화교 학교란 이름을 지어

 이 때 세워진 화교 학교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옛날 청조와 조선이 서로 교환한 문서에 따르면 화교에 대한 명칭이

 淸朝人, 華人, 淸商 등으로 명칭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후에 청조 農工商部 대신이 작성한 문서에 "화교"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華僑를 한자의 의미대로 풀어보면 華란 중국인을 가르키고, 僑란 잠시 거주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즉 외국 영토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모두 통칭하여 "華僑"라 일컫는다.

1909년의 청나라 헌법과 1929년의 중화민국 헌법에 의하면 "외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두 화교라고 부른다." 라고 나와 있다.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동상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가다

바다늑대Forever[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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