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에서 2박 3일을 지내보니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서울 서초소방서 0시 10분.
7년 차 소방관 이영주 구급대원이 전날 오후 6시 시작한 야간 근무 6번째 출동에서 돌아옵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봅니다.
"감정노동자로 적어 주세요."
0시 30분 이영주 구급대원은 7번째 출동을 합니다.
18년 차 소방관 이득영 진압대원은 이런 말을 합니다.
"도와주러 간 건데, 몇몇 분은 저희를 '하인'처럼 대하기도 해요. 불도 여기를 꺼라 저기를 먼저 꺼라. 전문가는 우리인데 말이죠"
21년 차 소방관 서영수 구조대장. 특전사 출신인 그는 2003년 소방기술경연대회 1등, 2015년 KBS 119 대상 등을 수상한 베테랑입니다.
"일(구조작업)이 힘들어 죽겠어…. 이런 건 없어요. 사람 관계가 힘들어요."
구조작업 후 주변의 비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소방관은 불만 끄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불만'과도 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민들이 119에 하는 신고는 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받습니다. 신고내용은 주변 관할지역의 소방서에 실시간으로 전달됩니다.
가장 빠른 현장도착을 위해서입니다. 관할이 아닌 인근 지역에서 출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고가 커질 경우 신속한 진압 및 구조 지원이 필요합니다. 출동하다 사건 종료로 돌아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소방서 현장대응팀은 지휘팀, 진압대, 구조대, 구급대로 구성됩니다. 각 팀은 3개 조가 있습니다. 3개 조 3교대 근무입니다. 주간과 야근으로 나뉘는데 09시부터 18시까지, 18시부터 09시까지입니다. 전일 야근자는 비번.
지휘팀은 이름 그대로이며 진압대는 화재진압, 구조대는 인명구조 외에도 생활안전, 민생지원 등의 활동을 합니다. 동물구조부터 잠긴 문 열어주기, 위치추적 등을 합니다. 구급대는 환자이송을 비롯해 취객 대응까지 합니다.
소방관의 일과는 근무교대로 시작합니다. 업무에 필요한 장비점검 후 복장까지 다 착용한 후 교대식을 합니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소방서에 이런 말을 하면 눈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방관들 사이의 금기어입니다.
사건 사고가 없으면 좋은 거지만 그렇게 되면 소방관들은 할 일이 없어지는 모순입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출동하지 않아도 할 일이 많습니다.
마침 다음 주부터 동계기간을 맞아 장비점검이 시작됩니다. 언제 점검반이 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점검은 꽤 까다롭습니다. 모든 장비의 작동 및 수리방법 등을 숙지해야 합니다. 별도의 준비 시간은 없습니다. 근무시간에 틈틈이 합니다.
요란한 '따르릉'은 지휘팀이 출동한다는 신호입니다. 주로 "화재출동, 화재출동" 소리가 이어집니다. 관할 구역일 경우는 모든 팀이 출동합니다.
그 외 "구조출동, 구조출동", "구급출동, 구급출동"은 해당 팀만 출동합니다.
출동방송이 울려 퍼지면 소방관은 점심 먹던 숟가락을 던지고 달려갑니다. 자신의 출동이 아닌 소방관은 식사를 계속합니다. 얄밉지 않습니다. 주인이 떠난 식판은 그대로입니다. 치울 수 없습니다. 당장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잠시 후 한 번 더 출동방송. 진압팀이 출동합니다. 인근 지역 지원입니다.
화재현장에는 관할지역 진압팀이 도착해 있습니다. 불은 진화됐습니다. 큰불은 아닙니다.
그제야 소방관들은 서로 인사합니다.
"점심 먹었어요?
"지금 점심 먹다 두 번 출동했어!"
진압팀은 다시 소방서로 돌아갑니다. 지휘팀은 화재조사관의 업무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지휘팀 차량에는 팀장, 통신, 안전관리 담당 외에 재난조사, 재난감식 담당이 탑승합니다. 화재조사관은 화재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 재난의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를 산정합니다.
백석현 화재조사관이 돌아오자 강기홍 지휘팀장은 출발을 지시합니다. 14시 훈련에 참가하려면 시간이 빠듯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출동이 없어 10분 정도 남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당은 그때까지 그들의 식판을 치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오늘 점심으로 세끼를 먹었네!"
야간 근무가 시작됐습니다.
구조대가 신고받고 출동합니다. 퇴근 시간, 차가 많이 막힙니다. '모세의 기적'을 바라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출동 채 5분도 안 돼 본부에서 상황종료를 알려옵니다. 돌아갑니다. 그렇게 두 번 더 출동이 번복됩니다. 구조 차량을 막 주차하려는 데 또 출동명령. 어느 남성이 집에 아내가 있는데 전화도 안 받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일단 출동하지만 무조건 열어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우선 경찰이 와서 가족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문을 부수고 빨리 진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소방관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현장의 소방관이 판단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23시 즈음 "화재출동, 화재출동"
관할 구역은 아닙니다. 강남대로 지원입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장비를 챙깁니다. 모든 장비는 차량에 있어서 가장 빨리 탑승하는 게 관권입니다. 방화복을 입고 산소통을 맵니다. 조금 전까지 대기실에서 웃고 장난치던 대원들이었습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창밖으로 유흥가의 불빛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차선을 넘나드는 구조차는 흔들립니다. 상황을 전하는 무전은 마치 먼 나라 이야기 소식을 전하는 듯합니다.
갑자기 대원들이 무장을 해제합니다. 상황종료.
방화복을 벗는 대원들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대기실 안은 조금 전 웃고 떠들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대원들은 다시 웃습니다. 그리고 10분 후. "구조출동, 구조출동"
이번에는 대로 난간에 고립된 고양이 구출작전입니다.
화재출동이든 고양이 구출작전이든 대원들이 똑같이 뛰쳐나갑니다. 슬리퍼를 신고 있으면 신은 채로 신발은 들고 차량으로 뛰어갑니다.
'
본부에서는 출동지령 후 차량 출발시각을 통계 내서 고과에 반영합니다. 구조 황금시간인 5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고과 반영 때문에 대원들이 달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원들은 억울한 점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차량 출발 통계 시간이 현실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2박 3일을 지내면서 아주 많은 출동을 보았지만, '단언컨대' 20초에서 30초 정도면 차량이 출발합니다. 기자가 직접 본 많은 출동에 함께하지 못한 이유도 제가 탈 자리는 마련해 뒀지만, 기자가 그 출동에 민첩하게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량의 뒷모습은 참 많이 봤습니다.
지난달 서울지역 통계자료에 보면 출동시간이 대부분 50초에서 60초 이상으로 집계돼 있습니다. GPS로 차량 출발이 자동 기록되는데 약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본부에서는 그런 점까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출발하려다 발생하는 부상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빨리 출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하네요. 무척 어려운 일이죠?
봉을 잡고 소방관들이 2층에서 내려와 출발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상위험이 커서 그런 시설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고양이 구출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니 새벽 한 시가 넘었습니다. 대기실의 대원들은 웃기도 지칩니다. 새벽 두 시가 지나면서 야간 근무 8시간이 넘어갑니다. 잠을 청하기도 하고 신변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28년 차 남혁우 진압대원은 자격증 공부를 합니다. 소방업무 관련 자격증은 여느 직장인처럼 승진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출동은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잠을 깹니다. 대원들이 대기실에서 야간 출동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겨우 구조대 차량에 탔습니다.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복장을 챙깁니다. 방화복은 아닙니다. 무전에서 '투신' 관련 이야기가 나옵니다.
잠수교 위에 구조본부가 차려집니다. 119 한강수난구조대의 배가 잠수교 주위를 수색합니다. 잠시 후 조명 차량이 지원 오고 구조대는 한강 변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다른 대교 인근에서 시신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다른 팀들은 다 동행취재를 했지만 못한 팀이 딱 하나 있습니다. 구급대. 환자이송이 많은 업무 특성상 동행이 불가합니다. 출동횟수는 구급대가 가장 많습니다.
지난해 서초소방서 화재출동 건수는 총 1천93건입니다. 구조가 2천5백38건, 구급이 2만654건입니다. 서울시 전체를 따져도 비슷한 비율입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으로 소방관의 업무를 직접 보고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소방관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화마와 싸우고 땀을 흘리며 탈진하거나 추운 겨울 소방수가 방화복에 꽁꽁 얼어붙는 모습 정도입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붙입니다. 어느 소방관이나 자신들의 '희생'을 의무로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소방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모습에 대한 환호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업무 중 순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들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의 육체적 피로. 그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전사 출신의 손창의 구조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 2시 이후 두 번 정도 더 출동하면 힘들지만, 퇴근 후 바로 집에 가지 않습니다. 대원들은 각자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운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음 근무에 임할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구조대원에 45세 연령제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방관과 '감정노동자'. 연결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방관에게 감정노동자에 동의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대원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왜 구조를 하지 못했느냐며 질책을 받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잘못된 판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대원에게 '책임'을 매번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 현장에 늦게 왔느냐고 소방대원에게 타박합니다. 구조의 황금시간인 '5분'을 지키라고 말하지만, 도로의 사정이 매번 같을 수는 없습니다.
비둘기가 다쳤다는 신고가 옵니다. 싱크대 물이 샌다고, 몸이 조금 아프다고, 문을 열어 달라고, 술을 마시고…. 신고합니다.
'119'를 누르고 신고를 하는 순간 개인의 일은 공공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공무원'인 소방관이 출동합니다.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은 시민들에게 한없이 친절해야 합니다. 막무가내 시민에게도.
지난 20일, 24시간 동안 서울지역에서 6천289건의 119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그중 화재출동이 31건, 구조가 371건, 구급이 1천516건입니다. 거기에 생활안전이 169건, 민생지원이 37건, 위치추적이 9건입니다.
한 대원은 "구급이송의 경우 택시비 정도만 받아도 신고의 반 정도는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응급환자의 경우 이송거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좀 다른 경우지만 타 지역의 한 대원은 수차례 술을 마시고 구급차를 부르는 시민이 있어서 한 번 이송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 시민이 민원을 제기해 해당 대원은 '강등'이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두 달간 소방관의 심리상담을 진행한 한 상담사가 전해준 사례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 손가락에 가시를 뺄 수 없다고 119에 신고를 합니다. 달려갑니다. 가시를 빼줍니다. 선생님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
"119 부르니까 좋지?"
그때 소방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소방관을 찾지 않을까요?
위급하지도 않은 민원인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제공해야 하는 것에 대해 소방관들은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리한 민원은 하는 사람이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민원인들의 민원에 몸을 사리게 됩니다.
소방관의 민원을 들어줄 때가 됐습니다.
"시민을 섬기는 명품 서비스 119"
소방서 1층 로비에 크게 붙어 있습니다.
신고에도 '명품 시민 정신'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사사로운 공무원 호출은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투입될 소방관을 뺏어 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저에게 주소서
.
.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민을 섬기자'는 문구 옆에 붙어 있는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xyz@yna.co.kr
기자가 기다려요. 기사 문의 및 제보는 여기로(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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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소방서 제공 [오중석 작가 재능기부]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서울 서초소방서 0시 10분.
7년 차 소방관 이영주 구급대원이 전날 오후 6시 시작한 야간 근무 6번째 출동에서 돌아옵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봅니다.
"감정노동자로 적어 주세요."
0시 30분 이영주 구급대원은 7번째 출동을 합니다.
18년 차 소방관 이득영 진압대원은 이런 말을 합니다.
"도와주러 간 건데, 몇몇 분은 저희를 '하인'처럼 대하기도 해요. 불도 여기를 꺼라 저기를 먼저 꺼라. 전문가는 우리인데 말이죠"
지휘 차량 야간 출동
21년 차 소방관 서영수 구조대장. 특전사 출신인 그는 2003년 소방기술경연대회 1등, 2015년 KBS 119 대상 등을 수상한 베테랑입니다.
"일(구조작업)이 힘들어 죽겠어…. 이런 건 없어요. 사람 관계가 힘들어요."
구조작업 후 주변의 비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소방관은 불만 끄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불만'과도 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불과의 '사투' (자료) [이지은 기자]
시민들이 119에 하는 신고는 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받습니다. 신고내용은 주변 관할지역의 소방서에 실시간으로 전달됩니다.
가장 빠른 현장도착을 위해서입니다. 관할이 아닌 인근 지역에서 출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고가 커질 경우 신속한 진압 및 구조 지원이 필요합니다. 출동하다 사건 종료로 돌아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소방서 현장대응팀은 지휘팀, 진압대, 구조대, 구급대로 구성됩니다. 각 팀은 3개 조가 있습니다. 3개 조 3교대 근무입니다. 주간과 야근으로 나뉘는데 09시부터 18시까지, 18시부터 09시까지입니다. 전일 야근자는 비번.
지휘팀은 이름 그대로이며 진압대는 화재진압, 구조대는 인명구조 외에도 생활안전, 민생지원 등의 활동을 합니다. 동물구조부터 잠긴 문 열어주기, 위치추적 등을 합니다. 구급대는 환자이송을 비롯해 취객 대응까지 합니다.
장비점검 후 근무교대에 들어가는 소방관들
소방관의 일과는 근무교대로 시작합니다. 업무에 필요한 장비점검 후 복장까지 다 착용한 후 교대식을 합니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소방서에 이런 말을 하면 눈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방관들 사이의 금기어입니다.
사건 사고가 없으면 좋은 거지만 그렇게 되면 소방관들은 할 일이 없어지는 모순입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출동하지 않아도 할 일이 많습니다.
마침 다음 주부터 동계기간을 맞아 장비점검이 시작됩니다. 언제 점검반이 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야간 근무 중 장비점검
점검은 꽤 까다롭습니다. 모든 장비의 작동 및 수리방법 등을 숙지해야 합니다. 별도의 준비 시간은 없습니다. 근무시간에 틈틈이 합니다.
예비 장비들도 꼼꼼하게 정비 중
요란한 '따르릉'은 지휘팀이 출동한다는 신호입니다. 주로 "화재출동, 화재출동" 소리가 이어집니다. 관할 구역일 경우는 모든 팀이 출동합니다.
그 외 "구조출동, 구조출동", "구급출동, 구급출동"은 해당 팀만 출동합니다.
출동방송이 울려 퍼지면 소방관은 점심 먹던 숟가락을 던지고 달려갑니다. 자신의 출동이 아닌 소방관은 식사를 계속합니다. 얄밉지 않습니다. 주인이 떠난 식판은 그대로입니다. 치울 수 없습니다. 당장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잠시 후 한 번 더 출동방송. 진압팀이 출동합니다. 인근 지역 지원입니다.
화재현장에는 관할지역 진압팀이 도착해 있습니다. 불은 진화됐습니다. 큰불은 아닙니다.
그제야 소방관들은 서로 인사합니다.
"점심 먹었어요?
"지금 점심 먹다 두 번 출동했어!"
식사 중 출동
진압팀은 다시 소방서로 돌아갑니다. 지휘팀은 화재조사관의 업무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지휘팀 차량에는 팀장, 통신, 안전관리 담당 외에 재난조사, 재난감식 담당이 탑승합니다. 화재조사관은 화재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 재난의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를 산정합니다.
백석현 화재조사관이 돌아오자 강기홍 지휘팀장은 출발을 지시합니다. 14시 훈련에 참가하려면 시간이 빠듯합니다.
화재감식
다행(?)스럽게도 다른 출동이 없어 10분 정도 남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당은 그때까지 그들의 식판을 치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오늘 점심으로 세끼를 먹었네!"
야간 근무가 시작됐습니다.
구조대가 신고받고 출동합니다. 퇴근 시간, 차가 많이 막힙니다. '모세의 기적'을 바라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출동 채 5분도 안 돼 본부에서 상황종료를 알려옵니다. 돌아갑니다. 그렇게 두 번 더 출동이 번복됩니다. 구조 차량을 막 주차하려는 데 또 출동명령. 어느 남성이 집에 아내가 있는데 전화도 안 받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일단 출동하지만 무조건 열어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우선 경찰이 와서 가족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문을 부수고 빨리 진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소방관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현장의 소방관이 판단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23시 즈음 "화재출동, 화재출동"
관할 구역은 아닙니다. 강남대로 지원입니다.
출동 중인 구조 차에서 장비 착용 중인 대원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장비를 챙깁니다. 모든 장비는 차량에 있어서 가장 빨리 탑승하는 게 관권입니다. 방화복을 입고 산소통을 맵니다. 조금 전까지 대기실에서 웃고 장난치던 대원들이었습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창밖으로 유흥가의 불빛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차선을 넘나드는 구조차는 흔들립니다. 상황을 전하는 무전은 마치 먼 나라 이야기 소식을 전하는 듯합니다.
갑자기 대원들이 무장을 해제합니다. 상황종료.
방화복을 벗는 대원들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대기실 안은 조금 전 웃고 떠들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대원들은 다시 웃습니다. 그리고 10분 후. "구조출동, 구조출동"
이번에는 대로 난간에 고립된 고양이 구출작전입니다.
화재출동이든 고양이 구출작전이든 대원들이 똑같이 뛰쳐나갑니다. 슬리퍼를 신고 있으면 신은 채로 신발은 들고 차량으로 뛰어갑니다.
'
소방관은 슬리퍼를 신고 달린다'
고양이와 구조대원
본부에서는 출동지령 후 차량 출발시각을 통계 내서 고과에 반영합니다. 구조 황금시간인 5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고과 반영 때문에 대원들이 달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원들은 억울한 점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차량 출발 통계 시간이 현실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2박 3일을 지내면서 아주 많은 출동을 보았지만, '단언컨대' 20초에서 30초 정도면 차량이 출발합니다. 기자가 직접 본 많은 출동에 함께하지 못한 이유도 제가 탈 자리는 마련해 뒀지만, 기자가 그 출동에 민첩하게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량의 뒷모습은 참 많이 봤습니다.
출동 준비, 장비점검
지난달 서울지역 통계자료에 보면 출동시간이 대부분 50초에서 60초 이상으로 집계돼 있습니다. GPS로 차량 출발이 자동 기록되는데 약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본부에서는 그런 점까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출발하려다 발생하는 부상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빨리 출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하네요. 무척 어려운 일이죠?
봉을 잡고 소방관들이 2층에서 내려와 출발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상위험이 커서 그런 시설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고양이 구출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니 새벽 한 시가 넘었습니다. 대기실의 대원들은 웃기도 지칩니다. 새벽 두 시가 지나면서 야간 근무 8시간이 넘어갑니다. 잠을 청하기도 하고 신변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28년 차 남혁우 진압대원은 자격증 공부를 합니다. 소방업무 관련 자격증은 여느 직장인처럼 승진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출동은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소방관
새벽 4시 30분. 잠을 깹니다. 대원들이 대기실에서 야간 출동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겨우 구조대 차량에 탔습니다.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복장을 챙깁니다. 방화복은 아닙니다. 무전에서 '투신' 관련 이야기가 나옵니다.
잠수교 위에 구조본부가 차려집니다. 119 한강수난구조대의 배가 잠수교 주위를 수색합니다. 잠시 후 조명 차량이 지원 오고 구조대는 한강 변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다른 대교 인근에서 시신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새벽 4시 반 한강 수색작업
날이 밝았습니다.
다른 팀들은 다 동행취재를 했지만 못한 팀이 딱 하나 있습니다. 구급대. 환자이송이 많은 업무 특성상 동행이 불가합니다. 출동횟수는 구급대가 가장 많습니다.
지난해 서초소방서 화재출동 건수는 총 1천93건입니다. 구조가 2천5백38건, 구급이 2만654건입니다. 서울시 전체를 따져도 비슷한 비율입니다.
출동 중인 구급대원
2박 3일이라는 시간으로 소방관의 업무를 직접 보고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소방관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화마와 싸우고 땀을 흘리며 탈진하거나 추운 겨울 소방수가 방화복에 꽁꽁 얼어붙는 모습 정도입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붙입니다. 어느 소방관이나 자신들의 '희생'을 의무로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훈련 중 땀에 뒤범벅된 소방관 (자료) [윤동진 기자]
하지만 소방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모습에 대한 환호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업무 중 순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들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의 육체적 피로. 그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전사 출신의 손창의 구조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 2시 이후 두 번 정도 더 출동하면 힘들지만, 퇴근 후 바로 집에 가지 않습니다. 대원들은 각자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운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음 근무에 임할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구조대원에 45세 연령제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 무 준비 중인 소방대원
소방관과 '감정노동자'. 연결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방관에게 감정노동자에 동의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대원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왜 구조를 하지 못했느냐며 질책을 받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잘못된 판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대원에게 '책임'을 매번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 현장에 늦게 왔느냐고 소방대원에게 타박합니다. 구조의 황금시간인 '5분'을 지키라고 말하지만, 도로의 사정이 매번 같을 수는 없습니다.
비둘기가 다쳤다는 신고가 옵니다. 싱크대 물이 샌다고, 몸이 조금 아프다고, 문을 열어 달라고, 술을 마시고…. 신고합니다.
'119'를 누르고 신고를 하는 순간 개인의 일은 공공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공무원'인 소방관이 출동합니다.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은 시민들에게 한없이 친절해야 합니다. 막무가내 시민에게도.
화재진압 후 거의 탈진한 소방관 (자료) [윤동진 기자]
지난 20일, 24시간 동안 서울지역에서 6천289건의 119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그중 화재출동이 31건, 구조가 371건, 구급이 1천516건입니다. 거기에 생활안전이 169건, 민생지원이 37건, 위치추적이 9건입니다.
한 대원은 "구급이송의 경우 택시비 정도만 받아도 신고의 반 정도는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응급환자의 경우 이송거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좀 다른 경우지만 타 지역의 한 대원은 수차례 술을 마시고 구급차를 부르는 시민이 있어서 한 번 이송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 시민이 민원을 제기해 해당 대원은 '강등'이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두 달간 소방관의 심리상담을 진행한 한 상담사가 전해준 사례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 손가락에 가시를 뺄 수 없다고 119에 신고를 합니다. 달려갑니다. 가시를 빼줍니다. 선생님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
"119 부르니까 좋지?"
그때 소방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소방관을 찾지 않을까요?
위급하지도 않은 민원인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제공해야 하는 것에 대해 소방관들은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리한 민원은 하는 사람이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민원인들의 민원에 몸을 사리게 됩니다.
소방관의 민원을 들어줄 때가 됐습니다.
"시민을 섬기는 명품 서비스 119"
소방서 1층 로비에 크게 붙어 있습니다.
신고에도 '명품 시민 정신'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사사로운 공무원 호출은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투입될 소방관을 뺏어 갈 수도 있습니다.
소방대원의 장비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저에게 주소서
.
.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민을 섬기자'는 문구 옆에 붙어 있는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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