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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白頭大幹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인 속리산 천왕봉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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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白頭大幹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인 속리산 천왕봉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19. 2. 17. 19:39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

백두대간(白頭大幹)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분기점인 속리산 천왕봉에 서다..!


▲ 충북 보은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

    속리산 높이 : 1058m

    치 :  충북 보은군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


▲산행일  : 2019년02월16일 토요일  날씨 : 현지 산행지 눈(雪)


▲나의산행코스 : 

속리산 탐방지원센터(세조길)

속리산 들머리-→ 세조길 → 세심정→ 상환암 → 상환석문 속리산 천왕봉(원점회귀)

편도5.7km  왕복5시간 30분 소요


▲속리산 산행지 개요 :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정상인 천황봉(1,058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 입석대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다.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신라시대 이전에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지4호), 문장대,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로 대표된다.

법주사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높이로 속리산의 한 봉우리이며,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정2품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한 우아한 자태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속리산은 산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산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찾아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 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수시로 찾아든다.

속리산 단풍은 설악이나 내장산과 같이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1,033m높이의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주변 풍광으로 청법대 바위의 웅잠함에 감탄하게 된다.

신랑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시가 유명하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

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사람들이 때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

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인기명산 [10위]

법주사, 문장대, 정2품 소나무 대표되는 속리산은 법주사 입구의 울창한 오리숲

기암괴석이 즐비한 수려한 경관에 단풍 또한 장관이다.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많이 찾으며 봄에도 인기 있다.

법주사에는 여러 문화재가 많고. 복천암까지의 나들이 코스도 있어 사계절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제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법주사(法住寺), 문장대,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및 천연기념물 제207호인 망개나무가 유명하다


▲  속리산 등산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간고속도로 추부TG→→→보은교차로


 →→→법주사 탐방안내소 주차장


241km 승용차 2시간30분 소요


→→→→→2019년 2월16일 토요일 새벽일찍 산악회를 만나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경남대행정대학원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산사회) 회원들과

100대 명산 산행 71회차 충북 속리산 천왕봉으로 산행길에 나선다.


↗ 속리산 법주사앞 탐방지원센터

충북 속리산 법주사 앞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경남권역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함박눈이다

덕유산 산행처럼 속리산도 눈꽃산행을 하게되어

또하나의 좋은 겨울 눈산행이 될것 같았다.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구봉산(九峯山)·형제산(兄弟山)

소금강산(小金剛山)·자하산(紫霞山)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속리산(俗離山)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컬었다.”라고 되어 있다.


↗ 속리산 법주사 들머리로 가는길 2km

법주사로 가는길은 울창한 나무숲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라면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것이고

여름이면 녹음이 짙은 길이 아름다울것 같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 내속리면에는 관광 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 상가 등이 밀집하여 관광 취락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에서 절까지 이르는 약 2km의 길 양쪽에는

떡갈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어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을 달리한다.

이 곳은 숲의 길이가 5리(2km)나 되어 오리숲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속리산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면 화양동 계곡이 나온다.

이 계곡에는 조선 시대의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숨어 살았던 화양 구곡과

조선 시대의 학자인 퇴계 이황이 찾아왔다가 도취되어 놀고 갔다는 선유동 구곡이 있다.

화양 구곡은 박대천의 지류인 화양천을 따라 펼쳐지는 경승지를 말하며

선유동 구곡은 화양 구곡의 상류인 삼송천을 따라 펼쳐지는 빼어난 경치를 말한다.


↗  법주사  일주문(法住寺一柱門)

법주사 일주문 정면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적힌 편액(扁額)이 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통틀어 으뜸 사찰이라는 뜻이다.

뒤쪽 현판에는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라고 쓰였다.
법주사 일주문의 부연개판으로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학을 표현하였다.

학은 입에 보주를 물고 있으며 두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오색구름은 학의 주변에 여러 개가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은 세속과 성스러운 곳의 경계로 이제부터 부처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중생의 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절대 평등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일주문이다.

↗  세조길 속리산 들머리 정상까지 5.7km

1450년경 조선의 7대왕이었던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다.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하여 그 해에만 70만명 이상이 탐방하여 가장 성공적인 명소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 세조는 속리산 지역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행차는 총 3번이 있었다.

첫번째는 당시 복천암에 거주하고 있던 신미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훈민정음 보급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거 고려 태조왕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읽다 할아버지(작제건)의 유적을 찾기 위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말티재 길을 걸었는데, 훗날 고려 태조를 크게 흠모하던

세조가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놓아 정비한 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온 것이다.

그 외에도 당시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기 위하여 속리산 지역 및 타지방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  세조길따라 천왕봉으로

속리산 세조길은 법주사에서부터 세심정까지이며

세조가 바위 그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자리인 눈썹바위,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꿈에 나타나 점지해 준 곳으로 이에 세조가 직접 목욕한 목욕소

세조가 성스러운 불당 바로 앞이니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도록 했다는 법주사 하마비

그 외에 조선 세조가 문신들과 시문을 읊었다는 속리산 문장대

세조가 직접 관직을 내린 천연기념물 103호 속리산 정이품송

세조가 법주사 승려들에게 쌀 3백석, 종 30명, 논밭 2백결을 내리며

추가로 "복천암에 있는 돌기둥을 끌되 돌이 더이상 끌리지 않는 곳까지

법주사 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자 이에 승려들이 돌기둥을 밧줄에 묶어 온힘을 다해 끌고 또 끌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사하촌 은구석(恩救石) 등의 여러 볼거리들이 있다.


↗  세심정 절구의 유래

세심정 절구는 함박눈에 덮혀 있다

세심정 절구의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절구가 실제로 사용되었던 시기는 13C-14C로 추정되며

이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아서 밥과 떡과 곡주가 만들어 졌다 한다.

이 절구가 만들어 졌던 시기에도 약 400 여개의 작은 암자와

많은 토굴이 있어 속리산의 비범한 기운을 받아 공부하길 원하는 많은 고승과 도인

학자들이 이곳에서 제공 되는 음식을 먹고 또한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공되는데 손님 중에는 아주 특별한 신부도 있어

이곳에서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다 가는 곳. 곡식은 국가에서 제공되었다 한다.

↗ 세심정앞 계곡

속리산 세심정앞 계곡엔 눈덮은 얼음 사이로 봄이 흘러 내리고 있다.

맑게 흐르는 물길이 마치 함박눈 사이로 용(龍)한마리가 승천을 하기위해

용트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리산 일대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 8대 경승지의 한 곳으로 전해져 오는 곳으로

소백 산맥의 명산으로 꼽히며, 제2금강 또는 소금강 등으로도 불린다.

옛 문헌에 따르면 속리산은 원래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이라 하였으며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고 불렸다 한다.

이 산에는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정이품송 · 망개나무 등 670여 종의 식물과, 딱따구리

사향노루 · 붉은가슴잣새 · 큰잣새 등 34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 속리산 천왕봉 2.1km

한참이나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천왕봉 정상까지 2.1km남았다

나무가지에 쌓인 솜 같은 눈을 보며 마음을 씻어본다

산행준비물에 행여 비올까봐 우의 챙겨 왔는데

그러나 산정을 아름답게 만드는 함박눈이 내려서 너무 좋다.

속리산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말티 고개는

고려 태조 왕건이 법주사에 행차할 때 닦은 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꼬불꼬불 열두 굽이를 돌아야 넘는 험한 고개로 널리 잘 알려진 고개이다.

속리산에는 법주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 진흥왕 때인 553년에 의신 조사가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인조 때인 1624년에 옛 모양을 찾아 다시 지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5호인 쌍사자 석등 및 팔상전(국보 제5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법주사와 천황봉 사이에 사내천이라는 계곡이 있다.

이 계곡에는 탈골암 · 복천암 · 상환암 · 하환암 · 중사자암 · 학소대 등 암자가 많다.


↗ 속리산 상환석문

석문이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바위 사이로 길이 열려있어 통로 기능을 해야 하며

또 자연스럽게 지붕 구실을 해야 하는 바위도 덧씌워져야 한다.

그래야 뭔가 문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한다

마지막으로 석문을 경계로 하여 ‘대문 안과 밖처럼’ 앞뒤 풍광의 차별성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하며 상환석문이 그렇다.   

산과 물을 경계선으로 삼던 시절에는 자연석문(石門) 역시

주변 암자의 권역임을 알려주는 경계석 구실을 하고

상환암과 상고암은  암자 이름을 붙인 석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듯 하다.

상환 석문을 통과하면

곧장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양편으로 산죽(山竹)이 펼치지는 평원이 나오며

편안하고 여유롭게 산행할수 기쁨을 준다.

석문의 아래쪽 숨가쁜 길과 위쪽의 느긋한 길이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인하여

이 석문길을 즐겨 찾는다는 산객들도많다고 한다.

무릉도원 입구의 그 동굴문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한 크기에 불과했지만

인간세상과 신선세계를 이어주는 대문 구실을 했다는 옛 전설까지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속리산에는 여덟 개의 석문이 있다.

 ‘팔석문 길’을 걸으면서 마음 속 여덟 가지 근심거리를 한 개씩 덜어내는 자기발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많은 산꾼들은 발품을 아낌없이 팔았다.


↗ 눈덮힌 탐방로

상환석문을 나오자 깔닥고개를 넘어 올때에 솜차던 것이 평탄한 길로 접어 들었다

마치 설국에 접어들어 동화속을 걷는 마음이다.

이렇게 겨울을 느끼게 하는 풍경속으로 걷는 산길이 가볍기만 하다.

풍경화속에 외갓집 가는길을 걷는 것처럼

눈덮힌 산골 오솔길 같다.

오솔길에서 토끼 발자국 따라 토끼사냥 하고픈 어릴적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햇살에 눈녹듯 빨리 지나 가버린 우리의 소풍같은 인생길 이다.


↗ 눈덮힌 탐방로

미끄러 질세라 천천히 등산 하는길은 눈덮힌 산정에 한눈팔려서 정신이 혼미하다

눈꽃을 바라보며 걷는 산행에 지친몸도 어느새 가벼워 진다.

속리산은

기암고봉, 울창한 수림, 깊고 수려한 계곡, 폭포 등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법주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일대가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속리산국립공원)

1984년 충청북도 괴산군의 화양동도립공원이 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총면적은 283.4㎢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보은속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상주속리산 쪽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법주사와 같은 유서깊은 사찰이 없고 교통·숙박시설 등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 눈덮힌 속리산

상주시에 속하는 속리산  문장대는 공원 내 최고의 명소이며

정상에는 50여 명이 앉을 수 있으며 법주사는 수정봉과 태봉의 산능이 닿는 곳에 있고

한국 거찰의 하나로서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법주사쌍사자석등(국보 제5호)·법주사팔상전(국보 제55호)

법주사석련지(국보 제64호)·법주사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법주사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과

동양 최대의 철근 콘크리트 입불상인 미륵불상 등이 있으며

속리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과 보은 속리산의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가 자라고 있다.


↗ 동화속 설국으로 가는길

사방팔방이 하얗게 덮힌 설국이며 우리는 그속 동화속의 인물이 되었다.

이길을 걸어면서 가을 단풍이 있을때 다시 한번더 걷고 싶은 길이다

하얗게 덮은 수목들이 가을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모습을 보고싶다.

올 가을엔 속리산 단풍 산행을 꼭 해야지 욕심이 생겼다.


↗ 눈덮힌 탐방로

눈덮힌 계곡이 여름이면 물 흐르는 소리 요란 할건데

하얗게 덮은 얼음 아래로 봄이 오는소리 들리려나 귀 기울려 보자.

속리산이 있는 경북 상주 화북면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상주시 서북부에 있는 면으로서

임야가 전체 면적의 88.9%를 차지하고 있다.

면 전체가 높고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사방에 속리산 천왕봉(1,058.4m)

청화산(987.7m)·형제봉(803m)·백악산(855.5m) 등이 솟아 있다.

동남산지에서 발원한 화양천이 동부를 북류하며 하천연안을 따라 경지가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누에고치·감·잎담배·참깨 등이며, 특산물로 곶감이 생산된다.

유물·유적으로 상오리 7층석탑(보물 제683호), 견훤산성 등이 있다.

일부 지역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여 문장대·화양동계곡·장각폭포·오송폭포·옥양폭포 등의 관광명소가 많다.
행정구역은 용유리·장암리·상오리·입석리·중벌리·운흥리 등 6개리가 있다


↗ 설국으로 가는 계단

마치 겨울왕국에 나오는 계단같이 보인다

천지가 하얗게 변해버린 겨울 왕국이다.

50대 지천명(地天命)은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에 소실적 눈사람 만들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지나온 시간들이 이렇게 눈녹듯 사라져버린게 서러울 뿐이다.

산에서 길을 보고

산에서 앞으로 가야할길을 보면서

또 내려올땐 더 조심히 내려와야 한다

산은 인생길과 같다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을 더 조심 해야기에......!


↗ 설국의 하늘

하이얀 서리처럼 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속리산에는 대(臺)가 많이 있는데 그 중하나인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없어 등산이 불가능하여 문장대와 신선대 사이에 있는 등산로에서만 볼 수 있다.

신선대쪽으로 가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보면 볼 수 있는 기암이다.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

청법대는 부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는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법대를 보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오르막 언덕끝에 왼쪽으로 난 샛길을 돌아서 우뚝 솟은 바위위에 올라서야

청법대와 봉우리들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 속리산의 겨울 풍경

속리산 신선대는

해발 1026m에 위치한 바위 암벽이며, 문장대에서 약 1.2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법주사에서는 약 5.7km지점에 있다.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외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고승이 황급히 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그이 눈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선대에는 문장대와 천황봉 사이를 연결하는 등산로의 중간 휴게소가 있다.


↗ 속리산의 눈덮힌 산죽

속리산은 한국의 8경 가운데 하나이며, 소금강산·구봉산·광명산 등으로도 불린다.

비교적 산세가 험하며 웅장하다. 기반암은 화강암·변성퇴적암이다.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은 낙동강 상류로 흘러들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은

금강과 한강의 상류로 흘러든다.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소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잣나무·전나무·버드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다.

특히 산록에 우거진 조릿대 숲이 장관이라고 한다.


↗ 목화 솜을 덮은 나무가지

푸르는잎 대신에 추운겨울 따스한 목화 솜이불 덮었다.

속리산의 입석대는

입석대(立石臺)는 신선대와 비로봉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법주사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5.5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과거 이 곳에서 조선 후기의 임경업 장군이 수도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청법대와 마찬가지로 매우 험준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조선왕보 제16대 왕인 인조때의 임경업장군이 이 곳에 이르러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할 때 그가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지를 알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하려 했으나 기준조차 알 길이 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않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 차리고 그 말을 들으니 "마주 바라다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하는 말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이에 임경업이 그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여 마침내 수도 7년째 되던 해에

반석(盤石)위에 돌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불리게 되었다.


↗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을 바라보며

눈덮인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보면 천왕봉 조망과 속대산 봉우리 능선들이 파노라맟처럼 펼쳐지는곳인데

천지가 하얗고 하늘도 구름이라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구분이 안되는 날씨라

광할하게 펼쳐진 조망을 바라볼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비로봉(毘盧峯)은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속리산의 봉우리이다.

법주사에서는 약 5.77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973m이다.

 ‘비로’란 ‘비로자나불’을 줄인말로써 인도말로 '모든곳을 두루 비친다'라는 뜻이며, 광명을 뜻한다.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자선을 할 때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고

이에 대사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한 후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

대사는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알할 수 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1058m

속리산 천왕봉은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 분기점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라져 나와 충청북도 북부를 동서로 가르며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져 한강과 금강의 분수산맥을 이루며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까지의 한남정맥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의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산경표(山經表)』에 근거를 둔 이들 산줄기의 특징은 모두 강을 기준한 분수산맥으로

그 이름도 대부분 강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정맥을 이룬 주요 산과 고개는 『산경표』에 속리산·회유치(回踰峙)·구치(龜峙)·피반령(皮盤嶺)

선도산(仙到山)·거죽령(巨竹嶺)·상령산(上嶺山)·상당산(上黨山)·분치(粉峙)·좌구산(坐龜山)

보광산(普光山)·봉학산(鳳鶴山)·증산(甑山)·마곡산(麻谷山)·보현산(普賢山)·소속리산(小俗離山)

망이산(望夷山)·주걸산(周傑山)·칠현산(七賢山) 등으로 기록되었다.

해발 400∼600m의 산들로 연결되었으나 때로는 100m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기도 한

이 산줄기는 동쪽의 괴산·음성·충주 등 중원의 남한강지역과 서쪽의 보은·청주·증평·진천 등

금강 북부지역의 생활 문화권을 가름하였다.

한 때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자연스러운 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대 지도에서 산 이름으로 찾아보면 속리산·말티재·구치(九峙)·시루산·구봉산(九峰山)

국사봉(國師峰)·선두산(先頭山)·선도산(先到山)·상봉재·상당산성(上黨山城)·좌구산·칠보산(七寶山)

보광산·행태고개·보현산·소속리산·마이산(馬耳山)·차현(車峴)·황색골산·걸미고개·칠장산 등이다.

속리산높이는 1,058m이며 한국의 8경 가운데 하나로 소금강산·구봉산·광명산 등으로도 불린다.

비교적 산세가 험하며 웅장하다. 기반암은 화강암·변성퇴적암이다.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소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잣나무·전나무·버드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다.

특히 산록에 우거진 조릿대(산죽) 숲이 장관이다.
기암고봉, 울창한 수림, 깊고 수려한 계곡, 폭포 등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법주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일대가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탈골암이 법주사 위쪽 높이 약 560m에 위치하며, 그밖에 복천암·중사자암·상환암 등 많은 절과 암자가 있다.

유적지로는 보은군 쪽에 삼년산성(사적 제235호)이, 상주 쪽에 견훤성이 있다.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峰)1058m

속리산의 주봉 천왕봉 정상석은크기가 초라하다

명산답게 표지석도 자연환경에 맞는 큰 자연석으로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속리산은 충청 북도 보은군과 경상 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1,058m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 비로봉 · 경업대 · 문장대 · 입석대 등

해발 1,000m 내외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 중 문장대는 속리산의 빼어난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승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속리산 일대에는 이 밖에도 이름난 계곡과 폭포, 기암 괴석이 곳곳에 널려 있다.

또한 크고 작은 절과 암자는 저마다 많은 문화 유산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1970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속리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으로서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제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법주사(法住寺), 문장대,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및

천연기념물 제207호인 망개나무가 유명하다.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찍고서 원점회귀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 법주사 팔상전(法住寺捌相殿)

법주사 팔상전은

국보 제55호. 5층의 높은 건물로 5층 옥개(屋蓋)는 사모지붕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를 갖춘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이다.

건물은 각 면에 돌계단을 가진 비교적 낮은 석조기단 위에 섰으며

기둥머리에 창방(昌枋)을 돌리고 공포의 헛첨차는 기둥머리에 꽂혔다.

공포는 2출목(二出目)으로 출목의 끝은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나

점차 형태는 조선 말기의 매우 장식적인 파련각(波蓮刻)을 가졌다.

2·3·4층의 공포는 모두가 기둥 위에 놓이기는 하나 다포(多包)집 양식의 공포이며

5층은 기둥머리와 창방 위에 평방(平枋)을 돌려 완전한 다포집 양식이 되었고

공포는 주두(柱頭: 대접받침) 위에만 있으나 형태는 역시 다포집 양식의 것이다.

이와 같이 1층은 주심포(柱心包)이고, 2층 이상은 다포집 양식의 포작(包作)은

금산사 미륵전(金山寺彌勒殿)이나 쌍봉사 대웅전(雙峰寺大雄殿) 등

3층 건물에 있어서도 보지 못하는 특수한 수법이다.

내부 가구는 평면 가운데에 심주(心柱)가 있고 모서리 안쪽에 귀고주[隅高柱]를 세웠으며

2층의 모서리기둥[隅柱]은 1층 변주(邊柱: 변두리기둥)와 귀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 세워졌다.

3층 역시 귀고주와 2층 변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 그 기둥을 세우고

4층 변주는 귀고주가 바로 4층 변주가 된다. 이 귀고주는 심주와 대량(大樑)으로 연결되며

5층 변주는 이 대들보 위에 서게 되었다.

심주는 기단 윗면 심초(心礎) 위에서 5층 옥개 밑 중도리까지 이른다.

이러한 가구방식은 금산사미륵전의 가구방식과 같은 계통의 수법이다.


↗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금강문에서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큰 불상이 바로 법주사의 청동미륵대불 이다.
청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법주사(法住寺)

사적 제503호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에 의신 조사가 창건했으며, 절이름은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에 진표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등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속리산 천왕봉 산행은 법주사 경내를 둘러보고 참배로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법주사 보은군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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