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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현장일기/하나일구安全敎室

[스크랩] [119 기고]안전은 시민혁명으로 거듭나야

바다늑대FORCE 2014. 11. 4. 20:34

[119 기고]안전은 시민혁명으로 거듭나야
하동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박진욱 기사입력 2014/10/30 [10:47]

▲ 하동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박진욱

어느 대형판매장에서 직접 겪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쇼핑객들이 제법 많았다. 스피커를 통해 갑자기 화재경보 사이렌이 반복적으로 울리더니 곧이어 “2층 00매장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서너 번 나왔다.

평소 자주 왔던 곳이라 낯설지도 않았고 직업 특성상 비상구 정도는 눈여겨 봐 둔 터라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손쉽게 찾을 것 같던 비상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상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을 쇼핑객들과 무전기를 들고 연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매장 지배인들을 상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는 달리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고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이 없는 듯 행동했다. 오히려 그런 상상을 한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고 뻘쭘해지기까지 했다.

몇 년 전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초기 장면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객실 내 연기가 조금씩 들어오는데도 승객들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다중심리’로 해석한다. 옆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별일 아니겠지’하고 자신의 의중과 관계없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혼자만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구참사가 일어난 이후 위험 상황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동들을 보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EBS방송국에서 실험을 해봤다. 특수 설치된 공간에 연기를 집어넣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해 본 것이다.

일부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연기(煙氣)가 들어와도 절대 나오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사전에 주의를 주고 피실험자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 앉았다.

연기가 들어오자 피실험자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자신도 그대로 있었다. 대구참사 현상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사람을 바꿔 몇 차례 더 실험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실험이 끝난 후 피실험 대상자들에게 왜 피하지 않았냐고 묻자 피실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사람의 심리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또한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수를 따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정말 위급할 때에는 자신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위험이 다가올 것 같은데도 남의 행동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위험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난 7월 부산 지하철 화재가 발생했을 때 용감한 시민 5명이 화재를 초기에 진압해 대형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다. 이들은 스크린도어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 지하철 비상문을 쉽게 열었고 이로 인해 승객들을 재빨리 대피시킬 수 있었다. 전기 공사 현장경험으로 전기에 인한 화재양상을 초기 감지하고 용감하게 소화기로 진압해 연소 확대를 막았다. 위험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대형재난을 막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다시 되뇌고 싶지 않지만 지난 4월 국가적 대참사를 겪은 후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시설물 점검이 실시됐고 소방교육과 각종 훈련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고 나면 매번 반복되는 행태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강당 같은 곳에서 백여 명 이상이 모여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재미도 없고 자기 업무와 직접 관계도 없는 마치 교양강좌 같은 안전교육 한 시간 받았다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겠는가? 그나마 그 사람들은 직장이 있어서 그런 강좌라도 접해보지만 가정주부나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 환경미화원과 같은 소수 비정규직들은 어쩌란 말인가?

선진국형 안전문화가 정착되려면 국민들이 직접 위기상황을 보고 들으며 느낄 수 있는 체험형태의 입체적 교육이 돼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온 국민이 이런 기회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면 화재 사이렌이 울리는 데도 비상구를 찾지 않고 쇼핑을 즐기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모기향 하나 관리 하지 못해 무려 23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화성 씨랜드 참사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대형화재도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한 부주의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는 반면 국민도 국가를 안전하게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대응기관인 소방서의 문턱이 닳아지도록 안전정보를 받아가는 시민혁명이 일어났으면 한다.

이제 곧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든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주변 굴뚝을 점검하고 땔감을 치우는 일(曲突徙薪)에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보자. 너나 할 것 없이 매사에 단디 했으면 한다.

하동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박진욱

출처 : 119해병-바다늑대Forever
글쓴이 : 바다늑대[50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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