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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의 역사와 발전

바다늑대FORCE 2006. 4. 22. 13:13

  직업적인 다이빙은 5000년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잠수는 매우 얕은 물에서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은 숨을 참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얻고자 함이었다. 가장 원시적인 이러한 방법으로 그 들은 해산물 채취나 간단한 수중 작업등을 하였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수영을 했는지 기록되어있진 않지만 기원전 6세기경부터 원시 예술 작품(벽화)에 초기 물에서 활동을 한 그림이 전해진다.

초기 다이버들은 군사활동을 목적으로 하였다.
즉 닻줄을 끊는 것, 선체에 구멍을 뚫는다든지, 항구 보호 시설 건설 등의 활동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지금의 레바논인 페니키아의 도시(튀르스)를 정복하려 했을때 적지의 수중 장애물을 다이버를 보내 제거하였다. 역사적 기록에는 알렉산더 대왕 자신이 직접 수중으로 들어가 자신의 다이버들이 일하는 것을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1531년경에 최초의 실용 면을 고려하여 개발되어진 형태가 종의 모양처럼 생긴 잠수종이었다. 이 모양의 잠수기는 단순히 종을 물 속에 담그면서 남아 있는 종속의 공기를 사용하는 잠수형태로 발전을 거듭해16,17,18세기 동안 종모양의 잠수기는 계속 발달되었고, 상업적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런 형태의 종모양 잠수기는 어느 정도의 시간 즉 몇 분 정도의 짧은시간 동안 다이버를 수중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초기 종모양 잠수기는 일정시간 동안 다이버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를 잡아두기 위해 물통을 수직으로 가라앉히기 위해 자체적으로 중량을 가진 물체로 만들어 져야만 했다.

이 원리는 물이 가득한 통에 컵을 거꾸로 가라앉혀 컵속의 공기를 사용하는 잠수방법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컵 안의 공기는 주위 물의 압력을 받고 갇혀있으나 또한 주위를 둘러싼 물의 압력을 받는것이다. 배나 움직이지 않는 수면구조물에서 케이블로 매달려지는 종모양 잠수기는 지상에서 단순히 종을 들어주는, 움직임이 없는 고정된 장치로서 그 속의 잠수부는 움직임이 한정된다. 그리고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장치를 가진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종모양의 잠수기 안에 매달려 있으면서 잠수기 속에서 머무르고 작업을 했다. 또는 숨을 참고 짧은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1680년대 William Pphipps가 카리브해의 전설로 전해진 보물을 찾기위해 자신의 일꾼들에게 공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좀더 무게가 있는 통을 만들어 잠수기를 개선시켰다. 1690년대에 에드먼드 할레이(Edmund Halley:유명한 천문학자)는 지상에서 공기를 공급해 줄 수 있도록 고안된 공기를 담은 무거운 큰 통들을 연결하여 공기를 공급할 수 있는 종모양 잠수기를 개발하였다. 그가 디자인한 잠수기에 Halley와 4명의 동료가 템즈강 20(60피트)미터 밑 수중 바닥에서 1시간 30분 가까이 머물러 있을 수 있었고 26년 후에 그의 종모양 잠수기를 개선하여 23미터(66피트) 깊이에서 4시간 이상 머물렀다.

1715년에 존 레드브릿지(John Lethbridge:다른 영국인)는 완벽하게 밀봉된 개인용 다이빙 캡슐을 개발하였다. 물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보강된 통에 가죽으로 감싸서 만들어 졌는데 방수 소매로 팔을 감쌌고 유리로 된 창을 가졌었다. 그 시대의 대중 잡지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기구들을 사용하여(입다기 보다는 그안에서) 12 fathoms가 한계인데 보통 10 fathoms (60feet)에서 작업하면 작업시간은 적어도 30분 정도라고 묘사했다. Lethbridg의 디자인에 의거한 몇 개의 유사한 고안품들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 공급과 기동성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점을 감수 해야했다.

근대적인 잠수장비의 등장18세기가 시작될 시기에 그 동안 사용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발명품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이빙을 하도록 영원히 바꿔 버렸다. 즉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장비들이 잠수 활동에도 사용되어 졌는데 그 중에서도 압축기의 개발은 새로운 장을 열게 하였다. 즉 수동작업에 의한 공기 펌프는 압축된 공기를 다이버에게 공급해 주는 것을 가능하게 했는데 (비록 초기에는 압력 한계가 있었지만) 이로 인해 최초로 실용적인 다이빙용 잠수복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진보와 개발을 통해 인양작업 등 수중작업이 쉬워지고 활발해 지기 시작했다. 대영제국 연안에는 그 동안 상업활동과 전쟁을 통해서 난파된 많은 선박들이 좌초되어 있었는데 모험심 강한 많은 다이버들이 새로 개발된 이러한 장비들을 사용하여 인양하고 이익을 서로 나눔으로써 많은 다이버들이 부자가 되었다.

오거스트 시에드(August Siede)는 초기에 실용적인 잠수복을 개발하여 잠수계에 유명해졌는데 Siede와 몇 사람들이 힘을 합쳐 1800년대 초기에 성공적인 다이빙 장비를 제작하게 되었다. 딘 형제(존과 찰스:John & Charles) 화재로 인하여 연기가 가득한 화재 현장에 들어가 구조할 목적으로 장비를 개발하여 특허를 받았다. 이 후에 이 형제는 물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개조하여 이를 Deanes’Patent Diving Dress로 이름이 붙여지고 시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Deane형제의 다이빙복은 다이버의 보호를 위한 무거운 천과 밖을 볼 수 있는 몇 개의 창을 가진 헬멧 그리고 압축된 공기를 전해주기 위해 연결된 호스로 구성되었다. 헬멧은 다이버의 어깨에 장착되어 자체 무게와 허리띠로 쓰이는 가죽으로 고정되었다. 이런 배열의 장비는 자체에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만약 다이버가 실수로 몸을 기울이게 되면 헬멧에 물이 차고 공기가 빠져나간다.

이런 다이버의 실수를 예방, 대처하기 위해 Deane형제는 장비의 사용법을 정리하여 그들의 다이빙복에 대한 교육책자를 만들었고 이 교재가 다이빙계에 화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 책은 활자화 된 최초의 다이빙 입문서가 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August Siebe의 개조품은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만들어진 방수가 되는 천으로 헬멧을 봉인했다. Siebe는 잠수복을 개선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헬멧 조립을 연구한 가치가 인정되고 초기의 표준이 되는 깊은 수심용 다이빙복의 원조처럼 인식되어졌다.

그리고 Deane, Siebe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발명한 장비들은 다이버들을 장시간 수중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개발됐으며 그 장비들은 다이버들에게 작업활동을 순조롭게 하도록 자유로움과 기동성을 주었다. 그러나 다이빙복을 입은 그들은 공기의 공급을 계속적으로 받기 위해 지상과 연결된 호스에 계속 묶여져 있어야 했다. 즉 호스는 사람들에게 공기를 공급해주나 움직일 수 있는 거리를 제한하였다. 많은 발명가들이 공기 호스를 대체하고 이동에 완벽한 자유로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호수 대신에 공기를 저장하여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 다이버들에게 스스로 휴대할 수 있는 공기 공급기를 주게된 것이다. 더 이상 적당한 압축기가 아니라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원통형의 저장탱크 형태로 고안되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다이버 혼자만의 다이빙이 실용화되어 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기 공급을 수반한 높은 압력의 공기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장비의 개발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장비의 개발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디자인되고 고안되어 19세기 중반부터 현세기 초기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인 로그아롤(Messrs Rouquayrol)과 드네이로스(Denayrouse)는 지상으로부터 공기를 공급받는 형태의 잠수장비인 공기공급 호스를 가진 헬멧형 다이빙복을 고안했는데, 이 장비의 특징은 비상시에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등쪽에 장착된 자체적인 공기 저장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Rouquayrol / Denayrouse 의 개발 장비는 다른 여타의 고안된 잠수 장비와 다른 자동 요구식 밸브를 사용함으로 해서 구분될 수 있다.

1878년에 헨리 프뢰스(Henly Fleuss)가 약 450psig 압력을 가진 통에 압축된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주기적으로 섞이도록 하는 공기 저장통을 사용한 미개방 형태의 장비를 발명하였다. Fleuss의 장비는 영국의 다이버 알렉산더 램버트(Alexander Lambert) 7번가 밑의 터널에서 부서져 열린 철문을 닫기 위하여 터널을 걸어다닐 수 있도록 고안되어 1880년경에 성공적으로 이용되었다. 1926년에 함장 쁘리에(Prieur)는 마우스피스와 공기 호스를 장착한 등에 매는 압축공기통을 구상하고 설계하여 특허를 얻었다. Le Prieur 장비의 공기통은 2000psig의 압력 공기를 가졌다. 그러나 자동 요구식 밸브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공기가 물 속에서 낭비되었다.

1943년 에밀 까냥(Emile Gagnan)과 쟈끄이브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가 자신들이 개발한 장비를 아쿠아-렁(Aqua-Lung)이라고 불렀다. 이는 압축된 가스통에 2500psig이상의 압력을 저장하는 압축공기탱크가 2∼3개로 구성되었다. 이 장비는 흡입식 요구 밸브인 레귤레이터을 사용함으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공기의 사용을 조절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Gagnan과 Captain Jacques-Yves Cousteau 장비들은 최초의 실용적인, 즉 지상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주는 스쿠바 장비가 되었다.

스쿠바 역사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공헌하였는데 잠수장비의 발전뿐만 아니라 수영 핀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1930년대에 부함장 카를리에(Carlieu)가 Le prieur의 Scuba 장비를 착용하고 물 속에서 수평으로 이동 할 수 있도록 핀을 만들어 냈다.
다이빙의 역사는 발명, 발전 그리고 진취적인 사상이 담긴 여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중장비의 발전과 탄생은 전쟁과 많은 연관이 있어 왔다는 사실이며 전쟁을 통해서 짧은 다이빙 역사에 장비의 진보와 이론적 체계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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