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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칠불봉 우두봉(伽倻山 七佛峰 牛頭峰),조선8경의 만물상 능선따라 가야산 두 봉우리에 서다 본문
가야산 칠불봉 우두봉(伽倻山 七佛峰 牛頭峰)
조선8경의 만물상 능선따라 가야산 두 봉우리에 서다
▲합천 가야산(陜川 伽倻山)
칠불봉 높이 : 1432m
상왕봉(우두봉) 높이 : 1430m
▲산행일 : 2018년11월3일 토요일 날씨 : 맑음
▲나의산행코스 :
경북성주 백운동탐방지원센터-→만물상능선→ 상아덤→서성재
→칠불봉정상→우두봉정상→서성재→용기골코스
편도10.5km 5시간 20분 소요
▲산행지개요:
국립공원 가야산은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져 있다.
주봉은 상왕봉(1,430m), 최고봉은 칠불봉(1,432m)이다.
상왕봉은 소의 머리처럼 생겼고 오랜 옛날부터 산정에서 행해졌던 산신제의 공물을 소에 바치고
신성시 해왔다고 하여 우두봉 이라고 불리우며
상왕봉의‘상왕’은[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가야산은 동서로 줄기를 뻗고 있으며 남북으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합천 쪽으로 드리운 산 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성주군 쪽은 가파르고 험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계곡 주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해인사와 함께 가야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해인사 초입의 갱맥원에서부터 정상의 우비정까지 19개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홍류동계곡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제3경 무릉교로 부터 제17경 학사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절경이 10리 길에 널려있다.
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어 웠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
이 계곡의 아름다움은 봄이나 가을에 으뜸을 이룬다.그밖에도 가야산에는 무릉교
홍필암,음풍뢰, 공재암, 광풍뢰, 제월담, 낙화담, 첩석대 등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 중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의 성지이다.
조선시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야산은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게 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홍류동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항상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가야산 높이에 대하여...
가야산은 가야산국립공원과 합천군에서는 상왕봉을 주봉으로
성주군에서는 칠불봉을 주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주봉은 상왕봉(1,430m), 최고봉은 칠불봉(1,432m)이다.
성주군에서는 칠불봉 높이를 1,433m로 표기하고 있으나 지형도에는 1,432m로 표기되어 있다.
▲ 가야산 등산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상평교→→→합천국도→→→고령ic
→→→광주대구고속도로→→→해인사ic→→→경북성주→→→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
95km 승용차 1시간30분 소요
→→→→→2018년 11월3일 토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가야산은 딸아이랑 가족끼리 합천에서 그리고 집사람과 연애시절에 산행은 했지만
경북성주 칠불봉 코스는 오늘에야 산행을 하기위해 길을 나섰다
어제는 양산 천성산 오늘은 가야산 그리고 내일은 울산 신불산과 간월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다.
↗ 경북 성주군 가야산 국립공원 주차장
가야산 등산 코스를 경북성주 백운동탐방센터에서
만물상 코스로 산행하기위해 경북성주 가야산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66년 6월 24일 사적 및 명승지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1972년 10월 13일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면적은 77.074㎢로, 이 중 경상북도 성주군이 약 31㎢
경상남도 합천군이 약 44㎢, 경상남도 거창군이 약 2㎢를 점하고 있다
가야산의 명칭은 합천과 고령지방은 대가야국의 지역에서 최고(最高)의 산이었기 때문에
‘가야의 산’으로 불리웠다는 설과, 인도의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Buddhagaya)에 있는
신성한 산인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이 있다.
인도 가야산 정상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나라의 가야산은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 우두산(牛頭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불교 범어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는데 가야산은 불교 성지란 의미를 갖는다.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의 상왕은 모든 부처를 뜻한다고 한다.
↗ 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 만물상 탐방로
만물상 탐방로를 통해 가야산 칠불봉과 우두봉을 산행할 목적으로
만물상 들머리에 섰다
백운동탐방지운센터에서 좌측은 만물상 탐방로 우측은 용기골 탐방로이다.
만물상 탐방로는 난이도가 심하고 용기골은 수훨한 코스이다
만물상코스는 개방한지가 그다지 오래 되지는 않았다.
만물상 탐방로로 등산하면 기암괴석 그리고 풍경이 좋아 만물상 코스가 좋다
경사가 심하여 초보 산꾼에겐 힘든코스 이기도 하다.
만물상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바위 하나 하나가 모여
만가지 형상을 이뤄어 만물상(萬物相) 한다고 한다.
↗ 가야산 만물상 탐방로
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만물상 탐방로의 초입 구간이다
초입구간부터 경사가 심한 계단이며
돌 계단을 새롭게 단장한것이 돌 빛갈을 통해서 알수 있는듯 하다.
많은 돌을 인력으로 옮겼다면 많은 인력이 소모 되었을 것이며
상부에는 아마도 헬기로 운반 하였을것이라 생각한다.
가야산국립공원 최고의 능선이라 불리고 정견모주와 이비가지의 전설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가야산에 서식하는 식물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만물상 탐방로는 초입부터 경사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7번을 반복해야하는
험준한 탐방로이며 산행 전 준비운동이 반드시 필요한 구간이자
가야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구간 이다.
↗ 가야산 만물상 능선
아침부터 헉헉거리며 올라오다 보니 만물상 능선이 보인다
아침 8시2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벌서 하산하는 사람도 만났다.
새벽5시에 산행하고서 남산제일봉으로 간다고 했다 정말 산꾼이다.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동 지구는
성주읍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야산은 예로부터
한국 8승지 중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가야산 초고봉 칠불봉은 해발 1,433m이다.
성주군, 합천군, 거창군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이 곳 성주군 수륜면은 가야산의 산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수륜면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가야산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검붉은 기암절벽이 하늘을 찌르는 장쾌한 광경이 나타난다.
가야산 주봉인 우두봉(상왕봉) 정상에는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우비정(牛鼻井)이 있으며
산허리에는 마애불입상(보물 222)이 있다.
그 밖에 해인사 서쪽 약 2 km의 계곡에 있는 이름난 용문(龍門)폭포 등 뛰어난 경치가 많다.
↗ 심장안전쉼터 및 서성재2.0km
심장도 쉬어 가라고 심장안전 쉼터이다
워낙 경사가 심한 가파른길 1km산행 했으니 심장도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구조대에 근무를 하다보면 무리하게 산행을 하다
심정지로 인한 사망사고 사례를 지리산에서 종종 발생 되었다
산행은 건강을 위하여 하지만
체력에 맞지 않게 산행을 하여 불행을 겪는 경우가 안전사고와 심정지 사망사고 이다.
↗ 만물상 산행길
만물상(萬物相)은 하나 하나 바위가 모여 만가지 형상을 하고있다하여
만물상인데 이 바위는 버섯모양 형상을 하고 있다
또 다르게 보면 망부석 같기도 하고 길가는 나그네의 빛이 되어주는 등잔 같기도 하다.
가야산은 회장암(灰壯岩)으로 구성된 상왕봉(1,430m)·칠불봉(1,432m)·동성봉(1,290m) 능선과
해안사화강암으로 구성된 남산제일봉능선의 산악경관
치인리계곡·홍류동계곡·백운동계곡 등의 하상경관으로 크게 구별된다.
가야산의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두리봉(1,135m)·깃대봉(1,086m)·단지봉(1,039m)·남산제일봉(1,054m)
의상봉(1,046m)·동성봉(1,290m) 등 1,000m 이상의 산지들이
연봉(連峰)을 이루어 해안사를 병풍으로 둘러싸고 있다.
↗ 만물상 산행길
여기 솔나무 한그루는 조경수라면 아마도 일천만원 정도이상의 가격을 줄수있는 멋진 소나무다
여기를 지나는 산객들은 나처럼 이렇게 멋진 솔나무와 같이 인증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가야산 지역에서 발원한 물은 모두 낙동강 물줄기로 흐르는데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손꼽히는 가야천은 가야산의 상왕봉과 두리봉 골짜기에서 발원하고
해인사(海印寺) 앞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돌아 농산정 일대의 홍류동 계곡을 이룬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홍류동 10리 계곡은
천년의 노송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 만물상 산행길의 산성(山城)?
산행로 옆엔 돌로 쌓은 담장이 약 10m 정도 되어 보인다
예전의 가야성터인가 아니면 담장용인가 구분이 안되며 근래에 쌓아 올린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시골 돌담 같은 느낌이다.
가야산은
영남육괴에 속하며 선캠브리아기 흑운모편마암, 반상변정편마암
선캠브리아기 이후에서 백악기 이전에 생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시대미상으로 구분하는 해인사화강암 및 회장암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만물상 테크계단길
만물상 테크계단 긴 오르막이다
가야산 지역에서 발원한 물은 모두 낙동강 물줄기로 흐르는데,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손꼽히는 가야천은
가야천(伽倻川)과 소가천(小伽川)은 협소한 유역면적에 비해 유량이 풍부한 편이며
이들은 동남류하면서 회천(會川)과 합류한 후 낙동강 중류로 유입한다.
가야산과 두리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화죽천이 흘러내려 대가천과 합수되고
동쪽으로 상왕봉의 남동쪽으로 대가천과 합수되는 소가천이 있고
남쪽에는 회천 및 안성천으로 합수되는 가야천이 있다.
↗ 현위치
상아덤까지 1.3km남아 있다. 만물상 능선을 걸어보면 기암괴석이 주는 풍경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계곡과 산봉우리들의 조망이 좋다.
가야산국립공원의 자연환경조사에 의하면
포유류는 고슴도치·집박쥐·청설모·다람쥐·너구리·수달·족제비 등 총 20종이 조사되었다.
이 중 수달과 하늘다람쥐는 각각 천연기념물로 제330호와 제3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류는 붉은머리오목눈이·참새·까치·오목눈이·새매·붉은배새매·소쩍새 등
총 72종이 조사되었으며, 이중 붉은배새매·새매·소쩍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양서·파충류는 도롱뇽·꼬리치레도롱뇽·무당개구리·참개구리·산개구리·아무르산개구리 등 총 18종이 확인되었다.
담어류는 버들치·갈겨니·미구리 등 총 20종, 곤충은 총 1,236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만물상 기암괴석들
만물산 능선길엔 이렇게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가야산국립공원의 자연환경조사에 의하면, 가야산의 식물은
101과 351속 552종 1아종 87변종 5품종 4교배종 649종류가 조사되었는데
그동안 기록된 것과 함께 종합하여 보면, 모두 1,064종으로 추산된다.
환경부 지정 특별야생식물은 관중·천마·점현호색·설앵초·구름송이꽃·금강초롱꽃 등 총 6종이 있다.
마애불 갈림길∼토신골 갈림길의 자연휴식년제 구간에서 출현한 식물상은
총 44종류로 이 중에서 초본식물 18종류, 목본식물 26종류이다.
주요 초본식물은 고사리, 골무꽃, 김의털, 남산제비꽃, 닭의장풀 등이고
주요 목본식물은 개암나무, 개옻나무, 국수나무, 귀룽나무, 노각나무, 노린재나무 등이다.
↗ 만물상 기암괴석들
가야산은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다.
해인사는 신라 때 국력을 기울여 지었다는 고찰로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다.
해인사대장경판은 해인사장경판고(海印寺藏經板庫, 국보 제52호)에 간직되어 있으며
그 외에 많은 문화재와 200여 점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부속 암자로 청량사(淸凉寺)·백련암(白蓮庵)·지족암(知足庵) 등의 많은 암자가 있고
특히 청량사에는 석등(보물 제253호)·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삼층석탑(보물 제266호) 등이 있다.
↗ 만물상 기암괴석들
만물상 바윗돌이 만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산신께 재를 올리는 재단같은 느낌다.
가야산은
소백산맥에서 영남 내륙으로 깊숙이 뻗어있는 수도산-단지봉-가야산 능선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 조망이 뛰어나다.
능선은 동으로 뻗어 경남북도계를 형성하고 두리봉에서 남으로 뻗어
별유산-의상봉-비계산으로, 한 맥은 남산제일봉과 매화산으로 이어진다.
가야산 암봉은 정상부분이 서에서 동으로 400여미터에 걸쳐
일정한 높이의 능선을 형성.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돌끝이 뾰죽뾰죽 줄로 늘어서
불꽃이 공중에 솟은듯하다"고 했다
↗ 만물상 기암괴석들
가야산의 노송과 괴암괴석들은 그 옛날에 그려놓은 산수화를 펼쳐놓은듯 하다.
가야산 만물상 탐방로 개방은
2010년 새롭게 개방되었는데 경북 성주군의회는 이에 따라 임시회에서
의원 만장일치로 가야산 칠불봉 탐방로 개방 건의안을 채택했다고 하며
군의회는 건의서에서 민족의 영산이 1972년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가야산 전체면적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성주군의 자부심이자
가야산에 산재해 있는 자연유산을 사랑하는 계기가 돼 성주인으로서
정체성 함양에 큰 도움이 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군의회는 이에 따라 관광객을 유입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면
가야산 칠불봉 구간의 탐방로 개설이 조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여 지금 갭아되어
만물상 탐방로를 이용해 산행 할수 있었다..
↗ 만물상 기암괴석들
가야산은 영남지방에서 쉬 보기 힘든 암산이다.
가야산 만물상 탐방코스는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암릉이 펼쳐진 가야산의 대표적인 능선이다
안전사고 위험으로 인해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금지되었다.
성주군의 개방 요청으로 데크와 계단, 난간등의 안전 시설을 완비한 후
개방했으며 이후 가야산의 대표적인 코스가 되었다.
설악 공룡 능선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지만
기암괴석과 수목이 어우러진 풍광도 설악산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만물상 코스는 초입부터 심하게 올려치기 때문에 체력안배가 중요하며
능선에 그늘이 거의 없으므로 등산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산꾼 이라면
한여름이나 한겨울 탐방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상아덤(孀娥덤)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 이비가와 혼인하기 위해 인간의 혼인 풍습처럼 꽃가마를 탔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아덤
일명 가마바위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에는 가마바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마을 뒷산이 가야산 기슭이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산 속으로 200m쯤 들어서자 잣나무 두 그루가 받치고 있는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길이 15m 높이 7m의 거대한 이 바위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닿았단다.
이 마을 터줏대감 신덕수[72]씨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목욕재계하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른바 대가야의 첫 왕을 잉태한 가야산 여신을 기렸던 정견모주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시간 남짓 더 오른 가야산 중턱, 서장대 주변에는 가야산성을 쌓는데 이용됐던
수천수만 개의 돌이 허물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성벽으로 남기엔 기나긴 세월을 감당하기가 버거웠으리라.
동남쪽 능선을 100m쯤 오르자 큼지막한 돌들을 받침대로
삼은 길이 5m의 바위가 산 정상을 향해 누워 의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마바위’ 또는 ‘상아덤’으로도 불린다. 정견모주가 하늘인 ‘이비가(夷毘訶)’를 맞을 때
탔던 꽃가마였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다.
↗ 상아덤
상아덤에 올라 가야산신 정견모주님께 3배를 올렸다.
상아덤은 ~ 서성재 구간은 대부분 평탄한 구간으로 조성되어 있고 서성재에는 지킴터 및 넓은 공간이 있어
만물상 코스를 오르는 동안 소모된 체력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며
서성재에서는 용기골 탐방로를 통해 하산할 수 있고 정상부(칠불봉)로 올라갈 수 있는
갈림길 지역으로 정상부(칠불봉)까지는 1.2km가 남아있다.
상아덤은
후기 가야의 수도인 고령 땅에는 「가야산신감생설(伽倻山神感生說)」
일명 「정견모주설(正見母主說)」이라 불리는 신화가 전해 오고 있다.
대가야를 지켜 주는 신성한 가야산에는 산신(山神)이 있었고, 그 산신이 정견모주였다.
정견모주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9의 고령현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857~ ?] 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실려 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다른 이름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다른 이름이다
[按崔致遠釋利貞傳云 伽倻山神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訶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 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則惱窒朱日爲伊珍阿豉王之別稱 靑裔爲首露王之別稱]
가야 지역에서 가장 성산인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라는 여신과 천신(天神) 이비가(夷毘訶)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아들은 머리가 해와 같이 빛난다 하여 뇌질주일(腦窒朱日)이라 하고
둘째 아들은 얼굴이 하늘색과 같이 푸르다 하여 뇌질청예(腦窒靑裔)라 하였다.
후에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뇌질청예는 김해로 가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
이처럼 정견모주는 가야산의 산신으로, 대가야와 금관가야 건국 왕의 어머니인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정견모주는 대가야국 왕의 어머니로, 죽어 산신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합천 가야산에 정견모주 신당 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정견모주 신화는 가야산과 대가야국과 관련하여 고령 지방에서 전하는 대가야국의 독특한 건국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락국기」에 실려 있는 ‘가락국 고기(古記)
육란지설(六卵之說)’도 대가야 건국 신화의 하나이지만, 「정견모주 신화」는
고령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대가야 건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지방색을 근거로 한 건국 신화이다.
↗ 서성재(西城岾)
서성재는 만물상 탐방로와 용기골탐방로가 합쳐지는 삼거리 이다
여기서 칠불봉과 상왕봉으로 가는 길목이며
많은 산행자들이 휴식과 점심을 먹는 장소 이기도 하다
오늘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산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서성재(西城岾)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과거 가야산성(伽倻山城)의 서문(西門)이 위치해 있었던 곳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가야산성은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골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 펼쳐져 있는 상아덤
동성봉(東城峰)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 안에 물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으며 외부노출을 방지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과 불과 14km거리로 전쟁시 수도방어의 요충지였으며
왕이 이동할때 머무르는 이궁(離宮)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성재는 현재 문의 흔적을 찾을수는 없으나
10m가 넘는 넓은 공터어ㅘ 허물어진 성벽규모를 통해
문지(門址)가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
↗ 서성재에서 칠불봉 방향 탐방로
탐방로 주변은 산죽으로 이루워 져 있고 나무는 굴참나무가 주 식생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철계단으로 이루어진 칠불봉 정상으로 향한다.
가야산 정상이 성주에서의 산행도 끝지점인셈이며 정상이 바로 코앞에 있다
우리는 가까운 합천에서 가야산을 올랐지만
경북 성주에서 오르긴 오늘 처음이지만 정말 이 코스를 선택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걸어온길 만물상을 뒤돌아 보며
약5km 구간 산행길을 뒤돌아보면 만물상 기암괴석들이
봉우리마다 전시장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가야산을 흔히 합천 가야산으로 부르지만 만물상코스는 합천 땅이 아니라 경북 성주 땅에 속한다.
산행 기점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백운동지구 주차장이다.
만물상코스의 개방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성주군 측에서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지난 3년여 동안 만물상 탐방로 개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정에 라서 뒤돌아 보면 비로소 만물상의 모습이 드러내었다.
계단을 오르며 되돌아본 만물상은 두꺼비 코끼리 물개 곰 독수리 등
온갖 동물의 모양을 한 바위들이 즐비해 말 그대로 천하 만물을 모아놓은 듯하다.
↗ 가야산 칠불봉 정상으로 가는길
만물상 능선을 걸어서 기암괴석 천가지 형상을 구경한후
서성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제는 칠불봉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백운동지구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진행하는 가야산 산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만물상과 상아덤 서성재를 거쳐 정상부의 칠불봉과 상왕봉에 오른 뒤
해인사가 있는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지구 홍류동 쪽으로 하산하는 종주코스다.
두 번째는 백운동에서 만물상을 지나 칠불봉과 상왕봉까지 갔다가 서성재로 되돌아와
용기골을 따라 백운동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들 수 있다.
종주코스와 거리는 별 차이 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만물상코스로 올라 상아덤에서 서성재로 내려선 뒤 정상은 오르지 않고
용기골을 따라 백운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산행하면 된다.
↗ 가야산 칠불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내가 가보고싶었던 칠불봉이 코앞에 있다
가야산 하면 합천이지만 칠불봉은 경북 성주이다
가야산 정상에 대한 논쟁도 관심거리다.
기존의 정상은 합천군에 속하는 상왕봉(우두봉)으로 해발 1430m였지만
경북 성주군의 요청으로 국토지리정보원의 실측 결과 칠불봉이 해발 1433m로 측정됐다.
높이로만 따지면 칠불봉이 최고봉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산 정상은 상왕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峰) 1433m
합천 해인사를 통해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 올라 왔지만
이렇게 경북 성주를 통해 칠불봉에 오른건 오늘이 처음이다.
늘 그렇게 하였듯이 정상석을 향해 삼배(三拜)를 올렸다
산신(山神)께 삼배를 하기 위해서 이다.
산객들이 많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도 가끔 하는데
좌정을 해서 받는 산객도 있었다
처음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을때 줄을 서서 인증사진 찍고 있는데
세분이서 정상석을 향해 삼배를 올리는 사람을 본후 나두 지금까지 산에가면 그렇게 하고 있다.
↗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峰) 1433m
칠불봉 정상석 받침대에 대리석으로 칠불봉 전설을 새겨 놓았다
가야산 칠불봉 전설(伽倻山 七佛峰 傳說)
가야산은 가야건국 설화를 간직한 해동팔경 또는 영남의 영산으로
옛부터 正見母主(정견모주)라는 山神(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산 正見母主(정견모주)는 천신 夷毗河(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惱窒朱日(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惱窒靑裔(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칠불봉은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라타국 공주 許黃玉(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居登(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金氏의 시조
둘째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許氏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7왕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예 부터 산신이 머무는 가야산은 그 골이 깊고 수려하여
三災(삼재)旱災 水災 兵禍(한재 수재 병화)가 들지 않는다는 해동영지로 일컬어 온 영산이다.
↗ 만물상(萬物相)을 뒤돌아 보며
산정에서 바라보는 만물산은 형용할수 없을 만큼이나 아름답다.
가야산 만물상은
국립공원 지정 이후 38년 만에 등산로를 개방한 가야산 만물상. 한마디로 ‘기암괴석의 향연’이고 ‘자연의 교향악’이었다.
코끼리바위, 돌고래바위, 기도바위(일명 부처·불상바위), 두꺼비바위, 쌍둥이바위 등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가 지천에 뽐내는 듯 널려 있다.
기도바위는 아직도 기도가 끝나지 않은 듯 세상을 등지고 면벽 좌선하는 모양이며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 자세가 언제쯤 끝이 날지...............!
코끼리바위는 몸통을 감추고 수줍은 듯 길쭉한 코만 드러내고 있으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가만히 턱을 괸 형상의 얌전한 돌고래바위가 있는 반면
마치 먹이를 달라고 점프를 하는 듯한 모습도 있다.
두꺼비바위는 원체 덩치가 큰 녀석이라 옆을 지나쳐도 그 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없다.
한참을 지나 뒤돌아봐야 제대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광개토대왕비석처럼 생긴 바위, 쌍둥이바위 등등 그 형상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기암괴석들은 억겁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각각의 바위들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이라도 연주하는 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이다.
↗ 가야산 상왕봉으로
여기서 부터는 경북이 아니라 경남이다
지금 난 경남과 경북 경계를 걸어서 지나온 셈이다
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 중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의 성지이다.
조선시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야산은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게 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홍류동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항상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 가야산 우두봉(상왕봉)[伽倻山 牛頭峰(象王峰)] 1430m
정상에 도착해서는 인증사진보다 먼저 정상석에 삼배를 올렸다
여태까지 합천에서 상왕봉에 올랐지만 오늘은 경북 성주에서 상왕봉에 올랐다
딸아이랑 손잡고 오른날도 있었다
초등학생이였던 딸아이는 벌서 스무살이 되었다
산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자리에 있고 정상석도 변함이 없는데
사람만 이렇게 변해 가버렸네
정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우린 그것을 놓치고만 살았다
바른것을 보지 못하고 살았나보다....!
↗ 가야산 우두봉(상왕봉)[伽倻山 牛頭峰(象王峰)] 1430m
가야산의 명칭은 합천과 고령지방은 대가야국의 지역에서 최고(最高)의 산이었기 때문에
가야의 산으로 불리웠다는 설과
인도의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Buddhagaya)에 있는 신성한 산인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이 있다.
인도 가야산 정상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나라의 가야산은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 우두산(牛頭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불교 범어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는데 가야산은 불교 성지란 의미를 갖는다.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의 상왕은 모든 부처를 뜻한다.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 외에도 우두산(牛頭山)·설산(雪山)·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기달산(怾怛山) 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新增東國輿地勝覽 卷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 : 旱災·水災·兵禍)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 가야산 우두봉(상왕봉)정상을 바라보며
가야산국립공원의 백미인 해인사와 홍류동계곡이라고 한다
가야산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해인사와 그 입구를 이루는 홍류동계곡이다.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국보 52)가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4 km쯤 들어간 산기슭에 있는데
그 구간에는 어귀의 무릉교(武陵橋)를 비롯해서 농산정(籠山亭) ·제시석(題詩石)
분옥폭(噴玉瀑) ·제월담(霽月潭) ·회선암(會仙岩) ·낙화담(落花潭) ·첩석대(疊石臺) 등이 차례로 있다.
농산정과 제시석은 만년을 이곳에 숨어 산 신라의 최치원에 유래하는 유적으로
농산정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사각(祠閣)이고, 제시석은 그의 농산시를 새긴 반석이다.
그 밖에 계곡을 이루는 절벽 ·암석과 맑은 물 및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인사 외에도 12암자가 있으며, 일대에서는 잣 ·송이버섯 ·산나물 등이 많이 난다.
↗ 가야산 우비정(伽倻山 牛鼻井)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에는 우비정이 있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늘도 우비정에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牛鼻井(우비정)
泉自金牛鼻孔通(천자금우비공통)
우물이 금우(金牛)의 콧구멍 속으로 통해 있으니
天將靈液寘巃嵷(천장령액치룡종)
하늘이 신령스런 물을 높은 산에 두었도다
倘能一揷靑穿肺(당능일삽청천패)
혹 한번 마신다면 청량함이 가슴속을 찌르니
頃刻翩翩遠御風(경각편편원어풍)
순식간에 훨훨 바람타고 멀리 날아가리라.
↗ 가야산 우두봉(상왕봉)에서 바라본 조망
상왕봉에서 바라본 조망은 좌측에 남산제일봉 오봉산이며
골짜기는 치인리 이며 중간이 단지봉과 마장동이 조망되고 우측 봉우리가 깃대봉이다.
가야산은
소백산맥에서 떨어져나와 영남내륙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탓이다.
서쪽으로 남덕유에서 무룡산을 거쳐 향적봉에 이르는 덕유산 능선이 또렷하고
거기에서 서북쪽으로 삼도봉-민주지산-각호산능선, 조금 떨어져 북서쪽으로 황악산 능선이 보인다.
남으로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거쳐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이 또렷하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지리산 천왕봉)에서 추풍령구간까지가 다 보이는 셈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이 있어서 백두대간의 가장 높은 부분이 모두 이곳에서 보이는 셈이다.
동으로는 동북쪽으로 금오산이 우뚝하다. 매화산-남산제1봉이나 별유산-의상봉능선은 발아래 작은 파도처럼 일렁일 뿐이다.
두리봉에서 단지봉,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거대한 누에등처럼 지금이라도 굼틀거릴 듯한 자세다.
가야산을 존재하게 만든 이 능선의 뿌리는 물론 백두대간의 대덕산이다. 이런 원경에 비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가야산자체 암릉들이다.
가야산 바위는 화강암이나 쇄석현상이 진행중이어서 노년기 징후가 또렷한 바위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야는 범어로 소를 뜻하여 가야산은 일명 우두산, 상두산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산 상왕봉이 꼭 소머리같고
정상 아래쪽 바위에 조그마한 홈이 패어져(월출산 구정봉 꼭대기의 우물만하다) 고인 물이
우비정을 연상케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암릉은 칠불봉으로 가는 길이며
마지막 봉우리로 정상의 높이와 비슷한 봉우리가 칠불봉이다.
↗ 용기골로 하산(서성재)
칠불봉과 상왕봉 정상석을 찍고서 다시 서성재로 내려와 용기골로 하산을 하였다.
문헌에 나타난 가야산 은
명산·유람지로서 가야산을 기록한 많은 시문(詩文)은 최치원의 가야산 입산에서부터 나타난다.
최치원은 신라 말의 대시인·문장가로서 우리 나라 한문학의 조종으로 칭송되거니와
신라의 기울어짐을 보고 은퇴하여 명승지를 유람하며 한거자적(閑居自適)하다가
마침내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 속에 은둔한 뒤로는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인로(李仁老)는 《파한집》에서 “어느 날 고운(최치원)이 아침 일찍 집문을 나선 뒤로는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했으며, 갓과 신만이 숲속에 남아 있었으니, 아마도 신선이 되어 갔을 것이다.
그래서 중들이 그 날로 명복을 빌게 되었다.”고 하였다.
최치원은 〈해인사묘길상탑기 海印寺妙吉祥塔記〉를 찬술하기도 하였는데
이 기문은 전몰한 승려에 대한 진혼문(鎭魂文)으로서 승군의 전통이 신라 시대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다.
최치원이 가족을 데리고 들어가 살던 곳을 치원촌(致遠村)이라 하였는데
후에 치인촌(治仁村)이 되고 다시 지금의 치인리가 되었다.
그러나 최치원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홍류동 계곡의 제시석(題詩石)이다.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碁閣]이라고도 하는데
치원대(致遠臺)로도 불리는 바위에는 최치원의 〈가야산독서당시〉가 새겨져 있다.
〈농산시 籠山詩〉라고도 불리는 이 시는 마멸되어, 송시열(宋時烈)의 글씨로 다시 새겨져 있는데
“첩첩한 돌 사이로 미친 듯 내뿜으며 겹겹한 산을 두드리니, 사람의 소리는 지척간에도 분간하기 어렵도다.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 막았네.”라고 되어 있다.
그로부터 6백 년 뒤에 김종직이 답하여 “맑은 시의 광염(光燄) 푸른 멧부리를 쏘는데
먹 흔적은 닳아서 희미하구나. 세상에선 다만 시해(尸解)되어 갔다 하나, 무덤이 공산에 있는 줄이야 어찌 알리요.”하였다
조선 시대에 가야산은 많은 유학자·문인들이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이들은 최치원의 행적을 흠모하고 가야산의 절경을 기리는 시문을 남겼다.
↗ 용기골 탐방로
가야산이 있는 합천군 가야면을 중심으로 성주군과 거창군의 일부를 포함한
총면적 57.8k㎡가 1972년가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의 주요 관광 자원은 홍류동을 비롯한 계곡과 해인사 일대, 그리고 가야산연봉·능선의 자연 경관으로 나누어진다.
자연 경관과 문화적·역사적 경관이 뛰어난 조화를 이루었다.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은 치인리 신촌락에 집중되어 있다.
신촌락 집단 시설지는 여관을 비롯한 숙박 업소와 식당 및 기타 위락 시설과
기념품 상가가 밀집하여 있으며, 산채요리·버섯 요리가 일미이다.
우체국(국제전화 취급)·농업협동조합(외국환 취급)·경찰지서·주차장(7천㎡) 등 공공 시설물도 갖추어져 있다.
교통은 서울·부산·대구·마산·진주·합천간에 정기 노선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특히 대구와는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고속도로) 건설 이후 1시간으로 단축되어, 대구 시민의 일일 휴양지로 되었다.
1972년에 건립한 전망대가 있어 가야산 정상과 해인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추풍령을 넘어 김천시 증산면·성주군 수륜면·홍류동으로 들어 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은 맑은 계곡을 끼고 있으며, 〈무흘구곡 武屹九曲〉으로 유명한 절경이 펼쳐진 길이다.
↗ 가야산성(伽倻山城)
용기성(龍起城) 이라고도 한다.
가야산성은 가야산의 정상인 해발 1,433m의 칠불봉 동남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용기계곡(또는 백운리계곡)을 중심으로
좌우의 항아덤과 동성봉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산성이다.
가야산성의 서쪽은 성주군과 합천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동쪽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7,156m이고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져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일부에는 높이 1.5m 내외의 성벽이 남아있는 곳도 있으며, 면적은 2,059,939㎡이다.
성 안에는 10개의 샘[泉]과 6개의 계곡 및 동서남북의 4대 문지(門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용기사지(龍起寺址)·백운암지(白雲庵址)·일요암지(日曜庵址) 등의 절터가 있다.
성 안에 용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성(龍起城)이라고도 한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성이 초축된 시기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대가야(大加耶)의 전성기 때 쌓은 것으로 추측하고
대가야의 이궁(離宮)으로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다.
562년(진흥왕 23)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된 이후 가야산성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인 1594년(선조 27)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조정의 명을 받아 승장(僧將) 신열(信悅)을 시켜 개축하여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때 신열이 성의 남문을 건립하였는데, 후에 이항복(李恒福)이 문루(門樓)에
‘액부초(扼拊醮)’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였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 용기골 탐방로
용기골 아래부분은 단풍색깔이 아직 아름답다
계곡 물소리 졸졸 흐르며 단풍잎새가 물에 떨어져 운치를 더했다
용기골 코스는 초보산꾼들이 이용하여 가야산으로 등산하기 좋은 코스이다
만물상 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사가 심하고 암봉으로 인하여
초보산꾼들의 보행에는 어려움이 많은 코스이기 때문이다.
↗ 용기골 탐방로 입구(하산완료)
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용기골 탐방로로 하산 완료 하였다
편도10.5km 탐방구간을 자연경관 그리고 좋은곳 사진촬영하면서 쉬엄쉬엄 5시간 20분 소요되었다
가야산 칠불봉 우두봉(伽倻山 七佛峰 牛頭峰),조선8경의 만물상 능선따라 가야산 두 봉우리에 서서
또 하나의 산행기를 완성하였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경남 합천군 경북 성주군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