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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이상의 반인륜 범죄에 이젠 속지 말자 본문
윤이상의 반인륜 범죄에 이젠 속지 말자 |
북한 조종 문화공작원 윤이상 |
윤이상의 범죄, 이젠 속이지 말자(강규형 명지대 교수/뉴데일리 게재) 필자는 어렸을 적 매해 하기휴가마다 가족들과 통영에서 보냈다. 그래서 통영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통영은 낭만의 고장이고, 많은 훌륭한 예술가를 배출했다. 유치환, 유치진, 박경리,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윤이상이 통영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추앙받고 있다. 원래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Isang Yun Competition)’로 진행돼오다 이름이 바뀐 통영국제음악제(TIMF)는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돼 몇 년간 성황리에 진행돼 왔다. (남한 좌익세력의 고의적인 문화선동으로 의심된다.) 윤이상의 작품은 대중과 유리된 현대음악으로서 매우 난해하다. 그의 오페라 심청은 초연 후 오랫동안 재공연이 안 됐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현대음악 작곡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윤이상기념관에 가면 그가 “애국자”였다고 써있으며, 통영국제음악제재단 홈페이지에는 “현대음악의 거장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의 취지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 화해의 세계를 추구한 그의 음악세계는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지금 통영에선 잔잔하지만 심상치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통영시 소재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도서관 1층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는 통영기독교연합회와 통영현대교회에 의해 주관됐다. 거기에 있는 흑백 가족사진 한 장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진은 1991년 작곡가 윤이상이 다시 월북하라고 회유하기 위해,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함께 건네준 가족사진(사진 아래에 첨부)이다.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이 사진의 배경이 수용소 내부라는 것이 확인됐다. 신숙자. 1942년 12월 10일 통영 서호동 출생. 통영초등학교 45회 졸업. 통영여중 9회 졸업.’ (사진 설명) “(오길남박사의 두 딸) 혜원·규원 자매와 아내 신숙자씨는 1987년 말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갇히는데 이때 혜원 11세, 규원 9세였다.” (소개 팸플릿) 놀랍게도 윤이상 때문에 지옥과 같은 요덕수용소 생활을 하는 신숙자씨도 통영사람이었던 것이다. 윤이상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북한관련 실정법을 위반했던 것이다. 죄에 비해 형량이 가혹했고, 수사과정도 강압적이었다. 어찌 보면 그도 거칠었던 시대에 화상(火傷)을 입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숭고한 민족사랑"을 가진 위대한 "애국자"는 결코 아니었다. 원래 예술가들은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고, 무책임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윤이상은 당시 북한체제에 대한 호감을 갖고 비밀리에 북한 측과 긴밀한 교류를 해왔다. 위법행위였지만 예술가의 낭만 탓에 당시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동백림 사건 이후 윤이상 부부는 북한을 자주 오가며 김일성과 주체사상 찬양의 노골적 나팔수역할을 했다. 김일성을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인 주석님"이라고 쓴 편지는 압권이다. 더구나 독일 유학생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마친 오길남씨를 교수를 시켜주겠다며 가족과 함께 입북(入北)하도록 권유한 것은 심각한 경우였다. 독일에서 활약한 북한의 고정간첩인 김종한의 권유와 주선이 있었고, 독일에 있는 유명한 음악가인 윤이상으로부터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며 당신의 해박한 지식을 북에 가서 활용해 주기 바란다’는 서신을 받고 오길남은 입북을 결심했다. 부인은 적극 반대했지만 그는 입북을 결행했다. 그러나 오씨는 약속과 달리 북한에 가서 대남 공작원으로 이용됐고, 북한체제의 실상을 알고 나선 탈출했다. 윤이상은 오씨의 북한 복귀를 강요하며 안 돌아갈 경우 "은혜를 베풀어준 주석을 배반"했기에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 "가족은 죽는 줄 아시오"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다 한다. 오박사는 탈북 후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북한의 '대남 공작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이상을 만나 그의 가족을 송환시켜 줄 것을 수차에 걸쳐 간절히 요청했다. 그러나 윤씨와 부인 이수자는 신씨 모녀 사진과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북한에서 가져와 오씨에게 두 차례 전하며 재입북을 강요했다. 그러면서 윤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당신은 미제 고용 간첩이다. 은혜를 베풀어 준 김일성 주석을 배반했으므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다시 입북해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했다. 오씨 가족은 현재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다 한다. 사진전의 그 사진은 윤이상이 오박사를 협박하면서 건네 준 바로 그 사진이다.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이다. 이것이 작곡가 윤이상과 인간 윤이상을 분리 평가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가 절대로 애국자가 될 수 없는 근거이다. 역시 동백림 사건 연루자였던 이응로 화백 부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당대의 은막(銀幕) 스타 윤정희 부부는 묘하게도 1972년 뮌헨에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초연(初演)을 보러 와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결혼 주례는 고(故) 이응로였다. 그런데 1977년 여름 백건우 부부는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에서 북한에 납치될 뻔했다. (나중에 유령인물로 밝혀진) 한 스위스 부호가 백씨의 스폰서가 되고 싶으니 만나자는 거짓말로 이들을 유인한 사람은 놀랍게도 이응로의 후처(後妻) 박인경이라 한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백·윤 부부는 미국 영사관에 몸을 의탁해 극적으로 생환했다. 백씨 부부가 북한에 납치돼 당했을 일들을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몇 년 전 유고 공산당 문서가 비밀해제되면서, 이 사건 당시 유고 주재 북한 대사가 북한이 치밀하게 계획한 소행임을 인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것이다. 또한 여러 정황을 보면 이 화백은 아닐지라도, 그의 처는 납치 기도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응로씨 부부는 사건 조사를 거부하고 잠적했으며, 결국 한국 국적을 버렸다. 그런데 그녀(박인경)가 어느 순간부터 한국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김대중 정부 시절엔 청와대에도 초청되는 귀빈 대접을 받았다. 백건우 부부는 이에 놀라 납치 미수사건의 조사를 정식으로 요청했으나, 국가정보원은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당시 국정원장은 "내 임기가 끝나 제대로 수사를 못했다"라는 어이없는 변명만 남겼다. 자국민의 납치사건도 제대로 수사 안하고, 이 사건에서 결백할 수 없는 사람을 오히려 귀빈 대접한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하루빨리 재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누가 조사를 방해했는지, 그리고 진상은 무엇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어차피 공소(公訴) 시효는 지났다. 진실을 역사에 남기자는 것이다. '죄지은 사람'이 있다면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한 한국사 교과서는 윤이상과 이응로 등이 연루된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중앙정보부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유럽에서 평화 통일 운동을 하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을 간첩으로 체포하여 국내로 압송하였던 것이다.” 가공(可恐)할 왜곡이다. 마치 부정선거를 감추기 위해 동백림사건을 조작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윤이상과 이응로는 북한관련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지, '평화 통일 운동'을 했기에 구속됐던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이후 윤이상의 행동은 도를 벗어난 김일성체제 찬양 활동이었다. 다시 통영 얘기로 돌아가자면, 통영 현대교회 담임목사 방수열씨와 그의 부인 소신향씨가 이 전시회를 주관하고 있다. 신숙자 모녀 생사 확인요청 및 구출 탄원서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도와야 할 일이다. (서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soosin153@hanmail.net 로 연락) 통영에서 이런 전시와 운동을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방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평범한 목회자로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집사람과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혜원·규원자매 구명운동’은 이지혜(29·국제변호사, 부산 예양교회)씨 같은 사람들도 주도하고 있다. 윤이상의 명예가 훼손되면 통영의 관광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걱정한다는 분위기도 있다니 이 얼마나 저열한 생각인가.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를 훌륭한 작곡가로 칭송하는 것도 좋다. 필자는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애호가이다. 아까운 국고로 지은 윤이상 기념공원도 그대로 둬도 좋다. 하지만 예술과 인간의 행적은 분리하자. 더 이상 진실을 부정하고 허위에 기대지 말자. 윤이상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알고서도 역사를 왜곡하며 그를 애국적 위인 취급하는 것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래야만 통영의 명예도 살고 통영국제음악제도 산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